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증인 (눅24:30-35)
본문
선지자 말라기 이후 40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던 이 세상은 온갓 죄와 악이 만연하여 모두가 죄와 더불어 파멸할 수 밖에 없는 암울한 역사 를 이루어 왔습니다. 다만 유일한 소망은 메시야의 출현 이였는데 당시의 정치, 경제, 문화, 종교, 사회 어느 측면에서도 기대할만한 소망의 빛을 찾 기에는 너무나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매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세상에 보 내어 온세상의 구원을 시작하시게 되었지만 이미 죄악으로 흐려진 인간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심오한 섭리를 이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 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늘의 신비를 밝히실 때마다 너희가 세상의 일을 말하여도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하늘일을 어떻게 알겠느냐고 안타까워 하신것입니다. 그 많은 복음 가운데에서도 가장 알기 어려운 것이 부활의 진리를 이해하는 일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은 기독교의 대표적인 교리이며 부 활이 없는 기독교는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바울사도는 부활이 없으면 전도도, 믿음도 헛것이며 그리스도로 다시 사 시지 못하였을 것이며 속죄의 길도 없었을 것이기에 우리는 멸망할 수밖에 없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라고 말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가는 두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실의와 절망에 빠져 있어서 부활하신 주님이 함께 하는 것조차 깨닫지 못한채 말 을 주고 받으면서 먼길을 걸었습니다. 두 젊은이의 충격은 우리는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구속할자라고 믿었는데 대제사장과 관원들이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마지 막 소망까지 잃어버린 그들은 앞이 캄캄하고 절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여자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가 살으셨다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는 이야기나, 제자중에 두 사람이 무덤에 가서 여자들이 전한 말이 사실임 을 확인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것은 상식밖의 일이며 생각할 수 없는 황당한 일로 밖에 여겨지지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살펴보고 이 두 사람의 오해가 무엇이었는가를 살펴 봄으 로서 주님의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첫째,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었던 것이 사실이나 결국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되는 것을 보고 역시 그는 구세주가 아니라 한 위대한 선 지자에 불과 했다는 지극히 인간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둘째, 그들은 예수님의 권위있는 교훈, 또는 메시야의 길이 어떤 길이며 그 임종에 대하여 수시로 예언하신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메시야는 천군 만마를 거느린 제왕으로 군림하여 물리적인 힘으로 자신들에게 정치적인 해 방을 가져다 줄 뿐아니라 모든 악을 평정하여 성군인 다윗왕조의 영광을 재 현하게 될 것이다는 세속적인 메시야관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다음은 그들의 불신앙의 문제인데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소식을 듣고도 자 신들이 직접 보지 못한 일이기 때문에 주님의 부활을 인정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메시야는 이 세상을 악의 세력에서 건져 내시고 영광을 받으실 구원자이시지, 인간들에게 멸시와 천대와 고난을 받으실 분으 로는 상상도 못할 일이 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씀의 진의를 바로 파악 하였다면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는 것이 당연 함을 알았을 것입니다.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 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마태복음 16장 21절) 예수님께서 두 사람에게 메시야에 관한 예언들을 자세히 설명하여 주시고 축사한 떡을 떼어 주실 때 그들은 메시야에 관한 바른 이해가 가능하여 지 고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확 신을 갖게 된 것입니다. 두사람은 곧 예루살렘을 항하여 빠른 걸음으로 올라갑니다. 그들이 만난 부활하신 주님에 관한 이야기를 제자들에게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예루 살렘에서 두 사람은 다른 제자들과 함께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의 부활 사 실을 확인하고 증인으로서의 사명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하나님 의 약속하신바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기다려야 하였습니다. 그것은 예수님 의 부활은 사실확인과 관계 없이 믿어야 할 하나님의 섭리이며 은총이기 때 문입니다. 보고 믿는 것보다 보지 못하고 믿는자가 더욱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부활신앙은 모든 싸움에서 승리를 보장하여 줍니다. 부활신앙은 영육간의 보든 생활에서 평강을 누리게 합니다. 부활신앙은 영원한 삶을 약속하여 줍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성도들이 마땅히 전하고 증거해야 할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늘의 신비를 밝히실 때마다 너희가 세상의 일을 말하여도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하늘일을 어떻게 알겠느냐고 안타까워 하신것입니다. 그 많은 복음 가운데에서도 가장 알기 어려운 것이 부활의 진리를 이해하는 일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은 기독교의 대표적인 교리이며 부 활이 없는 기독교는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바울사도는 부활이 없으면 전도도, 믿음도 헛것이며 그리스도로 다시 사 시지 못하였을 것이며 속죄의 길도 없었을 것이기에 우리는 멸망할 수밖에 없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라고 말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가는 두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실의와 절망에 빠져 있어서 부활하신 주님이 함께 하는 것조차 깨닫지 못한채 말 을 주고 받으면서 먼길을 걸었습니다. 두 젊은이의 충격은 우리는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구속할자라고 믿었는데 대제사장과 관원들이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마지 막 소망까지 잃어버린 그들은 앞이 캄캄하고 절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여자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가 살으셨다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는 이야기나, 제자중에 두 사람이 무덤에 가서 여자들이 전한 말이 사실임 을 확인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것은 상식밖의 일이며 생각할 수 없는 황당한 일로 밖에 여겨지지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살펴보고 이 두 사람의 오해가 무엇이었는가를 살펴 봄으 로서 주님의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첫째,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었던 것이 사실이나 결국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되는 것을 보고 역시 그는 구세주가 아니라 한 위대한 선 지자에 불과 했다는 지극히 인간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둘째, 그들은 예수님의 권위있는 교훈, 또는 메시야의 길이 어떤 길이며 그 임종에 대하여 수시로 예언하신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메시야는 천군 만마를 거느린 제왕으로 군림하여 물리적인 힘으로 자신들에게 정치적인 해 방을 가져다 줄 뿐아니라 모든 악을 평정하여 성군인 다윗왕조의 영광을 재 현하게 될 것이다는 세속적인 메시야관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다음은 그들의 불신앙의 문제인데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소식을 듣고도 자 신들이 직접 보지 못한 일이기 때문에 주님의 부활을 인정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메시야는 이 세상을 악의 세력에서 건져 내시고 영광을 받으실 구원자이시지, 인간들에게 멸시와 천대와 고난을 받으실 분으 로는 상상도 못할 일이 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씀의 진의를 바로 파악 하였다면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는 것이 당연 함을 알았을 것입니다.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 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마태복음 16장 21절) 예수님께서 두 사람에게 메시야에 관한 예언들을 자세히 설명하여 주시고 축사한 떡을 떼어 주실 때 그들은 메시야에 관한 바른 이해가 가능하여 지 고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확 신을 갖게 된 것입니다. 두사람은 곧 예루살렘을 항하여 빠른 걸음으로 올라갑니다. 그들이 만난 부활하신 주님에 관한 이야기를 제자들에게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예루 살렘에서 두 사람은 다른 제자들과 함께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의 부활 사 실을 확인하고 증인으로서의 사명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하나님 의 약속하신바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기다려야 하였습니다. 그것은 예수님 의 부활은 사실확인과 관계 없이 믿어야 할 하나님의 섭리이며 은총이기 때 문입니다. 보고 믿는 것보다 보지 못하고 믿는자가 더욱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부활신앙은 모든 싸움에서 승리를 보장하여 줍니다. 부활신앙은 영육간의 보든 생활에서 평강을 누리게 합니다. 부활신앙은 영원한 삶을 약속하여 줍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성도들이 마땅히 전하고 증거해야 할 사명입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