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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서론 (눅24: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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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로서 전체 성경을 특히 구약을 어떤 시각에서 볼 것인가를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안에서 일하시는가에 대하여 구약성경은 답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처음 지음받았을 때, 에덴에 거주한 아담은 완전한 지식과 의로움과 거 룩함으로 하나님의 기뻐하신 뜻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수 있는 완전한 존재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물론 그 완전하다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피조물로서의) 완전함을 말합니다. 피조물에게는 하나님과 같은 완전함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담은 피조물의 수준에서 완전하게 지음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고 에덴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모든 만물을 하나님의 대리통치자로서 온전히 다스릴 때에도 하나님은 아담에게 말씀하시 므로 계속해서 피조세계와 관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아담이 아직 타락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 온전한 상태로 있었을 때에도, 아담은 타락하기 전의 바른 이성을 사용 하여 하나님과 사물을 바로 알 수 있는 그런 상태에서도 하나님으로 부터 말씀의 계시가 아담에게 주어졌습니다. 아담의(인간의) 눈으로 사방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었을 때에도 하나님으 로 부터 말씀이 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마음 속에서 작용하는 바른 이성이나 판단과 감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었고 행할 수 있었을 때에도 하나님의 말씀 이 주어졌습니다. 이 사실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느냐 하면, 처음 창조된 상태의 자연을 통해서 계시된 것 만으로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갖기에는 충분치 못하다는 말씀 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말씀을 베푸시고 피조물의 수준에서 아담을 끌 어 올리시고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 관계로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창조된 피조세계에 하나님의 음성이 분명히 새겨져 있고 하나님의 형상 으로 창조함을 받은 인간의 본래적인 구조 때문에 그 마음에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었을 때에도 하나님은 계속해서 아담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피조물 은 한계가 있고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계속해서 하나님의 가르침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어떻든지 그 때는 아담이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인간 이 범죄한 뒤로는 하나님이 그렇게 인간과 교제할 수 없었고 또 인간은 자연계를 보 든지, 자기 마음의 하나님의 형상으로 자기 마음 속에서 일하시는 양심의 음성을 듣는다 해도 하나님을 바르게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지도 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으로 부터 아담에게 말씀이 온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이 타락한 뒤로 온 세상은 죄성으로 인하여 파괴되어 부패함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덕을 찬송하던 그 본연의 자리에서 이탈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 도 전혀 하나님으로 부터 도망하여 피할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는 못합니다. 물론 타락으로 말미암은 죄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고 만날 수 없는 형벌 가운데에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숨을 곳은 없 습니다(참조;시 139편). 로마서1:18-23절에 말하기를, 도무지 인간은 하나님을 피할 수 없고 오히려 하나님을 찾아가는 인간의 본연의 성격이 바르게 하나님을 만날 수 없게 되어 버려서 우 상을 섬기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 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 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게 치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 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1:18-23) 이렇게 인간의 죄성이 하나님을 바로 볼 수 없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처음 자기가 창조했을 때 이루시기를 원했던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시기 위해서(처 음 창조시에 주셨던 말씀과도 같이) 이제 선지자를 통해서(아담의 선지직)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이 지금 우리가 보는 성경(구약) 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우리가 볼 때, "하나님께서 누구이시며 어떤 존재인가,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의 바른 관계의 회복이 어떤 것인가" 등의 내용을 살펴야 합니다. 