유쾌하게 되는 일 (행3:9-26)
본문
오늘 본문 말씀중에서 사도들은 성전미문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고친후 그 기적의 사건을 두고 베드로 사도가 유대인에게한 설교입니다. 이 설교는 베드로의 두번째 설교로서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삶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나아가 여러분의 삶이 아름다와지는 귀한 역사가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40년동안 고생하던 앉은뱅이를 고치신것은 자연적인 현상이나 뛰어난 사람의 힘이나, 정신력으로서 되어진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에서 부활 하시고 하늘에 높이 앉게 하시고 영광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오는 힘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삶이 유쾌하게 되는 역사가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첫째. 하나님의 역사는 기이한것이 아니다 본문 3:10 “그의 당한 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 하나님의 역사로서 앉은 뱅이가 일어서자 그들은 기이히 여겼다고 말씀 합니다. 왜 그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기이히 여겼습니까 그 앉은뱅이는 40년동안의 매임에서 해방이 되어 앉은뱅이가 걷게 되었으므로 기이히 여겼습니다. 그는 40년 동안 성전미문에서 구걸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출생이후 지금까지 남의 도움이 없으면 살아갈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앉은뱅이는 성전 미문밖에 앉아서 성전을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구걸하며살아왔습니다. 성전과 제일 가까운곳에 앉아서 들어가서 능력의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사람만 바라보며 살아 왔던 것입니다. 그는 나은 생활이나 더 나은 환경을 바라본다는것은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본래 그러려니 하면서 생활했던 것입니다. 희망이나 미래 같은 것은 도저히 생각 해 볼수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로 마귀의 권세에서 놓임을 받았던것입니다. 이 앉은뱅이의 삶이 인간 생활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좌절한 인생’ ‘소망이 없는 삶’ 목표를 잃어버린 인생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능력으로 새롭게 일어나는 역사가 일어난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어떻게 이런일이 일어날수 있습니까. 사람으로서는 기이히 여길만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능력으로는 기이히 여길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권세로서 능히 이루어 질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앉은뱅이에게 말합니다. 행3:6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예수의 이름이 그와 함께 하였을때 놀라운역사가 일어 났습니다. 이제까지 다른 사람의 도움없이는 걸을수 없었던 그가 베드로와 요한을 통하여 역사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았을때 역사가 일어 났습니다. 성전안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역사가 일어 났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건입니까.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의 어려운 힘든 삶 때문에 체념하고 살아가는 자가있습니까. 우리 생활의 변화 혁신은 믿음의 사람에게서는 기이한 일이 아닙니다. 앉은 자리에서 도저히 일어 날수없는 자 소망이 끊어진 자들은 소망을 주시는 주님의 능력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를 일으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할때 일어날수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 가면서 우리의 생활과 환경과 경험속에 주님의 능력을 가두어 두고서 살아갈때가 많이 있습니다. 체념하고서 살아 갈때가 많은 것입니다. 이제 눈을들어 주님을 바라봅시다. 능력의 주님을 바라봅시다. 권능의 주님을 바라봅시다. 행 3: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믿으므로” “예수로 말미암아” 이 예수를 믿음으로 이 사람이 나은 것이다. 믿었더니 예수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귀한 역사 이루어 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두번째.문제 해결의 방법이 무엇이었습니까 사도 베드로는 이러한 역사가 일어나기 위하여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할것인가를 말씀 합니다.
