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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 (눅17:11-19)

본문

맥추절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지키라고 명하신 절기입니다. 이 절기는 첫 수확을 거두기에 초실절이라고도 하며, 유월절을 기준으로 칠칠절, 혹은 오순절이라고도 합니다. 이 날은 하루만 지키는 절기입니다. 이날의 제사는 누룩을 넣어 구운 떡 두개를 첫 소재로 드리고, 또 화목제와 번제를 드리고 이날은 성회를 공포하고 아무도 노동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회를 통하여 하나님께 감사와 예배와 찬양을 드리는 날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이 날은 영적인 의미에 있어서는 성령님강림주일로 지키고 있으며, 농사하는 절기의 의미로 맥추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그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이 예배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물질 문명이 발달할 수록 사람들은 그 누리는 모든 혜택과 축복들을 잘 알지 못합니다. 오히려 감사하지 못하고 이기적이며 독선적이며 인간성이 없어지고 사나와 집니다. 다시 말해서 문명은 발달하여 육신은 편해지고 참으로 모든 것을 누리고 살 수 있지만 그러나 정신적인 면은 그 반대의 현상이 일어납니다. 많은 축복들을 감사하지 않습니다. 큰 은혜를 받고도 마음이 뜨겁지 않고 자신의 기쁨으로만 그칩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이 세대의 가장 큰 병을 발견하고 치료하는 역사가 있어야 겠습니다.
1. 먼저 우리는 예수님을 부르는 문둥병자들을 보시겠습니다. (눅17:11-13)“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거늘 ” 영어 성경을 통하여 보면 예수님은 사마리아와 갈릴리 중앙을 통하여 갔다고 하고 있습니다. 지리적으로 보았을 때에 방향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방향이 아니기 때문에 논쟁이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누가는 열명의 문둥병자들 중에 사마리아 사람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강조하기 위해서 그렇게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부르는 이 열명은 건강했을 때에는 유대사람과 사마리아 사람이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문둥병이 들었기 때문에 그들은 함께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문둥병자에게는 그런 것을 따질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문둥병에 대해서는 레위기 13장-14장에 잘 나와 있습니다. 문둥병은 만성 전염병입니다. 그 특징은 우리가 설명을 안해도 잘 아실 것입니다. 이 문둥병에 걸린 사람은 전염되기 때문에 마을에서 내 쫓아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격리되어 함께 살았습니다. 그들은 “멀리서서” 주님을 부릅니다. 당시 문둥병자들이 가까이 오면 돌로 쳤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문둥병자들은 언제나 사람들을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멀리 서는 것은 이들의 처신법입니다. 이들은 죄를 범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죄아래 있는 인간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이 멸명의 문둥이는 그들의 병이 심하기 때문에 “소리를 높여” 주님을 부릅니다. (눅17:13)“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이들이 소리를 치는 것은 예수께서 자신들의 병을 치료하실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부르짓음은 절실하고 간절합니다. 주님께서 긍휼을 배푸시기를 바라면서 멀리서서 소리를 지릅니다. 그들은 문둥이이기 때문에 감히 가까이 가지 못합니다. 그들은 문둥병이란 공통된 비극 속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한결같이 곤경에 빠져 있는 인간들이라는 사실만을 이식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들은 유대인이라든가 사마리아 사람이라든가 이러한 사실 이전에 먼저 문둥병자입니다. 그러기에 문둥이란 사실 왜에 다른 사실들을 망각하고 같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문둥이는 유대인이건 사마리아 사람이건 이들은 똑 같이 주님의 긍휼을 바라고 있습니다. 또 똑 같이 주님의 긍휼과 은혜가 필요합니다.
2. 긍휼히 여기시는 주님 (눅17:14)“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 이 말씀은 너희가 나았음을 제사장에게 보이라는 말씀입니다. 문둥병은 제사장이 진단합니다. 그리고 병이 치유되었으면 우슬초로 새의 피를 찍어 문둥병자에게 뿌려 정결의식을 행하고 속건제와 속죄제를 드렸습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 앞에 긍휼히 여겨달라고 온 사람은 주님은 한 사람도 그냥 보내시지 않고 은혜를 주십니다. 열명의 문둥병자도 모두가 주님앞에 긍휼히 여김을 받고 제사장에게 가다가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들의 썩은 살이 돋아나고 깨끗이 치료되었습니다. 주님의 은혜는 그에게 오는 모든 자에게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문둥병자 뿐이겠습니까 누구든지 우리 주님의 긍휼을 바라고 오는 자는 내어 쫓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주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예수 앞에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를 찾으시는 주님 (눅17:15-18)“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 성도 여러분! 사람이 은혜를 입었으면 당연히 그 도리로써 감사와 사례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나온 사마리아 사람 한 사람 왜에는 감사하는 자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몸에 병이 떠나고 건강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 이것은 놀라운 기쁨일 것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은혜를 입었으면 감사와 영광을 주님께 돌려 드려야 합니다. 주님은 문둥병자들을 치료하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은 우리들 자신의 기쁨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열명을 고치신 주님은 한 사람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주님은 오늘날도 영광 돌리는 자를 찾으십니다. 이것은 온 우주적인 사명이며 존재 목적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나를 통하여, 우리 가정과 교회와 나라와 민족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계1:6)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계4: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계5:12)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계5: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시22:23)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지어다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지어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지어다 (시29:2)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참으로 우리의 마땅히 해야 할 최우선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홉명의 문둥이 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긍휼과 은혜와 축복이 하나님께 영광으로 돌려지지 않고 감사치 않고,자신의 기쁨으로만 그치고 말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자신이 병이들었을 때에는 그렇게 큰 소리로 고쳐달라고 소리쳤으면서 이제는 그 간절한 호소가 기억조차 없어져 버렸습니다. 어느날 하나님께서 천사에게 각각 바구니를 하나씩 주고 한 바구니에는 “기도”를 다른 바구니에는 “감사”를 담아오라고 명하였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두 천사가 바구니를 가지고 올라 왔는데 기도를 담은 바구니는 더 이상 담을 수 없을 정도로 가득 차 있었고, 그러나 감사를 담은 바구니에는 겨우 세개의 감사만이 들어 있을 뿐이었습니다. 당신의 바구니는 몇개의 감사가 들어 있습니까 우라가 감사하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 드려야 하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에는 놀랍게도 영광을 돌리는 사마리아 사람에게 구원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눅17: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진정한 믿음은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믿음이며, 이렇게 하나님 앞에 영광돌리는 믿음은 그가 진정한 은헤를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으로 은혜를 개닿는 자가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주님 앞에 감사하는 자는 더 큰 은혜와 긍휼을 받게 된다는 것을 본문은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많은 사람이 주의 이름을 부르지만 자신의 인간적인 욕구가 충족되면 언제든지 예수 이름을 부르지 않게 되고 믿음의 대열에서 이탈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혹시라도 우리가 죄 아래서 구원 받고 병고침을 받고, 물질의 축복을 받았으면서도 그 모든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 아닙니까 가장 인간적이고 가장 아름다운 마음은 감사하는 것입니다. 존경할 자를 존경하고 감사할 대상과 모든 일에 감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찬송과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롬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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