이 렇게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쁘신 뜻을 나타낸 것이 성경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이 여러 사람을 통해 기록되었어도 하나님께서 친히 기록자들을 감 동시키셔서 기록하게 하셨기 때문에, 온전하게 인간의 작품이라 말할 수 있으면서도, 또한 전체적으로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해석할 때도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어떻게 나타내시는가 하는 것을 잘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에덴에서 직접 아담에게 말씀하시던 하나님께서 지금은 어떻게 말씀하고 계시는가" 여기에 대해서 성경은 말하기를, 지금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데, 직접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직접 보여준 것이 바로 성경(계시) 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누구를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시는가 하면, 인간이 하나님으로 부터 받을 수 있는 최상의 계시 분량으로서 아들을 통해서 입니다. 타락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통해서 세상을 창조 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범죄한 뒤로는 하나님과 인간이 직접적으로 말할 수 있는 길은 막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은 중보자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처음에 하나님께서 아들을 통해서 창조 하셨던 것처럼,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도 중보자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이 중보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중보자이신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 고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통치하심이) 인간의 범죄로 파괴되었을 때에 그것을 회복하시는 것을 중보자가 하 시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다시 결합시키므로 관계를 맺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들어온 범죄로 말미암은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죽음)를 다시 회복하십니까 성경의 처음 시작인 창세기 1장에 에덴이 있고, 성경 마지막 책인 요한 계시록 21장에 새 하늘과 새 땅이 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 거기에는 하나님의 통치가 나타나는 곳입니다. 죄 때문에 파괴된 이 나라를 어떻게 회복하시는가 하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내용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누구를 통하여 우리와 만나시는가 하면, 인간의 모든 죄 문제 를 처리하고 하나님 앞에 인간을 화목시키는 중보자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까 이 성경은 전부 중보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끝부분에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말씀하시기를 "율법 과 선지자가 나를 증거한다"고 하십니다. 눅24:25-27절,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 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 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그러니까 모든 성경이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중보자는 어떤 중보자를 말합니까 중보자는 단순히 중매한다는 정도의 중보자가 아니라, 이 중보자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서서 화목시키는 중보 자이면서도, 그가 친히 새 인류의 머리가 되셔서 인간의 모든 책임을 담당하신 분으 로 서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처음 창조하셨을 때에도 언약을 맺으시고 관계하셨는데, 죄로 인하여 타락한 창조의 회복을 하실 때에도 언약 안에서 이루십니다. 처음 창조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인간을 부르셔서 하나님을 섬기는 그런 특별한 직책을 주시지 않았다면 인간은 단순히 고등한 피조물 정도이지, 하나님과 교통하고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그런 영광을 누리는 피조물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셔서 아담에게 창조된 모든 것을 다스리 게 할 뿐 아니라 제 7일에 쉬시므로 아담을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존재로, 교통하는 존재로 그렇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아담이 모든 인류의 머리로 대표 로 섰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화목하는 중보자로 서신 것입니다. 그렇게 중보자로 서실 때에 그리스도는 마지막 아담, 제 2아담으로서 친히 2차 인류의 머리가 되셔서 아담이 지었던 모든 죄를 담당하고 아담이 순종하지 못했던 순종을 그리스도가 감당하시므로 그리스도께서 새 인류의 머리로 서서 그 일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전부 중보자 안에서 하나님과 인간이 어떻게 언약관계에 있는가 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언약이 어떻게 역사안에서 밝히 나타나고, 친히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법을 새기고, 하나님이 우리안에 계셔서 온전한 교제를 어떻게 회복하시는가를 말하는 언약의 책입니다. 그래서 구약, 신약 이렇게 말합니다. 구약은 오실 주님에 대해서 오실 중보자에 대해서, 신약 은 오신 중보자에 대해서 "어떻게 중보자 안에서 그 언약이 성취되었는가" 하는 것 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전 성경은 그리스도에 대해서 즉,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를 어 떻게 친히 인간에게 연합 시키셔서 그 약속을 성취 시키시고, 어떻게 하나님이 친히 사람으로 오셔서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시는가 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적으로 우리는 구약의 내용에서 이런 언약이 회복되어 가는 모습들을 더 쉽 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더 쉽게 알 수 있도 록 실물로 교훈했기 때문에 우리는 구약에서 더 밝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구약을 읽을 때 그렇게 보지를 못하고, 그저 신앙전기집 처럼 읽 고 맙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말하면, "그는 어떻게 살았다" 하는 식으로 주일학교 에서 흥미진진한 예화나 이야기를 하는 식으로 말하고 듣습니다. 