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안에 거하시는 성령님 (행2:1-36)
본문
구약시대 율법아래에 있던 옛언약백성들이 년중 7대 절기중에 초실절(이 절기는 신약시대에 부활의 첫열매이신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됨)후 50일째에 지키는 오순절(칠칠절,맥추절)이 있었습니다. 율법아래의 이 절기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지 50일째 되는 오순절날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있던 신자들에게 성령이 강림함으로 성취되어졌습니다. 이 후로 초대교회는 율법아래에 매여 있었 을 때처럼 절기들을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전으로 모이지 아니하고 어디에 서든지 그리스도인이 모인곳에서 성령님과 진리로 에배를 드렸습니다. 이제 진리의 기둥과 터위에 세워져 있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의 교회도 율법 아래 있을 때 처럼 구약적(율법적) 맥추절을 지키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된 성령님강림을 기념하면서 하나님의 크신 구원을 감사하고 찬양 하게 되었습니다. 개혁교회는 성령님강림절과 부활절을 기독교의 2대 명 절로 지정하고 오늘날까지 이를 기념 해 왔습니다. 이 두 날이 얼마나 큰 의의 를 가진 기쁨의 날이냐 하면 부활절은 죽음의 법칙이 폐지된 날이요, 성령님강림 절은 하나님이 친히 사람에게 찾아 오셔서 우리의 몸을 자기 거처로 삼으셔서 연합이 이루어 진 날이요, 또한 하나님의 생명이 사람에게 흘러 넘쳐서 생명 의 강이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넘실거리게 된 날입니다. 11절에 있는 말씀처럼 이 날은 "하나님의 큰 일"이 일어난 날이요,"하나님의 큰 날"인데도 사람들이 이 날을 경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활과 성령님강림 이 두 사건이 다 "주의 날"에 일어났기 때문에 주의날 모 이는 교회는 더욱 큰 의의를 가집니다. 주의날에 교회가 모여 예배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부활 때문이었는데 오늘 하나 더 추가해야 하는 이유는 성령님강림 때문입니다. 성령님 하나님께서 교회에 오심으로 교회가 그리스도의 피와 생명위에 세워지게 되었고,교회가 성령님으로 동행하며 성령님으로 사는 새시대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1, 성령님오심의 근거 성령님오심의 근거는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에 있습니다. 이 세상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세상이 존재하는 모든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 이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교통으로 생명을 누릴 수 있었고,영광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타락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모든 교통을 끊어버렸고,하나님과 분리하여 대적하는 원수로 서게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1장 13절-22절에 있는 말씀처럼 막혀있는 죄의 담이 무너지기 전 에는 다시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창3:15은 이 죄의 담을 무너뜨리고 인간이 다시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약속 하셨습니다. 이 후로 구약의 모든 역사가 이 구원을 위하여 예비되고 진행되어 왔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때가 차서 그 아들이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위에서 속죄의 사역을 이루신 후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그가 이루신 희생제사를 하나님께 보고드렸을 때(히9:24) 하나님께서 그 보고를 승 인하시고 기쁘게 받으신 표가 오순절 성령님강림이었다고 베드로가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행2:32-33). 성령님을 받은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성령님이 오셨고 그 증표가 사도들을 통하여 나타나는 방언과 이적과 기사라고 설교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이 오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 때문이요,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성령강림의 유일한 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대속하신 희생의 공로가 없이는 성령님 이 오시는, 혹은 성령님을 받는 어떤 다른 길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금식하고,철야기도 많이하면 성령님을 받는다고 하는 이런 가르침은 전혀 반성격적 가르침입니다. 성령님이 기도의 수고와 노력으로 오시고 기도의 응답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라고 하는 것은 율법주의에서 벗어나 지 못한 어리석음입니다.
