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요1:43-51)
본문
오늘의 성경말씀은 나다니엘이라는 사람이 빌립의 전도를 듣고 주님께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나다니엘을 보시자마자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격찬하셨습니다. 나다나엘이 깊은 신앙생활을하였다고나 또 교회에서 충성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제사장들이나서기관들이나 장로들 보다는 나다니엘을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제사장들이나 서기관들이나 장로들 보다는 나다나엘을 참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인정하셨습니다.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말씀은 진실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 모두 다 하나님께 정직한 자녀라는 인정을 받았으면 좋겠다 싶어서 이는 참 이스라엘사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우리 주님께서 나다나엘을 보시고 왜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하셨는가를 찾아보겠습니다.
1.나다나엘은 아닌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기에 참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의 성경이 말씀하시는 나다나엘은 자기의 친구 빌립에게서 나사렛예수에 대한 소개를 받았습니다. 더구나 예수님은 나사렛 사람이요. 목수의 아들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에 "나사렛에서 무슨 선하것이 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나다나엘은 나사렛이란 동리를 잘 알고있었습니다. 나다나엘의 고향은 갈릴리 가나입니다. 이 두 동네는 매우 가까왔습니다. 나사렛 주민들의 수준은 미천할 뿐 아니라 문명의 혜택도 제대로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다 배우지도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주택도 초라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다나엘의 판단으로는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수 있느냐고 말했던 것입니다. 이는 조금도 숨기거난 구김없이솔직 담백한 성격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같은성격을 보시고 "보라 이는 진실한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격찬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5:37에서 "오직 너희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아닌 것을 보면서도 아니라 말하지 못하고옳은 것을 보면서도 옳은 것을 말하지 못하면 진실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견해를 나타내는데 주의할 사항은
1나 자신의 판단만 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2자기 자신을살피고 말해야 합니다.
3덕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2.그 속에 간 사항이 없을 때에 진실한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의 성경에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이라"하시고 "그 속에 간사함이 없도다"라 하셨습니다. 시편32:2에서도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에 정죄를 당치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고 했습니다. 또시52:2에서는 "네 혀가 심히 악을 행하여 날카로운 삭도같이 간사를 행하는도다. 네가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의를 말함보다 거짓을 사랑하는도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말씀하시는 간사가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에게 "그 속에 간사가 없다"고 하실때에는 야곱의 간사함에대조적으로 하신 말씀하시는 간사가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에게"그 속에 간사가 없다"고 하실 때에는 야곱의 간사함에 대조적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야곱은 늙은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그리고 형 에서도 속였습니다. 그래서 장자인 형에게 돌아갈 축복과 장자의명분을 교묘하게 빼앗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또 외삼촌의 라바의 집에서20년간이나 숨어서 사는 동안에 간사한 꾀를 이용하여 두딸과 몸종들도 다취하여 갔습니다. 뿐만아니라 외삼촌의 양떼 중에서 살찌고 좋은 것은 다자기 것으로 삼아버리고 마르고 약한 것은 외삼촌의 것으로 하였습니다. 이렇게 의도적으로 남을 속이고 남에게 치명적인 손해를 끼치는 행위를 간사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 간사는 남을 속일 뿐만 아니라 자신도 속인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6:3에서 말씀하기를 "만일 누가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된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나다나엘은 자기가 잘 믿지 못하면서도 믿는 척 하지 않았습니다. 경건의 능력은 없으면서도 모양만 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가의 있는 그대로 생긴 모습 그대로 표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나다나엘은 주님께서 간사함이 없다고 말씀하시자"어떻게 나를아시나이까"고 물었습니다. 이 말은 "나 같이 부족을 솔직히 시인한은 사람을 가리켜서 간사함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간사함이 없다고 하는 뜻은 남을 선동하는 사람은 상대방을 위하여 준 척하면서 망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오늘의 성경에서 죄가 없다하지 아니하시고 간함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죄가 있다 할지라도 간사함이없는 사람이 진실된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3.조용히 묵상하는 자라야 진실한 신자가 될 수 있습니다. 본문 48절에 보면 나다나엘이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하였을 때에"빌립이 너를 부르기전에 네가 무화과 나무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우리 주님께서는 무화과나무 아래있던 나다나엘을 보시고 왜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하셨으며, 왜 무화과 나무아래 앉은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까 나다나엘은 무화과 나무아래서 무엇을하고 앉아 있었겠습니까
