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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대 1의 감사 (눅17: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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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오늘도 환자를 만나셨다. 이 환자는 다름 아닌 문둥병으로 거의 불치의 병으로 사람들이 절망에 이르게 되는 무서운 병이다. 이 병은 1871년 "한 센"씨가 나병의 균을 발견하였기 때문에 일명 한센씨 병이라고 불리워 지고 이 나병은 주로 동양과 열대지방에서 많이 발병하는 것으로 외피로 부터 시작하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세균작용으로 눈썹,뺨,코,귀 등에 결절이 생기는가 하면 손과 발의 관절을 녹여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떨어져 나가는 무서운 병이다. 이러한 나병은 동서 고 금을 통하여 혐오스럽고 고치기 어려운 병으로 여겼기 때문에 일반 인들과 격리시켰고 성경에는 가끔 이 문둥병을 죄의 결과로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나는 나환자들은 거의 모두 고침을 받은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 예로 모세의 손(출4:7), 미리암(민12:10) 아람의 나아만 장군은 요단에 가서 7번 목욕한 후에 깨끗하여졌다. (왕하 5:) 누가복음 17 장에서는 10명의 문둥이가 깨끗하여 졌다. 지금은 우리 주변에서 나병환자를 보기가 어렵다. 그래서인지는 모르나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를 고쳐주셨다고 하는 이 기사가 자주 반복되어도 그것을 마치 감기 정도나 고쳐 준 것으 여기는 태도가 무의식 중에 나타난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그들 을 볼 수 없다고 하여서 환자들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1986 년 9 월 30 일 현재 보건사회부에 등록되어 있는 수효 를 보면 전국의 나환자 수는 25,180명이다. 이들은 주로 소록도 와 같은 정착지에 모여 살고 있으며 개인적으로 집에서 치료를 받 고 있는 등록되지 않은 환자들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 수효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다. 나 환자 시인 < 한 하운 > 을 아시지요 그가 쓴 시 가운데 이런 것이 있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뿐이라. 낯선 친구를 만나면 우리들 문등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룸 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한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십리 길 전라도 길 오늘 본문에 나오는 10 문둥이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들어 온다. 민 5:1-3 을 보면 모든 문둥병 환자나 유출병 환자는 모두 진 밖에 내 보내게 되어 있다. 남녀 불문하고 내 보냈다. 만약 진 안에 들어 오는 자가 있으면 돌로쳐 죽이라고 엄하게 명 하였다. 제사장들의 검진을 받아서 부정하다는 판정을 받으면 지체 없 이 진 밖으로 추방을 당하였다. 사람들은 세상이 무정하다는 것을 깨닫고 울면서 정든 고향과 처자식을 등지고 마구 쫏김을 당한다. 어디로 가야하는지 모르면서 정쳐 없이 가는 길이 어둡기만 하다. 뒤에서 우는 처 자식의 정싱을 생각하면 간장이 녹는 것 같다. 그러나 어찌하랴 이리 저리 걸식하며 세월을 보내다가 어느날 서러움에 북 받쳐 흘러 가는 시냇가 버드나무 아래에 앉아 옛 일을 회상하기도 한다. 한 가운의 또 하나의 시가 애절하다.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필리리 보리피리 불며 청산 어린 때 그리워 필리리 보리피리 불며 인양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필리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 눈물의 언덕 지나 필리리 아마 이렇게 다니다가 여러 곳에서 추방당한 사람들끼리 한 곳 에 모인것이 10명을 이루게 된 모양이다. 이들이 모여 있던 곳은 사마리아와 갈릴리 국경근방으로 보인다. 그들은 거기에서 서로 로 위로하며 살아 갔을 것이다. 어느 날씨가 좋은 때에는 화창 한 바깥 날씨를 바라 보면서 이런 농담도 하였을게다. " 병 낫게 해 주는 사람이있다면 자네는 어떻게 하겠나  나 말인가 그러면 나와 내 처자가 함 그 사람의 종노릇하지! 