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길 좁은문 (눅13:22-30)
본문
서커스를 구경하다 보면 가장 마음을 졸이고 긴장이 되는 순서가 아마도 기등과 기등사이에 밧즐을 묶어 고는 그 위를 걸어서 건너가는 묘기일 것입니다. 비록 발아래 안전망을 설치했 다고 해도 떨어지면 어쩌나 하고 염려하는 마음으로 바라봅니다. 실수하지 않고 건너갈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모두 숨을 죽이 고 시선을 집중합니다. 극적인 효과를 위해서 눈을 가리고 건너거나 긴 장대를 들고 건 너가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외발 자전거에 몸을 싣고 건너가기도 합니다. 무사히 건너가는 묘기를 마치면 일제히 우레와 같은 박 수와 소리를 지르면서 환호성을 부릅니다. 세상에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좁은 길, 인간의 발로 걸을 수 있는 가장 좁은 질 이 바로 이 길이 아닌가 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제 주신 말씀은 주님께서 복음을 전하시고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실 예루살렘으로 발걸음을 옮겨 놓으시면 서 구원의 진리의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은 '주님 구원받을 사람이 적습니까' 하는 질문에 대 한 대답으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 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고 말씀합니다 반면에 마태복음은 산상보훈 가운데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을 대 상으로 가르치신 교훈으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 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 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고 말씀합니다.
복음서를 보면 주님과 함께 떡을 나누는 잔치 자리 각색 병자 를 고치는 기적의 자리, 능력의 자리에는 구름떼와 같이 많은 사람 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고난의 잔을 마시는 자리 에는 애써 외면하고 물러갔습니다, 고난의 길을. 십자가의 길을 끝 까지 동행했던 사람은 연약한 여인들과 죽음 앞에 겁에 질린 제자 들이었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하며 닫힌후 에는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천국의 잔치 자리에 기쁨으 로 참여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바깥 어두운 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며 있을 사람이 있을 것으로 종말론적인 교훈으로 말씀합니다. 반면에 마태복음은 좁은 문과 넓은 문, 좁은 길과 넓은 길을 대비 시키면서 생명의 길. 구원의 길은 좁고 협착하여 사람들에게 인기 가 없지만 제자들이 걸어야함을 가르치면서 교회론적으로 말씀하 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신 좁은 길은 고행주의나 공로주의. 금욕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의 길은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화려한 길이 아니라 찾는 사람이 적은 좁은길이라고 말씀합니다. 좁은 길을 걸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아 니라 구원받은 백성이기에.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좁은 길, 좁은 문 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에 힘쓴다는 말은 올림픽 육상선수가 세계기록을 갱신 하기 위해 골인지점을 향하여 있는 힘을 다하여 전력 질주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권투선수가 챔피언 벨트를 차지하기 위해서 사력을 다해서 싸우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해서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 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 심을 입었고 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딤전 6:ll-12) 지난 한 주간도 험한 세상에서 험한 일을 당하면서 산 것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운 것입니다.
어떤 육상 선수가 백미터 기록경기에서 '땅!' 하고 출발 신호가 울렸는데 운동장의 트랙을 한가로이 공원을 거닐듯이 두리번거리 면서 걸어간다면 어느 코치가 그 선수에게 금메달을 기대를 하겠 습니까 아무리 사격술이 뛰어나고 신체조건이 좋은 병사라 할지라도 실 제 전투상황에서 코홀리개 아이들이 하는 전쟁놀이를 하는 마음으 로 전투에 임한다면 그 어느 지휘관이 그 병사에게 기대를 하겠습니다. 누가 그 전투에서 승리한다고 장담할 수 있Jt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네 인생은 한가로이 공원을 두리번거리며 거니는 산보가 아닙니다. 오늘도 우는 사자같이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니는 우리의 대적 마귀와 싸움이요. 영적인 전쟁입니다. 하니닙 의 나라를 목표로 끊임없이 달리는 경주입니다. 교회는 할 일 없고 볼 일 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노닥거리는 놀 이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를 자녀디서지도록 양육하고 주님 의 군사로 훈련시키고 무장시키는 훈련소입니다. 모든 분주하고 바쁜 일들을 멈추고 주님의 몸된 성전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은 작전타임입니다. 농구경기나 배구경기에서 경기가 잘 풀리지 않으면 코치나 감독 이 타임을 불러서 선수들을 모으고는 잘못된 것을 지적하면서 이 렇게 저렇게 하라고 지시를 하면서 동시에 타는 목도 축이게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를 예배의 자리로 불러 주신 것은 예배 가운데 임하시는 주님을 만나고, 말씀을 통해서 지혜를 얻고, 기도와 찬송 가운데 용기와 새 힘을 얻어서 다시금 세상에 나아가 하니떴 께서 맡기신 사,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좁은 길을 가게 하기 위 한 것입니다. 믿는다고는 하면서도 넓은 길. 넓은 문을 택하고.좁은 문 앞에서 왔다 갔다 할지언정 세상 재미에 취하여 들어가지 않는 많은 사람 들이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서 주님을 알고. 