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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관을 따라 삽시다 (누가14:25-35)

본문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인데 왜 그리도 불행하게 그리고 부덕하게 사는 사람이 많습니까 어찌하여 다른 사람에게 실망을 주는 신자들이 그리도 많단 말입니 까' 얼마 전 무명의 자매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얼마 안 있으면 아기를 나을 터인데 너무 심각한 고민이 있다고 하며 상담을 요청해 왔습니다. 그녀의 남편 은 아주 신실하다고 할 만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첫 번째 부인 이 병사하였고 제게 전화를 건 부인은 이 사람에게 시집을 왔습니다. 전실의 아 이가 둘이 있었습니다. 별문제 없이 만 3년간을 잘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한번 은 이사를 하던 중 남편은 지금의 부인의 일기장을 우연히 발견하고 호기심으 로 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문제의 발단이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지금 의 부인의 13년 전의 참회의 일기가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너무 외로웠던 나머 지 어떤 청년과 교제하던 중 그만 깊은 관계를 맺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결혼으 로 연결은 되지 못하였습니다.당시 대학을 다니던 이 자매는 죄책으로 시달리 며 10여년을 조용히 직장과 교회에서만 봉사하며 살다가 30대 후반이 되어 아내 를 잃고 두 아이를 데리고 살아가야 하는 이 남자를 소개받은 것입니다. 주님의 용서를 받은 이 자매는 "남은 생애 홀로 사는 것보다 저분과 아이들에게 헌신함 이 보다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하고 시집을 왔습니다.
그런데 이 일기장을 본 다음부터 남편은 부인을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천하의 부정한 여인, 도저히 함께 살아 줄 수 없는 여인, 그 누구에게도 시집가서 살 수 없는 여인을 데리고 살아주는 성인 군자로 자신을 들어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무슨 일에나 이 부인 은 이 과거에 의하여 점수 먹여졌고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표시 할 수 없는 압 박과 갈등이 반복되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눈물을 펑펑 흘리며 말하는 부인 은 "어떻게 하면 좋아요 이혼하면 안되나요 정말 정말 이대로는 숨이 막혀 살 수 없어요, 어디 나갈 때면 아이들까지 따로 데리고 나가며 천하의 부정한 여인 으로 대하는 이 고통은 정말 정말 감당할 수 없습니다. 죽을 수 없나요" 여러분,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되겠습니까 이런 정도의 문제도 해결 못하는 신자가 평생을 신실하게 예수님을 믿었다는 남편입니까 도대체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왜 사는 것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예수 믿으면 우리를 천국으로 들어가게 하 신다고 분명히 약속 하셨는데 왜 예수 믿는 우리들을 예수 믿던 그 날 즉시 천 국으로 데리고 들어가지 않고 이 땅에 살게 하셔서 가지각색의 고통과 슬픔을 당하게 하시거나 또는 형편없는 신앙생활을 하도록 내어버려 두십니까 예수를 믿자마자 낙원으로 데리고 가버리면 남을 속 썩이지도 않고 죄도 안 지을텐데 왜 지상에 남겨 두셔서 어리석은 짓을 하도록 하게 하십니까 왜 이러실까요 이 부분에 대하여 분명한 해답을 가지고 사셔야만 이 세상의 생활을 헛되이 무 익하게 보내지 않게 됩니다. 아울러 이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이 사단과 사람들 의 조롱거리가 되지아니하며 최고로 행복하게 살아야 할 예수님의 가족인 여러분이 무지에 속아서 불행하게 살게 됨을 막을 수 있습니다. 1 인생의 목적을 분명히 가지고 사십시오' 그리스도인은 왜 이 땅에 살아 남아 있어야 합니까
첫째로 지금 예수 믿고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의 자녀로 막 출생한 것임으로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의 성품과 기질을 키워 가지고 천국에 들어가게 하시려는 것이요.
둘째는 나만 구원받아서는 안되고 다른 사람들 곧 내 이웃으로 시작 하여 세계만민중에 될 수 있으면 보다 많은 사람을 구원시키기 위하여 전도와 선교를 하다가 오라고 우리를 이 땅에 오래도록 남겨 두시는 것입니다.
