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옷을 팔아 검을 사라 (눅22:36)
본문
예수님의 교훈 가운데 본문이 말씀은 상당히 해석하기 어려운 난해 구절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이 구절이 해석하기 어렵다고하는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예수님께서 이보다 먼저 9장 3절 이하에 보면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주머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벌 옷을 가지지 말라"고 하신 일이 있었고, 10장 4절에 "전대나 주머니나 신을 가지지 말며"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 본문에서는 그와 정반대로 "전대있는 자는 가지라 주머니도 가지라 그리고 검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검을 사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가지는 예수님의 교훈 중에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쪽도 돌려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를 억지로5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10리를 동행하고 네 원수가 주리거든먹이라"(마5:39-41)고 하셨는데 겉옷을 팔아서라도 칼을 사라고 하신것은 그 정신면에 있어서 크게 모순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읽기 때 일률적으로만 알 것이 아니라 이런 말씀을 하시게 된 경우와 입장을 알게 된다면 주님의 말씀을 더 깊이이해하게 되며 여기에서 새로운 주님의 뜻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먼저 "돈 주머니를 가지지 말며 쌀 주머니도 가지지 말라"고 하실 때에는 예수님의 전도 초기로서 그때에는 예수님의 덕망이 크게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던 때인지라 제자들의 전도가 비교적 쉬웠고 평온 무사하였기 때문에 아무런 준비물이 없었어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모든것을 관대하고 호의적인 주민들에 의하여 공급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상황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예수님이 죄인으로 붙잡혀서 처형되었을 경우에 일반인의 태도가 일변하여 그 전과같이 제자들을 호의적으로 대하지 아니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의 인기를 같이 나누었던 제자들은 이제 그 치욕을 같이 나누지 않을수 없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 어떤 박해와 그들을 죽이려고 하는 음모도 아울러 있을 것을 주님은 아셨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에는 돈주머니도 필요하고 쌀자루도 필요하고 또 싸우기 위해서는 칼도 필요할 것입니다. 이 말씀은 또한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신후에는 제자들이 고립무원의 입장에 있게 될 것을 미리 경계하신 뜻도포함되어 있습니다. 본문에 대한 학자들의 해석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 검이란 말은 누가복음의 원본 자필 원고가 아니고 어떤 사람이 후에 삽입한 것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다른 이들은 생각하기를 이 말은 상징적인 것으로써 앞으로 다가올 곤경, 즉 복음의 소식을 가지고 가는 사람에 대한 세상의 일반적인 적대 행위를암시하는 것이라고도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생각하기를 이 말은 글자 그대로 이해되어야 하나 이 검은 자기 방어에만 사용되는 것이라고주장하기도 합니다.현대에 사는 우리에게 있어서 이 말씀은 새로운 이해와 해석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겉옷을 팔아 검을 사라." 이 말씀은 비상시에 있어서 크리스찬들에게 십자가의 군사로서 소집하신 총사령관되신 주님의 명령입니다. 불의의 세력이 판을 치고 주님이 피흘려 세우신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무리를 향해서 우리는 그냥"사랑" 만 외치고 앉아 있어서는 안됩니다. 이런 자세는 결코 사랑의참뜻이 아닙니다. 사랑은 궁극적으로 세상을 이기는 것이지 지는 것이아니기 때문입니다. 성전을 더럽힌 장사군들을 우리 주님은 채찍을 들어 내어 쫓으시며청결케 하셨습니다. 불의를 눈감아 주고 교회가 더러운 발에 상처를받아도 그대로 보고있는 것이 사랑의 행위일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망각한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일종의 직무 유기입니다. 신앙 생활은 하나의 싸움입니다. 자기에 대한 싸움이며, 세상 죄악에대한 싸움이며,마귀에 대한 싸움입니다. 이 싸움에는 적극적인 자세로나가 싸워야 합니다. 도전해 오는 악한 세력을 향해서 무기력하게 물러선다고 하는 것은 주님의 종의 태도가 아닙니다. 겉옷을 팔아 칼을사서 싸워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 겉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문자대로 사람의 몸을 상하게 하는 무기로서의 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칼과 망치를 가지고 예수님을 붙잡으러 온 무리 가운데 한 사람인 말고의 귀를 옆에 있던 베드로가 칼로 쳐서 떨어뜨렸을 때 주님은 그 귀를 도로 붙여주시면서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하리라"고 분명히 언급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말씀하신 칼은 에베소서 6장 17절에 기록된 "성령님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하신 바로 그 검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신자들이 갖추고 늘 지니고 있어야 할 강력한 무기입니다. 우리의 싸울 것은 육체가 아니기 때문에 쇠로 만든 칼을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대상은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옛사람"입니다. 그리고 " 이 세상의 악한 세력" 과 "공중의 권세잡은 자 곧 마귀"입니다. 이것들과의 사움에 있어서 그 어느 것보다도 예리하고 날선검인 하나님의 밖에는 다른 무기로서는 이길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공생애의 초기에 먼저 광야에서 40일간을 금식기도하실때 시험하는 자 마귀가 와서 세 가지의 어려운 시험을 하였습니다. 그때마다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신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도 영적인 싸움을 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단단히 무장하여야 됩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 교인들은 마르다처럼, 무엇인가 봉사하고 활동하는데는 굉장한 열심을 내는 것 같은데 마리아처럼 조용히 주님 무릎 앞에 앉아 말씀을 경청하고 배우는 일에는 몹시 등한히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한국 교회의 가장 큰 허약점입니다. 이 칼은 또한 로마서 12장 21절의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말씀과 같이 선한 동기와 선한 의지와 선한 방법으로 악을 이기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폭력으로 대항해서도 안되고 거짓으로 대항해서도안됩니다. 간디의 무저항주의나 마틴 루터 킹의 비폭력주의도 일종의싸움입니다. 크리스챤의 싸움은 선한 싸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진실과 사랑, 선과 인내를 가지고 폭력과 금력, 구조적인 악과 불의를대항해서 이기는 것입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분부하신 주님은 이 싸움의 결과는 언제나승리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옛날 가나안 땅을 향해 진군해 들어가는 여호수아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유효한산 말씀입니다.