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의 책임 (눅12:35-48)
본문
요즘처럼, 정치, 경제, 사회 각 부분에서 지도자의 가치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되는 때도 드문 것 같습니다. 지나온 역사를 들춰보면, 19세기에 이탈리아가 통일되는 과정이 그러했듯이, "한 사람의 지도자가 한 시대를 좌우한다"는 사실을 새삼 돌아보게 됩니다. 그러나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 하다는 사실이, 비단 정치 지도자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 런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훌륭하다고 소문난 음식점이 있다기에, 깨끗하 고 맛있는 음식, 우아한 분위기, 친절한 서비스를 기대하고 갔는데, 가보니 듣던 것과 전혀 딴판이어서, 실망하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누구 잘못입니 까 좋은 재료를 사용하지 않은 요리사의 잘못입니까 아니면, 손이 모 자라, 음식 나르기에 바쁜 종업원의 잘못입니까 아무래도 가장 큰 잘못 은, 이 모든 것을 관리하는 음식점 주인에게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어느 경제 전문지(有力誌)에 소개된 통계 자료를 보면, 불경기가 아닌 경제 적인 호황기 때에도, 크고 작은 많은 기업들이 도산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도산한 기업의 92%가, 관리상의 결함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업 운영에서 실패하면, 생산적인 기업 활동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요즘, 이웃 대만에서는 젊은 기업의 활동이 활발하답니다. 우리나라 의 신세대 젊은이들이 보이고 있는 책임 회피 경향과는 달리, 대만의
2, 30 대 젊은이들은, 다음 세기를 준비하는 적극적인 자세로, 무거운 책임도 마다하지 않는, "신세대 지도자들"입니다. 지도자란, 책임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UN 사무 총장이나, 대통령이 되지 않더라도, 이런 저런 관계의 테두리에서 생활하는 한, 우리는 누구나, 어느 때, 어느 곳에서, 크고 작은 책임을 갖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들은 예외없이 지도자의 입장에 서게 됩니다.
그런데 많은 지도자들이, 지도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개 발되는 것이라는 데 동의합니다. 물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지 도력을 발휘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영적 은사를 받은 사람만 지도 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잠재적인 지도자는 태어난다고 해도, "능 력있는 지도자"는 훈련을 통해 다듬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훈련된 사람을 얻는 유일한 방법은, 일을 하게 하는 것"이라는 말처럼, 능력있는 지 도력은 연습되는 것입니다. 다만,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면, 지도자의 역할 을 행하는 사람에게, 주님은 참으로 단호하게, 그 책임을 요구하신다는 사 실입니다. 누가복음 12장 48절을 보십시오.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이 말씀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님 이 다시 오실 때(재림)를 예비하라고 일러주신 말씀입니다. 사람은, 많이 맡은 사람에게 주어진 많은 권리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많이 맡은 사람에게 많은 책임이 있음을 강조하십니다. 훗날, "내가 너에게 부탁했던 그 영혼들은 다 어디 있느냐"고 물으실 주님의 음성이 참으로 두렵지 않습 니까 오늘도 우리가 선 자리에서, 맡은 일에 충성하는 자세로, 책임있는 삶을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지도자의 섬김 (막 10:35-45) 사람들은, 각자, 자기 나름대로 지도력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도력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설명은, 다른 사람들이 성취감을 느끼 면서,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지도력 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아무래도, "동기를 부여 한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동기를 부여한다는 말은 어떤 뜻입니까 지도 력은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계나 짐승을 움직이는 것 과 달라서, 사람을 움직이려면, 동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훌륭한 지 도자는, 목표를 성취하게 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그저 밀어부치는 것이 아 니라, 그들이 기꺼이 목표를 향해 돌진하도록, 격려하고 돕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지도력은, 상대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상대의 상황과 필요 를 보고, 그의 발전을 위해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는" 능력입니다(살 전 2:10-12).