셋째로는 돈과 명예와 온갖 세상의 자랑거리를 중심으로 하여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 중에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한 가족이 되어 서로 사랑하며 키워 주며 위로 하며 함께 행복을 나누며 지상에서 은혜와 진리로서 천국을 이루며 사는 교회가 있음을 보여주며 증거 하다가 오라고 우리를 이 땅에 남겨 두신 것입니다. 이것 이 바로 마5:16의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는 말씀과 요 13;34의 "새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서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나의 제자 인줄 알리라"라는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을 닮는 성숙한 인격,'다른 사람의 영혼 구원을 위한 전도와 선교,'믿는 사람들을 한 형제와 자매로 알아 서로 사랑하되 예수님 이 몸바쳐 우리를 사랑 하셨듯이 서로 사랑하는 교회생활. 이 세 가지를 인생의 최고 목적으로 삼아 살고 있습니까 기억하십시오. 인격 성장, 전도와 선교, 서로 사랑의 천국 이것을 위하여 교회가 있는 것이요, 여러분과 제가 여기 오늘 도 살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사명이요, 그리스도인의 생존 목적 입니다.
그런데 너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삶의 목적을 잘못 가지고 삽니다. 겉 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 하면서도 실질적으로 시간과 돈과 인간관계와 그의 마음과 예배와 봉사 활동을 보면 전혀 하나님을 위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옛날 솔로몬 임금의 삶의 모습을 한번 점검해 드려 보겠습니다. 솔로몬은 다음 의 4가지 면에서 인생의 최고의 영광을 누린 왕입니다.
1.권세면에서-왕으로 40년간 다스렸습니다. 그것도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 이 분리된 현하 민주주의 시대의 대통령 같은 것이 아니고 삼권을 홀로 가지고 통제하는 전제 군주의 왕으로 40년을 통치한 것입니다.
2.부귀면에서-솔로몬의 그릇은 다 금이었고(왕상10:21)은은 돌같이 흔하였 고(왕상10:27) 귀히 여기지 아니할 정도이었으니(왕상10:21) 솔로몬 왕의 부 귀가 짐작되지 않습니까
3.지혜 면에서 보면 더욱 놀랍습니다. 잠언 3천을 말했으니 철학 박사요, 노 래 1천 다섯을 지었으니 문학 박사요, 초목에 밝았으니 식물학 박사요, 동물에 통달했으니 동물학 박사요, 물고기에 밝았으니 수사학 박사였습니다.(왕상 4:32-33)
4.쾌락 면에서 보면 1천명 여자와 관계를 하였고(왕상11:3) 눈과 마음에 원 하는 것을 다 해본 왕이었습니다. 전2:1-10을 읽어보세요, 정말 굉장한 쾌락을 누려 본 왕입니다. 이와 같이 4가지 면에서 인생 최고의 욕망을 누린 그가 "헛 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하였으며 자신의 쾌락적인 웃음을 논하기를 미 친 짓이라고(전2:2) 고백하였다는 것은 깊이 생각해 두어야 할 말들입니다. 많 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믿어 솔로몬처럼 최고의 욕망과 행복을 누려 보고 싶 어합니다. 자기의 영혼 구원을 위하여 진정 가치 있는 예수님의 가족으로 살게 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의 소원과 말씀에는 무관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냥 내버려두시고 쓰지를 않습니다. 주님은 어떤 사람들을 쓰십니까 너와 나의 인격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일 에,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전도와 선교와 그 일을 이루는 일에, 서로 사랑하는 예수님의 가족을 이루어 사는 메주 덩어리로 천국의 보배들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사는 일을 목적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 이들을 예수님은 이 역사 무대에서 보람있고 의미 있는 일꾼으로 사용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결코 솔로몬과 같은 쾌락과 행복만을 추고하며 살려는 사람은 주 예수님께서 쓰실 수 없습니다. 쓰실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버리십니다. 여러분 그렇게 젊은 날에 하나님을 잘 믿었던 솔로몬의 최후가 어떠하였습니까 국토는 두동강 이로 쪼개지고 우상 이산과 들에 가득하고 국민의 마음은 솔로몬을 다 등지고 반역자 여로보암에게로 가 버렸으며 외세의 침략이 끊임없이 계속되어 마음 편 할 날이 없었습니다.(왕상11:14-25) 이것은 우리에게 무슨 교훈을 줍니까 예수를 믿어도 솔로몬같이 세상의 쾌락과 행복을 중심으로 하는 사람의 최후가 어 떠함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2가치관을 따라 삽시다. 그러면 어떻게 살면 그리스도인은 참된 목적대로 살수 있습니까 그 대답은 인본주의 가치관이 신본 주의 가치관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치관이 란 자신과 다른 사람 및 세상 모든 것의 값어치를 판단하는 기준입니다. 인간이 중심이 되어 가치와 점수를 먹이던 것을 이제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여 점수를 먹이고 그 결론에 따라 살아가야 참된 목적을 이루며 진정 행복한 제자의 삶을 살게 된다는 말입니다. 