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밝히는 빛 (사42:5-9,요1:1-18)
본문
우리는 이 민족의 통일이 하나님의 뜻임을 의심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죄로 인하여 나뉘어진 세계를 하나로 만드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인간과 화해하시고, 또 인간들 사이에 있는 모든 차별을 없애고 하나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 상과 이념의 차이로 분단되어 서로 싸우고 증오하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는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민족의 통일이 이루어지도록 이미 역사 하고 계실 것입니다. 따라서 이 민족의 통일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루어 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의한 통일이란 결국 빛에 의한 통일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사탄의 뜻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뜻을 따른 통일이기에 거기에는 빛 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통일이 우리에게 진정한 해방과 자유를 가져 오지 않는다면 누구도 그런 통일은 원치 않을 것입니다. 통일이 오히려 어둠을 불러오는 것이라면 우리는 결사적으로 통일을 막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분단이라는 어두운 역사 속에 살고 있기에 이제 이 역사를 벗 어나기 위해서는 강력한 빛의 역사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빛 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만 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민족의 통일은 하나님의 빛에 의한 구원의 역사의 연장 선상에 있는 것입니다. 통일은 하나님 의 구원의 역사입니다. 이 세계의 어둠을 몰아내는 것이 빛의 역사라면, 분단의 어둠을 몰아내는 통일은 분명히 빛의 역사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 의 빛의 역사는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통일은 틀림없이 이루어질 것 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에 보면,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니, 어둠이 그 빛을 이 기지 못하였다"고 하였고, "그 빛이 세상에 오셨으니,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시다. 그는 세상에 계셨다. 세상이 그로 말미암아 생겨났는데도, 세상은 그를 알지 못하였다. 그가 자기 땅에 오셨으나, 그의 백성은 그를 맞아들이지 않았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빛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스스로 "나는 세상의 빛"(요 8:12)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둠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본문에 나타난대로 보면, 그것은 "세상"을 가리키는 것이요, 그 범위를 좁히면 "자기 백성" 곧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참빛되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유대인들 특히 종교지도자들이 그를 빛으로 영접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박해하고 반대하고 그를 죽이려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참 빛이셨지만 그의 빛은 감취어져 있었기에 그 빛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빛은 그의 교훈과 기적을 통해 서서히 나타나기는 했지만, 어둠에 속하였던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 빛을 알아보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기대했던 빛은 강력하고 화려하고 모든 세상을 한꺼번 에 살라버릴 수 잇는 불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빛은 가물가물하는 등잔불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꺼지지 않는 하나님의 빛이었던 것입니다. 이 빛이 진정으로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은 그의 십자가의 죽음에서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이 마침내 모든 어둠의 근원인 마귀의 권세를 깨치시는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그런 후 예수님은 사흘만에 부활되심으로 그가 하나님의 참빛이심을 모든 세상 이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패배한 마귀는 아직도 철수하지 않은채 세상 끝날까지 발악을 그치지 아니할 것입니다. 따라서 빛의 역사는 점진적입니다. 세상이 끝나는 날 빛의 역사는 완성될 것입니다. 어움의 세력들은 마땅히 물러가야함에도 불구하고 빛의 역사를 훼방하고 핍박하고 계속 이 땅에 불의의 역사를 퍼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빛이 어둠을 몰아내는 방법은 결코 폭력적이거나 강력한 물리적 인 힘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빛의 강 력한 힘은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3장 34절에 보면,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 것으로써 너희가 나의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사랑 이야말로 어둠을 몰아내는 강력한 빛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 중에서도 가장 큰 사랑은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요 15:13). 빛이 역사는 결코 파괴적이거나 혁명적인 것이 아닙니다. 