나도 그런 심정이야 . 저 친구는 처가 개가하고 애들만 남았다지 " 사람이 답답한 일을 만나면 무슨 일인들 못하며 무슨 말인들 못 하는가 이렇게 울며 안자 이야기 하던 어느 날 누군가 한 사람이 예수님에 관한 소식을 가져 왔다. "건강한 자에게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마9:!2-13) 하신 예수님의 말씀까지 분명하게 전하여 듣게 된 것이다. 그 분이 지금 이곳 가까운 곳으로 지나 가시게 된다는 소식도 가져 왔다. 마침 가까운 촌에 들어가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예수님을 만나고져하였다 그들은 멀리 서서 외쳤다. "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이 말은 긍휼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소리이다. 예수님 서 이 소리를 들으시고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말씀 하셨다. 이 말을 들은 10 문둥이들이 제사장에게 가다가 몽이 깨끗하여 진 것을 발견하였다. 얼마나 기뻤겠는가 꿈인가 생시인가 하여 어리둥절하였을 것이다. 9 사람은 제 갈 길로 뿔뿔히 흩어졌다. 아마 그들은 고향이 그립 고 처자가 보고 싶은 김에 어서 어서 속히 제사장에게로 가자 하였 것이다.
그런데 그 중에 한 사람이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 자기의 병을 고쳐 주신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이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이다. 이 사람이 예수님의 은혜가 고마워 우리 주님의 발아래 엎드려 사례 하였다. 예수님께서 이 사마리아 사람을 말 없이 바라보고 계시다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하시고 "이 방인 외에는 하나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하셨다. 아마도 인간의 무정을 생각하시고 무척 서운해 하신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 찾아 온 사마리아 문둥이의 감사를 생각하여 보자.
I. 자기의 깨끝하여진 것이 예수님의 능력인 줄 알았다. " 우연히 나은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때가 되어서 나은 것이라 하지 않았다. 다 썩어 뭉그러진 환자를 희고 깨끝하게 하여 주신 것이 주님의 능력이요 은혜인 줄 알고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 여러분 ! 겉 사람이 깨끝하다고 나는 문둥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겉으로는 깨끗한 채 하면서도 썩어진 곳을 감추는 문둥병 환자처럼 영적으로 썩어져가는 문둥병 환가가 아닌가 애통과 절망 속에서 허덕이며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 내 줄 것인가 하고 고민하며 살지 않았는가 <그 누가 나의 괴롬 알며 그 누가 나의 슬픔 알까 > 오늘 우리는 나의 생명 나의 건강 나의 재산 나의 자녀 나의 가정 이 모든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요 주님의 축복인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요 주님의 축복인 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예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의 희생의 보혈로 사망의 몸에서 벗어나 영생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감사의 동기는 우리 주님 서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고난을 당하신 사실에 대한 감격에서 우리 나와야야 한다. 부요하시던 예수님 날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고, 날 존귀하게 하시 려고 스스로 비전한 몸을 입으시고 말 구유 위에 누우시고, 최후에 그 머리에 가시관을 쓰심은 죄악으로 가득한 머리를 깨끗케 하시며 우리를 고치시려고 손 발과 옆구리에 창과 못에 찔리시며 물과 피를 다 쏟으셨다. 우리 주님의 이러한 고난으로 우리가 오늘 구원을 입었는데, 그의 구속으로 오늘 내가 존재하고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가 여러분은 이 사실을 믿는가 눅 7:47 에는 사함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는 말씀이 있다. 예수님의 머리에 값 비싼 향유를 부으며 자기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닦던 여인의 헌신적인 모습은 < 사죄 > 가 동기였다.