솔로몬 왕은 청년 시절 하나님을 사랑하고 부친 다윗의 신앙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권세도 부귀도 학문과 지식, 그리고 자기의 가진 모 든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도구에 불과 하였습니다.그러나 그 정신을 현실에 빼 앗겨 자기가 중심이 되어 세상을 볼 때는 권세와 부귀와 학문과 지식과 쾌락이 제일가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럴 때는 그것들을 소유하고 누리는데 모든 정력과 시간을 다 쏟아 부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 중심이 되어 세상의 부귀와 권세와 학문 지식과 쾌락을 보니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섬 기는 도구가 되지 않는 한 다 헛되고 헛되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전 도서 12장에서 하나님을 공경하고 그 명령을 지키며 사는 것이 인생의 본분이라 고 결론을 지어 줍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으면서 이러한 결론이 나왔습니까 여러분, 신약 성경은 이렇게 하나님 중심 곧 신본 주의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 사람을 아주 간단하게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르며 사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롬 10:9-10을 보면 구원을 받으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개인적인 구세주와 주인(Lord)으로 영접해야 한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 은 구세주 라는 말은 참 좋아하지만 주인이라는 말에는 알레르기 반응을 보입니다. 죽은 후에 천국 가는 것은 할렐루야이지만 이 땅에서 하나님께 일일이 간섭받으며 사는 삶은 고리타분하고 부자유스럽고 부담스럽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약 성경에는 구세주라는 말은 단 15번밖에는 쓰인 적이 없는데 반해, 주인이 라는 말은 무려 618번이 등장하는데요, 이것은 결국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은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성경이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솔로몬 왕처럼 자 기가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세상의 모 든 것에 가치를 두고 살던 지금까지의 삶은 모두가 허무한 것이요, 부끄럽고 더러운 죄악 투성이요, 견딜 수 없는 고 통과 무의미의 종 노릇 하는 삶에 불과함을 깨달아 이제 거기로부터 나를 건져 내실 수 있는 단 한 분이신 예수님을 선택하는 것, 그래서 이제부터는 내가 나 와 이 세상의 모든 것의 주인이 아니요,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 고 그분의 계획대로 사는 것, 이것이 구원 아닙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을 구세주 로 모시고 주인으로는 모시지 않는다는 사람은 그 구원 자체가 의심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하고 부르는 것은 이제는 신본 주의로 인간관계를 평가하며 살겠습니다. 하는 것이며 또한 주님'하는 것은 하나님 중심으로 모든 일에 가치를 먹여서 살겠다는 외침이요, 주님'하는 것은 '성경에 모든 것을 비 추어 가치를 정하고 행동하겠습니다'라는 고백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눅14장 25-35절의 말씀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들, 신본 주의로 사는 제자들, 예수님의 가족으로 사는 사람들의 삶의 특징을 세 가 지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 세 가지는 인간 관계,자기 사명 그리고 소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첫째-하나님 최우선주의 인간관계입니다.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제자들은 "예수님을 1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한다"고 본문 26절에서 예수님은 강조하셨습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그 것은 그 누구도 예수님보다 윗자리에 앉을 수없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곧 그 어느 누구와도 우리 마음의 첫 번째 자리를 공유하 기 원치 않으시는 하나님께 대한 명백한 우상 숭배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생애를 살펴보세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 로, 온 천하 만민에게 복을 받게 할 자로 믿음의 조상으로 택하고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걸맞은 인격으로 성숙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최우선 가치에 두는 것을 집요하게 훈련시키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아 브라함을 "하나님의 벗"이라 칭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정 많은 아브라함은 사람 문제 때문에 하나님께 여러 번 테스트를 받았습니다.(약2:23) 먼저는 본 토 친족 아비집 보다 하나님을 더 소중히 여긴다는 시험을 받습니다. 