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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돌들의 외침을 듣는가 (눅19:2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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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 교회가 창럽된 지 어언 4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하나님은 한국 민족을 사랑하시기에 한신 교회를 세우셨다는 확신에는 지금 도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한신 교회라는 꽃을 피우기 위해 한 무명의 전도자를 그렇게 많이 울게 했나 습니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는 봄부터 그렇게 울었나보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그렇게 울었나 보다. (서 정주-국화 옆에서) 지난 날을 회상하면 엄청나게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할 뿐입니다. 좁다란 다락방에서 이 종과 함께 고달픔을 즐거움으로 삼고 답답함을 미래의 꿈으로 키워가던 우리 믿음의 동지들에게 눈 물겹도록 감사한 마음을 가지며 먼 솟날 하늘 나라 면류관을 바꾸 어 쓸 때까지 한 사람도 이 대열에서 낙오될이 없이 이 걸음으로함 께 걸어가기를 부탁을 드럽니다. 한신 교회는 민족 역사의 소리를 듣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오늘 읽은 이 본문 말씀에서 저 돌들의 외침을 듣는가라는 제목으로 은 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수난을 앞두고 예루살렘 성을 향하여 서서 가셨습니다. 펑화의 왕으로 나귀를 타시고 입성을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벗어 길에 펴고 또 나뭇가지를 꺾어 길에 펴며 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며 '호산나 다의 자손이여 찬송하 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하였습니다. 이 열광적인 민중의 환호의 함성은 파도처럼 거리를 넘쳤습니다.
이때 한 바리새인이 나타나서,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 들을 책망하 소서'하였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고 하셨습니다.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 .' 이 말을 하시고 예루살렘 성 가까이 가시면서 성을 보시고 눈 물을 흘리셨습니다. 소리내어 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동족 이 스라엘 민족을 사랑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의 눈물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이 구원 받기를 원하시는 무한히 깊으신 동족애와 피맺힌 조국애를 볼 수가 있습니다. '너희가 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 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었도다 하시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라'고 탄식하였던 것입니다. 19:42-N) 지금 예루살렘에 가면 통곡의 벽이 있습니다. 주후 70년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하여 예루살렘은 멸망하고 과연 이 도시는 옛 터를 알아볼 수 없도록 폐허가 된 것입니다. 유절에 모인 일백만이 넘는 유대인들이 죽어 갔습니다.죽지 않 은 사람은 살다가 다 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부터 유대인들 은 종종 예루살렘에 와서는 부서진 성전 밑에 서서 옛날 이스라엘 민족을 생각하고 돌들에 맺힌 민족의 한의 소리를 들으면서 울어야 했습니다. 1948년 이스라엘 독럽이 될 때까지 lsoO년 동안 울어야 했고.계 속하여 이 담을 잡고 통곡하며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이 벽에 '통곡의 벽'이란 별명이 붙었으며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통곡의 벽 을 다시는 =Ht 앗기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왜 이스라엘 민족은 통곡의 벽이 있어야 했으며 과연 예수님 말씀대로 돌들의 외침을 들어야 하는 이스라엘 민족이 되었으며 저들 은 왜 돌의 외침을 듣고 울어야 했습니까 그것은 호산나 다의 자손을 영접치 않고 거절하였기 때문입니다. 호산나 다쇳의 자손이라 외쳐야 할 백성들이 제사장들과 바리 새인들의 선동에 의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소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소서'하였던 죄값으로 통곡의 벽에서 울어야 했습니다. '호산나' 란 외침이 얼마나 의미 깆은 말씀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히브리어로 '호시아나'란 말로 '오오, 구원 하소서'의 뜻이고 시편 118 편25 절에서 '주여 청컨대 우리를 구원하여 주읍소서,로 쓰 여져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저 유대땅 예루살 통곡의 벽을 찾아서 돌들의 외침 을 들을 필요 없이 이 민족 구석구석에 어져 있는 역사의 피맺힌 돌들에게서 외침을 들어야겠습니다.
