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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으라 (눅21: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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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중국에 가면 제일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북한에서 나오는 사람들입니다. 얼마전 북한에서 나온 순교자의 아들되는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만나보니 참 기가 막혔습니다. 저의 나이보다 4살정도 더 들었는데 얼굴이나 허리가 굽은 것이 약 70이나 돼 보이는 영감님 같아 보였습니다. 예수 믿었던 아버지 때문에 40평생 동안 받았던 핍박과 멸시를 눈물 로 범벅이된 채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식량을 배급받지 못해 풀뿌리만 뽑아 먹고 살았기에 배고파서 서로 싸우는 자녀와 아내를 보고 얼마나 회의에 젖었는지 모른다고 했습니다.그래도 그는 내게 말하기를 "이렇게 고통스러워도 아버지와 어머니 가 가신길을 가야지요"라며 고백해 왔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장면을 아들인 본인은 못보았으나, 아버지와 함 께 죽게 되어있던 사람중의 한 사람이 살아 남아서 그 사실을 증언하는 것을 들었다면서 제게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줄로 묶어서 나무에다 매달아 놓고, 밑에다 장작불을 지펴서 태워 죽 였다는 겁니다. 그것도, 불을 약하게 해서 차츰 죽어가도록 말입니다. 이 얼마나 악랄한 방법입니까 그와 함께 죽게 된 사람들은 450명 정 도 되었는데, 이렇게 표본적으로 그분을 죽인 후에 나머지 450명은 탄 광속에 집어 넣어 다이나마이트를 던져 넣어 터트려 죽였다는 것입니다. 그속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분이 바로 이 증언을 해 주신 목사님이 셨답니다. 순간 자기가 살아있음을 탄광속에서 알았을 때, 흘러내리는 핏줄기를 마셔가며 이렇게 한 탄했다고 합니다. "차라리 죽는 것까이 소원이었는데, 이렇게 살아있다니.!" 그러나 그 분이 살아야 했던 이유를 이제 우리는 압니다. 바로 우리 에게 그때의 사실을 증언해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참상의 현장을 이야기하며 그 형제는 한없이 울었습니다. 울면서 하는 말이, "선생! 천국에 만나갔디요 저한테 아버님 얘기를 해주셨던 그 분도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믿음을 잘 지키라"고요 천국에서 아버지와 함께 다같이 만나자구요. 내 이렇게 귀한 보석(성경)들을 가지고 갑니다마는 다시 온다는 보장 이 없습니다. 선생, 그러나 참말로 고맙소이다." 성경을 전해준 제 손을 꼭 잡으며 그는 또 울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보내주시는 헌금은 이렇게 그들을 위로하는데 쓰여 지고 있습니다. 이 헌금들은 또한 북한의 순교자 가정의 생활비로도 쓰여지고 있습니다. 종교인이기에 더욱 어려운 생활을 하는 그들에게 그 생활비는 또한 위로를 주며, 힘이 되게 합니다. 어떤 이는 차라리 김일성이를 찬양하고, 전도안했다고 하고, 성경이 다 무어냐고 소리지를 수 있는 용기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고백을 해왔 습니다. "우리들은 그 용기가 없어서 예수를 믿고 있는지 모릅니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용기없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야 말로 진정 여호와 하나님이 기 뻐하시는 용기입니다."라고 위로해 주고 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더 말할 수 없는 아픔이 있는 듯 말끝을 흐렸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해 봅니다. 물론 여러분이 너 무나 잘 아는 이야기이지만 다시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길은 과연 강조를 만날 만한 길이었습니다. 저는 예루살렘에 세 번 갔었고, 세번 모두 여리고에 가 보았는데 길 이 얼마나 험했는지 모릅니다. 제사장과 레위자손이 지나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 들에게는 사람으로도 취급되지 않던 사마리아 사람도 지나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흔히 그 사마리아 사람이 자기의 것을 다 주었다고만 생각하고 그냥 지나쳐 버립니다. 그러나 두가지 사실이 여기에 숨어 있음을 발견해야 합니다.
