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대1 (눅17:11-19)
본문
오늘 우리 교회가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날입니다. 성탄절과 같이 세계 온 교회가 다같이 12월 25일을 성탄절을 지키고 지정한 날짜를 택하여 추수감사절을 지키지 않습니다. 서울에 어떤 교회에서는 추석전 주일에 추수 감사절을 지내는 교회도 있고 지난 주에 추수 감사 주일에 지내는 교회도 있고 다음주일 추수 감사 주일을 지키는 교회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체로 이번 주일을 추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추수 감사 주일은 어디에 유래하는가 대체로 두 가지의 유래가 있습니다. 하나는 구약의 절기에 근거를 두고 있는 유래가 있습니다. 일년의 농사를 짓고 이제 초 막을 짓고 초막에서 지내는 초막절.수장 절에 따르는 일년 결실을 감사 하는 절기올시다. 다음에는 1620년대에 영국에서 신앙의 자유를 얻지 못 하던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국 신대륙을 찾아 많은 희생을 감수하면서 인디안 들이 건네준 씨앗을 뿌려 가을에 수확을 거두었습니다.감사 예배를 드렸습니다. 오늘까지 그 좋은 전통이 전해 오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옛날에 영고 동맹이라는 10월과 12월에 추수 감사하는 감사제가 있었습니다. 오늘 저는 본문을 통하여 성도들이 필수적으로 소요해야 할 감사의 모습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기쁨과 찬송과 기도와 감사는 떼놓을 래야 떼놓을 수가 없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감사와 예수가 말하는 감사를 살펴보겠습니다. > 오늘 본문의 사건은 예수님께서 한번은 사마리아와 갈리리 사잇길로 예 루살렘으로 지나가시다가 한 촌에 들어 가셨는데 열 명의 문둥병 자가 멀리 서서 큰 소리로 높여 예수 선생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외 쳤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 몸을 제사장에 보이라고 명하셨습니다. 가다 가 열 명이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그 중에 사마리아 출신 한사람이 돌아 와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께 감사하고 고맙다고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예를 표시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 명이 다 깨끗함을 받 지 아니하였느냐
그런데 감사하려고 돌아 온 사람이 너 혼자 뿐이냐 물으시고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신 장면입니다. 이 사건에서 문둥병에서 고침을 입었는데 아홉 사람의 반응과 한 사람 사라마리아 사람을 비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들이 열 명명은 문둥병 의 나음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감사하지 않고 한사람만 돌아 왔다고 하는 것이 이해가 안됩니다. 만일 의사가 평생에 소원인 병으로부터 고침 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전부 감사 할 것입니다.세상에도 감사하는 인생을 강조하고 있습니다.진정한 성도의 감사가 무엇인가 살펴보겠습니다.
1.아홉 명의 문둥병 자와 예수께 돌아온 사마리아 사람은 똑 같은 환경 과 여건입니다. 열 명의 문둥병 자는 출신이 다양하더라고 할지라도 문둥병 자라고 하는 어렵고 힘든 처지 였습니다. 의문이 있습니다. 왜 고침을 받고도 아홉은 감사하지 않았을까하는 의문이 있습니다. 그 의문이 풀어집니다. 그건 성령님으로 감사하는 사람과 인간에 감정에 호소하는 감사가 있습니다. 성경은 성령님으로 감사하라고 요구하고 있지 인간의 감정에서 우러나는 감사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감정에 요구하는 감사는 늘 인간의 감 정을 만족하게 해주어야 감사합니다. 100원을 감사했습니다. 매일 주게 되면 100원 가지고는 감사를 유발할 수가 없습니다.
1,000원을 주어야 감사합니다.
