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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하는 성도 (눅15:11-32)

본문

오늘 본문의 두 아들의 비유는 종말적인 비유요, 심판의 선언이 있는 비유입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한편으로는 복음의 기록이요, 한편으로는 심판적 기록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교훈 가운데는 언제나 심판과 복음, 구원과 심 판이 함께 하는 동반자적인 입장을 발견하게 됩니다. 본문의 배경:오늘 주신 본문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깨끗이 한 그 사건 이후에 하 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고 거기서 맨 먼저 하신 일이 예루살렘 성전을 깨끗케 하신 것입니다. (성전청결 사건), 예수님께서 분통을 터트리면서까지 성전을 청결케 할 만큼 성전이 왜 더러워 졌습니까 여기에는 여러가지의 이유가 있습니다.예루살렘 성전이라하면 자칫 몇천명,몇 만명이 들어가는 큰 건물로 생각하기 쉬원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옛날 예루살 렘성전의 그 건물 자체는 큰 것이 아닙니다. 단순한 구조에 성소와 지성소로 나뉘고 그 지성소에 하나님의 법궤가 있고 성소에는 제단이 있습니다. 그리고 촛대가 있으며 일반 회중은 뜰에 서 있는 것입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추 우나 더우나 뜰에 서서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그러고보면 현대 교인들은 너무 편한 자세로 예배드리려고 해서 걱정입니다. 아뭏든 예루살렘 성전은 수만 명 씩 뜰에 서서 제사와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여기에 참석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제물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그래서 손수 키운 것을 가져오기도 하고 사서 오기도 하는데 이것을 제사장이 검사하여 제사에 쓸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으 로 가려내는 것입니다. 이 때에 점이나 흠이 있어 불합격된 제물은 다시 시 장까지 나가 팔아버리고 거기에 돈을 더 보태어 좋은 것으로 사와야 합니다. 그러고도 불합격하면 또 다시 가지고 가야 합니다. 이렇게 되다보면 예루살렘 성전가까이까지 장사꾼이 오기 마련입니다. 그래서는 아예 성전 문밖에 까지 와서 양의 우리를 만들어놓고 검사에 불합격되는 것은 싸게 사들이고 좋은 것은 비싸게 판 것입니다. 이것이 조금씩 안으로 밀고와서 이제는 성전뜰, 예배 당 안에까지 들어 왔습니다. 이래서 예루살렘 성전 안에는 점점 많은 장사꾼 으로 분비게 되고 소나 양, 비둘기들을 사고 팔며 돈을 바꾸느라 장터가 되다 시피 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될 때까지 다 알면서도 왜 묵인이되 었느냐는 것입니다. 이도 요즈음 표현으로 하면 커미션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제사장들이 그 이윤 의 얼마를 취하고 눈을 감아주었다는 것입니다. 이래서는 안되는 것이며 잘못 된 일인줄 알면서도 짐짓 이렇게 지내는 것이 벌써 여러 해가 되었단 말입니다. 마치 당연지사처럼 벌려온 터인지라 이제는 누구도 나가라고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바로 그 순간 33세의 젊은이인 바닷가 갈릴리의 청년 예수가 나 타나 장사하는 그 현장을 뒤엎고 모조리 내어쫓는 것입니다. 당시를 상상해본 다면 돈 상자가 굴러 떨어지는가라면 비둘기가 푸드득거리며 날아가고 소와 양도 놀라 소리를 지르며 달아나는 수리장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도 남지 지 않고 전부를 몰아내면서 "기도하는 하나님의 집을 강도의 굴혈로 만드느냐" 고 호통을 칩니다. 일이 이쯤되었느니 진정으로 경건한 믿음의 사람들은 무 척이도 통쾌했을 것입니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예수님께 대하여 이를 갈았을 것입니다. 이때 제일 어려운 사람들은 다름아닌 제사장들입니다. 이들은 해서는 안될 일 을 해왔으며, 용납해서는 안될 일을 돈을 받으며 묵인해 온 것입니다. 이때문에 오늘의 심판이 있는 것이며 한 젊은 청년에 의한 불같은 책망에도 피할 길 이 없었던 것입니다. 최고의 권위와 신분을 앞세워 살아가는 사람들이 백성들 보는 앞에서 이런 일을 당했으니 체면은 또 무엇이겠습니까 그래서 제사장들 은 기껏 의논한 끝에 예수님께 나와서 하는 말이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 을 하느뇨"하고 묻는 것입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냐 하는 말입니다. 이때의 질문을 받은 예수님은 이에 대한 대답을 회피하시면서 되돌리는 질문 을 하십니다. 너희가 이 질문에 대답하면 나도 하겠다는 전제 하에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보터 온 곳이냐 아니면 사람으로부터 온 것이냐"고 물으십니다. 이 질문을 받은 제사장들은 의논을 하고 의견을 모습니다. 하늘로부터 왔 다고 하면 예수님께서
