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눈물 (눅19:41-44)
본문
이 아침에는 “예수님의 눈물”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사람이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때는 울고 싶어도 눈물이 안나오고, 어느 때는 울지 않으려고 해도 눈물이 흘러나와 어찌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우는 것은 정서에 속한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감정이 있는데, 이 감정의 작용에 의해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언제 울게 됩니까 너무 슬퍼서 울 때도 있고, 너무 고생스러워서 울 때도 있고, 너무 아파서 울 때도 있고, 너무 기뻐서 울 때도 있습니다. 야곱과 에서는 헤어진지 20년만에 상봉하게 되었는데 얼싸안고 감격의 눈물을 쏟으며 울었습니다. 요셉은 그 형들에 의해 애굽의 대상들에게 팔리어 보디발의 집에서 종노릇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총리가 되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자 그의 형들이 양식을 구하러 애굽에 내려왔습니다. 물론 동생 요셉이 총리가 된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요셉이 그의 형들을 즉시 알아보고 골방으로 들어가서 방성대곡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고, 두번째 그의 형들이 양식을 구하러 왔을 때에는 요셉이 그의 동생 베냐민을 보고 감격스러워 목을 끌어안고 울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동족 가운데는 헤어진지 50년 동안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천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속히 서신 연락이라도 할 수 있게 되어지기를 바라고 또 자유스럽게 남북이 왕래하는 길이 열려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립던 가족을 만나 기쁨의 눈물을 쏟게될 날이 속히 오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예수님이 우셨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왜, 예수님께서 우셨을까요 슬퍼서, 괴로워서, 답답해서 우셨을까요 십자가지고 갈 길을 생각하니 기가 막혀서 우셨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의 울음은 결코 그러한 울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 우셨을까요
첫째로, 인류 구원을 위해 흘린 눈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어 여섯시간 동안 고통을 당하실 때에 큰 소리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부르짖으셨는데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울부짖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 하나님께 버림받는 아픔을 당하셨는데, 그것은 인류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 버림받는 쓰리고 아픈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셨던 것입니다. 그 고통은 바로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쓰리고, 아프고, 힘들고, 무섭고, 어려운 고통이었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간절히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신 것입니다. “아버지여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부르짖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십자가에 달리시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하시며 큰 소리로 우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5장 7절에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그토록 우셨으니 오늘 우리도 눈물흘려 기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멸망당할 내 가족과 동족을 위하여 울고, 하나님을 모르는 내 백성의 파멸이 안타까와서 눈물흘려 울어야 하는 것입니다. 니느웨 백성처럼 금식하며, 회개하며 울어야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처럼 우리의 눈이 눈물로 상할 정도로 단장의 아픔을 맛보면서 울어아 합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고 통곡을 했는데, 오늘 우리도 울어야 하겠습니다. 서울의 밤거리를 보십시요. 온갖 썩은 문화가 범람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우리는 죄악으로 가득찬 이 도시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하나님께 울부짖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6 25사변 때 너무도 비참한 전화(戰禍)를 입었습니다. 사랑하는 부모, 형제, 남편과 아내, 자녀들을 잃었습니다. 집들이 파괴되어졌고, 남부여대(男負女戴)하여 피난가야 했었습니다. 아사(餓死) 일보 직전에서 초근목피(草根木皮)로 간신히 연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모든 것 잊어버리고 살만해지니까 하나님을 잊어버린 백성들이 감사할 줄 모르고,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고, 분쟁을 일삼고 있으니 이 나라의 장래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심히 가슴 아픔을 금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백성이 범하고 있는 죄악을 놓고 하나님 앞에 예레미야 선지자처럼 이사야 선지자처럼 눈물을 강물처럼 쏟으면서 하나님 앞에 울며 부르짖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나사로 때문에 우셨습니다. 요한복음 11장 32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무덤을 찾아가 그 죽은 것을 보시고 우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사로가 죽은지 나흘이 되어 썩어 냄새나는 그 무덤에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흘리신 눈물은 어떤 눈물이셨을까요 인간적인 동정심에서 우셨을까요 인간적인 사랑 때문에 우셨을까요 아니면 나사로에게 받은 환대를 생각하면서 우셨을까요 아닙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우신 것이 아니라 썩어 냄새나는 나사로 때문에 우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예수님은 세상의 썩어진 모습을 보고 우시고 계십니다. 