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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오시다 (요1:1-5)

본문

주님께서 유대나라에 오셨을 당시의 상황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몹시 어두울 때였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로마제국이 유대나라를 통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치적인 자유가 없었옵니다. 로마가 제 아무리 신사적인 방법으로 유대나라를 통치한다고해도 식민통치였기 때문에 억압과 통제가 자행되었고 그에 비례하여 유대인들은 자유와 해방을 갈망하게 되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과중한 세금 때문에 민성이 높았고 경제는 침체되어 있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상호 블신과 도덕적 타락이 짙게 깔려 있었고, 종교적으로는 정치현실에 영합한 교권주의자들의 횡포가 있었는가 하면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는 구심점을 잃고 있었니다. 그러한 사회적 정황 속에 오신 예수를 가리켜 사도 요한은 본문에 서 '이 오셨다'고 표현했습니다.
1절에서는 사람들의 및"이라고 댔고 9절에서는 '참 '이라고 했읍니t. 달빛이나 별은 반사체이기 때문에 참 빛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및이라는 그 말의 뜻은 사람들의 태양 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 및이라는 말의 뜻은 거짓 및에 반대되는 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의 태양이며 온 세상을 밝히는 참 이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떤 태양 및과도 견줄 수가 없습니다. 태양 밝기에 및은 그 있어서도 단연 빛의 원천일 뿐만 아니라 사람 과 동식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를 건강하게 하고 성장을 촉진시키는 힘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태양 은 때로 성경에서 하나님의 및으로 비유된 적이 있는 것입니다. 말라기 4장 2절을 보면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헤 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시편 85편 ll에서는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 60장 19절에서는 '다시는 낮의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추지 않을 것이요, 오직 척호와가 네 게 영영한 이 티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위의 말씀들의 의미는 하나님이 참 빛이시고 태양이시고 치료하시는 이시라는 뜻입니다. 더 증요한 말씀은 이사야 60장 20절의 말씀입니다. 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할 것은 여호화가 네 영원한 빛 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실상 우리들이 찬란하다고 믿고 있는 것들과 나를 감싸주고 밝혀 주는 것들이라고 신뢰하고 있는 것들이라도 그것들은 영원한 태양이 될 수 없습니다. 4년여 동안의 교제끝에 결혼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교제하는 동안 수은 사랑의 편지들을 주고 받았습니다. 그들이 사랑을 고 백하는 편지를 주고 받을 때마다 상대방을 부르는 호칭이 있었읍니다. 여자는 반드시편지 서두에 '오 나의 태양'이라고 썼고 남자는 반드 시 서두에 오 나의 천사'라고 썼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지 6개월만에 태양 씨와 천사 씨가 결흔을 하고 부부 가 되었습니다. 오 ! 태양과 오 ! 천사가 결흔해서 남매를 낳고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때로 천사는 악마가 될 때가 있었는가하면 태 양은 검은 구름과 비바람이 될 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혼한 지 일년 반만에 천사와 태양이라는 호칭이 여보라는 두 글자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사람은 천사도 태양도 될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혹시 천사가 되고 태양이 되겠다고 했더라도 잠깐 동안일 뿐 영원한 태양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영원한 빛으로 오신 사건 이 성탄 사건인 것입니다. 만일 이 세상에 예수보다 더 밥은 이 있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요청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온통 세상이 어두웠기 때문에 으로 오셨던 것입니다. 하늘의 별릿도 보이지 않고 지상의 모든 불이 꺼져버린 밤을 가 리켜 칠처럼 어두운 밤이라고 표현합니다. 전후좌우를 분별할 수 없는 어둠, 눈을 떠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최악의 어둠일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밤하늘이 어두워도 자세히 밤 하늘을 바라보면 한 두 개의 반짝이는 별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두 눈이 실명을 했다면 그야말로 완벽한 혹암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 자신이 및을 찾는 마음과 눈을 가지고 있다면 을 찾 고 바라볼 수가 있겠지만 나에게 을 찾고 바라보는 마음과 눈이 없 다면 어둠밖에는 찾을 것이 없게 될 것입니다.