2, 성령님오심의 약속 창6:1-4에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실 때 하나님의 성령님이 다시는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라 그 이유는 사람이 혈육(육체)이 되었기 때문이 라 하였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이 타락하고 부패한 인간에게 오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앞에 서면 모세가 자기 얼굴을 가리운 것 차럼(출3;1-6),이사야가 "화로다 내가 부정한 자로서 거룩 거룩 거룩하신 하나님의 얼굴 을 뵈었으니 내가 망하게 되었도다"(사6:1-5).라고 탄식하였던 것처럼 죽음 을 면할 수 없습니다.
(1)
그런데도 하나님의 구원은 다시 인간과 화목하는 것이어서 구약시대에 사사들이나 선지자,제사장,왕에게 성령님을 보내셨습니다. 구약에 이처럼 백성 을 대표하는 자들에게만 하나님의 신이 강림한 것은 그 대표자 아래 모든 백성 이 다 참예한 셈이었고, 또한 장차 때가 되면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신이 임 할 것을 대표원리로 약속하신 것이었습니다.
(2) 이 약속을 더욱 분명하게 하는 선지자가 있었는데 요엘이 성령님을 받아 외치기를 하나님의 영을 모든 육체위에 부어주시리니 남종,여종,늙은자,어린이 에게니라고 약속하였습니다(욜2:28-32). 오늘 본문에 베드로가 요엘 선지자 로 말씀하신 하나님의 그 약속이 이제 이루어 졌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3) 우리 주님께서도 땅위에 계시는 동안 제자들에게 여러번 보혜사를 보 내실 것을 약속 하셨습니다(요14:16-18,16;1-24,행1:6-11). 지금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한 사람의 열렬한 신앙의 의지와 간구와 노력에 의하여 그 응답으로 성령님이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약속에 의하여 이루어진 하나님의 값없는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즉 인간의 주권으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으로 구원과 함께 죄인에 게 주신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다 구원을 받았듯이 또한 성령을 받은 그리스도인입니다. 예수 믿음이 구원받음이듯이 예수 믿음이 성령님받 음입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주님의 희생에 근거하여 오시기 때문입니다.
3, 제 3 위의 하나님 = 성령님 하나님 성령님에 관하여 "성령님은 무엇입니까" 라는 문제와 "성령님은 누구십니까"라는 문제중에 어느 것이 바른 접근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중에 특별히 성령님을 간구할 때가 있습니다.
(1) 신앙생활이 나태 해 졌을 때,마음의 뜨거움이 없을 때,어떤 문제를 해 결하기 위하여 영적인 능력이 필요하여 졌을 때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지기를 기도합니다. 이렇게 기도할 때 성령님이 무엇이냐 하면 모자라는 에너지를 보충(예;건전지 의 전력이 다 소모되고 나면 새 것으로 교환하듯이)하듯이 피곤한 우리 마음을 보충하는 물질적인 힘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2) 어떤 어려운 문제에 부딪혀서 도저히 스스로 헤어나지 못하는 낙심과 두려움이 있을 때 성령님의 능력으로 해결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이 때의 성령님은 무엇이냐 하면 내 가정의 문제를 처리하는 해결사입니다. (예:손오공의 손에 들고 있는 여의봉) 성령님을 이렇게 알고 있는데 대한 문제가 무엇이냐 하면 성령님이 제3위의 하나님,인격적 하나님으로서 성부와 성자와 동일하게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은 비인격적인 어떤 물질,하나님의 힘(에너지),하나님의능력(여의 봉)으로 취급되어 삼위일체 하나님을 경배하지 못하고,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 을 거룩히 여겨 드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에 관한 이런 견해는 아직 도 신관(신관)에 대하여 바른 진리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성령님 에 관한 이런 견해가 이해 부족이 아니라 주의 (주의)로 나가게 되면 그 신학 사상은 비성경적이됩니다. 성도 여러분! 성령님은 모자라는 것을 채우는 양적(량적)인 물질(물질)이 아 닙니다. 그 분은 제3위의 하나님이시요,우리가 성부와 성자를 예배하듯이 그 분에게도 동일한 예배를 드려야 할 인격적(인격적)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성령 하나님께도 예배를 드리십시오. 그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령님이 주님의 구속으로 말미암아서 육체안에 오셨 습니다. 내 영혼과 몸을 그가 거하실 성전으로 삼으시고,좌정(좌정)하셔서 영 원히 함께 계십니다(고전5;19-20). 예수를 구주로 믿는 자에게 한 번 오신 성령님은 다시는 떠나 계시지 아니하고 영원히 함께 하셨습니다. 거룩하신 성령님 님이 지금 내 안에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거룩한 전이 되었으니 내 영혼과 몸을 거룩하게 구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 부르게 되었고(롬8:15-17), 내가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롬8:9). 