첫째, 이 민족을 구원하실 이는 예수 밖에 없음을 외쳐야 함니다. 호산나 하지 않을 때 순교자의 피맺힌 돌들이 소리를 지를 것입니다. 스데반을 쳤던 피묻은 돌들이 소리치게 될 것입니다.우리 민족이 걸어온 역사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면 실로 어둡고 기나
Il 밤이 었습니다. 삼국 시대나 고려 시대는 불교의 부패로, 이조 시대에는 유교의 부패로 나라가 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민족을 사랑하셨기에 어두운 이 역사에 이 민족을 구원 하시려 호산나 다 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주신 것입니다. 최초의 선교사는 186s년 토마스 목사였습니다. 그는 중국에서 한국인 천주교 신자 김 자펑, 최선일을 만나 한국 선교가 시급하 다는 말을 전해 듣고 많은 한문 성경을 들고 미국 상선인 샤만호에 몸을 싣고 한국 땅을 찾아왔습니다. 원래는 국왕을 만나 뵙고 통상 을 얻으려고 서울을 가려고 한강에 오려던 선원들이 오인하여 대동 강으로 들어왔고 불행하게도 한국 군사들의 화공으로 배는 대동강 에서 불타게 되었습니다. 토마스 목사는 흔자 갑판 위에서 무릎을 고 하나님께 기도하셨 습니다. '오 하나님이시여, 아직까지 복음을 듣지 못한 저 불쌍한 백성들에게 은혜를 내려 주옵소서.'그리고 큰 상자를 풀어내어 한 권씩 성경을 언덕으로 힘껏 던졌으나 다 강물 속에 떨어졌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이 성경이 씻긴 물을 마시는 자 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수를 마시게 하읍소서' 라고 기도하였습니다. 드디 어 불길은 배를 온전히 에워싸고 토마스 목사의 옷에도 불이 붙고 머리털도 타기 시작하였습니다. 견디다 못한 토마스 목사는 물 속 으로 떨어졌고 헤엄쳐 언덕에 올랐으나 군중들에게 체포되어 양 감사 박 규수에게 심문을 받고 순교의 피를 흘린 것입니다. 그는 목을 치려는 나졸에게 성경을 주면서 예수,예수하였으나 나 졸 박 춘권은 토마스 목사의 목을 친 것입니다. 18S6년 9월 s일이 땅에 복음을 전하러 왔다가 순교의 피를 흘렸습니다. 그의 피는 헛되지 않게 이 민족을 복음화 시켰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피는 한국 교회를 성장시키고 있습니다. 토마스 목사의 목을 친 나졸은 김익두 목사의 집회시에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호산나 ! 이 민족의 구원의 복음을 일찌기 받았던들 이 딘족이 나라를 빼앗기고 일제의 압제 속에서 슬피 울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민족을 죄악과 멸망에서 구하고자 이 아름다운 복음을 들고 이 땅에 들어와 호산나 예수를 외치다가 순교의 피를 흘렸거늘 우리가 어찌 입을 다물고 잠잠할 수 있겠습니까 예레미야는 20장9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 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하였습니다. 누가 애국자입니까 누가 이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입니까 이 민족의 가슴마다 믿음을 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 앙을 가진 민족은 거꾸러뜨림을 당할 수는 있어도 아주 망하지는않 습니다. 전쟁이 있을 때마다 이 민족을 도우러 왔던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찌 선교사 한 사람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땅에 복음을 전할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만약에 교회가 선교적인 사명을 소흘히 한다면 돌들이 소리를 지르 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조국을 사랑하기에 민족 복음화의 선교의 꿈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이 민족과 내 이웃에게 전해야 하고 마 땅히 주어야 할 복음의 소식을 전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를 치게 될 것입니다. 역사의 심판을 받은 돌들이 소리 칠 것입니다. 예루살램이 무너진 돌들처럼 말입니다.