그런데 우리는, 다른 사람을 격려하고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 즉 "섬기는 사람"이 지도자라는 사실을, 쉽게 잊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에서, 특히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무리 중에서 지도자가 되 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나아가서, 주님이 영광받게 되실 때, 자 신들을 주님의 보좌 우편과 좌편에 앉게 해달라고 여쭙습니다. 이 말을 들 은 제자들의 반응을 보십시오. 그들은 야고보와 요한에 대해서 분하게 여 겼습니다. 결국 제자들 모두, 주님의 나라에서 눈에 보이는 자리 다툼을 벌인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가르치신 지도자의 모습은, 제자들이 원한 것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마가복음 10장 42절로 4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 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예수님의 이 말씀에서, 우리는 상반된, 두 가지 지도자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권세부리는 지도자와 섬기는 지도자입니다. 아 마도 권세부리는 지도자는, 소위 목소리가 큰 사람일 것입니다. 힘이 있고, 돈이 많은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보시기에, 정말 큰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권세부리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섬기는 사람입니까 이어지는 마가복음 10장 45절 말씀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 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 그렇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찾아 오신 이유는, 목숨을 주기까지 죄인된 우리를 섬기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제 우리는 그 주님이 보여주신, 참으로 섬기는 지도자의 모습을 기억해야 겠습니다. 가장 크게 섬기는 사람이, 가장 큰 지도자입니다. 현재 우리 가 가정이나, 직장, 교회에서 지도자의 위치에 있다면, 우리를 따르는 사람 들이 우리를 섬기는 종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들을 섬기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지금, 그 일을 하십시오. 오늘도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섬기 려 하신 주님의 가르침을 본받아 크게 섬기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지도자의 절제 (갈 5:22-25) 어느 시대나, 젊은이들은 미래의 지도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런데, 지 도자가 되려는 사람이나, 또 이미 지도자가 된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절제입니다. 능력과 지혜를 가진 지도자도 있습니다. 부와 인기를 가진 지도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진정으로 존경 받는 지도자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절제해야 합니다. 절제하지 않는 사람 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존경하지 않는 사람의 지도력을 신뢰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믿고 따를 수 있는 지도자는, 결국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 기 때문입니다. 존경받는 지도자가 되는 데 필요한 절제에 대해서 생각 해 보십시다. 영적인 지도자에게 꼭 필요한 것도, 바로 이 절제입니다. 절제가 어떤 힘이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죽음을 눈 앞에 둔 상태에서도, 절제하셨습니다. 인내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에, 예수님은 대제사장 앞에서 심문을 당하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대제사장은 예수님이 가르치신 것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그동안 모든 유대 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으며, 은밀히 가르친 것이 하 나도 없으니, 이미 들은 자들에게 물어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요한복음 18장 22절과 23절을 보십시오. "이 말씀을 하시매 곁에 섰는 하속 하나가 손으로 예수를 쳐 가로되 네가 대제사 장에게 이같이 대답하느냐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말을 잘못하였 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거하라 잘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하 시더라." 이 날 밤, 예수님 주위에 둘러 섰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손 으로 때리고, 침을 뱉고 조롱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화를 내셨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주님이시 기 때문이라고요 물론 그렇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이렇게, 조용히,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신 것은, 이 모든 일이 여호와 하나님의 커다란 구속 계획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일과, 그 분의 뜻을 아셨기 때문에, 주님은 십자가 고난 앞에서 인내하실 수 있었습니다. 만일 지금 어떤 어려움이 나아갈 길을 막고 있다고 생각되신다면, 먼저 하나님의 뜻을 묻는 기도를 드리십시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감당하 기에 넉넉한 성령님의 열매를 맺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 께서는 분명히, 우리에게 먼저 그분의 뜻을 보이시고, 우리가 기쁨으로 그 일을 행할 수 있도록, 필요한 성령님의 열매들로 응답하실 겁니다. 