우리가 다 예수를 믿어 그리스도 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은 그리스도의 영이 있어서 그 영으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 영은 거룩한 영이어서 신자들이 거룩하게 살도록 인 격적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옛사람을 죽이지 아니 할 수 없고,육 신의 소욕을 버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성령님충만이란 무엇입니까 부족한 것을 채우는 양적인 힘이 나 능력이 아니라 내 안에 좌정하신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거룩하게 사는 삶입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안에서나 밖에서,신자들에게나 외인들에게 거룩한 백성 으로서의 윤리를 나타내는 삶입니다. 하나님앞에서는 조심하면서도 사람은 멸 시하고,신자들에게는 선하게 하면서 외인들에게 미움과 복수심을 가지면 그것은 성령님충만의 삶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간구해야 하는 것은 나를 성령님의 인도앞에 복종할 수 있는 믿음입니다. 거룩한 성령님의 전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죄를 이길 수 있는 거룩한 능력을 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성령님강림을 기념하면서 이 진리를 분명히 양심과 인격 에 기록하시기를 바랍니다. 내 안에 성령님이 오셔서 좌정하심으로 나와 하나 가 되었다는 이 말씀입니다. 그 분이 내 뜻대로 살도록 방관하지 않으십니다. 그 분이 내 욕심대로 살도록 방치해 두지 않으십니다. 주의 말씀이 증거될 때 그 분이 여러분의 양심을 자극하여 거룩하게 살도록 결심하게 하시고,주의 말씀이 증거될 때 말씀대로 순종하도록 권면하는 역사를 하십니다. 성령님께 복종하십시오. 그리하면 생명과 평안이 있습니다(롬8:1-8,갈 5:16-2
4). 육신대로 살면 영혼의 탄식과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움이 더할 것 입니다. 성령님과 함께 사는 그리스도의 사람은 육신으로 살면서 영혼의 탄식 과 괴로운 짐을 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중생하여 거짓이 없는 믿음과 청 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을 가진 성도들은 자기를 속이고 살면서도 결코 평안하 다고 위장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가만 두지 않으십니다. 진리의 말씀이 생명의 축복과 사망의 심판을 선포함으로 가만히 있게 하지 않습니다. 이 복음이 선포될 때 마다 성령님께서 권면하시고 인도하시려고 역사 하십니다. 성령님으로 행하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어 아버지나라의 평강과 희락을 누리 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1, 성령님오심의 근거 성령님오심의 근거는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에 있습니다. 이 세상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세상이 존재하는 모든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 이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교통으로 생명을 누릴 수 있었고,영광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타락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모든 교통을 끊어버렸고,하나님과 분리하여 대적하는 원수로 서게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1장 13절-22절에 있는 말씀처럼 막혀있는 죄의 담이 무너지기 전 에는 다시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창3:15은 이 죄의 담을 무너뜨리고 인간이 다시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약속 하셨습니다. 이 후로 구약의 모든 역사가 이 구원을 위하여 예비되고 진행되어 왔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때가 차서 그 아들이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위에서 속죄의 사역을 이루신 후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그가 이루신 희생제사를 하나님께 보고드렸을 때(히9:24) 하나님께서 그 보고를 승 인하시고 기쁘게 받으신 표가 오순절 성령님강림이었다고 베드로가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행2:32-33). 성령님을 받은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성령님이 오셨고 그 증표가 사도들을 통하여 나타나는 방언과 이적과 기사라고 설교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이 오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 때문이요,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성령강림의 유일한 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대속하신 희생의 공로가 없이는 성령님 이 오시는, 혹은 성령님을 받는 어떤 다른 길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금식하고,철야기도 많이하면 성령님을 받는다고 하는 이런 가르침은 전혀 반성격적 가르침입니다. 성령님이 기도의 수고와 노력으로 오시고 기도의 응답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라고 하는 것은 율법주의에서 벗어나 지 못한 어리석음입니다.