둘째,'예루삼렘아 예루렘아H하시며 우시는 주님의 뜨거운 조국애의 통곡의 음성을 듣지 않으연 돌들이 소리칠 것입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하고 왜 주님이 우셨습니까 - 선지자들 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이 그 새끼를 날 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번이냐. 그러나 너회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하며 목메 어 우신 주님의 음성은 심판에 대한 경고였습니다. 인류 역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꿰뚫어 보시는 예수님의 통찰 력이 위기와 멸망 직전에 있는 조국의 운명을 보시고 통곡하신 것입니다. 역사는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 선지자들을 죽이고 선지자의 무덤 을 쌓고 의인의 피를 흘리고 의인의 비석을 세우며 이르기를 내가 그때 있었으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일에 참여하지 않았으리라 하 면서도 우리 자신이 우리 조상이 저지른 과오를 되풀이 하고 있다면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2s:29-sO) 공의만이 나라를 홍하게 하고 죄는 나라를 망하게 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고 회칠한 무덤처럼 되어 버린 예루살렘의 멸망은 필연적인 현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하나님은 역사를 심판하십니다. 역사는 얼핏 보기에는 악이 불가항력적인 세력을 가지고 전진하는 것 같으 나 결국 하나님의 정의가 쳐부수는 쇠망치에 맞아 거꾸러지는 심판 에 대한 스토리입니다. 악은 하나님의 심판에 죽어 갔습니다. 기독교는 선과 악의 투쟁에서 선이 결국 승리자로 등장할 것을 선언합니다. 가라지가 싹트는 밀의 모가지를 눌러 질식시키지만 추수 할 때가 오면 악한 가라지는 불구덩이에 던져지고 선한 밀은 창고 에 모아 들입니다. 시저는 궁궐을 차지하였고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차지하였으나 그리스도는 시저의 통치 연대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셈하게 되었읍니다. 히틀러나 뭇솔리니 같은 사람도 그들의 때가 있으며 얼마동안 큰 세력을 떨치며 푸른 야자수 뻗치듯 그 세력을 팽창시킬 수 있으 나 그들은 곧 잡초와 같이 잘리어 버렸습니다, 이는 불의에 도전하는 인간의 끝 없는 투쟁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파멸시키는 하나님의 능력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선에 도전하는 악은 스스로 멸망의 씨를 갖고 다닌다는 것을 우리에게.가르쳐 줍니다. 역사가인 찰스 비어드는 역사에서 얻은 산 교훈을 이렇게 증언하 고 있습니다. 신이 사람들을 멸망시키고자 할 때, 신은 사람들로 하여금 권력에 미치도록 만들고 하나님의 연자방아는 천천히 돌지만 아주 잘게 빠순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오랫동안 피나는 역사 연 구로 얻은 역사가의 교훈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에 죽어간 악의 멸망을 이 역사에서 수 없이보았습니다. 결국 패배당한 정의는 승리한 악보다 더 강합니다. 만 약에 교회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꾼을 침묵한다면 하나님의 심판 에 무너짐을 당했던 돌들이 소리를 칠 것입니다, 조국을 사랑하기에 교회는 이 백성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고 죄의 값이 멸망임을 선포헤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인생은 실로 허무한 죽음의 존재임을 무덤의 돌 들이 외칩니다.
이사야40:6에 보면, '말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외치라 대답하 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 이 그 위에 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 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있도다,' 인생의 살 수 있는 년대란 l00년 미만에 끝나는 것이요, 죽어야 할 존재요, 그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짧은 인 생을 부끄러움으로 먹칠하지 않을 것입니다. 모세는 시편 90 편에서 인생을 말하기를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오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하였_=_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8o이 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 가나이다'라고 하였 습니다. 인생은 나그네, 지구는 여관방, 하나님은 여관방 주인, 모두가다 비워두고 떠나야 할 존재들입니다. 요한1서 2장17절에 이 세상도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하였습니다. 인간은 지나가는 존재입니다. 이 땅에 잠깐 머물다가 자취를 감추는 존재들입니다.