주님이 무슨 일을 하셨는지,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줄줄 외우고 있 어도 행동으로 실천되지 않을 때는 불합격이라는 말입니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 복음 7:21) 히나님께서는 사도바울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 으리니'(로마서 2:13)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야고보 기자를 통 해서는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야고보 l:22)고 말씀합니다. 주님께서 구원을 얻는 방법이 좁은 길이요, 좁은 문이라고 말씀 하신 것은 그 길을 가지 못할 것이니 포기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절망의 선언이 아니라 준비 없이는. 훈련이 없이는 가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서커스 공연장에 기등과 기둥 사이에 매여 있는 밧줄을 끌어내 려 운동장 한가운데 쭉 깔아놓고 지금 당장 여러분에게 눈을 가리 고 가든지, 장대를 들고 가든지, 외발자전거를 타고 가든지, 그래 도 자신이 없으면 맨눈으로 발을 땅에 딛지만 말고 걸어가라고 떠 밀면 여러분은 자신있게 걸을 수 있으십니까 당장 떨어져 죽을 위험이 없는데도 주춤주춤 망설이며 나는 못 간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허공을 가로지르는 외 줄을 유유히 걸어가는 대는 그 시간이 비록 짧은 거리, 짧은 몇 분의 시간이라 할지라도 얼마나 긴 거리를, 얼마나 긴 시간을 왔다 갔다했는지 모릅니다. 대의 눈물이, 광대가 그 위를 걷기 위해서 흘린 땀이 내게는 없기 때문입니다. 광대가 줄 위에 올라갔다가 떨 어지고 올라갔다 떨어지면서 다리에, 온몸에 든 피멍이, 상처가 내게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좁은 길, 좁은 문은 준비 없이는, 훈련이 없이는 가 지 못하는 길입니다. 구경하는 것만으로 안된다는 말입니다. '눈물을 홀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 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 다'(시편 126:s-6)
하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에게 기쁨의 열매를 주시 지 않습니다, 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 가정을 일으키고 교회에 봉사하기 위해서 험한 세상의 한 모임에서 셔츠가 홍건히 땀에 젖도록 발버둥치고 계십니까 흑시 부족하여서 쓰라린 실패의 눈물을 흘리고 계십니까 도대체 하니텃이 살아계시다면 이럴 수가 있느냐고 낙심한 일을 만났습니까 모두 내가 짊어지고 가야하는 십자가, 내가 걸어가야 하는 좁은 길입니다. 주님의 부활의 영광은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서 주어졌다는 사실 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 삶의 형편 가운데 흘리는 눈물이, 땀 방울이 진하면 진할수록 기쁨의 열매는 더 달콤합니다. 좁은 문은 닫히면 열리지 않기 때문에 좁은 문입니다. 기회가 지나가면 더 이상 어쩔 수 없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표준도 없고 무제한적인 것은 아닙니다. 한 번 닫은 후에'라고 말씀합니다. 좁은 문은 동서남북 누구에게든지 가능성으로 열려있는 문이기는 하지만 들어가기를 힘쓰는 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 제한성을 가 지고 있습니다. 여럿이 우르르 몰려 갈 수 있는 문이 아니라 주님 과 나만이 일대일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나 혼자만이 들어가야 하는 문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성이든지 큰 성문이 있다면 그 옆에 조그마한 곁문이 있다 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서 성문이 닫힌 후에 성안으로 들어가야 할 경우나 급히 성밖으로 나갈 때 사용하는 문으로, 이 문이 작다고 하여 바늘귀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주님의 비유 가운데 부자가 천 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고 한 것이 바로 이 문을 가리킵니다. 돈 은 상인이 아무리 짐이 많고. 많은 짐승을, 낙타를 몰고 왔 더라고 그 문을 들어가려면 다 포기하고 몸만 겨우 빠져나갈 수 있는 문입니다. 또한 허리를 굽히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문입니다. 겸손하지 않으면 들어 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몸된 성전에 나와서 고개를 숙이며 예배를 드리는 일은 구원의 문을 통과하기 위한 준비요, 훈련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 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16)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로마서 lO:l
3) 재물이 많은 자나 지식이 많은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이나 병든 사람이나 동서남북, 전세계 어느 누구도 주님의 이름을 부름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의 문은 열려 있지만 주의 이름을 부 르는 사람에게만 열리는 문이기 때문에 좁은 문입니다. . 누가복음은 예수님에 대해서 온 인류의 구원자로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의 족보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마태복음 1:l)라고 유대인의 메시아에 초 점을 맞추고 증거하고 있는 반면 누가복음 (누가복음 S:23-38)은 예수님부터 시작해서 아담과 하나님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 을 봅니다. 즉 온 인류의 구원자이신 주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동서남북 사방에서 구원의 기쁜 소식을 듣고 좁은 길을 걸어서 좁은 문을 들어온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니닙 나라의 잔치는 구경꾼들이 모이는 곳이 아니라 눈물 홀리며. 땀흘리며. 피흘리기까지 애쓰고 수고하는 일꾼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오늘 하니님께서는 다른 사람 아닌 바로 여러분이 좁은 길을 걸 어서 좁은 문으로 동서남북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오기를 원하 십니다.
