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룟유다와 대제사장의거래 (눅22:1-13)
본문
누가복음 22장 부터 주님의 고난과 죽음에 관한 본격적인 기사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복음서에서 이 보다 중요한 곳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곧 우리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서 기자들 가운데 예수님의 탄생에 관하여서는 두사람만이 언급하고 있지만 , 죽음에 대하여서는 모든 사람이 언급하고 있습니다.기록할 뿐 아니라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누 가의 기록이 가장 상세하고 흥미로운 자료들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1)교회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커다란 죄와 어둠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무슨 방책으로 죽일꼬 연구하니> 라는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환영했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어린양에 대하여 증거하고, 그의 나타나심을 기뻐해야 할 사람들이 그를 죽이는데 앞장 섰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레위족속에 속한 자들이요,대부분이 아론의 직계후손들 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는 일에 앞장 섰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자랑하던 지식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영적인 무지는 갈릴리 출신의 어부들에게 주님을 환영하고 그를 다르는 자리를 내어주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모세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스스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어두움에 있는자의 빛(롬2:19)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종교사역자들의 지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우리는 본문 가운데서 봅니다. 지위가 잘못을 면하게 해 줄수는 없습니다. 성직에 있는 사람들이 잘못하면 이단의 씨앗을 뿌리고,많은 사람 들을 멸망의 길로 인도하게 됩니다. 그러한 면에서 현대의 모든 지도자들이 이와같은 대제사장들이 범 한 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2)높은 수준의 신앙고백을 한 사람도 타락할 수 있다는 것을 봅니다.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니> 사단의 포로가 되어 희롱당하는 것은 참으로 비참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 말씀이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가룟 유다는 그리스도께서 택하신 열두제자의 하나입니다. 그는 주님의 설교를 듣고 그가 행하시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그가 주님을 따라다니는 동안 건전하지 못하다는 의심을 받아본 적도 없습니다. 그는 아마도 신임을 받아 회계를 맡아 본듯 합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가 위선자가 되어 자신의 스승을 배반하고 사단의 앞잡이가 되어, 스승을 원수들에게 넘겨 죽게할 뿐 아니라, 스스로도 멸망의 자식이 되어 자살한 것입니다. 가룟 유다를 생각할 때 모든 그리스도인은 겸손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그 사실은 또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타산지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기자 처럼 우리는 늘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시139:23)
3)돈을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악의 뿌리가 됩니다. 그는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는 주님의 경고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 말씀을 잊었든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그같이 된 것입니다. 사단이 가장 즐겨 사용하는 무기가 돈입니다. 게하시나 아나니아와 삽비라와 같은 이름들을 상기할 때 우리는 그들의 비참한 말로를 생각하고,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에게 있어서 돈이 복이 아니라 재앙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난할 때는 주님을 의지하지만 부유해지면 돈을 의지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이러한 사람의 실례를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먹을것이 없어 주릴 때에 기도하던 사람이, 돈이 생기니까 하나님 을 더나고, 교회로 오는것이 아니라 교외로 나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돈에 대하여 자신이 없는 사람은 잠언기자 처럼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소서>(잠30:8)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무조건 물질을 구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오히려 영적인 부요함을 구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진정 부한 것이며, 영적인 부요는 아무리 사랑한다 하더라 도 죄가 되지 아니하며, 해가 되지 아니합니다.