첫째로, 이 사람은 자기 일을 포기하고 이 사람을 도와주지 않았다는 겁니다. "혹, 돈이 더든다면 내가 돌아올때 더 주겠다"라고 여관주인 에게 말하고는 자기의 갈길을 갑니다. 자기 할 일을 하면서 하는 것입니다. 저는 교회에서 몇몇의 여집사님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교회일에 열심을 낸다는 것이 그만 잘못하여 집안일을 체쳐놓고 밖으 로 나다니는 모습들을 봅니다. 또 아예 집을 뛰쳐나가 기도원에 가서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쩌자고 그렇게 하는지, 과연 하나님이 그 행위를 기뻐하실지 의문 입니다. 소위 '교회에 미친다'고 합니다. 미치는 것은 좋습니다만 내 가 할 일은 하고 미치자는 것입니다.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 사마리아 사람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렇게 할 때에 우리도 강도만난 사람의 이웃이 됩니다. 강도를 마귀 라고 생각해 봅시다. 사탄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저는 이런 면에서 지금 깨어 기도하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북한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들이야말로 지속적으로 강도만난 사람들이 아닙니까 거기서 나올 수도 없습니다. 그냥 거기 살 수 밖에 없습니다. 40년 이상 살아야만 했습니다. 김일성을 강도라고 생각합니다. 사담 후세인도 강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미워해서는 안됩니다.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줘 야 하는 영적인 현실에 우리가 있습니다. 며칠전에 저는 독일에서 온 편지를 하나 받았습니다. 제가 전혀 알지 못하는 어떤 여인에게서 온 것입니다. 그녀는 독일 여자였습니다. 편 지의 요지는 간단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북한선교를 할 수 있습니까" 였습니다. 우리가 "김일성이가 있는 동안은 안되겠지, 그가 죽으면 어떤 방법이 나겠지, 그때까지 다른나라 선교나 하면서 기다리지"라고 북한선교를 미루고 있는 동안에 일본사람들이 북한선교를 시작하였고, 중국사람들 이,동독사람들이 엔지니어로 들어가면서 북한선교를 하였습니다. 한국교회는 이점에서 너무나도 잘못해오고 있었습니다. 중국과 북한 의 교회는 복음의 기본진리를 순수하게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과 섣불리 한자리를 한다거나 어떻게든지 교회하나 지으 면 그것도 괜찮지 않을까하는 방법들은 대단히 위험한 방법임을 알아 야 합니다. 강도만난 사람에게 가서 "너 괜찮아, 살수 있어."라고만 하고 끝날 수 있겠습니까 또 북한의 강도만난 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북한에서 만난 17세 소년은 제 손바닥에 십자가를 그려주었습니다. 자 신이 크리스챤이라는 표시였습니다. 그는 제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예수님은 언제 오시지요" 신앙생활의 고통을 한마디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소년은 또 물 었습니다. "십일조를 모아 두었는데 보낼 교회가 없어요, 보낼 곳을 가르쳐 주세 요." 더욱 눈물나게 아픈 말은 "선생님 저에게 세례를 베풀어 줄 교회가 없어요! 저도 예수님의 살을 만져보고, 예수님의 피를 마셔보고 싶습니다."소원이 무엇이냐고 제가 물어 보았습니다. "제게 한권의 성경만 있다면 부러울 것이 없겠습니다,선생님" 이 소년도 강도를 만난 것입니다. 유대인에 대하여도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에스겔 39장 28절에 보면 열국에 흩어져 있던 이스라엘인 들이 故土로 돌아 오리라는 말씀 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지금 소년에서 이스라엘로 돌아오는 소련계 유대인들이 있습니다. 또 이디오피아에서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 각지에서도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가난합니다. 특히 유대인이면서 예수 믿는 기독교인들 은 학교에 갈 수 조차 없을 정도로 더욱 큰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그 들에게 옷과 생필품 등을 보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세계 각지에서 그들을 위해서 물품들이 보내오고 있지만 그것은 일주 일도 못되어 동이 나버린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도 예전인 그렇게 구호물자를 받을 때가 있었음을 기억하며 이렇 게 풍요로운 생활을 하게 하심을 감사하며 그들을 돌아보아야 할 줄로 압니다. 예수님을 못박아 죽인 자들이라고 결코 그럴 수 없다고 하실 것입니 까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는 없습니다. 성경에는 "이스라엘과 예루살 렘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기도하라(시122:6)"고 쓰여져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 오도록 전도해야 합니다. 그들도 강도만난 자들입니다. 두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는 공산권에서 강도만난 자들을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또 하나는 마지막으로, 돌아오고 있는 이스라엘의 증거와 징조들을 보 면서 또 나는 어떻게 할것인가 저는 여러분들에게 누가복음 21장에 기록된대로 "이러므로 너희는 장 차올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 으라"는 본문을 강조합니다. 