다수의 강력한 힘에서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 께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번도 군중의 다수의 힘을 이용 하여 그의 목적을 성취하려 하신 적이 없습니다. 사랑은 결코 다수의 힘에 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희생을 주저하지 않는 한 사람 한 사람에 의해서 빛의 역사는 성취되는 것입니다. 빛되신 하나님이 어둠에 덮인 이 세상을 빛으로 바꾸기 위하여 자기의 독생자를 희생케 하시는 사랑으로 역사하셨습니다. 결국 사랑에 의해서만 어둠의 역사는 빛의 역사로 바뀌어 질 것입니다. 우리의 분단된 조국은 여러 가지 어둠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남한은 거 듭된 독재정권에 의하여 혼란을 겪었고, 공정한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으므 로 해서 경제적인 불의가 이 나라를 좀 먹고 있으며, 오염된 자연으로 인 하여 위기에 처아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북한 사회는 폐쇄된 사회로서 인간의 자유를 박탈하고 사상과 이념의 노예로 국민의 모든 권리를 제약하 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통일을 논의함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저들의 이념인 주체사상(主體思想)입니다. 북한 사회는 주체사상에 의해서 일인 독재가 정당화 되고, 모든 국민의 자유가 제한되고 있습니다. 주체사상은 특히 인간 중심주의 사상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부정하고 인간의 왕국을 추 구하고 있습니다. 이와같은 사상이 북한의 주민들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빛에 의한 통일에 큰 장애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체사상이 어떻게 빛 의 역사에 장애가 되는지를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로 주체사상은 철저하게 사람 위주의 철학입니다. 그들은 다음과 같 이말합니다. "주체사상은 사람 위주의 철학이다. 주체사상은 모든 것을 사람을 중심으로 하여 고찰하여 사람의 운명개척의 방도를 밝혀 준다.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것이며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은 사람이 세계를 개조하고 자기 운명을 개척하는 데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이것은 결국 하나님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이 세계의 중심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세계의 중심에 계시며, 인간은 스스로 자기 운명을 개척해 가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섭리 가운 데서 청지기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들은 한걸음 더 나아가 그 사람은 구체적으로는 근로인민대중을 말 하고 그 인민대중을 대표하는 것이 수령입니다. "수령은 근로인민대중의 최고 수뇌이며 통일단결의 중심이다" 따라서 이 수령에게 모든 사람은 충 성을 바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령이 혁명과 건설에서 최고의 절대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는 만큼 인민대중은 마땅히 수령에 게 충성을 다해야 한다." 결국 수령을 신의 위치에 올려 놓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조는 교회론과 흡사합니다.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서응로 교회가 이루어지고 그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다.
그러므로 모든 교회는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고 그 뜻을 따라야 한다. 또한 교회의 사명은 이 땅 에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는 것이다. 이런 교회론과 주체사상은 맥락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주체사상은 정치사상이 아닌 정 치 종교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김일성은 스스로가 북한의 메시아로 군림 하고 있는 것이며, 세계의 메시아가 되고자 하는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서운 적 그리스도임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둘째로, 이들은 신을 부정하고 종교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인간 중심이기 때문에 자연 신을 부정함과 동시에 주체사상에 의하여 스스로가 종교가 되었기에 다른 종교를 용납하려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들은 다음 과 같이 말합니다. " 사람들은, 이른바 신이라는 것은 사람 자신이 만들 어 낸 환상적인 의식이고, 그것을 믿는 한 병적인 정신상태에 빠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종교는 반동적이며 비과학적인 세계관이다. 사람 들이 종교를 믿으면 계급의식이 마비되고 혁명하려는 의욕이 없어지게 된다. 결국 종교는 아편과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노동계급의 당과 혁명적 인민들은 종교의 허위성과 반동을 폭로, 규탄하는 투쟁을 계속 힘 있게 벌여나가야 한다."이런 사상과 정책 밑에서 교회가 발붙일 자리가 없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요즈음 몇걔의 교회당이 지어지고 가정교회를 인정하는 것은, 대외적인 관계를 고려함과 동시에 그들이 목표하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회가 완성되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주 미 약하게 시작된 이 교회가 북한 사회를 변화시키는 한알의 작은 겨자씨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이런 어둠의 세력에 맞서 통일을 이룩하려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공산주의 사회가 더 이상 견뎌내지 못하고 무너지는 역사의 현 장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그 뜻에 반대하여 세워진 공산 주의 사회가 더 이상 나갈 진로가 막혀 버린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이 섭리하시는 세계 속에서 그 뜻을 거스려 나가는데는 한계가 있게 마련 입니다. 