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유언 (눅23:26-43)
본문
1.성도들은 해마다 한번씩 예수님의 고난주간을 보내게 된다.
2.사람은 죽으면서 유언을 한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유언을 남기셨다.
I.너희를 위해 울라(26-31).
A.울며 따르는 여자들이 있었다.
1.이 여인들은 예수님을 잘 알고있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예수님의 사역기간 동안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여인들이 있었다.
2.주님은 이 여인들을 향하여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하셨다. 주님이 십자가 지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 이지만 장차 인간은 심판을 받아야 하겠기에 주님은 자신을 위해 울라고 하셨다.
3.그 날의 고통을 생각한다면 차라리 아이 낳지 못한 여인이 부럽게 느껴질 것이라고 하였다.
B.자녀는 양육이 중요하다.
1.무조건 낳는다고 자식이 아니다. 하나님의 일군으로 드려도 부족함이 없도록 양육해야 한다.
2.날이 갈수록 자녀를 키우는 일이 어렵고 힘들다. 우리의 자녀들은 온갖 유혹과 위험앞에 노출돼어 있다.
3.어떻게 키워야 할까 부모마음에 드는 아이가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러움 없는 아이로 키워야 한다.
4.자녀에게 한푼이라도 더 물려주려 한다든가, 입시부정을 해서라도 상급학교에 진학시키려는 부모들의 행태는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장차 하나님 앞에서 그심판을 어찌 다 받아야 할련지.
II.이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소서(32-38).
A.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세웠다.
1.흉악범을 양쪽으로 한명씩 세웠다. 하나님의 아들을 흉악범과 함께 처형하였다.
2.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해 주라고 하신 예수님은 평소의 가르침 그대로 모범을 보이셨다. “아버지, 그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3.그러나 이러한 예수의 행동에는 관심없는 군인들은 예언대로 예수의 옷을 제비뽑아 나누고 있었다.
4.그것만으로도 부족해서 예수를 조롱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인간은 언제나 어리석은 행동만을 일삼는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회중에 함께하지 않는자”라고 하였다.
B.용서는 성도의 기본 덕목이다.
1.세상이 갈수록 험악해지는 이유는 용서가 갈수록 메마르는 때문이다. 용서 없는 세상은 희망을 상실한 사회다.
2.얼마전 새로 들어선 신정부는 국가발전을 위한 의지를 보이려고 장관들의 재산을 공개했다. 일단 이것은 개혁적인 조치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칭찬하려기 보다는 트집잡기에 더 혈안이 돼어있는 것 같다. 물론 문제는 있지만 첫숱갈에 배부를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3.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의 흉내를 낸다는 것이다. 성도는 용서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 용서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4.용서하지 않는 사람은 중생한 성도가 아니다. 제아무리 성구를 외우고 구원의 확신이 넘쳐도 “용서”할줄 모르면 모든 것은 거짓이요, 위선이다.
III.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39-43).
A.저를 기억하소서.
1.두 강도중에 하나가 주님을 영접했다.
1)예수가 메시야임을 알았다. “당신의 나라에 들어갈 때에”
2)“우리는 우리의 죄로 죽지만, 이 분은 잘못이 없다”. 그는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했다. 비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죄인이 구원받는 기적이 이루어졌다.
2.이 강도는 죽기 직전 예수를 영접한 것 이외에는 아무런 신앙생활을 한 경험이 없다. 마찬가지로 구원은 공로나 댓가가 아니라,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는 믿음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B.우리는 강도나 마찬가지다.
1.인생살이 길어봐야 얼마나 긴가 짧은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을 위해 일한다고 하지만 과연 얼마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까
2.그러나 십자가에 달린 강도는 임종직전에 믿음을 고백하고 주님을 영접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젊어서는 인생을 즐기고 죽기전에나 예수를 믿겠다고 한다. 물론 농담이지만 매우 유혹이 강한 농담이다.
3.예수믿는 우리가 죽기전에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이다. 깨닫지 못하고 이런일 저런일 제아무리 많이 해봐야 그것은 자신의 의를 이루려는 욕심일 뿐이다. 남에게 보이려는 욕심일 뿐이다. 결론
1.십자가에 달리시기전에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너와 네 자녀를 위해 울라”는 말씀이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울것이 아니라 진리를 알지 못하는 미련한 자신을 위해 울어야 한다. 자신이 죄인인지도 모르고, 자신이 죽을 인생인지도 모르고 사는 것이 우리들이다.
2.자녀가 귀하다고 자식을 위해서라면 아까운 것이 없고 못할 것이 없이 사는 것이 오늘날 부모들의 심정이다. 진정으로 자녀를 위하는 길이 무엇인줄 아는가
3.용서하지 않는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 그는 사탄의 자녀다. 우리는 회개하는 상대를 용서해야 한다. 그리고 남을 정죄하지 말아야 한다.
4.누구든지 믿음으로 예수를 영접하고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다. 그는 교회를 얼마나 다녔든 상관없이 낙원에 갈 것이다.