복음서를 보면 주님과 함께 떡을 나누는 잔치 자리 각색 병자 를 고치는 기적의 자리, 능력의 자리에는 구름떼와 같이 많은 사람 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고난의 잔을 마시는 자리 에는 애써 외면하고 물러갔습니다, 고난의 길을. 십자가의 길을 끝 까지 동행했던 사람은 연약한 여인들과 죽음 앞에 겁에 질린 제자 들이었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하며 닫힌후 에는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천국의 잔치 자리에 기쁨으 로 참여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바깥 어두운 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며 있을 사람이 있을 것으로 종말론적인 교훈으로 말씀합니다. 반면에 마태복음은 좁은 문과 넓은 문, 좁은 길과 넓은 길을 대비 시키면서 생명의 길. 구원의 길은 좁고 협착하여 사람들에게 인기 가 없지만 제자들이 걸어야함을 가르치면서 교회론적으로 말씀하 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신 좁은 길은 고행주의나 공로주의. 금욕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의 길은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화려한 길이 아니라 찾는 사람이 적은 좁은길이라고 말씀합니다. 좁은 길을 걸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아 니라 구원받은 백성이기에.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좁은 길, 좁은 문 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에 힘쓴다는 말은 올림픽 육상선수가 세계기록을 갱신 하기 위해 골인지점을 향하여 있는 힘을 다하여 전력 질주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권투선수가 챔피언 벨트를 차지하기 위해서 사력을 다해서 싸우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해서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 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 심을 입었고 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딤전 6:ll-12) 지난 한 주간도 험한 세상에서 험한 일을 당하면서 산 것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운 것입니다.
어떤 육상 선수가 백미터 기록경기에서 '땅!' 하고 출발 신호가 울렸는데 운동장의 트랙을 한가로이 공원을 거닐듯이 두리번거리 면서 걸어간다면 어느 코치가 그 선수에게 금메달을 기대를 하겠 습니까 아무리 사격술이 뛰어나고 신체조건이 좋은 병사라 할지라도 실 제 전투상황에서 코홀리개 아이들이 하는 전쟁놀이를 하는 마음으 로 전투에 임한다면 그 어느 지휘관이 그 병사에게 기대를 하겠습니다. 누가 그 전투에서 승리한다고 장담할 수 있Jt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네 인생은 한가로이 공원을 두리번거리며 거니는 산보가 아닙니다. 오늘도 우는 사자같이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니는 우리의 대적 마귀와 싸움이요. 영적인 전쟁입니다. 하니닙 의 나라를 목표로 끊임없이 달리는 경주입니다. 교회는 할 일 없고 볼 일 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노닥거리는 놀 이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를 자녀디서지도록 양육하고 주님 의 군사로 훈련시키고 무장시키는 훈련소입니다. 모든 분주하고 바쁜 일들을 멈추고 주님의 몸된 성전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은 작전타임입니다. 농구경기나 배구경기에서 경기가 잘 풀리지 않으면 코치나 감독 이 타임을 불러서 선수들을 모으고는 잘못된 것을 지적하면서 이 렇게 저렇게 하라고 지시를 하면서 동시에 타는 목도 축이게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를 예배의 자리로 불러 주신 것은 예배 가운데 임하시는 주님을 만나고, 말씀을 통해서 지혜를 얻고, 기도와 찬송 가운데 용기와 새 힘을 얻어서 다시금 세상에 나아가 하니떴 께서 맡기신 사,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좁은 길을 가게 하기 위 한 것입니다. 믿는다고는 하면서도 넓은 길. 넓은 문을 택하고.좁은 문 앞에서 왔다 갔다 할지언정 세상 재미에 취하여 들어가지 않는 많은 사람 들이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서 주님을 알고. 주님이 무슨 일을 하셨는지,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줄줄 외우고 있 어도 행동으로 실천되지 않을 때는 불합격이라는 말입니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 복음 7:21) 히나님께서는 사도바울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 으리니'(로마서 2:13)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야고보 기자를 통 해서는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야고보 l:22)고 말씀합니다. 주님께서 구원을 얻는 방법이 좁은 길이요, 좁은 문이라고 말씀 하신 것은 그 길을 가지 못할 것이니 포기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절망의 선언이 아니라 준비 없이는. 