그러면 재미는 있 지요. 그래서 "야곱은 어떻게 기도했다. 이삭은 어떻게 순종했다. 요셉은 어떻게 큰 꿈을 꾸었는데 성취되었다." 이런 식으로 밖에는 생각하지를 못합니다. 물론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얼른 이해하기는 쉽겠지요. 구약에는 신앙의 영웅들 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영웅 전기전집 보는 식으로만 성경을 보면서 "나도 그와 같이 영웅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 보다 더 높아지고 싶어하는 영웅심리가 다 있기 때문에 성경을 보면서도 그저 내가 어떻 게 하면 이 사람들 처럼 영웅이 되어볼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성경을 볼 때 그런 식으로만 보게 되면 우리는 거기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보아야 할 것은 "그 성경의 인물들을 통해서 말씀하 시는 하나님이 세계의 역사와 사건들을 통해서 어떻게 자기 자신을 중보자로 나타내 시는가 그리고 어떻게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나타내시는가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 을 어떻게 다스리시는가"하는 사실들을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한낱 영웅전 기집에 불과한 책일 뿐입니다. 우리가 구약을 그런 정도로만 이해를 하니까, "야곱처럼 한번 뼈가 부러지도록 기도하자" 그런 생각을 합니다. 또 "아브라함처럼 독자라도 바쳐야겠다" 그런 종교 적인 영웅심리는 품어도 거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는 없게 됩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중보자 안에서 자기 백성을 회복하시는가 하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거기 서 드러나지 않습니다. 어떻든 어른들이든 아이들이든 종교적인 영웅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모든 이방 우상종교가 무엇인가 자기를 월등한 존재로 높이기를 원하는 것처럼, 중생하지 않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기 원하는 것보다는 어떻게 하면 종교적으로 내 가 위대한 존재가 될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그런 것은 어른이나 아이나 할것 없이 죄성을 지닌 인간의 똑같은 심리입니다. 아무튼 구약에서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거기서 그 인물들의 그 훌륭한 신앙만 보니까 거기서 우리는 종교적인 영웅심리는 가질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을 알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그런 정도에 생각이 머물러 있으면 하나님의 영광 을 위하여 종교생활을 하는 것 보다는 자기의 명예와 영광을 위하여 일하는 정도에 머물고 맙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내가 아니면 아무것도 안된다고 하는 사고방식으로 다른 사람들은 무시하고 독불장군이 되고 맙니다. 이것은 인간의 가장 자연스러운 이기적인 죄성에서 우러나온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발견 하지 못하면 이런 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심히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만일 구약성경을 볼 때 거기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면 그것은 유대교를 가진 유대인들과 다를게 없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을 하나님의 말씀 으로 확실히 믿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구약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아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종 교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민족이 되어 정죄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들이 구약을 읽을 때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고 그저 "어떻게 그들이 위대한 생활을 보냈으며 그 결과로 어떻게 하나님이 복을 주었는가, 또 어떻 게 매를 때렸는가" 하는 도덕적인 교훈만 보기 때문에 누가 좀 잘못되면 "저건 죄지 어서 그런 것이다" 하고, 누가 잘되면(세상적인 표준으로) "저건 복받아서 그런 것이다" 하는 식으로 그렇게 인간을 높이는 그런 일 밖에 못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인물들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행동하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의 삶을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듯을 우리가 보아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 되어질 것입니다. 신앙은 단순한 지식이나 사변이 아닙니다. 신앙은 삶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 입니다. 성경의 인물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들과 관계하셨는지를 살피면 서 우리는 신앙의 삶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다시 생각하기 위한 질문'
1.'창조의 왕관'으로 일컬어지는 인간이 하나님이 지으신 다른 모든 것에 대해 특 별히 받은 임무는 무엇인가
2.하나님께서 만드신 만물을 보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신 의미는 무엇 인가 여기에서 인간의 삶의 존재 의미를 생각해 보자.
3.왜 창조주간에 일곱째 날이 필요했는가 안식일의 의미는 무엇인가
4.하나님의 왕국의 시작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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