2, 성령님오심의 약속 창6:1-4에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실 때 하나님의 성령님이 다시는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라 그 이유는 사람이 혈육(육체)이 되었기 때문이 라 하였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이 타락하고 부패한 인간에게 오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앞에 서면 모세가 자기 얼굴을 가리운 것 차럼(출3;1-6),이사야가 "화로다 내가 부정한 자로서 거룩 거룩 거룩하신 하나님의 얼굴 을 뵈었으니 내가 망하게 되었도다"(사6:1-5).라고 탄식하였던 것처럼 죽음 을 면할 수 없습니다.
(1)
그런데도 하나님의 구원은 다시 인간과 화목하는 것이어서 구약시대에 사사들이나 선지자,제사장,왕에게 성령님을 보내셨습니다. 구약에 이처럼 백성 을 대표하는 자들에게만 하나님의 신이 강림한 것은 그 대표자 아래 모든 백성 이 다 참예한 셈이었고, 또한 장차 때가 되면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신이 임 할 것을 대표원리로 약속하신 것이었습니다.
(2) 이 약속을 더욱 분명하게 하는 선지자가 있었는데 요엘이 성령님을 받아 외치기를 하나님의 영을 모든 육체위에 부어주시리니 남종,여종,늙은자,어린이 에게니라고 약속하였습니다(욜2:28-32). 오늘 본문에 베드로가 요엘 선지자 로 말씀하신 하나님의 그 약속이 이제 이루어 졌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3) 우리 주님께서도 땅위에 계시는 동안 제자들에게 여러번 보혜사를 보 내실 것을 약속 하셨습니다(요14:16-18,16;1-24,행1:6-11). 지금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한 사람의 열렬한 신앙의 의지와 간구와 노력에 의하여 그 응답으로 성령님이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약속에 의하여 이루어진 하나님의 값없는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즉 인간의 주권으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으로 구원과 함께 죄인에 게 주신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다 구원을 받았듯이 또한 성령을 받은 그리스도인입니다. 예수 믿음이 구원받음이듯이 예수 믿음이 성령님받 음입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주님의 희생에 근거하여 오시기 때문입니다.
3, 제 3 위의 하나님 = 성령님 하나님 성령님에 관하여 "성령님은 무엇입니까" 라는 문제와 "성령님은 누구십니까"라는 문제중에 어느 것이 바른 접근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중에 특별히 성령님을 간구할 때가 있습니다.