어둠은 빛이 비취면 물러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둠이 아무 리 발악을 하여도 결국 빛을 이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통일 은 빛에 의하여 반드시 이루어지고야 말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통일은 정치가들의 즉흥적인 쇼나 제수추어에 의해서 이룩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빛을 전하는 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통일을 막고 있는 것은 북한만이 아닙니다. 남한의 정권도 바로 통일을 막고 잇는 어둠의 세력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어둠의 세력이 어둠의 세 력을 통합하면, 그것은 또 다른 하나의 어둠의 세력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것은 진정한 통일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통일을 원하는 것이 아 닙니다. 그러면 우리가 통일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무엇 보다도 우리가 가진 빛을 더욱 밝히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어둠을 밝힐 수 있는 빛 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 이제는 이 빛을 밝히는 것만이 우리에게 남은 사명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이 빛을 밝힐 수가 있겠습니까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그것은 사랑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리스도게서 자신 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그 사랑을 우리가 본받을 때 우리의 빛이 밝아질 것입니다. 요한 일서에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버 리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자매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3:16)라고 하셨습니다.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어주는 사랑,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이 아니면 어디서도 빛을 발할 수는 없습니다. 주체사상이 아무리 강력한 이념이라 할지라도 자기 몸을 내어던져 사랑을 실천하는 자 앞에서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 사랑의 힘은 교인들이 많아 짐에 비례하여 늘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숫자와 상관이 없습니다. 지극히 적은 수라도 사랑을 몸소 실천할 때 거기서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 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자기 개인의 구원에만 몰두하였기에 이웃에 대한 관심을 갖지 못하였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민중들에 대하여 무관심하여 왔습니다. 사랑의 힘을 발휘하여 오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 한국의 기독교가 큰 사랑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고아들 을 가정으로 입양하고, 노인들을 양노원으로 몰아낼 것이 아니라 가정으 로 모셔드리는 사랑의 실천을 우리가 하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너무 현실의 문제를 영적으로만 풀려하는 잘못을 범하였습니다. 당장 배고픈 사람에게 예수 믿으라고만 했지 밥을 아울러 주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실천할 때 영적으만 했지 구체적으로 실천하는데는 인 색하였습니다. 예수 믿으라고 전도는 열심히 하지만, 자기 물질을 나누어 주는데는 언제나 인색하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바로 이런 기독교의 약점을 파고 들어온 것이 공산주의가 아니겠습니까 기독교가 외면하여 버린 소외 된 민중들을 선동하여 착취와 계급이 없는 사회를 건설해보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공산주의를 극복하는 길은 바로 구체적으로 사랑을 실헌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그것보다 더 강력한 통일의 무기는 없습니다. 만약에 통일이 되었을 때 우리는 저들에게 우리가 가진 재산을 나누어 주고, 우리가 가진 땅을 나누어 주며, 저들을 우리의 직장에 받아들여 일 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을까요 지금 우리는 독일의 통일을 보면서 동독의 실업자가 늘고 그들의 생활이 더욱 곤경에 처하였다는 보도를 듣습니다. 자기를 내어주는 사랑의 실천 없이는 통일은 참으로 어려운 것입니다.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의 삶이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랑에 의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이 땅에 이루 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분명히 하나님의 빛에 의하여 통일이 될 것을 믿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빛된 우리 가 우리의 빛을 사랑으로 더욱 밝혀야 한다는 사명이 우리에게 무겁게 메 워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사랑의 실천 없이는 통일은 어려 울 것입니다. 