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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받은 제자 (요1:43-51)

본문

잠언22:11절에; 깨끗한 양심을 지니고 사람의 마음을 끌도록 말하는 사람은 임금도 친구로 삼을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도 어렸을적 이웃에 살던 꼬마친구를 사귀어 지금도 꼬마대장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제는 다큰 처녀를 친구로 삼아 청화대로 초청한 일이 화제가 되어 매스컴의 시선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나다나엘은 자기를 기억하며 예수님을 소개한 친구 빌립이 있었습니다. 빌립이 있었기에 예수님을 친구로 삼을 수 있었던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 참된 친구가 필요합니다. 빌립은 예수님을 만나 부름받은 즉시 나다나엘라는 친구가 가장 먼저 생각이 났습니다. 그는 즉시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자기와 함께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인정받은 제자가 되어 복음을 위한 사명자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빌립의 모습은 우리가 본 받아야 할 일이다. 복음전파는 누구에게나 주어진 사명입니다. 안드레도 즉시자기 형제 베드로에게 예수를 소개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나다나엘은 누구일까요 정말 예수님을 소개하며 함께 구원의 길을 갈 친구가 누구일까 생가하는 귀한시간이 됩시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만날게 할 수 있을까요 두사람의 낛이군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강가에서 낛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좀 젊은 사람이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그러자 좀 나이든 사람이 좀 젊은 사람을 다짜고짜 머리를 잡아 물속으로 눌러습니다. 함참 허우적거리며 온 힘을 다해 살려달라는 몸짓으로 허우적거렸습니다. 한참후에 젊은 친구의 머리를 놓아주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당신이 조금전 물속에 있었을 떄 처럼 찾으면 만날수 있을 걸세.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찾아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있는곳을 아시고 또 보시고 관심을 가지시며 직접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찾아오시여 우리 모두를 인정하고 제자로 삼아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면 인정받은 제자는 어떤 제자입니까 인정받은 제자의 마음은 어떤 마음의 소유자 입니까 또한 인정받은 제자에 대한 주님의 약속은 무엇입니까 본문을 통해 알아보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나다나엘은 친구의 관심을 끌 수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요1:45) 예수의 부름을 받은 벳세다의 청년 빌립은 예수를 만난 뜨거운 감격을 가지고 먼저 나다나엘을 찾아 갔습니다. 가서 그가 발견한 예수에 대하여 전하고 한번 가보자고 하였습니다. 이때의 나다나엘의 반응을 보자. 그 시원찮게 생각하는 나다나엘에 대한 빌립의 권면을 봅시다. 이것은 상당한 우정이 아니면 이루어질 수 없는 예리한 대화였습니다.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할 만큼 자기 주관이 뚜렸한 말이었습니다. 그런대도 이들은 피차에 상처받지 않고 좋은 동역자로 예수 앞에 섰습니다. 빌립은 어리석게도 두가지 말의 오류를 범했습니다. 첮쨰, 예수를 소개하면서 그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소개한 것이 아니라 요셉의 아들로 소개를 하고, 두번쨰로, 예수의 출생지를 나사렛 예수라고 했던 것입니다. 사람의 그릇된 상상과 활동에 의하여 우리가 그리스도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여 항상 율법과 선지자들로부터 그리스도에 대한 순전한 지식을 구하도록 노력해야 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다나엘은 빌립의 지식을 무시하지 않고 빌립과 함께 베들레헴에서 출생한 하나님의 아들로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좋은 사건이 있을 때 제일먼저 떠오르는 사람, 마음이 쓰여지는 사람, 관심이 가는 사람, 무엇을 먹을 때 제일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나다나엘과 같은 친구입니다. 내게 있어 나다나엘은 누구인가 찾아봅시다. 아니 나는 나의 친구들에게 나다나엘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살펴봅시다. 그리고 형제들을 사랑하고 사랑 받는 자가 됩시다.