II. 인정과 환경을 초월하는 감사를 드렸다. 고침 받은 문둥이는 얼마나 고향이 그립고 처자가 그리웠겠는가 지금까지 오래 격리되었던 생활을 생각하면 속히 고향으로 달려 가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마리아 문둥이는 그것을 억제하고 먼저 이 사마리아 문둥이는 그것을 억제하고 먼저 예수님 로 달려 왔다. 인간이 자기의 형편에만 치중하면 집으로 달아난 9명의 문 둥이와 다를 것이 없다. 영국의 청교도 시인 존 밀턴은 44 세에 장님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육안을 어둡게 하고 주님만을 보도록 신령한 눈을 주신 것을 감사하게 되었다. 사르밧 과부는 흉년에 자기의 독자와 함 먹을 최후의 양식을 전 부 하나님의 사람을 위하여 드렸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위하여 주셨다. 가난한 과부는 자기가 먹고 살아 갈 생활비 전부를 드렸다. 부자에게는 엽전 두 렙돈은 매우 작은 것이나 그녀 에게는 생활비 전부였던 것이다. 누구든지 인간의 사정과 환경을 고려하면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고 감사할 수도 없다. 지금은 김포 가도에 있는 선명회 고아원 병원은 원래 대구 동산 병원 안에 있었던 것이다. 피얼스 목사가 한국에 있는 고아들을 위하여 방송으로 호소하였을 때 어느 반신 불수 여인이 이혼을 당한 뒤에 자 녀도 없이 자기의 유일한 친구인 좋은 라디오 하나가 유일이 소유인데 그것을 머리맡에 놓고 뉴스를 듣다가 한국 고아들을 위한 병원 소식 에 견딜 수가 없어 그것을 팔아 병원 사업에 써 달라고 100 $ 를 가 져 왔다. 10 사람이 다 깨끝함을 받지 않았느냐 그 아홉은 어디있느냐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 앞에 진정한 감사를 드리는 사마리아 문둥이 같은 한 사람인가 생각해 보자.
III. 행동으로 감사하였다. " 달아 난 사람들이 생각조차 안 하였겠는가 남은 한 사람이 마음 속에 있는 것을 행동으로 나타내었는데 반하 하여 9 사람은 행동이 없었다. 구원을 얻고 의롭다함을 얻는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는다.
그런데 그 것을 감사로 나타내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여러분들은 그것을 행함으로 보이시기 바란다. 미국에서 가난한 가정에 태어나 무수한 고생 끝에 백화점 욍이 되 고, 재무부 정관이 되고 미국의 10대 재벌이 되고 YMCA 창설자가 된 존 와나메이커가 100 만 $ (9억원)의 예배당을 짓고 낙성식에서 눈물 을 흘리면서  " 내가 주일학교에 다니던 어린 시절, 애들이 줄을 서서 추수감사 예물을 제단에 바치는데 나는 너무 가난하여서 빈 손으로 온 것이 너 무 괴로워 주일학교 시간이 끝나자마자 벽독을 굽는 아버지에게 가서 그 이야기를 하면서 벽돌이라도 한 수레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목사관을 찾아 갔습니다. 당시 잠버드목사는 내게 손을 얹고 축복기도를 하여 주셨습니다. 그로부터 30 년이 지난 오늘 나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단독으로 100 만 달라의 예배당을 짓게 되니 이 큰 은혜를 어떻게 말로 다 하겠습니까" 감사는 몸으로, 물질로, 행동으로 해야 한다. 그래야 실제적인 복을 받는다. 청교도들은 미국에 건너 가서 한번 잘 살아보겠다고 간 것이 아니었다. 잘 믿어 보려고 한 것이었다. 미 대륙에 건너 가서 황무지를 개척하 고 첫 농사를 지을 때까지 6 개월 동안 굶주림 속에서 초근 묵피 하면서 첫 농사를 지어 1/3 을 떼어 바치면서 감사를 드린 것을 기억 하여야 한다.
결론
1. 사마리아 인은 천대 받는 민족에 속한다. 그 중의 한 문둥병자가 감사를 드렸다.2. 영적 문둥병에서 고침 받은 우리는 그 감격과 감사를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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