사랑에 의해서만 사상과 이념이 극복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가 될 때 통일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주 체 사상이나 자본가들의 욕심에 의한 것이 아닌 하나님의 빛에 의한 통일 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죄로 인하여 나뉘어진 세계를 하나로 만드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인간과 화해하시고, 또 인간들 사이에 있는 모든 차별을 없애고 하나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 상과 이념의 차이로 분단되어 서로 싸우고 증오하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는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민족의 통일이 이루어지도록 이미 역사 하고 계실 것입니다. 따라서 이 민족의 통일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루어 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의한 통일이란 결국 빛에 의한 통일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사탄의 뜻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뜻을 따른 통일이기에 거기에는 빛 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통일이 우리에게 진정한 해방과 자유를 가져 오지 않는다면 누구도 그런 통일은 원치 않을 것입니다. 통일이 오히려 어둠을 불러오는 것이라면 우리는 결사적으로 통일을 막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분단이라는 어두운 역사 속에 살고 있기에 이제 이 역사를 벗 어나기 위해서는 강력한 빛의 역사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빛 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만 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민족의 통일은 하나님의 빛에 의한 구원의 역사의 연장 선상에 있는 것입니다. 통일은 하나님 의 구원의 역사입니다. 이 세계의 어둠을 몰아내는 것이 빛의 역사라면, 분단의 어둠을 몰아내는 통일은 분명히 빛의 역사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 의 빛의 역사는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통일은 틀림없이 이루어질 것 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에 보면,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니, 어둠이 그 빛을 이 기지 못하였다"고 하였고, "그 빛이 세상에 오셨으니,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시다. 그는 세상에 계셨다. 세상이 그로 말미암아 생겨났는데도, 세상은 그를 알지 못하였다. 그가 자기 땅에 오셨으나, 그의 백성은 그를 맞아들이지 않았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빛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스스로 "나는 세상의 빛"(요 8:12)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둠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본문에 나타난대로 보면, 그것은 "세상"을 가리키는 것이요, 그 범위를 좁히면 "자기 백성" 곧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참빛되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유대인들 특히 종교지도자들이 그를 빛으로 영접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박해하고 반대하고 그를 죽이려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참 빛이셨지만 그의 빛은 감취어져 있었기에 그 빛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빛은 그의 교훈과 기적을 통해 서서히 나타나기는 했지만, 어둠에 속하였던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 빛을 알아보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기대했던 빛은 강력하고 화려하고 모든 세상을 한꺼번 에 살라버릴 수 잇는 불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빛은 가물가물하는 등잔불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꺼지지 않는 하나님의 빛이었던 것입니다. 이 빛이 진정으로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은 그의 십자가의 죽음에서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이 마침내 모든 어둠의 근원인 마귀의 권세를 깨치시는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그런 후 예수님은 사흘만에 부활되심으로 그가 하나님의 참빛이심을 모든 세상 이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패배한 마귀는 아직도 철수하지 않은채 세상 끝날까지 발악을 그치지 아니할 것입니다. 따라서 빛의 역사는 점진적입니다. 세상이 끝나는 날 빛의 역사는 완성될 것입니다. 어움의 세력들은 마땅히 물러가야함에도 불구하고 빛의 역사를 훼방하고 핍박하고 계속 이 땅에 불의의 역사를 퍼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빛이 어둠을 몰아내는 방법은 결코 폭력적이거나 강력한 물리적 인 힘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빛의 강 력한 힘은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3장 34절에 보면,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 것으로써 너희가 나의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사랑 이야말로 어둠을 몰아내는 강력한 빛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 중에서도 가장 큰 사랑은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요 15:13). 빛이 역사는 결코 파괴적이거나 혁명적인 것이 아닙니다. 다수의 강력한 힘에서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 께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번도 군중의 다수의 힘을 이용 하여 그의 목적을 성취하려 하신 적이 없습니다. 