2. 인정받은제자는 예수님의 관심을 끌 수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요1:48) 나다나엘이 예수께 나아왔을때 예수님의 첫 마디는 칭찬이요, 인정이었습니다.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그런데 놀란 나다나엘을 향하신 예수님의 두번째 말씀은 더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 내가 보았노라” 그 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나다나엘은 무엇을 했을까요 무엇을 했기에 예수님의 괌심을 끌 수 있었을까요 그는 벱세다 사람입니다. 벱세다는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이적을 베푸신 곳 이었습니다. 또한 4천명을 먹이신 곳이며, 소경을 치유하신 곳이기도 합니다. 나다나엘은 이런 예수님을 기억하며 구세주를 기다리며 묵상하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신앙보다는 육체적 욕구를 추종한 벱세다를 위시한 갈릴리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관심이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이러한 사람들에게 관심이 계셨습니다. 다만 다른점이 있다면, 그들을 육적으로부터의 욕구를 채워주기기 보다는 영적으로서의 초대를 위해 관심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나다나엘은 혼자 예수님을 묵상하며 하나님 나라를 기다렸습니다. 기도했습니다. 무화가 나무 아래 있었던 것은 기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기도 자리에서 주님을 난나 뵈어야 신앙을 굳게 가지며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6:4절에서 말슴하시기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고 하였습니다. 그 일이 예수님의 사랑을 받을만한 충분한 일이었고, 그 모습은 예수님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고, 예수님의 마음에 흡족한 것이었음에 틀림 없습니다. 무엇을 했는가도 중요하지만 예수님의 보시기에 어떠했는가는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혼자 있을 때에 주님을 잘 믿고 조심하는 생활이 있어야 마귀는 두려워하며 하나님은 함께하십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모습을 보고 계시며 괌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원합니다. 혼자있을 시간에 하나님을 기억하며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주님의 음성 듣기를 원하는 성도가 됩시다. 우리의 모습을 우리 주님이 응답하시기를, 내가 너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고 들었다. 내가 너의 마음을 알았다 , 너의 묵상을 주목했노라 이제 이보다 큰 일, 즉 너희가 묵상하고 기도하며 원하던 것보다 더 큰 하나님이 너희를 위한 축복을 주실 것인데 그 약속을 이제 보여 주마“ 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인정받은 제자 나다나엘에게 주님은 이렇게 약속하시며 축복하셨습니다.(요1:15)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큰일을 보리라”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이 보다 더 큰 일”이란 무엇입니까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육적인 생각 보다도 더 큰 일, 그것은 하나님을 나나기를 소원하는 묵상이며 기도입니다. 어떤 사람이 어름 창고에서 일하다가 시계를 잃었습니다. 그는 얼음 덩어리를 루리치면서 창고안을 살피며 시계를 찾으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찾지 못했습니다. 점심 떄까 돼서 그가 집으로 돌아가서 점심을 먹고 와서 보니 그 창고에서 심부름하는 아이가 시계를 찾아 가지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가 시계를 찾은 경위를 물었습니다. 그 아이는 대답하기를 “얼름창고 바닥에 누워서 시계소리를 들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무슨 소리를 듣습니까 정욕의 떠뜨는 소리를 듣지 않습니까 지금 당장 보이는 가시적인 것을 보며 그것에 매달려 기대하고 살지는 않습니까 다 물리치시고 고요히 성경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보이지 않을 지라도 불가시적인 하나님의 음성과 섭리와 축복을 바라봅시다. 바닥에 엎드리어 시계소리를 들은 것처럼 조용히 무릎 꿇고 하나님께 인정 받기를 기도합시다. 이 길만이 살길입니다.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면 천사를 보내시어 약속을 확인시켜 주실것입니다. 할렐루야! 여기서 하나님의 사자들은 즉 천사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에게 전달 할 심부름군이 되기 위하여 주님과 우리 사이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상호 교통이 언급됨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천사들이 주님에게만 수종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하여 천사들이 온 교회를 다 돌아보고 있는 것입니다. 산소망교회도 천사들을 보내시어 형편과 처지를 하나님에게 알리고 있으며 그 하나님은 함께하시고 축복하신 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야곱도 이런 축복을 받았습니다. 야곱의 사정을 하나님께 알린 천사들이 여러분을 위하여 일할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 밖에 있다 하드라도 하늘 문이 이제 우리에게 열림으로 야곱과 동일한 천국 시민이 되었으며, 천사의 동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구원을 지키는 파수군으로 보내심을 받은 천사들은 우리의 불행을 덜어주기 위해 그 복된 하늘에서 내려 온다는 것입니다. 보내신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을 아시고 축복하십니다.
4. 어떤 사람이 인정받은 제자로 하늘문이 열리는 것을 보겠습니까(요 1:47) 어느 무화가 나무 아래서 메시야를 그리워하며 앉아있던 나다나엘을 보신 예수께서, “간사한 것이 없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그를 칭찬하신 말씀을 보면서 오늘 우리가 앉아 있는 무화가 나무는 어디인가 그 아래서 우리가 꿈꾸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원하며 찾고 있습니까살펴보아야 겠습니다. 탐욕과 이기심만 가득한 저주받은 무화가 나무 아래 있는 것은 아닙니까 거짓이 없는 사람, 간사함이 없는 사람, 참다운 삶의 소유자가 바로 이러한 축복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꿈은 육신을 위한 것이 아니요 영혼을 위한 것이어야 하며, 속이고 등쳐 배부른 삶이 아니라, 인정이 넘치는 사랑의 소유자, 그래서 부유한 가운데서나 가난한 가운데서나 이웃과 함께 친구와 함께 주님의 제자 된 삶을 나누는 사람이 바로 이런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구제를 해도 참되게, 아파트를 지어도 참되게 지으며 친구를 사귀어도 진실과 참되게 사귀어야 합니다. 환경을 지키는 일도 참되게 하여야 합니다. 그럴 때 해양 오염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축복을 받읍시다. 이런 성도가 됩시다. 이런 친구가 됨시다. 다니엘이 좋은 친구를 사귄 것처럼, 요나단이 다윗과 친구가 된 것처럼, 빌립과 나다나엘처럼, 안드레와 베드로처럼, 한 친구요, 형제요, 천국의 시민으로 주님께 인정받는 성도가 됩시다. 이런 성도는 하나님 나라를 보며 그나라를 소유하며, 지키며, 간직하며, 천사들의 동료가 되고 주님의 제자가 됩니다. 주님은 우리의 좋은 친구가 되어 주십니다. 인정을 받으려면 주님의 마음이 괌심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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