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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체포되심 (눅22:47-53)

본문

예수님을 체포하려는 원수들을 유다가 데려와서 입맞춤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그것은 주님을 파는 순간까지도 사랑과 존경을 가장한 유다의 비열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같은 일이 유다에게만 있었는가 그렇지않은데 문제가 있습니다. 교회사에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수많은 악행이 저질러져 왔고, 하나님의 이름이 박해에 너무나 많이 도용 되었습니다. 이세벨이 나봇을 죽이려 할 때 그녀는 '금식을 선포하고' 그가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고 거짓 증거 했습니다(왕상21:9,10)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입맞춤으로 그리스도를 넘겨주려는 자들이 있었으며,복음을 존중한다는 이름 아래 그것을 팔아버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같은 행위가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자비를 가장하면서 그것을 해치는 자는 가장 비열한 자입니다. 예수님을 잡으러 왔을 때 제자중의 하나가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그 오른쪽 귀를 떨어뜨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주님을 위하여 싸우는 것이 주를 위하여 갇히거나 어려움을 견디거나 죽는 것 보다 훨씬 쉽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주를 위해 싸웠으나 그 열심이 오래가지는 못하였습니다. 그의 용기는 사라지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엄습했습니다. 칼을 가지고 치려던 제자도 주님이 잡히시자 주님을 버리고 도망 을 쳤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본문을 볼 때 그리스도를 위하여 인내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일하는 것 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의 관점에서 평가할 때 이점은 고려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공적인 사역을 하며,설교를 하고,저술하고, 교회 안에서 눈에 띄게 활동하는 자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귀한 자들이라 고 한다면 크게 빗나간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원망하지 아니하고 수년간 인내한 사람들 보다 훨씬 낮은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님을 위한 가시적이고 공공연한 노력 보다 그들의 인내와 기도가 더많은 일을 하고 더큰 영광을 주님께 돌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칼을 휘둘러 사람의 귀를 자를 때 보다도,그의 실패를 인정하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공회 앞에 말없이 섰을 때 더 큰 일을 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하여 하나님의 주권은 절대적입니다. 사탄은 날 뛰지마는 하나님이 허용하신 때까지이며,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사도시대 때 부터 오늘날까지 믿는자들의 지나간 역사에 대하여 빛을 던져 주고 있습니다. 원수들이 전폭적으로 승리한 때는 없었습니다. 스데반 박해 후 바울의 회개 있었고,요한 후스의 박해가 있은 후 독일의 종교개혁이 있었고,메리 여왕의 박해가 있은 후 영국의 개신교가 확립 되었습니다. 겨울이 깊어지면 봄이 쉬 오는 것처럼무서운 폭풍우도 맑은 하늘로 바뀔 것입니다. 주님의 이러한 말씀으로 우리의 미래를 바라보면서 위로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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