(1) 신앙생활이 나태 해 졌을 때,마음의 뜨거움이 없을 때,어떤 문제를 해 결하기 위하여 영적인 능력이 필요하여 졌을 때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지기를 기도합니다. 이렇게 기도할 때 성령님이 무엇이냐 하면 모자라는 에너지를 보충(예;건전지 의 전력이 다 소모되고 나면 새 것으로 교환하듯이)하듯이 피곤한 우리 마음을 보충하는 물질적인 힘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2) 어떤 어려운 문제에 부딪혀서 도저히 스스로 헤어나지 못하는 낙심과 두려움이 있을 때 성령님의 능력으로 해결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이 때의 성령님은 무엇이냐 하면 내 가정의 문제를 처리하는 해결사입니다. (예:손오공의 손에 들고 있는 여의봉) 성령님을 이렇게 알고 있는데 대한 문제가 무엇이냐 하면 성령님이 제3위의 하나님,인격적 하나님으로서 성부와 성자와 동일하게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은 비인격적인 어떤 물질,하나님의 힘(에너지),하나님의능력(여의 봉)으로 취급되어 삼위일체 하나님을 경배하지 못하고,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 을 거룩히 여겨 드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에 관한 이런 견해는 아직 도 신관(신관)에 대하여 바른 진리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성령님 에 관한 이런 견해가 이해 부족이 아니라 주의 (주의)로 나가게 되면 그 신학 사상은 비성경적이됩니다. 성도 여러분! 성령님은 모자라는 것을 채우는 양적(량적)인 물질(물질)이 아 닙니다. 그 분은 제3위의 하나님이시요,우리가 성부와 성자를 예배하듯이 그 분에게도 동일한 예배를 드려야 할 인격적(인격적)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성령 하나님께도 예배를 드리십시오. 그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령님이 주님의 구속으로 말미암아서 육체안에 오셨 습니다. 내 영혼과 몸을 그가 거하실 성전으로 삼으시고,좌정(좌정)하셔서 영 원히 함께 계십니다(고전5;19-20). 예수를 구주로 믿는 자에게 한 번 오신 성령님은 다시는 떠나 계시지 아니하고 영원히 함께 하셨습니다. 거룩하신 성령님 님이 지금 내 안에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거룩한 전이 되었으니 내 영혼과 몸을 거룩하게 구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 부르게 되었고(롬8:15-17), 내가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롬8:9). 우리가 다 예수를 믿어 그리스도 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은 그리스도의 영이 있어서 그 영으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 영은 거룩한 영이어서 신자들이 거룩하게 살도록 인 격적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옛사람을 죽이지 아니 할 수 없고,육 신의 소욕을 버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성령님충만이란 무엇입니까 부족한 것을 채우는 양적인 힘이 나 능력이 아니라 내 안에 좌정하신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거룩하게 사는 삶입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안에서나 밖에서,신자들에게나 외인들에게 거룩한 백성 으로서의 윤리를 나타내는 삶입니다. 하나님앞에서는 조심하면서도 사람은 멸 시하고,신자들에게는 선하게 하면서 외인들에게 미움과 복수심을 가지면 그것은 성령님충만의 삶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간구해야 하는 것은 나를 성령님의 인도앞에 복종할 수 있는 믿음입니다. 거룩한 성령님의 전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죄를 이길 수 있는 거룩한 능력을 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성령님강림을 기념하면서 이 진리를 분명히 양심과 인격 에 기록하시기를 바랍니다. 내 안에 성령님이 오셔서 좌정하심으로 나와 하나 가 되었다는 이 말씀입니다. 그 분이 내 뜻대로 살도록 방관하지 않으십니다. 그 분이 내 욕심대로 살도록 방치해 두지 않으십니다. 주의 말씀이 증거될 때 그 분이 여러분의 양심을 자극하여 거룩하게 살도록 결심하게 하시고,주의 말씀이 증거될 때 말씀대로 순종하도록 권면하는 역사를 하십니다. 성령님께 복종하십시오. 그리하면 생명과 평안이 있습니다(롬8:1-8,갈 5:16-2
4). 육신대로 살면 영혼의 탄식과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움이 더할 것 입니다. 성령님과 함께 사는 그리스도의 사람은 육신으로 살면서 영혼의 탄식 과 괴로운 짐을 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중생하여 거짓이 없는 믿음과 청 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을 가진 성도들은 자기를 속이고 살면서도 결코 평안하 다고 위장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가만 두지 않으십니다. 진리의 말씀이 생명의 축복과 사망의 심판을 선포함으로 가만히 있게 하지 않습니다. 이 복음이 선포될 때 마다 성령님께서 권면하시고 인도하시려고 역사 하십니다. 성령님으로 행하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어 아버지나라의 평강과 희락을 누리 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