누가복음 21장의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 주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10절에 보면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 나겠고,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무서운 일과 하늘로서 큰 징 조들이 있을 터인데 그 때를 조심하라' 고 말씀하신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무화과 나무를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실 때에 몹시 시장하셨던 사건을 여러분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 전날에는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들어가시면서 "호산나" 라는 환영을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옷을 벗어서 땅바닥에 깔아 주었고, 그 질긴 종려 나무 가지를 꺾어서 환영했습니다. 심지어 병고침을 받은 사람자, 앉 은뱅이염아다가 일어나 사람, 소경이었는데 눈을 뜬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입성한 그날 밤에 아무도 예수님을 재워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또 음식을 제공할 사람조차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다니로 가서 먹을 것이 없이 꼬박 굶으시고 그 이튿 날 아침 다시 돌아오셔서 그 '무화과 나무에 가까이 가셔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원어로 해석해 보면 예수님께서 '무화과 나 무에 기어 올라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무화과 나무의 열매는 이방인이나, 여행객, 거지가 먹는 열매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전날 저녁, 그리고 그날 아침의 식사를 하시지 못했기 때문에 주린 배로 예루살렘에 다시 돌아오면서 그 무화 과 나무에 열매가없는 것을 보시고 저주하십니다. 왜 예수님이 그 나무에만 가까이 가셔서 그런 말씀을 하셨는가는 간 단합니다. 그 나무에 열매가 없었기에 금방 눈치를 채시고, 저주하셨 던 것입니다. 무화과 나무를 이스라엘로 표현했다고 하면, 모든 나무는 세계의 모 든 나라들을 표현한다고 볼 수가 있겠는데, 이 때에 그것을 보거든 마 지막 때가 온 줄로 알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36절에 "이르므로 너희는 장차 올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으나 하시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깨어 있으라는 말은 단순히 졸지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watch and pray)하라는 것입니다. 깨어 있으면서 세상이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살피면서 기도하 라는 말입니다. 살피지 않고는 기도제목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더욱 이 우리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또한 지금의 상황에서 보아야 하고, 알아야 거기 적응한다는 말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얼마나 깨어 있는 생활을 하고 계십니까 아침마다 신문을 보시면서 오늘의 기도제목은 무엇인가 찾고계신 분 은 얼마나 되십니까 깨어서 강도만난 자들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아 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명령이 오늘 우리에게 어떻게 임하고 있는 지도 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제가 뭘 할줄 알겠어요" 라고 하실 분이 혹 계실 것입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하는 사람에게 일거리 를 주시는분이십니다. 움직여 보십시오. 움직이면 도와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부족하여 직접 안하시는 것이 아니고,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함임을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이러한 여러분들을 위하여 저희 같은 선교회와 선교사들이 있는 것입니다. 강도만난 자들을 직접 위로해주는 심부름꾼입니다. 여러분들을 도와줄 사람들입니다. 사역지의 영혼들을 만나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하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섬기게 할 때에 그들의 입에서 찬양이 터져 나올 것입니다. 깨어 있어서 살펴 기도하는 하나님의 음석을 여러분이 듣게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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