사랑은 결코 다수의 힘에 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희생을 주저하지 않는 한 사람 한 사람에 의해서 빛의 역사는 성취되는 것입니다. 빛되신 하나님이 어둠에 덮인 이 세상을 빛으로 바꾸기 위하여 자기의 독생자를 희생케 하시는 사랑으로 역사하셨습니다. 결국 사랑에 의해서만 어둠의 역사는 빛의 역사로 바뀌어 질 것입니다. 우리의 분단된 조국은 여러 가지 어둠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남한은 거 듭된 독재정권에 의하여 혼란을 겪었고, 공정한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으므 로 해서 경제적인 불의가 이 나라를 좀 먹고 있으며, 오염된 자연으로 인 하여 위기에 처아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북한 사회는 폐쇄된 사회로서 인간의 자유를 박탈하고 사상과 이념의 노예로 국민의 모든 권리를 제약하 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통일을 논의함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저들의 이념인 주체사상(主體思想)입니다. 북한 사회는 주체사상에 의해서 일인 독재가 정당화 되고, 모든 국민의 자유가 제한되고 있습니다. 주체사상은 특히 인간 중심주의 사상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부정하고 인간의 왕국을 추 구하고 있습니다. 이와같은 사상이 북한의 주민들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빛에 의한 통일에 큰 장애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체사상이 어떻게 빛 의 역사에 장애가 되는지를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로 주체사상은 철저하게 사람 위주의 철학입니다. 그들은 다음과 같 이말합니다. "주체사상은 사람 위주의 철학이다. 주체사상은 모든 것을 사람을 중심으로 하여 고찰하여 사람의 운명개척의 방도를 밝혀 준다.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것이며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은 사람이 세계를 개조하고 자기 운명을 개척하는 데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이것은 결국 하나님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이 세계의 중심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세계의 중심에 계시며, 인간은 스스로 자기 운명을 개척해 가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섭리 가운 데서 청지기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들은 한걸음 더 나아가 그 사람은 구체적으로는 근로인민대중을 말 하고 그 인민대중을 대표하는 것이 수령입니다. "수령은 근로인민대중의 최고 수뇌이며 통일단결의 중심이다" 따라서 이 수령에게 모든 사람은 충 성을 바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령이 혁명과 건설에서 최고의 절대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는 만큼 인민대중은 마땅히 수령에 게 충성을 다해야 한다." 결국 수령을 신의 위치에 올려 놓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조는 교회론과 흡사합니다.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서응로 교회가 이루어지고 그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다.
그러므로 모든 교회는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고 그 뜻을 따라야 한다. 또한 교회의 사명은 이 땅 에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는 것이다. 이런 교회론과 주체사상은 맥락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주체사상은 정치사상이 아닌 정 치 종교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김일성은 스스로가 북한의 메시아로 군림 하고 있는 것이며, 세계의 메시아가 되고자 하는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서운 적 그리스도임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둘째로, 이들은 신을 부정하고 종교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인간 중심이기 때문에 자연 신을 부정함과 동시에 주체사상에 의하여 스스로가 종교가 되었기에 다른 종교를 용납하려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들은 다음 과 같이 말합니다. " 사람들은, 이른바 신이라는 것은 사람 자신이 만들 어 낸 환상적인 의식이고, 그것을 믿는 한 병적인 정신상태에 빠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종교는 반동적이며 비과학적인 세계관이다. 사람 들이 종교를 믿으면 계급의식이 마비되고 혁명하려는 의욕이 없어지게 된다. 결국 종교는 아편과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노동계급의 당과 혁명적 인민들은 종교의 허위성과 반동을 폭로, 규탄하는 투쟁을 계속 힘 있게 벌여나가야 한다."이런 사상과 정책 밑에서 교회가 발붙일 자리가 없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요즈음 몇걔의 교회당이 지어지고 가정교회를 인정하는 것은, 대외적인 관계를 고려함과 동시에 그들이 목표하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회가 완성되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주 미 약하게 시작된 이 교회가 북한 사회를 변화시키는 한알의 작은 겨자씨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이런 어둠의 세력에 맞서 통일을 이룩하려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공산주의 사회가 더 이상 견뎌내지 못하고 무너지는 역사의 현 장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그 뜻에 반대하여 세워진 공산 주의 사회가 더 이상 나갈 진로가 막혀 버린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이 섭리하시는 세계 속에서 그 뜻을 거스려 나가는데는 한계가 있게 마련 입니다. 