1) 회개하라. 행3:19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없이 함을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회개는 죄에서 돌이키는 것입니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옛 행위를 버리는 것입니다. 버린다는 것은 죄를 유발하게 했던 사상 사고방식 및 여러가지 잘못된 관념을 나에게서 때어 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버림에는 고통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회개를 이야기 할때 살인이니 도적질이니 사기니 하는 것만을 생각 하기가 쉽습니다. 그것만이 죄가 아닙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갈때 주님의 말씀대로 바르게 살아가지 못했던것 그 모든것이 우리가 회개하여야 할 죄입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작품중에 이런 것이 있다. 어느 목사님에게 두 여인이 찾아왔습니다. 한 여인은 자기는 큰 죄를 지은 죄인이라면서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고, 또한 여인은 자기는 일생 이렇다 할 큰 죄는 짓지 않았지만 자질구레한 잘못은 많다고 했습니다. 목사는 두 여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들 수 있는 가장 큰 돌덩이를 가져 오시오. 그리고 당신은." 목사는 이번에는 일생동안 이렇다 할 큰 죄를 지은 기억이 없다는 여인에게 말했다. " 조그마한 돌멩이들을 치마폭에 가득 주워 오시오." 한참 후에 두 여인은 목사가 시키는 대로 하여, 한 여인은 커다란 바윗돌을 낑낑거리며 옮겨 왔고, 다른 여인은 새알만한 잔 돌을 치마폭 가득 주워왔습니다. 그러자 목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안하지만 이번에는 그 돌멩이들을 제자리에 갖다 놓고 오시오" 큰 바윗돌을 가져온 여자는 다시 낑낑러기며 바윗돌을 제자리에 갖 도 놓았다. 어디서 가져온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알만한 잔돌을 치마폭에 가득히 주워온 여인은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고 있었다. "바로 그거요!"하고 목사가 이야기 했습니다. "지은 죄도 바로 이런 것이요, 당신은." 목사는 일생 동안 별로 큰 죄를 짓지 않고 자질구레한 잘못만 저질렀다는 여자에게 말했다. "하루하루 이러저러한 죄를 지으면서도 하나님께 죄책감 없이 일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많은 죄를 짓고도 회개 한번 하지 않았소, 그러나 이 여인은 큰 죄를 짓고 이렇게 회개하고 있으니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총이 함께 하실 것이요." 이 돌이키는 결단 회개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깊은 질곡에서 방황하고 있는것은 결단해야 될 그때에 결단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회개는 탕자가 자기의 길에서 “아버지께로 돌아 가리라." 하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아버지께로 가는 것입니다. 아버지께로 가야 하겠다고 하면서도 아직 거기 머물러 있는 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회개는 떠나는 것이다. 우리에게 회개가 있으면 주님께서 주인이 돠어 주십니다.
2) 죄 사함을 받아야 한다. 19절 “너희 죄없이 함을 받으라.” 회개하였으면 죄 사함 받은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사람이 죄 사함 받은 확신을 을 꼭 가져야 합니다. 죄 사함은 하나님의 약속이다.
그러므로 용서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이 필요하다. 주님께서는 많은 말씀으로 죄사함의 약속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사 55:6-7 "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할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 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시 34: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 하시는도다." 눅 18:9-이하에서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볼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칭찬하신 기도는 세리의 기도라고 말씀 하십니다.
3)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22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 모든 말씀을 들을 것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력이 있습니다. 마13: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마13:23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좋은 땅은
첫째 말씀을 듣고
둘째 깨닫고 세째 결실하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최대 목표는 결실입니다. 좋은땅은 열매맺기 좋은 땅입니다. 어떻게 이런 귀한 결실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는 생명이 있기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자라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글은 알곡은 바람에 날리지 않기때문에 귀한 결실이 있습니다. 말씀위에 굳게 서서 넘어지지 맙시다. 서있기만하면 귀한 열매가 여러분을 통하여 맺게 될것입니다. 세번째. 문제가 해결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납니까.
1)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 부터 이를것이요 행3:19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다시 번역하면 이 말씀은 편히 쉼의 날들이 주님 앞에서 부터 올것이다란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여 죄사함을 얻은 자들은 참된쉼을 얻을수 있습니다. 이 영적인 쉼의 근원은 바로 주님이 십니다. 따라서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 쉼은 일시적인 쉼이 아니라 영원한 평안의 삶인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다 말씀 하십니다. 행3:20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그들이 배반하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리라 말씀 하십니다. 이것은 주님의 말씀의 실천입니다. 마5: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그를 죽인자에게도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주님의 긍휼하심을 바라봅니다.
