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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찌할꼬 (행2:3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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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독해 주신 말씀 중 '우리가 어찌할꼬', '회개하라', '그의 말씀을 받는 사람'의 3가지 말씀에 관심을 기울여 보겠는데 그 중에 먼저 '회개'라는 말에 접증해 보=t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성령님을 약속하신 후에 예수님의 제자 몇몇이 예루살렘의 교회에서 기도하는 도중에 성령님을 받았고, 수석 제자의 자리를 상실했던 베드로가 일어나서 예수님의 부활과 메시아의 증거에 대한 말씀을 통해 증거했습니다. '당신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이 메시아다.' 이때 외친 말이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 대한민국 온 국민들이 쏟아놓아야 할 탄식이 '우리가 어찌할 꼬'라는 말씀이길 빕니다. 참으로 어려운 때를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찌할꼬' 온 시민들이 외쳐야 할 말씀이요, 그리고 이 외침이 교회를 향한, 기대에 찬 물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어찌 하면 좋겠나. 해답을 다오' 적어도 사회가 교회를 향해 이렇게 물어 봐주고 교회가 이 물음에 답할 수 있는 교회가 되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또하나 우리 스스로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우리가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이런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면 좋겠습니까 하나님 우리에게 말씀해 주소서.'라는 간절한 물음을 이 말씀 속에서 물을수 있길 바랍니다. 여기에 대한 해답이 '회개하라'라는 말씀입니다.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라 베드로 사도가 문제의 해답은 회개에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오늘 우리들의 삶에 있어서도 문제의 해답은 회개에 있습니다. 그 다음 말씀이 '이 말씀을 받는 사람'이라고 돼 있는데 이 말씀을그냥 귓가에 스쳐 지나가는, 그냥 한 번 울리고 지나가는 말씀이 아 닌 이 말씀을 내게 주시는 말으로 받는, 내게 주시는 경고로 받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성경에 보면 복음의 첫번 음성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첫번째 하신 말씀이 마가복음 1장에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입니다. 그보다 먼저 벌써 4백년전 긴 세월동안 하나닙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 이스라엘 땅에 세례 요한이 나타나 외친 첫번째 음성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사도 베드로가 성령님 받고 제일 먼저 외친 말씀인데, 이것이 복음의 첫번째 음성이었습니다 '회개하고. 세례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님을 주신다.' 이곳에 기독교의 진리가 다 들어 있습니다. 우리들에게는 분명한 믿음이 기초입니다. 그 다음이 회개입니다. 그 다음에 성령님 받고, 주님 섬기고, 사랑 베풀고. 이것이 바로 우리 기독교 복음의 핵심인데 오늘 바로 읽어 주신 이 말씀은 복음의 핵심 되는 말씀으로 너무나도 유명 한 말씀입니다, 그 다음에 바울 사도가 아테네에 갸서 전한 설교 내용도 같습니다. '알지 못한 시기에는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멸하여 회개하라 하셨다.' 아테네라고 하는 도시가 철학의 도시라 바울 사도는 다분히 철학적인 설교를 했지만 그 설교의 맨 마지막 말씀도 회개였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회개라는 말이 결코 기분 나쁜 말씀이 아닙니다. 이른 아침에 한 주일동안 경건하고 성실하게 살던 우리들에게 왜 회개하라고 선포하느냐고 하실 분도 있겠지만, 복음의 첫번째 음성이 라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 다음에 또 기억할 말씀은 우리에게는 아직도 유예된 시간이 있 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우리에게 유예된 시간은 그리 많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라는 말은 회개하면 천국이 네게로 가까꺼진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미 천국이 가까웠기 때문에, 긴박한 상황이기 때문에 회개하라는 뜻입니다 개인으로 봐서도 그렇습니다. 내일 일을 우리가 알 수가 없 습니다. 역사의 흐름에서도 그렇습니다. 우리 나라 역사의 흐름이 어 떻게 흘러갈지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저 분명히 하나 기익하는 것은 우리가 분명 긴박한 상황에 몰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다음에 또 하나, '난 이미 회개했다. 난 이미 천국 성별의 은혜를받았다. 회개할 게 난 없다.'고 생각하실 분들이 있겠지만, 다 회개하 고도 회개 못하는 세 가지 죄가 있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라는 의미는 과연 무엇입니까 전 그떻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그리고 무서운 심판자로 믿는다면 적어도 신문 사회면에 나오는 그런 죄악은 저지르지 않을 것으로 믿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살인,간음할 수 있겠어요 하나님을 두려우신 아버지로 믿고 공경하는 사람이 도둑질 할 수 있겠어요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죄라는 의미는 대체로 세 가지가 있답니다.