거듭나서 살아야 하는데 거듭나지 못하고 옛사람 그대로 썩어서 냄새나는 상태에 있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우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고, 물과 성령님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뭇 심령들이 거듭나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를 다니면서 은혜를 받아 새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새사람이 되지 못한 채 옛사람 그대로 있는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우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흰 개꼬리를 굴뚝에 3년 동안 넣어 두었다가 꺼내어서 툭툭 털어보니 흰 개꼬리 그대로 있더라는 말과 같이 교회에 다닌지 여러 해 되었는데도 엣사람 그대로이고 조금도 변화되지 못한 사람들을 보시고 오늘도 주님께서 울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심령이 변하도록 성령님을 부어주시고 인간성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화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인격적인 신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을 모시고 경배드려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성령님을 무시하고 이용하려고만 합니다. 잘못된 성령님관을 갖고 자기 자신의 유익에만 이용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잘못된 사고방식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이 시기 때문에 우리가 존경하고 섬기며 경배드릴 분이십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하시는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람을 거듭나게 하시고, 심령을 변화시켜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화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오늘 교회를 다닌다고 하면서도 인간성이 변화되지 아니한 채 옛 사람 그대로 있는 모습을 보시고 우리 주님께서 눈물을 흘려 울고 계시는 것입니다. 나사로처럼 그 영혼이 썩어 냄새나는 모습을 보시고 우리 주님께서 울고 계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변화받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22절로 24절 까지의 말씀을 보면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였습니다. 만일 외모로는 예수믿는 사람같지만 속은 여전히 옛 사람 그대로이고 여전히 거짓말하고, 남을 속이고, 탐욕을 부리고, 게으르고, 나태하고, 음란하고, 사기치는 생활들이 계속된다면 우리 주님께서 얼마나 마음아파 하시며 우시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썩어 냄새나는 옛 사람을 죽여 버리고 성령님의 놀라운 능력을 힘입어서 우리 속사람이 새로와지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어 인간성이 회복되는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영이 죽고 썩어 냄새나는 자들을 보시고 우셨던 것처럼 우리도 병들어 죽어가는 가족들의 영혼과 성도들의 신앙의 나태함과 병든 신앙을 보고서 울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눈물을 소중히 여기시며 눈물의 기도를 들어 응답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요한복음 14장 14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들이 눈물흘려 기도할 때에 그 기도를 응답해 주십니다. 시편 57편 8절에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으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라고 시편 기자는 부르짖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이 흘린 눈물을 주님의 병에 담아 기억해 주시며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39편 12절에서 다윗이 하나님께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가 눈물흘려 기도할 때에 응답해 주신다는 사실을 확신하시고 그대로 행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은 여러분의 자녀와 이 나라의 청소년들을 위해 울 때인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해 울라고 말씀하셨는데,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처럼 방탕한 길로 치닫고 있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해야 되겠고, 웨슬레의 어머니 수산나처럼 우리의 자녀들이 지쳐서 쓰러져 있을 때에 그들을 위하여 눈물로 기도해야 되겠고, 사명감을 상실한 이 땅의 크리스챤들을 위해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지난 25일 6 25전쟁 44주년을 맞았는데, 우리 나라의 청소년들은 전쟁의 쓰라림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지 못하고 잘못된 길로 치닫고 있는 것입니다. 이 나라 청소년들이 믿음의 길을 온전히 걸어갈 수 있도록, 그리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눈물흘려 기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셋째로, 예수님께서는 멸망당할 예루살렘을 보시고 우셨습니다. 본문에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 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무죄하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죄값으로 주후 70년 티토(Titus)장군에 의해서 예루살렘은 파괴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저는 오늘의 본문 말씀을 읽을 때 마다 6 25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는 그런 비참한 전쟁이 재현되지 않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은 어떤 곳입니까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성전이 무너질 것을 아시고 우신 것입니다. 