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아니다라고 말해야할 때 (누가15:11-24)

본문

아무리 소중한 일이라 해도 “적절한 때”를 찾지 못하면 무가치한 일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항시 가장 아프고 안타까운 것은 “때”를 잃어버린 경우입니다. 우리가 의미롭게 살아가는 것에 촛점을 두고 있다면, 그리고 우리 자신을 방향없는 산만함 속에 내던지려는 마음이 없다면 더더욱 “결정적인 상황”속에서 취해야할 우리의 태도를 언제나 염두해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사실을 간과한다면 결국 남는 것은 “외적 상황에 이리 저리 떠밀려 다니는 허약한 자신”뿐일 것입니다. 때를 잃어버리지 않는 사람, 그것도 적절한 결단의 때를 결코 놓치지 않는 삶이야 말로 우리에게 너무도 절실 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이러한 “때”에 대한 교훈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어떤 철부지 아들이 자기 몫의 재산을 앞당겨 물려줄 것을 아버지에게 청합니다. 아마도 아버지의 권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뜻을 펼쳐보겠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행동일 것이라고 짐작해 봅니다. 집요한 아들의 요청에 아버지는 뜻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그러나 아들은 그에게 주어진 기회를 무분별하고 무책임하게 재산을 마구뿌리며 방탕한 생활로 대치하였습니다. 뚜렸한 계획도, 방향도 없이 주위의 여건과 상황이 마음대로 조정하도록 내버려 두었던 것입니다. “거기서 재산을 마구 뿌리며 방탕한 생활을 하였다.(13절)” 이러한 삶의 결과는 이미 애초 결정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다가 돈이 모두 떨어졌는데 마침 그 고장에 심한 흉년까지 들어서 그는 알거지가 되고 말았다.(14절)” 가지고 있던 것 바닥났을 때 그의 곁에 어떠한 사람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친구라는 이들도,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도 냉담해졌습니다. 진실의 알맹이가 빠져버린 만남들은 애초 의미가 없는 만남이었던 것입니다.
아무도 알거지가 되어버린 그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돼지우리 속에서 굶주림에 허덕이며 비참한 몰골로 몸부림치는 자기 자신의 처지를 그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돼지라는 동물을 가장 천시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돼지우리 속의 인간”이라는 말은 “인간으로서 더 이상 비참해 질 수 없는 최악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하는 대목은 바로 여기부터 입니다. 그는 비참한 자리에서 자신의 모습을 비로소 보았다는 점입니다. 자신의 뒤틀린 견단과 뒤틀린 관계에서 비롯된 온갖 뒤틀린 결과를 발견했던 것입니다. “그제야 정신이든 그는어서 아버지께로 돌아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고백하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그에게 주어진 길은 바로 이것입니다. 자신의 바참하고 뒤틀려있는 현실에 대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거기를 떠나 자기 아버지 집으로 발길을 돌리는(20절)” 결정적인 일입니다. 그가 스스로 자기 자신을 돼지우리로 몰아넣었고, 비로소 그 비참한 자기 현실을 바라보았으며, “이것은 분명 아니다. 잘못되었다. 뒤틀려있는 현실이다”라고 말하면서 그 자리에서 일어나 “아버지께로 발길을 돌리는” 결단적 행위에 주목하여야 합니다.
그에게 필요한 진정한 결단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용기이며, 동시에 진정한 것을 향하여 방향짓는 용기인 것입니다. 돌아온 아들을 맞이하는 아버지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방탕했던 뒤틀린 시간들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다”라고 말하고 발걸음을 아버지께로 돌린 사실에 두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사실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운명이라 여기며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말하며 뒤틀린 온갖 관계와 삶을 내버려 두는 것은 더없는 무책임의 고통을 앞당길 뿐입니다. 틀린 글씨를 지우듯이, 잘못놓은 주산알을 떨듯이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현실을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삶은 한번씀 시도해보는 연습게임이나, 어떤 실험정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도 잘알고 있습니다. 언제나 긴장된 실전이며 결단인 것입니다. 사커멓게 달려드는 파도치는 현실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은 무엇입니까 배의 운전대를 놓고 배 밑으로 숨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상상할 수 조차 없는 참혹함을 가져올 따름일 것입니다. 진정 “아니다”라고 말하는 용기가 필요한 때입니다. 타성에 젖어 적당하게 타협하며 살아가는 모습에 대하여, 나자신의 고귀한 가능성을 묵살하며 “나는 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허약한 삶을 향하여, 뒤틀린 온갖 관계와 뒤틀린 온갖 삶의 결과를 향하여, 우리가 살아가는 땅의 뒤틀린 현실을 향하여 우리는 “아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우리는 때를 놓치지 말고 “아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아니다”라고 말하는 가장 적절한 때는 바로 지금입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532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