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내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기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한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 있느니라"(수 1:7-9).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제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성령님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십시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대적하여 싸우십시다. 주님과 함께 하는 싸움은 언제나 승리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제자들에게 행하신 예수님의 고별 설교의 결론 말씀에서 새로운 격려를받읍시다. "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 어떤 박해와 그들을 죽이려고 하는 음모도 아울러 있을 것을 주님은 아셨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에는 돈주머니도 필요하고 쌀자루도 필요하고 또 싸우기 위해서는 칼도 필요할 것입니다. 이 말씀은 또한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신후에는 제자들이 고립무원의 입장에 있게 될 것을 미리 경계하신 뜻도포함되어 있습니다. 본문에 대한 학자들의 해석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 검이란 말은 누가복음의 원본 자필 원고가 아니고 어떤 사람이 후에 삽입한 것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다른 이들은 생각하기를 이 말은 상징적인 것으로써 앞으로 다가올 곤경, 즉 복음의 소식을 가지고 가는 사람에 대한 세상의 일반적인 적대 행위를암시하는 것이라고도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생각하기를 이 말은 글자 그대로 이해되어야 하나 이 검은 자기 방어에만 사용되는 것이라고주장하기도 합니다.현대에 사는 우리에게 있어서 이 말씀은 새로운 이해와 해석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겉옷을 팔아 검을 사라." 이 말씀은 비상시에 있어서 크리스찬들에게 십자가의 군사로서 소집하신 총사령관되신 주님의 명령입니다. 불의의 세력이 판을 치고 주님이 피흘려 세우신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무리를 향해서 우리는 그냥"사랑" 만 외치고 앉아 있어서는 안됩니다. 이런 자세는 결코 사랑의참뜻이 아닙니다. 사랑은 궁극적으로 세상을 이기는 것이지 지는 것이아니기 때문입니다. 성전을 더럽힌 장사군들을 우리 주님은 채찍을 들어 내어 쫓으시며청결케 하셨습니다. 불의를 눈감아 주고 교회가 더러운 발에 상처를받아도 그대로 보고있는 것이 사랑의 행위일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망각한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일종의 직무 유기입니다. 신앙 생활은 하나의 싸움입니다. 자기에 대한 싸움이며, 세상 죄악에대한 싸움이며,마귀에 대한 싸움입니다. 이 싸움에는 적극적인 자세로나가 싸워야 합니다. 도전해 오는 악한 세력을 향해서 무기력하게 물러선다고 하는 것은 주님의 종의 태도가 아닙니다. 겉옷을 팔아 칼을사서 싸워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 겉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문자대로 사람의 몸을 상하게 하는 무기로서의 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칼과 망치를 가지고 예수님을 붙잡으러 온 무리 가운데 한 사람인 말고의 귀를 옆에 있던 베드로가 칼로 쳐서 떨어뜨렸을 때 주님은 그 귀를 도로 붙여주시면서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하리라"고 분명히 언급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말씀하신 칼은 에베소서 6장 17절에 기록된 "성령님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하신 바로 그 검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신자들이 갖추고 늘 지니고 있어야 할 강력한 무기입니다. 우리의 싸울 것은 육체가 아니기 때문에 쇠로 만든 칼을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대상은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옛사람"입니다. 그리고 " 이 세상의 악한 세력" 과 "공중의 권세잡은 자 곧 마귀"입니다. 이것들과의 사움에 있어서 그 어느 것보다도 예리하고 날선검인 하나님의 밖에는 다른 무기로서는 이길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공생애의 초기에 먼저 광야에서 40일간을 금식기도하실때 시험하는 자 마귀가 와서 세 가지의 어려운 시험을 하였습니다. 그때마다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신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도 영적인 싸움을 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단단히 무장하여야 됩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 교인들은 마르다처럼, 무엇인가 봉사하고 활동하는데는 굉장한 열심을 내는 것 같은데 마리아처럼 조용히 주님 무릎 앞에 앉아 말씀을 경청하고 배우는 일에는 몹시 등한히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한국 교회의 가장 큰 허약점입니다. 이 칼은 또한 로마서 12장 21절의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말씀과 같이 선한 동기와 선한 의지와 선한 방법으로 악을 이기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폭력으로 대항해서도 안되고 거짓으로 대항해서도안됩니다. 간디의 무저항주의나 마틴 루터 킹의 비폭력주의도 일종의싸움입니다. 크리스챤의 싸움은 선한 싸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진실과 사랑, 선과 인내를 가지고 폭력과 금력, 구조적인 악과 불의를대항해서 이기는 것입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분부하신 주님은 이 싸움의 결과는 언제나승리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옛날 가나안 땅을 향해 진군해 들어가는 여호수아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유효한산 말씀입니다.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내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기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한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 있느니라"(수 1:7-9).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제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성령님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십시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대적하여 싸우십시다. 주님과 함께 하는 싸움은 언제나 승리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제자들에게 행하신 예수님의 고별 설교의 결론 말씀에서 새로운 격려를받읍시다. "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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