성전은 무엇을 하는 곳입니까 이사야 56장 7절에 보면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성전에 나와서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시기를 바랍니다. 인간의 생각으로 해결책을 찾으려고 애를 써봤자 해결되어지지 않습니다. 성전으로 달려 나와서 하나님께 부르짖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전은 성전으로서 그 역할을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신앙이 병들어 성전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적어지고 그 대신 돈바꾸는 사람, 소, 양, 비둘기 등을 매매하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에 온통 더러운 것으로 뒤덮여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예루살렘 성전을 보시고 우셨습니다. 심판이 임할 것을 바라보시고 우신 것입니다. 성전이 성전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기도하는 집이 그 구실을 다하지 못하고, 짐승이 거하는 장소로 화하자 심판이 임하고 만 것입니다. 성전은 성도들이 소나 양, 비둘기를 잡아 제물로 바치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면 결과는 불을 보듯 훤한 것입니다. 죽어야 할 제물이 죽지 않고 살아서 성전에서 날뛴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보고만 계시겠습니까 구약에서의 소나 양, 비둘기는 신약에 있어서 성도들의 모형입니다. 성도들은 옛사람이 죽어야만 합니다. 혈기와 성질, 고집이 죽어야 합니다. 내 맘대로 살려고 하는 생각과 정욕, 음란, 거짓, 탐욕 등 모든 악한 것들이 죽어야 합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죽어 제물이 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열납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어야 할 것들이 죽지 않고 살아서 냄새만 풍긴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옛사람이 죽어야만 합니다. 우리의 심령이 변화되어 새사람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바꾸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는 밤낮으로 울며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 기도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 교회는 소망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성도들 중에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과 나라와 민족을 위해 눈물뿌려 기도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시편 126편 5절과 6절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은 울며 기도할 때입니다. 영혼 구원을 위해 울며
기도하십시다.
. 우리의 옛사람이 죽어지기 위하여
기도하십시다.
.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울며
기도하십시다.
. 우리의 옛사람이 죽어 제물이 되어야 하겠고, 성령님의 권능을 통해서 우리의 심령이 변화되어야 하며,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기 까지 눈물로써 기도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언제 울게 됩니까 너무 슬퍼서 울 때도 있고, 너무 고생스러워서 울 때도 있고, 너무 아파서 울 때도 있고, 너무 기뻐서 울 때도 있습니다. 야곱과 에서는 헤어진지 20년만에 상봉하게 되었는데 얼싸안고 감격의 눈물을 쏟으며 울었습니다. 요셉은 그 형들에 의해 애굽의 대상들에게 팔리어 보디발의 집에서 종노릇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총리가 되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자 그의 형들이 양식을 구하러 애굽에 내려왔습니다. 물론 동생 요셉이 총리가 된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요셉이 그의 형들을 즉시 알아보고 골방으로 들어가서 방성대곡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고, 두번째 그의 형들이 양식을 구하러 왔을 때에는 요셉이 그의 동생 베냐민을 보고 감격스러워 목을 끌어안고 울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동족 가운데는 헤어진지 50년 동안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천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속히 서신 연락이라도 할 수 있게 되어지기를 바라고 또 자유스럽게 남북이 왕래하는 길이 열려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립던 가족을 만나 기쁨의 눈물을 쏟게될 날이 속히 오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예수님이 우셨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왜, 예수님께서 우셨을까요 슬퍼서, 괴로워서, 답답해서 우셨을까요 십자가지고 갈 길을 생각하니 기가 막혀서 우셨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의 울음은 결코 그러한 울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 우셨을까요
첫째로, 인류 구원을 위해 흘린 눈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어 여섯시간 동안 고통을 당하실 때에 큰 소리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부르짖으셨는데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울부짖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 하나님께 버림받는 아픔을 당하셨는데, 그것은 인류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 버림받는 쓰리고 아픈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셨던 것입니다. 