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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곧 미래 (누가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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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좋은 미래”는 어딘가에 누구에게나 있는것인가 무작정 기다릴 만한 것인가 그것은 이미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누구라도 원하기만 한다면 다가설 수 있는 것인가 사람들은 “좋은 미래”에 대한 기대를 품고 있습니다. 현재와는 구별되는 혹은 비교도 될 수 없는 질과 양의 멋진 미래에 대한 꿈을 꿉니다. 아마도 그 때에 다른 차원의 경험을 하게되리라는 예상을 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기대의 폭이 크면 클 수록, 현재와 견술 수도 없는 미래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아주 매력적인 것이 되어버립니다. 그것도 지금의 시점에 나의 모습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나의 현재적 경험과 삶의 내용과는 무관하게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문제라는 사실을 그는 나중에야 알게될 것입니다. 그러한 미래는 영영 그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현재와 단절된 미래”는 환상에 불과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언제나 “미래는 현재의 반영”이기 때문입니다. 달리말하면 지금의 구체적인 상황과 지금의 현재적 경험이 곧바로 소위 “미래”로 이어진다는 말입니다. “애초 현재는 틀려먹었으니, 지금의 이 꼴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으니 될대로 되라”라는 말을 하면서, 그렇지만 “미래에는 무언가 있을 것이다. 지금과는 비교되지 않는 좋은 순간이 올 것이다”라는 막연한 꿈을 꾸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지금 현재의 경험은 곧 미래의 경험을 암시하는 것이고 미래의 모습을 규정하게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지금 현재의 시점은 우리에게 행동의 책임성을 묻고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현재의 시점에 무책임한 것은 곧 미래에 대한 무책임한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은 결국 흐를 것이고 “언젠가”라고 말했던 미래의 시점은 현재가 될 것입다만 “무조건 시간이 속이들어찬 내용을 채워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여기에서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계속해서 내 길을 가야 한다”는 예수의 말에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삶에 반영하여 살아내기를 시작했을 때 부터 이 말은 그의 일관된 생각이었다고 봅니다. 예수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그 나라의 일을 시작한 것은 온갖 “뒤바꿈의 시간”의 시작 이었습니다. 예수의 기대는 현실적으로 왜곡된 존재와 뒤틀린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미래적 시점에 궁국적으로 하나님 나라 실현의 때에 궁극적으로 경험될 것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회복의 자리속에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미래를 열어주십니다. 이로써 인간과 하나님과의 정의로운 관계를 “지금의 시점에” 회복하십니다. 예수는 당시의 고정관념이 규정한 죄인들과 친구가 됨으로 이 회복된 관계를 구체적으로 드러내십니다. 예수는 보잘것 없고,천대받고,권리를 박탈당한 자들,즉 어린이들과 여인들 편에 서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여기 이들에게서 이미 경험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현재는 고스란히 미래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를 일구어가는 현재적인 온갖 움직임 속에 긍극적인 하나님 나라의 경험을 이미 담고있다는 말입니다. 이는 이미 현재적 경험 속에서 미래는 실현되어 있고 시간이 흐를 수록 그 경험의 폭은 더욱 구체화 되고 깊이를 더해갈 것이라는 말입니다. 예수의 일관된 걸음 속에는 하나님 나라의 실현에 대한 책임적인 태도가 새겨져 있습니다.
예수는 터무니도 없는 미래를 허황되게 갈망하면서 하늘을 바라보신 것이 아닙니다. 지금 그는 척박하고 참담한 땅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몫으로 주어진 하나님 나라의 일을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책임적으로 엮어나갔던 것입니다. 실로 예수에게 있어서 희망하는 일은 하나의 싸움을 의미했습니다. 예수에게 있어서 미래는 밑도 끝도 없는 막연한 것이 아니라 현재적인 경험 속에서 이미 맛보는 그 어떤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향한 진지하고 성실한 싸움속에서 이미 그것을 경험하며 더욱 그 방향을 분명히 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미래적 가치와 기준을 앞당겨 행동함으로써 하나님 나라를 이미 실재하는 것처럼 사셨고, 이로써 하나님 나라를 현존케 하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갈망하고 있다면 우리의 현재적 경험 속에 그 내용이 반영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현재는 곧바로 미래를 연결시켜주고 있고, 이미 그 결과를 이미 암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희망하는 만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희망하는 일에는 그 만큼의 책임이 전제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미래에 대한 희망은 “막연한 환상”이어서는 않됩니다. 그러나 무책임한 현재는 우리의 미래를 터무니없는 환상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가 지금의 시점을 살아가고 있다면, 그리고 미래를 향하여 희망의 눈을 뜨면서 새날을 기대하고 있다면 “지금이 곧 미래이며, 미래를 반영한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시간은 지금까지의 역사가 그러했던 것처럼 또한 변함없이 흘러가고 말것입니다. 결국 미래라고 상정했던 어느 시점은 곧바로 현재라는 이름표를 달것입니다. 어김없이 그러할 것입니다. 그러나 미래의 내용은 이미 지금 우리가 결정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책임적인 태도로 희망함으로써, 우리의 몫으로 주어진 일들을 마다하지 않으므로, 외적조건에 매몰되거나 묶여버리지 않음으로써 “견고하고 속이들어찬 내용있는 미래”를 우리가 이미 결정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계속해서 내 길을 가야한다”고 말하시며 일관되고 책임있는 예수의 행보를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의 현재는 곧 미래였고, 언제나 미래적인 경험을 암시하였습니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는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부분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경험을 두고 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따라 지금 생활하고, 그 나라의 정의를 지금 나의 기준으로 삼고, 우리자신과 우리 공동체 속에서 그것을 살아내는 것에 의해 미래를 결정짓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 미래를 사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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