3) 하나님은 그들을 복 주시려고 부르셨다. 행3:26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선지자들의 자손. 언약의 자손이기 때문에 다시 돌아오면 축복하여 주시마고 약속하십니다. 이것은 “땅위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받으리라."하신 약속입니다. 바로 이것이 복음입니다. 엄청난 잘못과 죄가운데서도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고 돌아오면 주님께서 함께 거하시고 유쾌하게되는 날이이르며 축복하신 모든말씀이 이루리라 약속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 이러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여러분의 자신과 가정과 사업이 말씀으로 유쾌하여지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함께 하셔서 승리의 역사가 계속 일어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백성에게 주시는 축복이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아멘
첫째. 하나님의 역사는 기이한것이 아니다 본문 3:10 “그의 당한 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 하나님의 역사로서 앉은 뱅이가 일어서자 그들은 기이히 여겼다고 말씀 합니다. 왜 그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기이히 여겼습니까 그 앉은뱅이는 40년동안의 매임에서 해방이 되어 앉은뱅이가 걷게 되었으므로 기이히 여겼습니다. 그는 40년 동안 성전미문에서 구걸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출생이후 지금까지 남의 도움이 없으면 살아갈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앉은뱅이는 성전 미문밖에 앉아서 성전을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구걸하며살아왔습니다. 성전과 제일 가까운곳에 앉아서 들어가서 능력의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사람만 바라보며 살아 왔던 것입니다. 그는 나은 생활이나 더 나은 환경을 바라본다는것은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본래 그러려니 하면서 생활했던 것입니다. 희망이나 미래 같은 것은 도저히 생각 해 볼수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로 마귀의 권세에서 놓임을 받았던것입니다. 이 앉은뱅이의 삶이 인간 생활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좌절한 인생’ ‘소망이 없는 삶’ 목표를 잃어버린 인생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능력으로 새롭게 일어나는 역사가 일어난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어떻게 이런일이 일어날수 있습니까. 사람으로서는 기이히 여길만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능력으로는 기이히 여길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권세로서 능히 이루어 질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앉은뱅이에게 말합니다. 행3:6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예수의 이름이 그와 함께 하였을때 놀라운역사가 일어 났습니다. 이제까지 다른 사람의 도움없이는 걸을수 없었던 그가 베드로와 요한을 통하여 역사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았을때 역사가 일어 났습니다. 성전안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역사가 일어 났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건입니까.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의 어려운 힘든 삶 때문에 체념하고 살아가는 자가있습니까. 우리 생활의 변화 혁신은 믿음의 사람에게서는 기이한 일이 아닙니다. 앉은 자리에서 도저히 일어 날수없는 자 소망이 끊어진 자들은 소망을 주시는 주님의 능력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를 일으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할때 일어날수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 가면서 우리의 생활과 환경과 경험속에 주님의 능력을 가두어 두고서 살아갈때가 많이 있습니다. 체념하고서 살아 갈때가 많은 것입니다. 이제 눈을들어 주님을 바라봅시다. 능력의 주님을 바라봅시다. 권능의 주님을 바라봅시다. 행 3: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믿으므로” “예수로 말미암아” 이 예수를 믿음으로 이 사람이 나은 것이다. 믿었더니 예수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귀한 역사 이루어 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두번째.문제 해결의 방법이 무엇이었습니까 사도 베드로는 이러한 역사가 일어나기 위하여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할것인가를 말씀 합니다.