1,000원은 나중에 10,000원을 요구하게 되고 이렇게 자꾸 불어 나가다가 보니 몇억을 가지고도 감사하지 못하고 늘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령님은 풍부와 비철을 감사할 수 있는 범사에 감사할 것을 요구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병고침을 받은 아홉 명의 문둥병 자와 한 사 마리아인의 환경과 처지가 사마리아 인이 더 형편이 좋았다는 말해 주는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습니다. 오히려 출신을 놓고 보면 예루살렘, 갈리 리, 사마리아,문둥병 자들이 집단 거주하고 살았다면 가장 열악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사마리아 출신의 문둥병자 였을 것입니다. 성령님으로 감사하는 사람은 조건이나 환경을 보고 감사하지 않습니다. 성령님은 모든 것을 이기고 어떤 처지와 환경 속에서 그 마음속을 성령님이 장악합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18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여러분은 범사에 감사 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성령님이여 내마음을 완전히 장악하여 지금 내가 당하는 괴롬과 고통을 감사히 감당 할 수 있도록 하소서 기도하면서 성령님이 임하시기를 기도하시는 영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어떤 환경과 조건도 감사가 계속 영위할 수 없습니다. 100원이라고 하는 물질에 감사하는 사람은 물질에 매여 올바른 감사의 길을 찾지 못합니다. 그러나 100원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 을 돌리며 감사 하십시오 감사의 모습과 감사의 대상이 달라 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사를 감사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감사하십시오 모세가 이 스라엘 자손을 이끌고 홍해를 건넌 후에 노래하기를 이렇게 하였습니다. 출애굽기 15:1-3절에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 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 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2]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 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3]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 시로다" 낙망하고 실망할 때에 여호와를 바라보고 감사하는 식구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로만 나의 감사의 대상 삼는 감사하는 백성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베드로전서 4:11절에 말씀하시기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 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 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2.아홉은 예수를 부를 때부터 원망과 불평이 있었습니다. 나는 문둥병 자가 될 만한 요소가 없는데 운이 나쁘게 나에게 문둥병 자 라는 화를 입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억울하고 불공평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인은 자기의 처지와 형편을 받아 드렸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고는 결코 감사로 연결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감사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나는 불리한 대우를 받았는데 이제 회복되 었기 때문에 나의 치유는 당연한 처사라고 여기기 때문에 감사와 하나님 께 영광 돌리는 일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범사에 원망과 시비가 있는 상태에서는 감사가 생겨나리라는 생각을 아예 버립십시오. 빌립보서 2:14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하라" 일의 성질을 가리지 말고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 없이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속에 성령님이 충만하지 않으면 불가능 한일입니다. 성령님 충만 할 때에 바로 하나님께 감사 할 수 있습니다. 물질 때문에 감사하지 않습니다. 원망과 시비가 그칩니다. 그런 순수한 감사절이 되시기 를 바랍니다. 이런 성령님 충만한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주시는 축복이 무엇입니까 본문 19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 라" 우리의 믿음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일까요 부귀영화 지헤 총명 다 포 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건강이라든지 부귀영화 언젠가는 시들어지고 폐하게 됩니다. 베드로 전서 1:9말씀은 우리에게 믿음의 궁극적인 목적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영혼을 구원시킬 믿음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참으로 불쌍한 사람입니다. 성령님으로 감사하는 생활하는 사람은 범사에 감사합니다. 범사에 원망과 시비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마음 속에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반드시 영원을 구원하는 믿음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성도 여러분 감사 영광을 주께 돌립시다. 그리하여 주님으로부터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라는 말씀을 들으시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그런데 추수 감사 주일은 어디에 유래하는가 대체로 두 가지의 유래가 있습니다. 하나는 구약의 절기에 근거를 두고 있는 유래가 있습니다. 일년의 농사를 짓고 이제 초 막을 짓고 초막에서 지내는 초막절.수장 절에 따르는 일년 결실을 감사 하는 절기올시다. 다음에는 1620년대에 영국에서 신앙의 자유를 얻지 못 하던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국 신대륙을 찾아 많은 희생을 감수하면서 인디안 들이 건네준 씨앗을 뿌려 가을에 수확을 거두었습니다.감사 예배를 드렸습니다. 오늘까지 그 좋은 전통이 전해 오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옛날에 영고 동맹이라는 10월과 12월에 추수 감사하는 감사제가 있었습니다. 오늘 저는 본문을 통하여 성도들이 필수적으로 소요해야 할 감사의 모습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기쁨과 찬송과 기도와 감사는 떼놓을 래야 떼놓을 수가 없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감사와 예수가 말하는 감사를 살펴보겠습니다. > 오늘 본문의 사건은 예수님께서 한번은 사마리아와 갈리리 사잇길로 예 루살렘으로 지나가시다가 한 촌에 들어 가셨는데 열 명의 문둥병 자가 멀리 서서 큰 소리로 높여 예수 선생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외 쳤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 몸을 제사장에 보이라고 명하셨습니다. 가다 가 열 명이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그 중에 사마리아 출신 한사람이 돌아 와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께 감사하고 고맙다고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예를 표시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 명이 다 깨끗함을 받 지 아니하였느냐
그런데 감사하려고 돌아 온 사람이 너 혼자 뿐이냐 물으시고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신 장면입니다. 이 사건에서 문둥병에서 고침을 입었는데 아홉 사람의 반응과 한 사람 사라마리아 사람을 비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들이 열 명명은 문둥병 의 나음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감사하지 않고 한사람만 돌아 왔다고 하는 것이 이해가 안됩니다. 만일 의사가 평생에 소원인 병으로부터 고침 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전부 감사 할 것입니다.세상에도 감사하는 인생을 강조하고 있습니다.진정한 성도의 감사가 무엇인가 살펴보겠습니다.