어둠은 빛이 비취면 물러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둠이 아무 리 발악을 하여도 결국 빛을 이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통일 은 빛에 의하여 반드시 이루어지고야 말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통일은 정치가들의 즉흥적인 쇼나 제수추어에 의해서 이룩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빛을 전하는 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통일을 막고 있는 것은 북한만이 아닙니다. 남한의 정권도 바로 통일을 막고 잇는 어둠의 세력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어둠의 세력이 어둠의 세 력을 통합하면, 그것은 또 다른 하나의 어둠의 세력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것은 진정한 통일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통일을 원하는 것이 아 닙니다. 그러면 우리가 통일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무엇 보다도 우리가 가진 빛을 더욱 밝히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어둠을 밝힐 수 있는 빛 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 이제는 이 빛을 밝히는 것만이 우리에게 남은 사명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이 빛을 밝힐 수가 있겠습니까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그것은 사랑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리스도게서 자신 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그 사랑을 우리가 본받을 때 우리의 빛이 밝아질 것입니다. 요한 일서에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버 리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자매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3:16)라고 하셨습니다.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어주는 사랑,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이 아니면 어디서도 빛을 발할 수는 없습니다. 주체사상이 아무리 강력한 이념이라 할지라도 자기 몸을 내어던져 사랑을 실천하는 자 앞에서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 사랑의 힘은 교인들이 많아 짐에 비례하여 늘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숫자와 상관이 없습니다. 지극히 적은 수라도 사랑을 몸소 실천할 때 거기서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 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자기 개인의 구원에만 몰두하였기에 이웃에 대한 관심을 갖지 못하였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민중들에 대하여 무관심하여 왔습니다. 사랑의 힘을 발휘하여 오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 한국의 기독교가 큰 사랑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고아들 을 가정으로 입양하고, 노인들을 양노원으로 몰아낼 것이 아니라 가정으 로 모셔드리는 사랑의 실천을 우리가 하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너무 현실의 문제를 영적으로만 풀려하는 잘못을 범하였습니다. 당장 배고픈 사람에게 예수 믿으라고만 했지 밥을 아울러 주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실천할 때 영적으만 했지 구체적으로 실천하는데는 인 색하였습니다. 예수 믿으라고 전도는 열심히 하지만, 자기 물질을 나누어 주는데는 언제나 인색하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바로 이런 기독교의 약점을 파고 들어온 것이 공산주의가 아니겠습니까 기독교가 외면하여 버린 소외 된 민중들을 선동하여 착취와 계급이 없는 사회를 건설해보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공산주의를 극복하는 길은 바로 구체적으로 사랑을 실헌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그것보다 더 강력한 통일의 무기는 없습니다. 만약에 통일이 되었을 때 우리는 저들에게 우리가 가진 재산을 나누어 주고, 우리가 가진 땅을 나누어 주며, 저들을 우리의 직장에 받아들여 일 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을까요 지금 우리는 독일의 통일을 보면서 동독의 실업자가 늘고 그들의 생활이 더욱 곤경에 처하였다는 보도를 듣습니다. 자기를 내어주는 사랑의 실천 없이는 통일은 참으로 어려운 것입니다.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의 삶이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랑에 의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이 땅에 이루 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분명히 하나님의 빛에 의하여 통일이 될 것을 믿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빛된 우리 가 우리의 빛을 사랑으로 더욱 밝혀야 한다는 사명이 우리에게 무겁게 메 워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사랑의 실천 없이는 통일은 어려 울 것입니다. 사랑에 의해서만 사상과 이념이 극복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가 될 때 통일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주 체 사상이나 자본가들의 욕심에 의한 것이 아닌 하나님의 빛에 의한 통일 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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