그 고통은 바로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쓰리고, 아프고, 힘들고, 무섭고, 어려운 고통이었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간절히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신 것입니다. “아버지여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부르짖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십자가에 달리시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하시며 큰 소리로 우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5장 7절에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그토록 우셨으니 오늘 우리도 눈물흘려 기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멸망당할 내 가족과 동족을 위하여 울고, 하나님을 모르는 내 백성의 파멸이 안타까와서 눈물흘려 울어야 하는 것입니다. 니느웨 백성처럼 금식하며, 회개하며 울어야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처럼 우리의 눈이 눈물로 상할 정도로 단장의 아픔을 맛보면서 울어아 합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고 통곡을 했는데, 오늘 우리도 울어야 하겠습니다. 서울의 밤거리를 보십시요. 온갖 썩은 문화가 범람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우리는 죄악으로 가득찬 이 도시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하나님께 울부짖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6 25사변 때 너무도 비참한 전화(戰禍)를 입었습니다. 사랑하는 부모, 형제, 남편과 아내, 자녀들을 잃었습니다. 집들이 파괴되어졌고, 남부여대(男負女戴)하여 피난가야 했었습니다. 아사(餓死) 일보 직전에서 초근목피(草根木皮)로 간신히 연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모든 것 잊어버리고 살만해지니까 하나님을 잊어버린 백성들이 감사할 줄 모르고,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고, 분쟁을 일삼고 있으니 이 나라의 장래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심히 가슴 아픔을 금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백성이 범하고 있는 죄악을 놓고 하나님 앞에 예레미야 선지자처럼 이사야 선지자처럼 눈물을 강물처럼 쏟으면서 하나님 앞에 울며 부르짖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나사로 때문에 우셨습니다. 요한복음 11장 32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무덤을 찾아가 그 죽은 것을 보시고 우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사로가 죽은지 나흘이 되어 썩어 냄새나는 그 무덤에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흘리신 눈물은 어떤 눈물이셨을까요 인간적인 동정심에서 우셨을까요 인간적인 사랑 때문에 우셨을까요 아니면 나사로에게 받은 환대를 생각하면서 우셨을까요 아닙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우신 것이 아니라 썩어 냄새나는 나사로 때문에 우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예수님은 세상의 썩어진 모습을 보고 우시고 계십니다. 거듭나서 살아야 하는데 거듭나지 못하고 옛사람 그대로 썩어서 냄새나는 상태에 있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우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고, 물과 성령님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뭇 심령들이 거듭나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를 다니면서 은혜를 받아 새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새사람이 되지 못한 채 옛사람 그대로 있는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우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흰 개꼬리를 굴뚝에 3년 동안 넣어 두었다가 꺼내어서 툭툭 털어보니 흰 개꼬리 그대로 있더라는 말과 같이 교회에 다닌지 여러 해 되었는데도 엣사람 그대로이고 조금도 변화되지 못한 사람들을 보시고 오늘도 주님께서 울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심령이 변하도록 성령님을 부어주시고 인간성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화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인격적인 신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을 모시고 경배드려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성령님을 무시하고 이용하려고만 합니다. 잘못된 성령님관을 갖고 자기 자신의 유익에만 이용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잘못된 사고방식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이 시기 때문에 우리가 존경하고 섬기며 경배드릴 분이십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하시는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람을 거듭나게 하시고, 심령을 변화시켜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화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오늘 교회를 다닌다고 하면서도 인간성이 변화되지 아니한 채 옛 사람 그대로 있는 모습을 보시고 우리 주님께서 눈물을 흘려 울고 계시는 것입니다. 나사로처럼 그 영혼이 썩어 냄새나는 모습을 보시고 우리 주님께서 울고 계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변화받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22절로 24절 까지의 말씀을 보면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였습니다. 만일 외모로는 예수믿는 사람같지만 속은 여전히 옛 사람 그대로이고 여전히 거짓말하고, 남을 속이고, 탐욕을 부리고, 게으르고, 나태하고, 음란하고, 사기치는 생활들이 계속된다면 우리 주님께서 얼마나 마음아파 하시며 우시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썩어 냄새나는 옛 사람을 죽여 버리고 성령님의 놀라운 능력을 힘입어서 우리 속사람이 새로와지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어 인간성이 회복되는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영이 죽고 썩어 냄새나는 자들을 보시고 우셨던 것처럼 우리도 병들어 죽어가는 가족들의 영혼과 성도들의 신앙의 나태함과 병든 신앙을 보고서 울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눈물을 소중히 여기시며 눈물의 기도를 들어 응답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요한복음 14장 14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들이 눈물흘려 기도할 때에 그 기도를 응답해 주십니다. 