물론 필요 하면, 영적인 지도자나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한 다른 형제자매의 도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자신을 다스리는 법, 곧 "절제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어떤 자리에 있든지, 우리와 함께 하는 모든 사람들이, 기쁜 마음으로 우리의 영적 지도력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 앞에 선한 지도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을 다스리는 절제된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기억하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 합니다. 지도자의 의사 결정 능력 (행 9:19-22) 어떤 신랄한 무신론자는, 성경은 "연약한 사람을 등장시켜, 마치 그가 어떤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다는 듯이 과장스러운 거짓말로, 약자를 위로하려 한 다"고 주장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의 눈에 비친 대로, 성경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는 모두 연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비록 연약했어도, 위대한 지도력을 발휘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렇다 면, 사람의 기준으로는 부족하고 자격 미달로 보이던 사람들이, 위대한 지 도자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들이 언제나, 능력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함께 했다는 말은, 결국 무슨 뜻입니까 "제가 얼마나 잘 하는지 두고 보십시오"라 고, 하나님을 그저 구경꾼으로, 옆 자리에 모셔 두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 하나님과 함께 일함으로써,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했던 모든 사람들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능력과 주권에 의지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러하셨고, 바울 사도와, 다른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과 주권에 의지한다고 해서, 우리가 어떤 일을 결정할 수 있는 선택권 이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는 지도자가 되기 원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은 충고가 있습니다. 지도자는 다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잘 알아야 하고, 때로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여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최종적인 판단과 "결정"은, 지도자 자신이 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도자는 충분한 자료를 모은 상태에서, 과감하고 결단 력있는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그럴 때, 그는 능력있는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까지도 주님을 핍박하던 그가, 곧 주님을 그리스도로 증거하기 시작합니다. 사도행전 9장 19절로 22절을 보십시오. ". 사울이 다메색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 부르는 사람을 잔해하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저희를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사울이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 을 굴복시키니라. " 그렇습니다. 성경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삶 의 목표를 발견하고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 일을 이루기 위해 열심으 로 노력했던 수많은 영적 지도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의 부르심에 응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았으며, 그 일에 어떤 희생이 필요한지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일을 미루지 않았습니다. 혹시, 지금 우리는 우리 가 결정해야 할 일을, 무책임하게 다른 사람에게 맡겨두고 있는 것은 아닙 니까
그렇다면, 이제 다음으로 미루거나 다른 사람에게 미루지 말고, 양 어깨로 그 일을 결정하는 책임을 짊어지십시오. 진정한 지도자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책임을 맡겨두지 않습니다. 오늘도 주님을 우리 삶의 주인 으로 모시고, 주님의 부르심을 좇아,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결정하고 책임지 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지도자의 생각-그 꿈과 비젼 (고전 2:1-5) 직업을 가진, 직장인들에게 자신의 직장 상사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으로, 설문 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대부분의 사원들은, 직장 상사가 무엇보다 "이해심이 있어야 하고, 추진력과 업무 능력이 있어 야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이것은 해마다 실시된 설문 조사에서, 거의 비슷 하게 나타난 현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의 설문 조사에서는 아 주 흥미로운 사실이 있었습니다. 사회 생활의 문턱에 들어서는 신입 사원 이 자신의 상사에게 바라는 사항이, 중견 사원이 자신의 최고 상사에게 바 라는 사항과 뚜렷한 차이를 나타낸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입 사원이 자신 의 상사에게 바란 것이 무엇이었을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요즘 신입 사원 들은, 자신의 상사가, 자신의 개성을 인정해 주고, 자신이 잘 알지 못했던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이를 개발하도록 끊임없이 격려해 주는 상사 이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은 직장 생활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가 정과 교회에서도 마찬가집니다. 