4)본문에서 우리는 주님의 죽음과 유월절 잔치의 긴밀한 관계를 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던 전날밤은 유대인의 가장 큰 명절날입니다.그날은 바로 애굽의 압제에서 해방된 날입니다. <유월절 양>을 잡는 날입니다. 주님은 그들이 1500년 동안 모든 유월절 양들이 의미하던 진정한 유월절 양이며, 온전한 희생물인 것입니다. 유월절 어린양들이 안전을 보장한 것처럼, 주님의 피는 그를 믿는 모든자에게 확실하고 진정한 안전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와같은 뜻으로 유월절 희생양으로 그리스도를 택 하셨으며, 유월절에 주님을 자신이 받으실 희생제물로 삼으신 것 입니다. 도덕주의자들이 생각하기에는 주님의 죽음이 단순한 자기 희생과 자기부정에 지나지 않을런지 모르지만,그의 죽음은 세상을 위한 속죄제로 드려진 것입니다. 주님을 믿음으로서, 그의 희생이 나 때문인 것을 믿음으로서 멸망 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참된 유월절 양인 그리스도의 공로로 우리는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5:7) 이 진리를 굳게 붙잡고 주님 나라에 가시는 그날까지 견고하게 믿음을 지켜 가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곧 우리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서 기자들 가운데 예수님의 탄생에 관하여서는 두사람만이 언급하고 있지만 , 죽음에 대하여서는 모든 사람이 언급하고 있습니다.기록할 뿐 아니라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누 가의 기록이 가장 상세하고 흥미로운 자료들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1)교회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커다란 죄와 어둠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무슨 방책으로 죽일꼬 연구하니> 라는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환영했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어린양에 대하여 증거하고, 그의 나타나심을 기뻐해야 할 사람들이 그를 죽이는데 앞장 섰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레위족속에 속한 자들이요,대부분이 아론의 직계후손들 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는 일에 앞장 섰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자랑하던 지식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영적인 무지는 갈릴리 출신의 어부들에게 주님을 환영하고 그를 다르는 자리를 내어주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모세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스스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어두움에 있는자의 빛(롬2:19)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종교사역자들의 지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우리는 본문 가운데서 봅니다. 지위가 잘못을 면하게 해 줄수는 없습니다. 성직에 있는 사람들이 잘못하면 이단의 씨앗을 뿌리고,많은 사람 들을 멸망의 길로 인도하게 됩니다. 그러한 면에서 현대의 모든 지도자들이 이와같은 대제사장들이 범 한 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2)높은 수준의 신앙고백을 한 사람도 타락할 수 있다는 것을 봅니다.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니> 사단의 포로가 되어 희롱당하는 것은 참으로 비참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 말씀이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가룟 유다는 그리스도께서 택하신 열두제자의 하나입니다. 그는 주님의 설교를 듣고 그가 행하시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그가 주님을 따라다니는 동안 건전하지 못하다는 의심을 받아본 적도 없습니다. 그는 아마도 신임을 받아 회계를 맡아 본듯 합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가 위선자가 되어 자신의 스승을 배반하고 사단의 앞잡이가 되어, 스승을 원수들에게 넘겨 죽게할 뿐 아니라, 스스로도 멸망의 자식이 되어 자살한 것입니다. 가룟 유다를 생각할 때 모든 그리스도인은 겸손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그 사실은 또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타산지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기자 처럼 우리는 늘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시139:23)
3)돈을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악의 뿌리가 됩니다. 그는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는 주님의 경고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 말씀을 잊었든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그같이 된 것입니다. 사단이 가장 즐겨 사용하는 무기가 돈입니다. 게하시나 아나니아와 삽비라와 같은 이름들을 상기할 때 우리는 그들의 비참한 말로를 생각하고,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에게 있어서 돈이 복이 아니라 재앙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난할 때는 주님을 의지하지만 부유해지면 돈을 의지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이러한 사람의 실례를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먹을것이 없어 주릴 때에 기도하던 사람이, 돈이 생기니까 하나님 을 더나고, 교회로 오는것이 아니라 교외로 나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돈에 대하여 자신이 없는 사람은 잠언기자 처럼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소서>(잠30:8)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무조건 물질을 구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오히려 영적인 부요함을 구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진정 부한 것이며, 영적인 부요는 아무리 사랑한다 하더라 도 죄가 되지 아니하며, 해가 되지 아니합니다.
4)본문에서 우리는 주님의 죽음과 유월절 잔치의 긴밀한 관계를 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던 전날밤은 유대인의 가장 큰 명절날입니다.그날은 바로 애굽의 압제에서 해방된 날입니다. <유월절 양>을 잡는 날입니다. 주님은 그들이 1500년 동안 모든 유월절 양들이 의미하던 진정한 유월절 양이며, 온전한 희생물인 것입니다. 유월절 어린양들이 안전을 보장한 것처럼, 주님의 피는 그를 믿는 모든자에게 확실하고 진정한 안전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와같은 뜻으로 유월절 희생양으로 그리스도를 택 하셨으며, 유월절에 주님을 자신이 받으실 희생제물로 삼으신 것 입니다. 도덕주의자들이 생각하기에는 주님의 죽음이 단순한 자기 희생과 자기부정에 지나지 않을런지 모르지만,그의 죽음은 세상을 위한 속죄제로 드려진 것입니다. 주님을 믿음으로서, 그의 희생이 나 때문인 것을 믿음으로서 멸망 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참된 유월절 양인 그리스도의 공로로 우리는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5:7) 이 진리를 굳게 붙잡고 주님 나라에 가시는 그날까지 견고하게 믿음을 지켜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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