시편 57편 8절에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으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라고 시편 기자는 부르짖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이 흘린 눈물을 주님의 병에 담아 기억해 주시며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39편 12절에서 다윗이 하나님께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가 눈물흘려 기도할 때에 응답해 주신다는 사실을 확신하시고 그대로 행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은 여러분의 자녀와 이 나라의 청소년들을 위해 울 때인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해 울라고 말씀하셨는데,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처럼 방탕한 길로 치닫고 있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해야 되겠고, 웨슬레의 어머니 수산나처럼 우리의 자녀들이 지쳐서 쓰러져 있을 때에 그들을 위하여 눈물로 기도해야 되겠고, 사명감을 상실한 이 땅의 크리스챤들을 위해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지난 25일 6 25전쟁 44주년을 맞았는데, 우리 나라의 청소년들은 전쟁의 쓰라림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지 못하고 잘못된 길로 치닫고 있는 것입니다. 이 나라 청소년들이 믿음의 길을 온전히 걸어갈 수 있도록, 그리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눈물흘려 기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셋째로, 예수님께서는 멸망당할 예루살렘을 보시고 우셨습니다. 본문에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 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무죄하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죄값으로 주후 70년 티토(Titus)장군에 의해서 예루살렘은 파괴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저는 오늘의 본문 말씀을 읽을 때 마다 6 25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는 그런 비참한 전쟁이 재현되지 않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은 어떤 곳입니까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성전이 무너질 것을 아시고 우신 것입니다. 성전은 무엇을 하는 곳입니까 이사야 56장 7절에 보면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성전에 나와서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시기를 바랍니다. 인간의 생각으로 해결책을 찾으려고 애를 써봤자 해결되어지지 않습니다. 성전으로 달려 나와서 하나님께 부르짖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전은 성전으로서 그 역할을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신앙이 병들어 성전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적어지고 그 대신 돈바꾸는 사람, 소, 양, 비둘기 등을 매매하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에 온통 더러운 것으로 뒤덮여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예루살렘 성전을 보시고 우셨습니다. 심판이 임할 것을 바라보시고 우신 것입니다. 성전이 성전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기도하는 집이 그 구실을 다하지 못하고, 짐승이 거하는 장소로 화하자 심판이 임하고 만 것입니다. 성전은 성도들이 소나 양, 비둘기를 잡아 제물로 바치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면 결과는 불을 보듯 훤한 것입니다. 죽어야 할 제물이 죽지 않고 살아서 성전에서 날뛴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보고만 계시겠습니까 구약에서의 소나 양, 비둘기는 신약에 있어서 성도들의 모형입니다. 성도들은 옛사람이 죽어야만 합니다. 혈기와 성질, 고집이 죽어야 합니다. 내 맘대로 살려고 하는 생각과 정욕, 음란, 거짓, 탐욕 등 모든 악한 것들이 죽어야 합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죽어 제물이 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열납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어야 할 것들이 죽지 않고 살아서 냄새만 풍긴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옛사람이 죽어야만 합니다. 우리의 심령이 변화되어 새사람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바꾸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는 밤낮으로 울며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 기도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 교회는 소망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성도들 중에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과 나라와 민족을 위해 눈물뿌려 기도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시편 126편 5절과 6절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은 울며 기도할 때입니다. 영혼 구원을 위해 울며
기도하십시다.
. 우리의 옛사람이 죽어지기 위하여
기도하십시다.
.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울며
기도하십시다.
. 우리의 옛사람이 죽어 제물이 되어야 하겠고, 성령님의 권능을 통해서 우리의 심령이 변화되어야 하며,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기 까지 눈물로써 기도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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