시편 s9 편4절에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년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 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주께서 나의 날을 손 이만큼 되게 하시며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 뿐이니이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 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만 있나이다'하였습니다. 인생은 허무합니다. 인생은 반드시 끝나는 날이 옵니다. 어두운 밤이 옵니다. 일 할 수 없는 밤이 옵니다. 생각하여 보면 모두가 다 5o년 내지 백년 미만에 끝나는 인생이 기에 더욱 선하고 부끄러움 없이 살아야 할 것입니다. 피비린내 나는 역사의 권력과 세도 싸움 모두 지나고 나면 돌무더기 개 남아 있는 유적들에 불과한 것인데, 이사야의 말과 같이 모든 육체는 풀 과 같고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나 오 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네 어즈버 태평세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저돌들의 외침, 허무한 인생을 더럽고 부끄럽게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삼문은 세조가 어린 단종의 왕위를 빼앗자 복위를 꾀하였으 나 실패하여 노량진 언덕에 한 줌 흙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때의 나 이가 설혼여덟이었습니다. 그 반면에 신숙주는 수양대군을 도와 왕 위 찬탈에 공을 세워 우의정, 좌의정을 지내고 마침내 영의정의 자 리에 올랐는데 죽을 때 그 나이가 s1세였습니다.
그렇다면, 신숙 주는 성 삼문이 죽은 후 이십년 정도 더 산 셈입니다. 의인의 피를 홀리게 만들고 그 고귀한 살과 뼈가 한강변의 까마귀밥이 되게 하고, 이십년도 못되는 짧은 영화의 단꿈 때문에 역사의 죄인이 되었으니 신 =늑주는 블쌍한 사람입니다. 저 신 숙주의 무덤 의 돌들이 무어라고 소리치고 있을까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이 민족 역사의 심판대 앞에서 죄인이 되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권력과 금력이라는 실오라기 같은 줄을 타 고 민중의 피를 흘리게 만들고, 채찍을 몰아치는 인간들이 지구상 에 있다면 무덤의 돌들의 외침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저 경복궁이 나 창덕궁에 가서 거기 있는 돌들과 거기 있는 들보가 무엇을 말하 나 들어 보세요. 모두 다 한줌 으로 돌아갈 육체 모든 영화도 한 때 꿈처럼 사라지는 것이거늘 진리는 불변한다고 말 할 것입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호산나 다윗의 자손 !나를 구원하실 이는 예수 밖에 없습니다. 나의 진정한 삶의 소망은 예수 밖에 없다는 것 입니다. 요한 사도의 말대로, 너희는 이 세상이나 세상에있는 것들 을 사랑치 말라. 이 세상에 있는 것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그것은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다 이 세상으로부터 좇아온 것이라. 이 세상도 가고 정욕도 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말씀대로 사는)이는 세세에 있을 것입니다. 저 고려의 도읍 송도와, 신라 천년의 고적 경주에 가서, 그리고 수도 부여에 가서 굴러다니는 돌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들어보세요.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영광은 풀의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 은 떨어지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느니라 한 대로입니다. 그 어떤 인간도 꽃잎처럼 떨어지는 영화의 몰락을 막을 길은 없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사는 길이 있다면 우리의 구원이신 호산나 다윗의 자손 예수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호산나이신 예수를 거절하면 멸망입니다.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 신 대로 '내가 세상에 온 것은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오.구원을 받 게 하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오늘 이 민족은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 위정자들은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 어느 개인이고 다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호산나의 외침이 그쳐서는 안됩니다. 호산나의외침이 잠잠해지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 돌들이 소리지르기 전에 우리 입으로 외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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