그 다음으 로는 불쌍한 조카 롯을 달고 가나안 땅으로 나왔다가 배반을 당하는 시험을 통 과합니다. 다시 세 번째로는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낳고 10여 년 간 미련을 두 다가 결국은 하갈과 아들을 광야로 내어보냄으로 하나님을 첩과 그 아들보다 더 소 중히 여김을 보여 드립니다. 아브라함의 마지막 시험은 백세에 낳은 이삭과 하나님과의 관계 문제입니다. 당신과의 긴밀한 관계를 가장 소중히 여기시는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자녀로 주신 이삭이 혹시라도 우상시되어 아브 라함의 인생을 망치게 될까 봐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바치라고 하십니다. 창세 기 22장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답게 명령에 순종함으로써,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다는 것과 하나님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신 분임을 증명해 보 입니다. 이 때에 하나님은 너무나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하시며 그 유명한 여호와 이레의 복을 주십니다. 이렇듯,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 나를 사랑하 시는 아버지를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특권이 우리에게 있는데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이 사건을 통해서 이삭은 '나보다 하나님이 중요 하신 분이구나' 라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진리를 가슴 판에 또렷하게 아로새기 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삭이 하나님을 경외하게 된 것은 바로 아브라함의 똑바 로 된 교육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후일에 이삭이 창26장에서 흉 년을 만났을 때에 애굽으로 내러 가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쉽게 순종하게 된 것입니다. 이 문제가 그만큼 고질적이기 때문에 예수께서 이것을 의도적으로 제자의 조건들 중 첫번에 놓으신 것입니다. 복잡한 인간관계에 얽매여 이리 저 리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고 주님을 위해 능력 있는 제자의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가족이나 주위 친한 사람들이 불신자일 때 그들이 적극적으로 핍박을 하거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는 경우가 아닐 때도, 그들 과의 관계가 깨지거나 그들을 실망시킬까 봐 두려워서 줄기차게 예수님만을 고 집하지 못하고 안타깝게 도중 하차하는 성도들이 얼마나 많은 지요.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할 때 모든 것을 더하신다고, 즉 우리의 가족도 책임 져 주신다고 약속하셨는데, 가족을 실망시키는 것이 두려워 예수님 을 실망시키는 사람들이 허다한 것이 현실입니다. 혈연 지연, 학연의 유대 관계 가 특히 강한 한국 사회에서 사람에 대한 가치관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주님의 제자다운 삶을 살기가 힘들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둘째-자기 십자가 곧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누구든 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27절). 우리 한국 교회에서 자주 낭비되는 단어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십자가"라는 단어라고 생각됩니다. 골치 아픈 문제가 생기면, 또 껄끄러운 인간관계가 발 생하면 우리는 그 대상이나 골치 아픈 문제를 가리켜서 흔히 "내십자가"라고 말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라는 단어를 그 정도의 차원에서 처리해 버릴 수 있을까 요 그것이 십자가의 의미일까요 십자가는 단순한 고통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고통 이상의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십자가의 참뜻을 알기 위해서는 언제나 예수님에게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에게 십자가는 무엇을 의미했습니까 그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심한 형극의 고통 정도의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에게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인류의 구속을 위하여 그분은 십자가 를 지셨습니다. 그것이 그분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이 십자가야말로 그리스도의 사명이었습니다. 