1.아홉 명의 문둥병 자와 예수께 돌아온 사마리아 사람은 똑 같은 환경 과 여건입니다. 열 명의 문둥병 자는 출신이 다양하더라고 할지라도 문둥병 자라고 하는 어렵고 힘든 처지 였습니다. 의문이 있습니다. 왜 고침을 받고도 아홉은 감사하지 않았을까하는 의문이 있습니다. 그 의문이 풀어집니다. 그건 성령님으로 감사하는 사람과 인간에 감정에 호소하는 감사가 있습니다. 성경은 성령님으로 감사하라고 요구하고 있지 인간의 감정에서 우러나는 감사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감정에 요구하는 감사는 늘 인간의 감 정을 만족하게 해주어야 감사합니다. 100원을 감사했습니다. 매일 주게 되면 100원 가지고는 감사를 유발할 수가 없습니다.
1,000원을 주어야 감사합니다.
1,000원은 나중에 10,000원을 요구하게 되고 이렇게 자꾸 불어 나가다가 보니 몇억을 가지고도 감사하지 못하고 늘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령님은 풍부와 비철을 감사할 수 있는 범사에 감사할 것을 요구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병고침을 받은 아홉 명의 문둥병 자와 한 사 마리아인의 환경과 처지가 사마리아 인이 더 형편이 좋았다는 말해 주는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습니다. 오히려 출신을 놓고 보면 예루살렘, 갈리 리, 사마리아,문둥병 자들이 집단 거주하고 살았다면 가장 열악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사마리아 출신의 문둥병자 였을 것입니다. 성령님으로 감사하는 사람은 조건이나 환경을 보고 감사하지 않습니다. 성령님은 모든 것을 이기고 어떤 처지와 환경 속에서 그 마음속을 성령님이 장악합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18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여러분은 범사에 감사 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성령님이여 내마음을 완전히 장악하여 지금 내가 당하는 괴롬과 고통을 감사히 감당 할 수 있도록 하소서 기도하면서 성령님이 임하시기를 기도하시는 영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어떤 환경과 조건도 감사가 계속 영위할 수 없습니다. 100원이라고 하는 물질에 감사하는 사람은 물질에 매여 올바른 감사의 길을 찾지 못합니다. 그러나 100원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 을 돌리며 감사 하십시오 감사의 모습과 감사의 대상이 달라 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사를 감사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감사하십시오 모세가 이 스라엘 자손을 이끌고 홍해를 건넌 후에 노래하기를 이렇게 하였습니다. 출애굽기 15:1-3절에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 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 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2]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 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3]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 시로다" 낙망하고 실망할 때에 여호와를 바라보고 감사하는 식구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로만 나의 감사의 대상 삼는 감사하는 백성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베드로전서 4:11절에 말씀하시기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 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 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2.아홉은 예수를 부를 때부터 원망과 불평이 있었습니다. 나는 문둥병 자가 될 만한 요소가 없는데 운이 나쁘게 나에게 문둥병 자 라는 화를 입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억울하고 불공평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인은 자기의 처지와 형편을 받아 드렸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고는 결코 감사로 연결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감사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나는 불리한 대우를 받았는데 이제 회복되 었기 때문에 나의 치유는 당연한 처사라고 여기기 때문에 감사와 하나님 께 영광 돌리는 일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범사에 원망과 시비가 있는 상태에서는 감사가 생겨나리라는 생각을 아예 버립십시오. 빌립보서 2:14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하라" 일의 성질을 가리지 말고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 없이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속에 성령님이 충만하지 않으면 불가능 한일입니다. 성령님 충만 할 때에 바로 하나님께 감사 할 수 있습니다. 물질 때문에 감사하지 않습니다. 원망과 시비가 그칩니다. 그런 순수한 감사절이 되시기 를 바랍니다. 이런 성령님 충만한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주시는 축복이 무엇입니까 본문 19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 라" 우리의 믿음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일까요 부귀영화 지헤 총명 다 포 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건강이라든지 부귀영화 언젠가는 시들어지고 폐하게 됩니다. 베드로 전서 1:9말씀은 우리에게 믿음의 궁극적인 목적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영혼을 구원시킬 믿음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참으로 불쌍한 사람입니다. 성령님으로 감사하는 생활하는 사람은 범사에 감사합니다. 범사에 원망과 시비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마음 속에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반드시 영원을 구원하는 믿음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성도 여러분 감사 영광을 주께 돌립시다. 그리하여 주님으로부터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라는 말씀을 들으시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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