그런데 왜 믿지 않았느냐고 할 것이고, 사람으로부터 온 곳이라고 하면 많은 백성들이 세례 요한을 분명히 하나님의 선지자로 알고 있는데 돌을 던질터이니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게 되자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도 "나도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너희도 알면서 말하지 않으니 나도 알지만 말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왜 말할 필요 가 없는 것이겠습니까 저들이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참된 진리를 들을 준비가 되어지ㅆ지 않은데 누구의 말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 까 돼지에게 진주를 던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받아들이고 자 하는 겸손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알아들을 수 있도록 비유를 들어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오늘 본문에는 두 아들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 비유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에게 두아들이 있는데 아버지가 맏아들에게 가서 말하기를 "오늘 포도 원에 가서 일을 하라"고 합니다. 그랬더니 이 아들이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 예 가겠습니다." 해놓고는 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둘째 아들은 "싫소 이다. 안가겠습니다." 해놓고는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이 두 아들 중에 아 버지의 뜻대로 행한 아들은 누구이겠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입니다. 그랬더니 하 나같이 대답하기를 "그야 말로
둘째 아들이니이다"하고 쉽게 이야기합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는 강한 표현으로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저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기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종 시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는 것입니다.
1.맏아들은 누구입니까(유대인들/율법을 수납한 이들) 율법들 강조하면도 요한의 도를 거부하는 종교 지도자들을 상징합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생각한다면 맏아들은 제사장과 장로,들, 유대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유대지도자들, 그 외식적인 제사장들, 근사하게 예배드리며 찬송하고 기도 하며 제사들이는 일이야 다 잘합니다. " 예 하겠습니다."라며 "아멘, 할렐루야" 소리도 큽니다.
그런데 이래놓고도 뒤에는 딴 소리하니 그게 문제란 말입니다. 찬송도 조심해서 불러야 합니다. (431장) 맏아들은
1)행함보다 말이 더 훌륭하고
2)경건과 충성을 선언하나 그 행실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2.둘째아들은 누구입니까(이방인들/율법을 거부한 이들)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온 세리와 창기를 의미합니다.행함이 말보다 우수 하여 무관심하고 몰인정하게 보아도 남몰래 선행을 하는 자들입니다. 창기와 세리는 당시의 종교지도자들과 유대 사람들이 제일 천시하는 사람들입니다. 창녀는 몸을 팔아서 산다고해서 처하게 여겼으며, 세리는 로마의 앞잡이로 강 제로 세금을 받아감으로 비애국자요,착취자이였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창기는 막달라 마리아이고, 대표적인 세리는 마태였습니다. 두 사람중에 입에 발린 교인들보다 후자가 우월합니다. 후자가 전자보다 낫지 만 완전에서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참으로 좋은 사람은 언행이 일치하는 사람 이 되는 것입니다. 허락이 실행을 대신할 수 없으며 아무리 좋은 말도 좋은 행실만 못합니다. 맏아들은 겉으로는 아버지를 예절답게 순종했으나 사실 거 역했습니다.
둘째는 결국 순종했으나 처음부터 기분좋게 못했습니다. 우리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순종할 것은 물론 예절답고 기분좋게 실행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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