속죄의 길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가 그리스도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었던 것처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본문을 잘 읽어보면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라고 말씀 하신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제자의 삶을 살기 위해서 참으로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내 생애 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분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향한 하 나 님의 뜻을 위하여 삶 전체를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당신은 "나는 이것을 위해서 내 전공 과목과 내 청춘과 정열과 은사, 내 모든 것을 도구로 바치겠다. 이것이 나의 사역이다"라고 할 만한 것을 발견했습니까 불행하게 한국 교회에 서 잘못 적용된 단어 중에 하나가 "미니스터입니다. 우리는 흔히 미니스터를 " 목사"라 번역하지만 사실 좀더 정확한 번역은 "사역자"입니다. 목사만이 사역자 입니까 신약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모든 당신의 자녀들에게 사역을 주기를 원하십니다. 볼티모어의 한 미국 교회의 주보-주보 앞장 "사역자-이 교회의 모든 회 원들, 그 아래에 담임 목사-"모든 사역자들을 돕는 사람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사역자입니다. 종교개혁의 놀라운 영광 중에 하나는 사제들의 손에만 쥐어 있던 성경이 평 신도의 손으로 넘어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사제들의 손에만 아직도 머물러 있는 사역이 모든 평신도들에 의해서 활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목사"와 "평신도"라는 칭호부터 가 그렇게 합당한 것은 아닙니다. 지도자로서의 목사의 기능은 여전히 소중하고 필 요하지만 사역은 목사 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내 생애를 걸고 하나님이 내게 주 신 사역을 감당하여 그것을 통해 그리스도를 드러내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 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어떤 고통과 눈물이 있을지 라도 기어이 사명을 성취하겠다고 결단하고 그 생애의 목표를 향해서 뒤돌아보지 아 니하고 걸어가는 사람, 그가 바로 제자요 예수님의 가족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들의 삶이 돌변했습니다. 자기가 영위 하던 삶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동시에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이 런 사람들이 인류의 역사를 뒤집었고, 2000년 기독교 역사를 볼 때도 구태의연 하게 세상의 권위에 빌붙거나 일신의 영달을 인생의 목적으로 추구한 사람들은 이름도 남기지 못했거나 오명을 남겼습니다. 저는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불신자들에게 무시당하는 이유는 예수님을 닮는 삶을 추구해서라기보다는 예수님이라는 이름만 걸었지 예수님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 의 영광을 버리고 종이 되어 잃어버린 영혼을 구하시려 이 땅에 오신 예수님, 그 한 목적을 위해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초개와 같 이 권리를 포기하셨던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지는 것이 제자의 삶입니다. 예수님 이 하나님과 그러셨던 것처럼, 주님의 제자는 예수님과의 사랑의 관계성 속에서 그분과 한 뜻, 한 목적, 한 운명으로 사는 자입니다. 영혼 구원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회복시킨다는 지상 최대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놀랍게도 우리가 예수님의 동역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고,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되고 보니 그렇게 살고 싶은 마음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마음속에 서 모락모락 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외 다른 것들은 모두 이런 목 적을 이루기 위한 보조수단인 되기 때문에 더 이상 그것들에 휘말려서 살 필요 가 없습니다. 이 진리를 깨달은 사람에게 진정한 자유가 허락됩니다. 결과적으 로 예수님을 믿고도 인생의 목적이 하나님이 맡겨 주신 사명완수라는 목적으로 변화되지 않은 사람들은 수시로 교회 문턱을 밟는다 해도 여전히 불신자와 똑같 이 피곤한 삶을 살수밖에 없습니다. 이제사역이 목적인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전담 사역을 하든 하지 않든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주신 여건에 따라, 은사에 따라 움직이면 됩니다. 그 사역은 예수님 만나는 날부터 시작되어 이 세상 떠나는 날까지 계속되어야만 합니다. 구원받은 성도 여러분' 이제 여러분 모두가 사 역자임을 자각하고 긍지를 가지십시오.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 하 나 찾아서 실천하십시오'
(1)이웃이나 직장, 학교 어디서나 불신자를 만나게 되면 전도 대상으로 알아 중보기도를 시작하고 틈틈이 접촉하여 주보나 전도지를 주거나 사랑의 편지를 보낸다
(2)주님을 모르는 한 영혼에게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 집으로 초대하여 저녁을 대접하며 친해진다.
(3) 마음이 조금 열리게 되면 새신자 기초 교제 등의 일대일 성경 공부를 통 해 복음을 소개하여 예수님을 영접하게 한다.