1) 회개하라. 행3:19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없이 함을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회개는 죄에서 돌이키는 것입니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옛 행위를 버리는 것입니다. 버린다는 것은 죄를 유발하게 했던 사상 사고방식 및 여러가지 잘못된 관념을 나에게서 때어 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버림에는 고통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회개를 이야기 할때 살인이니 도적질이니 사기니 하는 것만을 생각 하기가 쉽습니다. 그것만이 죄가 아닙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갈때 주님의 말씀대로 바르게 살아가지 못했던것 그 모든것이 우리가 회개하여야 할 죄입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작품중에 이런 것이 있다. 어느 목사님에게 두 여인이 찾아왔습니다. 한 여인은 자기는 큰 죄를 지은 죄인이라면서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고, 또한 여인은 자기는 일생 이렇다 할 큰 죄는 짓지 않았지만 자질구레한 잘못은 많다고 했습니다. 목사는 두 여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들 수 있는 가장 큰 돌덩이를 가져 오시오. 그리고 당신은." 목사는 이번에는 일생동안 이렇다 할 큰 죄를 지은 기억이 없다는 여인에게 말했다. " 조그마한 돌멩이들을 치마폭에 가득 주워 오시오." 한참 후에 두 여인은 목사가 시키는 대로 하여, 한 여인은 커다란 바윗돌을 낑낑거리며 옮겨 왔고, 다른 여인은 새알만한 잔 돌을 치마폭 가득 주워왔습니다. 그러자 목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안하지만 이번에는 그 돌멩이들을 제자리에 갖다 놓고 오시오" 큰 바윗돌을 가져온 여자는 다시 낑낑러기며 바윗돌을 제자리에 갖 도 놓았다. 어디서 가져온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알만한 잔돌을 치마폭에 가득히 주워온 여인은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고 있었다. "바로 그거요!"하고 목사가 이야기 했습니다. "지은 죄도 바로 이런 것이요, 당신은." 목사는 일생 동안 별로 큰 죄를 짓지 않고 자질구레한 잘못만 저질렀다는 여자에게 말했다. "하루하루 이러저러한 죄를 지으면서도 하나님께 죄책감 없이 일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많은 죄를 짓고도 회개 한번 하지 않았소, 그러나 이 여인은 큰 죄를 짓고 이렇게 회개하고 있으니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총이 함께 하실 것이요." 이 돌이키는 결단 회개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깊은 질곡에서 방황하고 있는것은 결단해야 될 그때에 결단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회개는 탕자가 자기의 길에서 “아버지께로 돌아 가리라." 하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아버지께로 가는 것입니다. 아버지께로 가야 하겠다고 하면서도 아직 거기 머물러 있는 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회개는 떠나는 것이다. 우리에게 회개가 있으면 주님께서 주인이 돠어 주십니다.
2) 죄 사함을 받아야 한다. 19절 “너희 죄없이 함을 받으라.” 회개하였으면 죄 사함 받은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사람이 죄 사함 받은 확신을 을 꼭 가져야 합니다. 죄 사함은 하나님의 약속이다.
그러므로 용서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이 필요하다. 주님께서는 많은 말씀으로 죄사함의 약속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사 55:6-7 "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할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 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시 34: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 하시는도다." 눅 18:9-이하에서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볼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칭찬하신 기도는 세리의 기도라고 말씀 하십니다.
3)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22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 모든 말씀을 들을 것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력이 있습니다. 마13: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마13:23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좋은 땅은
첫째 말씀을 듣고
둘째 깨닫고 세째 결실하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최대 목표는 결실입니다. 좋은땅은 열매맺기 좋은 땅입니다. 어떻게 이런 귀한 결실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는 생명이 있기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자라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글은 알곡은 바람에 날리지 않기때문에 귀한 결실이 있습니다. 말씀위에 굳게 서서 넘어지지 맙시다. 서있기만하면 귀한 열매가 여러분을 통하여 맺게 될것입니다. 세번째. 문제가 해결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납니까.
1)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 부터 이를것이요 행3:19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다시 번역하면 이 말씀은 편히 쉼의 날들이 주님 앞에서 부터 올것이다란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여 죄사함을 얻은 자들은 참된쉼을 얻을수 있습니다. 이 영적인 쉼의 근원은 바로 주님이 십니다. 따라서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 쉼은 일시적인 쉼이 아니라 영원한 평안의 삶인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다 말씀 하십니다. 행3:20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그들이 배반하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리라 말씀 하십니다. 이것은 주님의 말씀의 실천입니다. 마5: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그를 죽인자에게도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주님의 긍휼하심을 바라봅니다.
3) 하나님은 그들을 복 주시려고 부르셨다. 행3:26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선지자들의 자손. 언약의 자손이기 때문에 다시 돌아오면 축복하여 주시마고 약속하십니다. 이것은 “땅위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받으리라."하신 약속입니다. 바로 이것이 복음입니다. 엄청난 잘못과 죄가운데서도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고 돌아오면 주님께서 함께 거하시고 유쾌하게되는 날이이르며 축복하신 모든말씀이 이루리라 약속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 이러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여러분의 자신과 가정과 사업이 말씀으로 유쾌하여지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함께 하셔서 승리의 역사가 계속 일어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백성에게 주시는 축복이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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