훈련이 없이는 가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서커스 공연장에 기등과 기둥 사이에 매여 있는 밧줄을 끌어내 려 운동장 한가운데 쭉 깔아놓고 지금 당장 여러분에게 눈을 가리 고 가든지, 장대를 들고 가든지, 외발자전거를 타고 가든지, 그래 도 자신이 없으면 맨눈으로 발을 땅에 딛지만 말고 걸어가라고 떠 밀면 여러분은 자신있게 걸을 수 있으십니까 당장 떨어져 죽을 위험이 없는데도 주춤주춤 망설이며 나는 못 간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허공을 가로지르는 외 줄을 유유히 걸어가는 대는 그 시간이 비록 짧은 거리, 짧은 몇 분의 시간이라 할지라도 얼마나 긴 거리를, 얼마나 긴 시간을 왔다 갔다했는지 모릅니다. 대의 눈물이, 광대가 그 위를 걷기 위해서 흘린 땀이 내게는 없기 때문입니다. 광대가 줄 위에 올라갔다가 떨 어지고 올라갔다 떨어지면서 다리에, 온몸에 든 피멍이, 상처가 내게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좁은 길, 좁은 문은 준비 없이는, 훈련이 없이는 가 지 못하는 길입니다. 구경하는 것만으로 안된다는 말입니다. '눈물을 홀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 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 다'(시편 126:s-6)
하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에게 기쁨의 열매를 주시 지 않습니다, 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 가정을 일으키고 교회에 봉사하기 위해서 험한 세상의 한 모임에서 셔츠가 홍건히 땀에 젖도록 발버둥치고 계십니까 흑시 부족하여서 쓰라린 실패의 눈물을 흘리고 계십니까 도대체 하니텃이 살아계시다면 이럴 수가 있느냐고 낙심한 일을 만났습니까 모두 내가 짊어지고 가야하는 십자가, 내가 걸어가야 하는 좁은 길입니다. 주님의 부활의 영광은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서 주어졌다는 사실 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 삶의 형편 가운데 흘리는 눈물이, 땀 방울이 진하면 진할수록 기쁨의 열매는 더 달콤합니다. 좁은 문은 닫히면 열리지 않기 때문에 좁은 문입니다. 기회가 지나가면 더 이상 어쩔 수 없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표준도 없고 무제한적인 것은 아닙니다. 한 번 닫은 후에'라고 말씀합니다. 좁은 문은 동서남북 누구에게든지 가능성으로 열려있는 문이기는 하지만 들어가기를 힘쓰는 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 제한성을 가 지고 있습니다. 여럿이 우르르 몰려 갈 수 있는 문이 아니라 주님 과 나만이 일대일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나 혼자만이 들어가야 하는 문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성이든지 큰 성문이 있다면 그 옆에 조그마한 곁문이 있다 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서 성문이 닫힌 후에 성안으로 들어가야 할 경우나 급히 성밖으로 나갈 때 사용하는 문으로, 이 문이 작다고 하여 바늘귀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주님의 비유 가운데 부자가 천 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고 한 것이 바로 이 문을 가리킵니다. 돈 은 상인이 아무리 짐이 많고. 많은 짐승을, 낙타를 몰고 왔 더라고 그 문을 들어가려면 다 포기하고 몸만 겨우 빠져나갈 수 있는 문입니다. 또한 허리를 굽히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문입니다. 겸손하지 않으면 들어 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몸된 성전에 나와서 고개를 숙이며 예배를 드리는 일은 구원의 문을 통과하기 위한 준비요, 훈련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 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16)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로마서 lO:l
3) 재물이 많은 자나 지식이 많은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이나 병든 사람이나 동서남북, 전세계 어느 누구도 주님의 이름을 부름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의 문은 열려 있지만 주의 이름을 부 르는 사람에게만 열리는 문이기 때문에 좁은 문입니다. . 누가복음은 예수님에 대해서 온 인류의 구원자로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의 족보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마태복음 1:l)라고 유대인의 메시아에 초 점을 맞추고 증거하고 있는 반면 누가복음 (누가복음 S:23-38)은 예수님부터 시작해서 아담과 하나님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 을 봅니다. 즉 온 인류의 구원자이신 주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동서남북 사방에서 구원의 기쁜 소식을 듣고 좁은 길을 걸어서 좁은 문을 들어온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니닙 나라의 잔치는 구경꾼들이 모이는 곳이 아니라 눈물 홀리며. 땀흘리며. 피흘리기까지 애쓰고 수고하는 일꾼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오늘 하니님께서는 다른 사람 아닌 바로 여러분이 좁은 길을 걸 어서 좁은 문으로 동서남북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오기를 원하 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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