(4) 드디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면 구역 제자 훈련과 교회 각종 활동 속으로 인도하여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러한 삶이 일상적인 삶의 모습이 되도록 우리 모두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셋째-소유권 양도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 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33절). 이 말씀의 뜻이 무 엇입니까 내용 그대로 소유를 다 버리라는 뜻입니까 아니면 지금 당장 가진 재산 다 팔아서 교회에 헌납해야 할까요 1962년에 소천한 오스트리아 사람 프릿츠 크라이슬러의 신앙을 소개합니다. 그는 전대미문의 대 바이얼린 연주가 였습니다. 그는 매혹적인 연주 솜씨로 세계 도처의 청중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는 또 최고의 연주료를 받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사양했으며 늘 검소 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가 한번은 "내가 받은 연주료가 나 개인의 소유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공금이며 적절한 곳에 쓰이도록 나에게 맡겨진 기금일 뿐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자신은 물론 그의 아내의 의견을 말하면서 "만약 우리가 비싼 음식을 주문하게 되면 이것은 마치 남의 몫의 빵 한 조각 또는 어떤 어린아이에게 갈 우유 한 병을 빼앗게 된다는 죄책감을 느낍니다. 우리에겐 음악 분야에서 흔히 말하는 성공을 해서 살아온 세월이지만 우리 자신을 위해서 집을 짓지 않았습니다. 집과 우리 사이에 이 세상의 모든 집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소유권을 주님께 양도한 사람들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청지기적인 삶이라고 합니다. 나의 소유는 주인에 의하여 잠시 내게 맡겨진 것에 불과합니다. 청지기는 자기 재산이 없는 자입니다.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청지기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을 철저하게 그분 뜻대로 사용하고자 그분의 뜻을 묻는 사람입니다. 소유물을 주께서 원하 시는 일에만 사용하기 위해서 관리하고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사람, 그가 제자 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제자는 물질뿐만이 아니고 시간과 재능을 비롯한 자신 의 모든 소유가 주님의 것임을 인정하며 그것을 보여 주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소유권을 포기하기 전에는 예수님이 주인일 수 없습니다. 돈주머니는 회개한 적도 없이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오늘날 교회 안에는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큰일입니다. 가진 것이 많으냐 적으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부자들의 허영과 사치를 마구 욕하는 이면에는 은근한 부러움이 도사리고 있는 경우가 십중팔구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재주가 없어서 가만히 있지 기회만 생기면 왔다 갔다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학생 시절부터 청지기의 삶을 강조하며 생활 수준을 최소한 간소하게 유지하는 것을 추구하는 정신을 키워야 합니다. 살림을 늘리는 것은 쉬워도 줄이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더 큰집 더 좋은 자동차를 위해 계속해서 지출을 늘려 나가고 그 지출을 감당하 기 위해 더많이 일하느라 헉헉거리는, 물질에 얽매인 생활 속에서는 결코 주님 을 위해 자유롭게 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돈 자체는 중립적입니다. 사람들이 돈에 가치를 두기 때문에 실질적인 파워가 생깁니다. 처음에는 돈을 행복을 사는 수단으로 사용하다가, 돈이란 것은 있으면 있을수록 "조금 더"를 요구하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 죄의 노예가 됩니다.
그러므로 딤전6:10에서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했던 것입니다. 별난 교회 버클 랜드 교인들이 물 질관이 변화되자 여러 가지 놀라운 일들이 일어난 것을 이 남하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습니다. "직장을 선택할 때도 봉급보다는 융통성 있는 근무 환경 을 더 우선적으로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사역할 시간을 최대한으로 확보하기 위 해서입니다. 쎌의 형제가 직장을 잃었을 때, 새로운 직장이 생길 때까지 다른 형제들이 매달 생활비를 모아 주며 사랑을 확인했습니다. 학비가 부족한 형제자매를 위해 넉넉지 않은 생활비를 털어 등록금을 몰래 내어주는 일도 심심지 않게 발생했습니다. 법적 하자 없이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도 주님이 원하시는 방법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어 과감히 거절했을 때 오히려 생각지도 않 던 방법으로 주님이 채워 주심을 경험했다는 간증도 있었습니다. 물질은 더 이 상 우리를 지배하거나 속박하는 존재가 아니라 사랑하는 영혼을 섬기는 데 사용 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자기 돈, 자기 시간, 자기 몸으로 자기 자신을 위해 누리고 살 권리가 있지만 스스로 포기하고 복음을 위해 교회를 위해 희생하고 낭비하는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 삶입니까
<결론>
이렇게 하나님 최 우선주의 인간관계, 내게 맡겨진 사명 감당, 소유권 양도 의 세 가지 가치관"이 해결되어야 인본주의 자에서 신본 주의자로 바뀌게 됩니다. 이것들이 해결되지 않으면 평신도 사역을 해도, 신학교를 가도, 목사가 되 어도, 선교사가 되어도 인본주의 자는 역시 인본주의 자로 끝나고 맙니다. 상처 와 실망을 남에게 안겨 주는 신자, 전도 문을 막는 신자, 예수를 믿어도 불행과 허무 속에 방황하는 신자, 하나님과 교회와 사람을 원망하다가 세월을 다 낭비 해버리는 신자가 누구입니까 인본주의 가치관, 자기중심 가치관에 사로잡혀 사는 신자들입니다. 당신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십니까 이제 주님 중심 가 치관을 따라 사십시오. 그러면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하시리라는 주님의 말씀이 생생하게 체험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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