능력있는 지도자는,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도록 격려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 을 격려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만일 우리가 가정과 교회와 직장에서 지도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면, 우리는 먼저 우리들이 해야 할 일 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적을 알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은 아무도 그것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목적을 알고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명확하게 설명 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은 그 목표를 자기 가슴에 품고, 우리를 좇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끝내, 그 일을 함께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 사 도를 보십시오. 바울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았고, 그래서 그 일을 자신 의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사도 바울의 목적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이었 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한 구원의 메시지를 세상에 전하겠다는 꿈과 비젼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의 꿈을 알리기 위해,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썼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1절과 2 절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 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 하였음이라." 그렇습니다. 능력있는 지도력의 비밀은, 함께 일하는 것에 있습니다. 어떤 일을 혼자서 해치워 버리고 나서, 이런 식으로 하라고 명령 하는 것은, 진정한 지도력이 아닙니다. 자신이 갖게 된 큰 꿈을, 다른 사람 에게 알려서, 그들이 기꺼이 그 일에 함께 할 수 있도록, 길을 보여주고 방 법을 알려주고, 무엇보다 나아가야 할 목표를 명확하게 제시하는 것, 이것 이 바로 지도자가 할 일입니다.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 방향을 알 때, 사람들은 더욱 힘있게 나아가는 법입니다. 오늘도 하나님 안에 품은 자 신의 꿈을 함께 나누고, 할 일을 나누며, 나아가 함께 그 일을 이루는 복된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지도자의 의지 (눅 9:51-52) 국어 사전에서는 "지도자"를 가리켜, 단체 등의 조직이나 방침 등을 결정 하고, 본래의 목적을 향해 구성원을 통솔, 인도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 한 사람의 지도자가 있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들이 무리가 되어 한 집단을 구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무리가 어떤 목적을 향해 움직이고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그 집단의 구성원을 통솔하고 인도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합니다. 이 힘은 사람들에게 미치는 지도자의 영향력을 말하는 데, 우리는 이 힘을 지도력이라고 부릅니다. 지도력이 발휘되는 방법과 지 도자의 스타일은 지도자마다 다를 수 있지만, 지도자에게는 무리를 통솔하는 긍정적인 힘, 곧 지도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막상 지도력을 발휘 해야 하는 지도자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종종 지도력의 한계에 부딪칠 때가 있다고 고백합니다. 이때, 지도력의 한계를 넘어서게 할 수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지도자의 강한 의지입니다. 누가복음 9장 51절을 보십시 오.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 게 결심하시고." 예루살렘이 어떤 곳입니까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 그리고 승천이 일어날 장소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그 길이 그분 자신의 최후가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계셨습니다.
그렇다면 주님도 인간이신지라, 두려움과 갈등, 고뇌에 빠지지 않을 수 없으셨을 겁니다. 그런데 그날, 주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고개를 들어, 예루살렘을 향해 올 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셨고, 또 그렇게 하셨습니다. 다니엘을 생각해 보십시 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바벨론에 끌려와서, 3년 동안이나 유대인의 민족적인 주체성을 말살하려는 느부갓네살 왕국의 집중적인 교육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다니엘은 평범한 지도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 려운 시대를 헤쳐나갈 만한 강한 의지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끝까지 마음에 결심한 바를 꺽지 않았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왕의 음식 과 포도주를 먹도록 강요할 때에도, 다니엘은 자신의 결심을 굽히지 않고, 하나님의 지혜를 구했습니다. 지도자의 강한 의지는, 기도에서 출발합니다. 느혜미야를 보십시오. 기도하는 사람은 준비된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사람 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은, 그 분의 길에서 흔들리지 않으며, 다른 사람을 그분의 길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주님 안에서 온갖 어려움을 이겨냈던 강한 의지의 영적 지도자 들처럼,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2, 30 대 젊은이들은, 다음 세기를 준비하는 적극적인 자세로, 무거운 책임도 마다하지 않는, "신세대 지도자들"입니다. 지도자란, 책임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UN 사무 총장이나, 대통령이 되지 않더라도, 이런 저런 관계의 테두리에서 생활하는 한, 우리는 누구나, 어느 때, 어느 곳에서, 크고 작은 책임을 갖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들은 예외없이 지도자의 입장에 서게 됩니다.