1)기도하는 사람이라야 진실한 신다가 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4:63을보면 이삭은 아버지의 종 엘리에셀 의 자기의 신부감을 찾으러 간 다음에날이 저물도록 들에 나가서 묵상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묵상한다는 것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아도 되실분이 있었다면 하나님의 아들이신예수님 밖에 더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새벽마다 기도하셨고 밤이맞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금식기도도 하시고 산기도도 많이 하셨습니다. 기도하지 않고도 참 신자가 될 수 없고 기도하지 않고는 참 신자가될 수 없고 기도하지 않고는 진실한 사람이 될 수도 없습니다. 그러기에성경은 쉬지말고 기도하라 하셨고 무시로 기도하라고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2)묵상하는 사람 이라야 참신자가 될수 있습니다. 묵상이란 승화된 기도의모습입니다. 시편1:112에서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아 아니하며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기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르다" 고 했습니다. 묵상하는 사람은 눈만감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다시 새김질하면서 깊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는 과연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앞에 비취어 보면서 자신을 깊이 반성하는 것이 묵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새김질하면서 깊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는 과연 하나님이 말씀의 거울앞에서 비취어 보면서 자신을 깊이 반성하는 것이 묵상입니다. 하나님의말씀의 저울에서 서서 달아보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늘 묵상하며 자신을성찰하는 사람은 사람은 진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나다나엘과의 대화에서 우리 성도가 진실되게 살기를 얼마나 갈망하셨는지를 엿볼수 있습니다. 주님은 유명한 사람을 찾으신 것이 아니요오직 진실한 사람을 찾고 계셨습니다. 완벽한 사람을 찾으신 것이 아니요진실한 자를 원하십니다. 죄없는 자를 원하신 것보다 죄가 있어도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을 다 좋아하십니다. 실수가 없어서 완벽한 사람보다는 차라리 실수가 있더라도 진실한 사람이 주님의 사랑을 받게될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나다니엘을 보시자마자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격찬하셨습니다. 나다나엘이 깊은 신앙생활을하였다고나 또 교회에서 충성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제사장들이나서기관들이나 장로들 보다는 나다니엘을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제사장들이나 서기관들이나 장로들 보다는 나다나엘을 참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인정하셨습니다.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말씀은 진실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 모두 다 하나님께 정직한 자녀라는 인정을 받았으면 좋겠다 싶어서 이는 참 이스라엘사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우리 주님께서 나다나엘을 보시고 왜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하셨는가를 찾아보겠습니다.
1.나다나엘은 아닌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기에 참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의 성경이 말씀하시는 나다나엘은 자기의 친구 빌립에게서 나사렛예수에 대한 소개를 받았습니다. 더구나 예수님은 나사렛 사람이요. 목수의 아들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에 "나사렛에서 무슨 선하것이 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나다나엘은 나사렛이란 동리를 잘 알고있었습니다. 나다나엘의 고향은 갈릴리 가나입니다. 이 두 동네는 매우 가까왔습니다. 나사렛 주민들의 수준은 미천할 뿐 아니라 문명의 혜택도 제대로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다 배우지도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주택도 초라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다나엘의 판단으로는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수 있느냐고 말했던 것입니다. 이는 조금도 숨기거난 구김없이솔직 담백한 성격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같은성격을 보시고 "보라 이는 진실한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격찬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5:37에서 "오직 너희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아닌 것을 보면서도 아니라 말하지 못하고옳은 것을 보면서도 옳은 것을 말하지 못하면 진실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견해를 나타내는데 주의할 사항은
1나 자신의 판단만 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2자기 자신을살피고 말해야 합니다.