이 사실을 사도요한은 S장 19절에서 '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합으로 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라'고 했고 3장 2o절에서는 '악을 행하는 자는 및을 미워하기 때문에 으로 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참으로 밝고 맑은 삶을 왼한다면 및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합니다. 등블이 꺼졌을 때 느끼는 어두움도 있고 해가 졌을 때 느끼는 어두 움도 있습니다만 그러나 가장 심각한 어둔 그늘은 마음속에 드리우는 영흔의 어두움입니다. 그 어둔 그늘을 내쫓고 밝은 인생을 살려면 속 히 주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지난 ls일 새벽 대학에 입학하는 것올 보지 못하고 먼저 가는 것이 서운하다. 엄마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용서해라 엄마 아빠 대신 형의 말올 잘 듣고 몸 컨강히 성공해 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아파트에사 투 신 자살한 어느 미망인이 있었습니다. 신문들은 평소 그가 심한 조울 증으로 고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조울증은 자신이 처한 불행이나 슬픔을 해소하지 못하고 그 블행과 슬픔의 노예가 된 채 살아가는 정신적 불안과 어두운 삶의 태도를 의 미합니다. 조울증이라는 병마가 한 생명을 빼앗아 란 이야기는 우리에게 층격 올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이야기도 있습니다. 50대 초반에 교회 집사였던 남편과 사별한 어느 가정에 심방을 간 일이 있었습니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 즐겨부르는 찬송이 있으면 이야기하라고 했더 니 세상 떠난 남편이 즐겨 부르던 찬송이 '넝 령이여 강림하사H라는 찬 송이었는데 그 찬송을 부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찬송을 부르다가 눈물 흘릴텐데 괜찮겠느냐 라는 질문에 그 분의 대답은 '천당가면 만날텐데 왜 눈물 흘리겠느냐'라는 것이었습니다. 저기 여기서 두 여인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남편의 충격적인 죽음 때문에 심한 조울증에 빠진 채 목숨을 버려야 했던 미망인이 있는가하면 천당가면 만날 수 있다는 소망으로 자기 앞에 펼쳐진 슬픔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성령님이억 강림하사 나를 감화 하시고'를 함께 부르는 미망인도 있었습니다. 어디에서 그런 차이가 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고독한 영흔을 골고루 따뜻하게 비추어 주시는 및으로 오신 주님을 영접했느냐 하지 못했느냐에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9절에서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빛보다 어두움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 어둠 속에 파묻척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과 S장에서 말씀하신 빛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요한복음 8장 12절에서 주님은 '나는 세상의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빛으로 오신 주님을 영접하고 믿으면 어둔 마음과 삶이 밝아지게 되고 죽음을 향해 걸어가던 영흔이 생명을 향하여 그 방향을 바꿀 수 있게 됩니다. 절망과 좌절 속에 빠져서 삶의 향방을 찾지 못하던 사람들이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희망을 찾고 올바른 인생길을 걸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어두움을 따라가는 사람들은 반대의 현상을 겪게 될 것입니다. 요한복음 9장을 보면 날 때부터 소경되었던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날 때부터 소경이었기 때문에 이 무엇인가를 모른 채 세가 된 사람이었습니다. 빛없이 살아나온 40년의 인생 삶이었습니다만 그러나 어느날 그가 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의 생애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예수를 만나고 두 가지 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의 및은 하늘에 나는 태양및과 밤하늘에 빛나는 달빛과 별및 을 보게 되었고, 다른 하나의 은 영원한 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빛을 보 게 되었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잃었던 희망을 다시 찾았고 생명을 다시 얻게 된 것입니다. 지난 12월 7일 주일 저녁에 우리 교회는 크리스마스 츄리의 점등식 과 함께 음악예배를 드린 바 있었습니다. 보슬비가 내리던 며칠 전 저녁 심방을 나갔다가 들어오다 보니 리스마스 츄리의 불이 모두 꺼진 채 깜깜했습니다. 관리하는 집사님에게 왜 츄리의 불을 켜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비가 오기 때문에 위험할까라 켜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비만 내려도 켜지 못하는 츄리의 불빛 바람만 불어도 꺼져 버리는 촛불및, 천둥번개에 낙뢰만 있어도 전원을 꺼야하는 전등불빛 거기서 세상빚이 얼마나 가날프고 나약하고 가물거리는 것들 인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영원한 빛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빛은 꺼지지도, 가물거 리지도 않습니다. 그 빛은 무인고도에도 들어가고 지하 200미터의 갱 속에도 들어갑니다. 그 빛은 태펑양을 횡단히 며 파도와 싸우는 매 안에도 들어가고 긴장감 감도는 휴전선을 지키는 병사들에게도 들어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빛은 사람들에게 위안과 평안을 주십니다. 왜 내 마음속에 빛이 없습니까 왜 내 속에 기쁨이 없습니까 왜 내 영흔속에 우수가 깃 들고 어둔 그림자가 불안이라는 것들이 둥지를 틀고 있읍니 까 그것은 불신과 증오와 빛을 차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문을 열고 지금 이 시간 빛으로 오 빛되신 주님께서 내 심령 구석구석을 주님을 영접합시다. 비추시고 내 가정을 비추시고 우리의 삶을 조명하시도록 마음의 창문을 열어 드럽시다.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의 크신 은총이 함케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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