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 있는 응답 (요15:16-17)
본문
사람들은 세상의 악한자와 선한 자를 보며 '왜 하나님은 악한자를 단숨에 멸하지 않으시고 선한 자를 고통당하게 하실까'하는 회의적인의문을 던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인간의 생각과는 다릅니다. 하나님 앞에서 누가 의인이고 누가 악인입니까 바울의 고백과 같이하나님 앞에서 의인은 하나도 없습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으나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선 모두 죄인입니다. 이러한 죄인들 가운데 하나님은 빛으로 오셔서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공로나 댓가에 따른 것이 아니라 아무 공로없이 주신하나님의 사랑의 모습입니다. 즉 우리가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우리를 택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우리의 부족과 실수를 알면서도 우리를 선택한 데는 분명한 하나님의섭리와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아무 열매도 맺을 수 없는 존재였으나 하나님의 선택으로 쓰임받을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에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에 응답하는 열매를맺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맺어야 할 열매를 크게 세가지로 생각해 보려 합니다.
첫째,작은 의미의 열매입니다. 과수원의 주인은 꽃을 보기 위해서가아니라 알찬 열매를 거두기 위해 수고를 하듯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삶가운데 열매를 기다리십니다. 주의 성도는 우선 회개의 열매를 맺어야합니다. 회개란 뜻은 '길을 돌이킨다' 란 것으로 마음의 변화뿐 아니라 생활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둘째는 갈라디아서 5장에 기록된 성령님의 열매를 거두어야 합니다.
셋째는 의의 열매입니다. 의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성도들의 옳은 행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판단 척도로 세상속의 악과 불의와 싸워야 하며, 잘못된 실정법이나 자연법에도 항거할 수 있어야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경건의 날줄과 성결의 씨줄로 늘 세마포를 짜는삶을 살아야 합니다.
넷째는 복음이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전도의 열매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큰 두번째는 큰 의미의 열매입니다.기도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택하시고 주님 스스로 기도의 모범자가 되셨습니다. 마태복음 21장 4절에 주님은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다'라고 말씀하시고 이스라엘 성전을 강도의 소굴이라 하시며 성전 정화작업을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성전이 강도의 소굴이 된것은 주변의 잡상인 때문이아니라 성전에서 자신의 이기심과 욕심에 따라 기도하는 외식적인 유대인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자신의 소원 성취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깨닫고 몸으로 성취하고 결단하는 기도이어야 합니다.우리가 주님의이름으로 기도할 때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 의미의 열매는 사랑을 실천하는 열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서로 사랑하게 하기 위해 부르셨습니다. 주님이 오신것도 오직'사랑'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그 사랑을 본받아 세상에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하는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님과 의의 결실을 거두고 열심히 기도하며 그리스도를 본받아 죽기까지 사랑하는 열매있는 응답을 하여야 합니다. '지난 25일 드려진 수요예배에서'
첫째,작은 의미의 열매입니다. 과수원의 주인은 꽃을 보기 위해서가아니라 알찬 열매를 거두기 위해 수고를 하듯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삶가운데 열매를 기다리십니다. 주의 성도는 우선 회개의 열매를 맺어야합니다. 회개란 뜻은 '길을 돌이킨다' 란 것으로 마음의 변화뿐 아니라 생활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둘째는 갈라디아서 5장에 기록된 성령님의 열매를 거두어야 합니다.
셋째는 의의 열매입니다. 의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성도들의 옳은 행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판단 척도로 세상속의 악과 불의와 싸워야 하며, 잘못된 실정법이나 자연법에도 항거할 수 있어야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경건의 날줄과 성결의 씨줄로 늘 세마포를 짜는삶을 살아야 합니다.
넷째는 복음이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전도의 열매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큰 두번째는 큰 의미의 열매입니다.기도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택하시고 주님 스스로 기도의 모범자가 되셨습니다. 마태복음 21장 4절에 주님은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다'라고 말씀하시고 이스라엘 성전을 강도의 소굴이라 하시며 성전 정화작업을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성전이 강도의 소굴이 된것은 주변의 잡상인 때문이아니라 성전에서 자신의 이기심과 욕심에 따라 기도하는 외식적인 유대인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자신의 소원 성취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깨닫고 몸으로 성취하고 결단하는 기도이어야 합니다.우리가 주님의이름으로 기도할 때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 의미의 열매는 사랑을 실천하는 열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서로 사랑하게 하기 위해 부르셨습니다. 주님이 오신것도 오직'사랑'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그 사랑을 본받아 세상에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하는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님과 의의 결실을 거두고 열심히 기도하며 그리스도를 본받아 죽기까지 사랑하는 열매있는 응답을 하여야 합니다. '지난 25일 드려진 수요예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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