3덕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2.그 속에 간 사항이 없을 때에 진실한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의 성경에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이라"하시고 "그 속에 간사함이 없도다"라 하셨습니다. 시편32:2에서도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에 정죄를 당치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고 했습니다. 또시52:2에서는 "네 혀가 심히 악을 행하여 날카로운 삭도같이 간사를 행하는도다. 네가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의를 말함보다 거짓을 사랑하는도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말씀하시는 간사가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에게 "그 속에 간사가 없다"고 하실때에는 야곱의 간사함에대조적으로 하신 말씀하시는 간사가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에게"그 속에 간사가 없다"고 하실 때에는 야곱의 간사함에 대조적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야곱은 늙은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그리고 형 에서도 속였습니다. 그래서 장자인 형에게 돌아갈 축복과 장자의명분을 교묘하게 빼앗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또 외삼촌의 라바의 집에서20년간이나 숨어서 사는 동안에 간사한 꾀를 이용하여 두딸과 몸종들도 다취하여 갔습니다. 뿐만아니라 외삼촌의 양떼 중에서 살찌고 좋은 것은 다자기 것으로 삼아버리고 마르고 약한 것은 외삼촌의 것으로 하였습니다. 이렇게 의도적으로 남을 속이고 남에게 치명적인 손해를 끼치는 행위를 간사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 간사는 남을 속일 뿐만 아니라 자신도 속인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6:3에서 말씀하기를 "만일 누가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된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나다나엘은 자기가 잘 믿지 못하면서도 믿는 척 하지 않았습니다. 경건의 능력은 없으면서도 모양만 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가의 있는 그대로 생긴 모습 그대로 표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나다나엘은 주님께서 간사함이 없다고 말씀하시자"어떻게 나를아시나이까"고 물었습니다. 이 말은 "나 같이 부족을 솔직히 시인한은 사람을 가리켜서 간사함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간사함이 없다고 하는 뜻은 남을 선동하는 사람은 상대방을 위하여 준 척하면서 망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오늘의 성경에서 죄가 없다하지 아니하시고 간함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죄가 있다 할지라도 간사함이없는 사람이 진실된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3.조용히 묵상하는 자라야 진실한 신자가 될 수 있습니다. 본문 48절에 보면 나다나엘이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하였을 때에"빌립이 너를 부르기전에 네가 무화과 나무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우리 주님께서는 무화과나무 아래있던 나다나엘을 보시고 왜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하셨으며, 왜 무화과 나무아래 앉은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까 나다나엘은 무화과 나무아래서 무엇을하고 앉아 있었겠습니까
1)기도하는 사람이라야 진실한 신다가 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4:63을보면 이삭은 아버지의 종 엘리에셀 의 자기의 신부감을 찾으러 간 다음에날이 저물도록 들에 나가서 묵상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묵상한다는 것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아도 되실분이 있었다면 하나님의 아들이신예수님 밖에 더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새벽마다 기도하셨고 밤이맞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금식기도도 하시고 산기도도 많이 하셨습니다. 기도하지 않고도 참 신자가 될 수 없고 기도하지 않고는 참 신자가될 수 없고 기도하지 않고는 진실한 사람이 될 수도 없습니다. 그러기에성경은 쉬지말고 기도하라 하셨고 무시로 기도하라고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2)묵상하는 사람 이라야 참신자가 될수 있습니다. 묵상이란 승화된 기도의모습입니다. 시편1:112에서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아 아니하며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기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르다" 고 했습니다. 묵상하는 사람은 눈만감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다시 새김질하면서 깊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는 과연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앞에 비취어 보면서 자신을 깊이 반성하는 것이 묵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새김질하면서 깊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는 과연 하나님이 말씀의 거울앞에서 비취어 보면서 자신을 깊이 반성하는 것이 묵상입니다. 하나님의말씀의 저울에서 서서 달아보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늘 묵상하며 자신을성찰하는 사람은 사람은 진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나다나엘과의 대화에서 우리 성도가 진실되게 살기를 얼마나 갈망하셨는지를 엿볼수 있습니다. 주님은 유명한 사람을 찾으신 것이 아니요오직 진실한 사람을 찾고 계셨습니다. 완벽한 사람을 찾으신 것이 아니요진실한 자를 원하십니다. 죄없는 자를 원하신 것보다 죄가 있어도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을 다 좋아하십니다. 실수가 없어서 완벽한 사람보다는 차라리 실수가 있더라도 진실한 사람이 주님의 사랑을 받게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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