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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부의 헌금 (눅21:1-4)

본문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땅위에서 되어지는 일을 예민하게 살피십니다. 어떤 사람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를 통하여 사람들이 판단하기에 경중을 따지지마는 우리 주님은 마음의 동기를 더욱 소중히 여기십니다. 예수님께서 부자들과 가난한 여인이 헌금하는 것을 보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성전가셔서 부자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하는 것을 본 때는 십자가의 죽음을 앞둔 때입니다. 가룟유다에게 배신당하고, 잡히시고, 불의한 재판을 받을 것과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성전이 멸망하고, 사람들이 흩어지고, 당신이 다시 오실 그 때 까지의 기간을 생각하시면서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을 살피실 그 때에 부자와 과부들이 헌금하는 그것까지도 놓치지 않으시고 살피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참으로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 하시느니라> (잠15:3)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우리 주님의 눈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크고 원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그 모든 것을 섭리하고 계십니다. 동시에 아주 작은 미생물까지도 섭리하시고,조성 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 각사람의 일들을 감찰 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리라>(히4:13)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살핌속에서 그의 척도는 우리 인간과는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부요한 자가 사소하게 생각하는 일들이 주님에게는 크고 귀하게 평가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자의 보잘것 없는 행위가 하나님의 책에 귀하고 큰 일로 기록될 수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주님은 대통령의 생활 뿐 아니라, 달동네의 가나한 소년가장까지라도 살피고 헤아리십니다. 우리 주님에게는 부요한 자나 가난한 자나 다 마찬가지로 그들의 삶을 살피시고, 평가 하십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신자들의 행위도 왕자 못지 않는 존엄성을 가진다는 사실을 기억 하십시다. 더우기 믿음의 행위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을 위하여 박봉에서 바치는 적은 헌금은 부자가 바치는 수백만원의 헌금 보다 더 귀할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가진바를 보시지 아니하시고, 중심을 보신다는 사실을 우리가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부자가 인색한 것은 더욱 커다란 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주님이 가난한 과부가 연보궤언 돈을 넣는것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 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이 평가는 우리가 지나치기 쉬운 엄청난 것입니다. 부자들 보다 많이 넣었다가 아니라, 모든 사람 보다 많이 넣었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헌금속에서 자기 부인의 비율을 보시는 것입니다. 얼마인가하는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소유와 헌금의 비율을 보시는 것입니다. 인색하지만 아주 많은 돈을 바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는 아주 부자이기 때문입니다. 적은 액수이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주 후하게 바친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는 가난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상대평가를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절대평가를 하십니다. 오늘의 말씀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중심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신앙을 살피려면 헌금을 살피는 것 보다 더 정확한 것은 없습니다. 없어서 바치지 못하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있으면서도 바치지 않는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온전한 십일조와 온전한 헌금생활을 한다면 하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고,하나님의 말씀은 더욱 빠른 속도로 확장 될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들이 신아으이 외양은 갖추기를 원하면서도 온전한 헌금생활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부자일 수록 인색하기 쉽습니다. 백원에서 10원 바치는 것은 쉽지만,백만원에서 10만원 바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자기 수입이 많아질 수록 사람들은 자기에게 주어지는 풍요를 보는 것이 아니라,바치는 액수가 커가는 것을 보고 아까운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 교회가 어느모로 보나 기업체사장이 많은데 재정이 풍족하지 못하다면 그 안에는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는 사람이 많은 것입니다. 해마다 자기 집은 넓혀 가는데, 그러한 사람이 많아지는데, 교회의 형편은 나아지는 것이 없다면 그 교회는 바른 신앙을 세워 가는 교회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재물이 있는곳에 마음도 있습니다> 우리가 심판날에 정죄 당하지 아니하려면, 자신을 스스로 판단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와서는 날마다 풍족한 물질을 달라고 하면서도, 주님을 위하여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물질을 사랑하는 것이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현세적인 복을 좋아하는 것이지,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영생복락을 구하는 사람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경건한 목적을 위하여 헌금하는 이가 망한 예가 있는가 우리 주변 을 돌아 보십시요. 주님께 많은 헌금을 하였다고 가난한 자가 있는가 돌아 보십시요. 오히려 지나치게 인색한 사람이 망한 것을 많이 보게 되는 것입니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하게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잠11:24) 이 말씀은 진리입니다. 사람들이 바른 헌금을 하지 못하는 것은 주는 일의 풍성함에 대하여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재화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본래부터 우리의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입니다.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은 모든 사람 보다 후하게 주는자가 되어야 하고,베푸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딤전6:18,마10: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인색 하게 한다면,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하나님을 거스르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당신의 것을 가지고 바치는 이에게도 오히려 많은 복을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우리에게 주신 물질도 주님을 위하여 기꺼이 사용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른 헌금의 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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