5.후일에 내가 죽게 될 때, 나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무어라 유언할 것인가
2.사람은 죽으면서 유언을 한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유언을 남기셨다.
I.너희를 위해 울라(26-31).
A.울며 따르는 여자들이 있었다.
1.이 여인들은 예수님을 잘 알고있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예수님의 사역기간 동안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여인들이 있었다.
2.주님은 이 여인들을 향하여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하셨다. 주님이 십자가 지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 이지만 장차 인간은 심판을 받아야 하겠기에 주님은 자신을 위해 울라고 하셨다.
3.그 날의 고통을 생각한다면 차라리 아이 낳지 못한 여인이 부럽게 느껴질 것이라고 하였다.
B.자녀는 양육이 중요하다.
1.무조건 낳는다고 자식이 아니다. 하나님의 일군으로 드려도 부족함이 없도록 양육해야 한다.
2.날이 갈수록 자녀를 키우는 일이 어렵고 힘들다. 우리의 자녀들은 온갖 유혹과 위험앞에 노출돼어 있다.
3.어떻게 키워야 할까 부모마음에 드는 아이가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러움 없는 아이로 키워야 한다.
4.자녀에게 한푼이라도 더 물려주려 한다든가, 입시부정을 해서라도 상급학교에 진학시키려는 부모들의 행태는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장차 하나님 앞에서 그심판을 어찌 다 받아야 할련지.
II.이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소서(32-38).
A.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세웠다.
1.흉악범을 양쪽으로 한명씩 세웠다. 하나님의 아들을 흉악범과 함께 처형하였다.
2.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해 주라고 하신 예수님은 평소의 가르침 그대로 모범을 보이셨다. “아버지, 그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3.그러나 이러한 예수의 행동에는 관심없는 군인들은 예언대로 예수의 옷을 제비뽑아 나누고 있었다.
4.그것만으로도 부족해서 예수를 조롱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인간은 언제나 어리석은 행동만을 일삼는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회중에 함께하지 않는자”라고 하였다.
B.용서는 성도의 기본 덕목이다.
1.세상이 갈수록 험악해지는 이유는 용서가 갈수록 메마르는 때문이다. 용서 없는 세상은 희망을 상실한 사회다.
2.얼마전 새로 들어선 신정부는 국가발전을 위한 의지를 보이려고 장관들의 재산을 공개했다. 일단 이것은 개혁적인 조치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칭찬하려기 보다는 트집잡기에 더 혈안이 돼어있는 것 같다. 물론 문제는 있지만 첫숱갈에 배부를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3.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의 흉내를 낸다는 것이다. 성도는 용서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 용서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4.용서하지 않는 사람은 중생한 성도가 아니다. 제아무리 성구를 외우고 구원의 확신이 넘쳐도 “용서”할줄 모르면 모든 것은 거짓이요, 위선이다.
III.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39-43).
A.저를 기억하소서.
1.두 강도중에 하나가 주님을 영접했다.
1)예수가 메시야임을 알았다. “당신의 나라에 들어갈 때에”
2)“우리는 우리의 죄로 죽지만, 이 분은 잘못이 없다”. 그는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했다. 비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죄인이 구원받는 기적이 이루어졌다.
2.이 강도는 죽기 직전 예수를 영접한 것 이외에는 아무런 신앙생활을 한 경험이 없다. 마찬가지로 구원은 공로나 댓가가 아니라,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는 믿음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B.우리는 강도나 마찬가지다.
1.인생살이 길어봐야 얼마나 긴가 짧은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을 위해 일한다고 하지만 과연 얼마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까
2.그러나 십자가에 달린 강도는 임종직전에 믿음을 고백하고 주님을 영접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젊어서는 인생을 즐기고 죽기전에나 예수를 믿겠다고 한다. 물론 농담이지만 매우 유혹이 강한 농담이다.
3.예수믿는 우리가 죽기전에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이다. 깨닫지 못하고 이런일 저런일 제아무리 많이 해봐야 그것은 자신의 의를 이루려는 욕심일 뿐이다. 남에게 보이려는 욕심일 뿐이다. 결론
1.십자가에 달리시기전에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너와 네 자녀를 위해 울라”는 말씀이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울것이 아니라 진리를 알지 못하는 미련한 자신을 위해 울어야 한다. 자신이 죄인인지도 모르고, 자신이 죽을 인생인지도 모르고 사는 것이 우리들이다.
2.자녀가 귀하다고 자식을 위해서라면 아까운 것이 없고 못할 것이 없이 사는 것이 오늘날 부모들의 심정이다. 진정으로 자녀를 위하는 길이 무엇인줄 아는가
3.용서하지 않는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 그는 사탄의 자녀다. 우리는 회개하는 상대를 용서해야 한다. 그리고 남을 정죄하지 말아야 한다.
4.누구든지 믿음으로 예수를 영접하고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다. 그는 교회를 얼마나 다녔든 상관없이 낙원에 갈 것이다.
5.후일에 내가 죽게 될 때, 나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무어라 유언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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