첫째는 개인적인 의미로 방향을 그르치는 것, 화살이 과녁을 빗나가는 것, 이것은 개인적인 죄입니다. 자신의 본분대로 하지 못하면 죄가 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빗나가는 것,사회적으로는 모자라는 것도 죄가 됩니다.약을 만들 때 함량이 미달되는 것,교통법규를 99번 잘 지키다 1번 위반하면 죄가 됩니다. 성서적으로 하면 믿지 않는 것이 죄가 됩니다. 모든 것을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이 죄라고 한다면 인생에서 비틀거리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사람이 모자라지 아니하고 꽉 찬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불신 속에 있지 아니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들은 다 회개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회개하라는 것은 기분 나쁜 말이 아닙니다. 성서에서 말하는 회개라는 것은 흔히 생각하는 그런 낮은 수준의 회개는 아닙니다. 우리들은 가끔 회개의 설교를 들으면서 '난 이미 다 New Page 회개했는데. "이 설교는 내 남편이 들어야 할 설교다. "내 아내가 들 어야 할 설교다. "저 설교는 우리 며느리가 들어야 할 설교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것은 의미가 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내게 주시는 말으로 말씀을 들을 때 회개의 의미가 있는 것이지 다른 사람에게 돌릴 때 회개의 의미는 없습니다. 또 하나 기억할 말씀은 우리는 통과해야 할 문들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잘못 가르치는 것이 하나 있는데. 예수 믿 고, 복 받고, 천국 가자.' 이렇게 단순하게 가르치는 경향이 바로 그것 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빠진 것이 있습니다. 예수 믿고, 십자가 지고, 고난을 견디고 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고 회개하고 하는 이 괴썽을 빼 버리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회개하고 천국 가는데, 예수 믿고, 복 받고, 건강하고. 사업 잘되는 것은 분명한데, 그 과정에서 나를 십자가 에 못 박는 일과 고난을 견디는, 이 모든 것을 봉헌하고 봉사하는 것 을 빠뜨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특히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있는데 바로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회개할 것입니까. 몇 가지만 말씀드리겠 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도자를 잘못 만나 곤경을 겪었습니다.지 도자는 흔미하고 그 아들들은 죄를 지어 나라가 전등화의 위기에 처 해 있는 중에 의인 아린 사무엘이라는 사람을 키워 민족의 지도자로 삼았습니다.이때는 벌써 북해를 빼앗긴지 2o년이나 지난 후였습니다. 이런 때 사무엘이 일어나 맨 처음에 했던 일이 무엇이냐 하면 " 우리가 미스바에 모이자.였습니다. 미스바에 모여 저들은 회개 운동을 했습니다. 맨처음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여호와 의 종교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한 일이 미스바에 모여 회개 운동을 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 한국에 이런 회개 운동이 일어나길 바랍니다.교회가 앞 장서길 바랍니다. 교회가 이제는 함께 모여 '미스바 운동을 한번 해보 자.' 하길 바랍니다. 누구누구의 잘못을 따지기 전에 먼저 이런 미스 바 운동이 먼저 일어났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이 있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회개해야 되느냐, 마지막으로 몇 가지 조항을 말씀드린 후에 이 말씀이 우리 속에 구체화되기를 바람니다.
첫째는 하나님과 나 사이에 종적 관계가 제대로 되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라 해도 좋고 기도의 내용이라 해도 좋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엎드려 사는 사람인데 '과연 내가 하나님 앞에인정받는 삶을 살고 있느냐, 과연 내가 하니닙 앞에 기도 드릴 때 하 나닙이 내 기도를 들으실 수 있게 기도 드리느냐, 내 삶이 하나닙께서 복 주실 수 있도록 살고 있느냐.' 이러한 것들을 통합해 채널이 맞느 냐고 묻고 싶습니다. 야고보서 4장 2,3절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너희가 얻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아서 그렇고 구하되 얻지 못하는 것은 저녁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에 못 얻는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이 무슨 뜻인가 하면 하나님과 채널이 안 맞는다는 거죠. 아무리 기대해도 소용이 없다는 겁니다. 나와서 무릎을 어도 효과가 없다는 겁니다. 제가 새벽 기도회를 운영하면서 가끔 느끼는 건데 언제나 참석하시는 분들은 '늘 기도하시는 분들이니까.'라고 생각하지만 어쩌다 안 나 오시던 분이 나오시면 가슴이 철렁합니다. '저 분이 무슨 일이 있나. 사건이 있나.' 하고 말입니다. 한번은 안 나오시던 분이 새벽 기도회에 오셨어요 속으로 '저 분이나오실 만한 분이 아닌데. . .'라고 생각하고 인도를 끝낸 후 물러 나 앉아 있었어요 그 분 기도 소리가 자꾸 들리는데 뭐라고 하냐 하 면 '이번에 제품을 4천개를 만들었는데 다 만들고 보니 잘못이 발견 되었습니다. 이 잘못이 발견되지 않고 전부 납품될 수 있도록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이런 기도를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계속 나와서 하는 거예요 여러분 어떻습니까. 이 기도가 하나님과 채널이 맞는다고 생각하세요 우리들이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채널이 맞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가 없어_e_ 이것부터 회개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내가 지금 어디에 앉아 있는가.성도로서 자리에 앉아 있는가. 성도로서 해야 할 말을 하고 있는가. 성도로서 먹을 것을 먹고 있는가. 못 먹을 걸 먹고 있진 않는가.' 하는 내 위치 문제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자기 자신을 바로잡지 못하면 사람 구실을 제대로 못하지 않 습니까. 위치를 전부 이탈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사도행전 20장 7절 이하에 보면 바울 사도가 드로와라는 항구에서 마지막 전도를 하며 이제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작정을 하고 그날부터 7일 동안 집회를 하였습니다.모이는 예배당이 3층이었는데 마지막 집회 때 사람이 가득 모이고 불을 밝혔는데 설교가 길어지자 유두고라는 청년이 창가에 걸터앉았다가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떨어져 죽었습니다. 생각해 보세_
2. 안에서 졸았다면 소리가 꽝 나고 말았을 텐데 불행하게 창가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떨어져 죽었어요 높은 자리에 올라 간다는 게 이렇게 어렵습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갔다 떨어지면 소리도 요란하게 나고 자신도 죽을 위험에 처할 뿐 아니라 남도 위험에 처하 게 됩니다. 그래서 가보니까 죽었는데 바울 사도가 그를 위해 기도하자 그 생 명이 희생하고 바울 사도는 드로와를 떠났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창가에 걸터앉는 삶을 살지는 않는가,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그리스도인은 아닌가, 희지도 않고 검지도 않은 회색은 아닌가,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으스름 저녁은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한번 하셔야 합니다. 자신이 지금 어느 위치에 있는가 하는 위치 문제를 한 번 되새겨 보며 회개해야 합니다.
셋째는 '무너뜨려야 할 장벽이 내게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가정 적으로 봤을 때 어떤 사람은 형제, 고부. 부자 사이에 해결하지 못한 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담을 무너뜨리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는 사람이 있어요 그것부터 허물지 아니하면 과연 하나님이 복주실 수 있습니까. 사회가 그떻습니다. 우리 나라를 한번 보세요 조그만 땅덩어리에서 동이다 서다 남이다 북이다 하여 얼마나 우리들이 많은 상처들을 가지 고 있습니까. 교회도 그래요 네 파와 내 파 사이에, 집사와 권사 사이에. 권사와 권사 사이에 허물지 못한 담들이 많이 있는데 이 담을 허물지 못하고 아직도 마음을 열어젖히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것도 회개해야 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마지막으로 무심적인 마음은 없었는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것, 신앙 생활한다고 하면서도 하니닙앞에 묻지 아니하는 허물입니다. '내가 경험이 있는데 하나님 앞에 묻 지 않고 한번 해보=t다. 내가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데 내가 하나님 에 묻지 않고 내 지식으로 해결해 보겠다. 내가 이렇게 건강한데 하나님 앞에 묻지 않고 무엇이든 해보JK다.' 하는 무신적인 생 태.도, 그러나 하나님께 늘 물어야 합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은 무릎 꿇 삶이어야 합니다. 무릎 꿇지 않는 삶이란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묻지 아니하고 내 스스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자 세. 이것을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로마서 1장 24절 이하에 보면 내버려두셨다는 말이 세 번 나옵니다. '저녁에 더러움으로 내버려두셨다, 부끄러운 욕심으로 내버려두셨 다, 상실한 마음으로 내버려두셨다.'고 나옵니다. 여기 한 환자가 있는데 의사가 '당신은 집으로 돌아가 평안히 잘 계 십시오'라고 했다면 이는 의사가 내버려둔 것입니다 희망이 없다는 얘깁니다. 그러니 집으로 돌아가라는 얘깁니다. 의사에게서 이렇게 내버려진 삶이란 육신의 소망이 없다는 얘긴데 하나닙께서 이스라엘을 내버려 두셨다는 것은 이스라엘을 버리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과연 우리 땅을 버리시겠습니까저는 버리지 않으실 거라고 믿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이 많고 하니닙을 경배하는 사람이 수백만이 되는 크리스천이 있는 이 나라를 하니께서는 결단 코 버리지 않으실 걸로 믿습니다. 더러운, 부끄러운 욕심으로 내버려진 삶은 없습니까 상실한 마음 으로 버려진 삶은 더욱 없습니까 그 버려진 영혼을 책임져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그 회개의 의미를 분명히 기억할 수 있기를 빕니다. 이제 이 말씀을 할 때 '이스라엘 교회에 있던 사람들이 그 말씀을 받으매'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받았습니다. 그러자 하루에 삼천 명이나 그 숫자가더했고,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고, 서로 교제했고, 떡을 고, 기도하기 를 힘쓰고, 온전한 교회가 된 것입니다, '온 한국 교회가 어찌할꼬'라고 외칠 수 있는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회개의 아픔을 스스로 통보할 수 있는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이 말씀을 내게 주는 말으로 받으면서 한국 교회가 살고, 민족이 사는 축복 받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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