그런데 많은 지도자들이, 지도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개 발되는 것이라는 데 동의합니다. 물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지 도력을 발휘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영적 은사를 받은 사람만 지도 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잠재적인 지도자는 태어난다고 해도, "능 력있는 지도자"는 훈련을 통해 다듬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훈련된 사람을 얻는 유일한 방법은, 일을 하게 하는 것"이라는 말처럼, 능력있는 지 도력은 연습되는 것입니다. 다만,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면, 지도자의 역할 을 행하는 사람에게, 주님은 참으로 단호하게, 그 책임을 요구하신다는 사 실입니다. 누가복음 12장 48절을 보십시오.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이 말씀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님 이 다시 오실 때(재림)를 예비하라고 일러주신 말씀입니다. 사람은, 많이 맡은 사람에게 주어진 많은 권리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많이 맡은 사람에게 많은 책임이 있음을 강조하십니다. 훗날, "내가 너에게 부탁했던 그 영혼들은 다 어디 있느냐"고 물으실 주님의 음성이 참으로 두렵지 않습 니까 오늘도 우리가 선 자리에서, 맡은 일에 충성하는 자세로, 책임있는 삶을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지도자의 섬김 (막 10:35-45) 사람들은, 각자, 자기 나름대로 지도력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도력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설명은, 다른 사람들이 성취감을 느끼 면서,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지도력 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아무래도, "동기를 부여 한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동기를 부여한다는 말은 어떤 뜻입니까 지도 력은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계나 짐승을 움직이는 것 과 달라서, 사람을 움직이려면, 동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훌륭한 지 도자는, 목표를 성취하게 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그저 밀어부치는 것이 아 니라, 그들이 기꺼이 목표를 향해 돌진하도록, 격려하고 돕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지도력은, 상대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상대의 상황과 필요 를 보고, 그의 발전을 위해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는" 능력입니다(살 전 2:10-12).
그런데 우리는, 다른 사람을 격려하고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 즉 "섬기는 사람"이 지도자라는 사실을, 쉽게 잊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에서, 특히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무리 중에서 지도자가 되 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나아가서, 주님이 영광받게 되실 때, 자 신들을 주님의 보좌 우편과 좌편에 앉게 해달라고 여쭙습니다. 이 말을 들 은 제자들의 반응을 보십시오. 그들은 야고보와 요한에 대해서 분하게 여 겼습니다. 결국 제자들 모두, 주님의 나라에서 눈에 보이는 자리 다툼을 벌인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가르치신 지도자의 모습은, 제자들이 원한 것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마가복음 10장 42절로 4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 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예수님의 이 말씀에서, 우리는 상반된, 두 가지 지도자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권세부리는 지도자와 섬기는 지도자입니다. 아 마도 권세부리는 지도자는, 소위 목소리가 큰 사람일 것입니다. 힘이 있고, 돈이 많은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보시기에, 정말 큰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권세부리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섬기는 사람입니까 이어지는 마가복음 10장 45절 말씀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 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 그렇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찾아 오신 이유는, 목숨을 주기까지 죄인된 우리를 섬기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제 우리는 그 주님이 보여주신, 참으로 섬기는 지도자의 모습을 기억해야 겠습니다. 가장 크게 섬기는 사람이, 가장 큰 지도자입니다. 현재 우리 가 가정이나, 직장, 교회에서 지도자의 위치에 있다면, 우리를 따르는 사람 들이 우리를 섬기는 종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들을 섬기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지금, 그 일을 하십시오. 오늘도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섬기 려 하신 주님의 가르침을 본받아 크게 섬기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지도자의 절제 (갈 5:22-25) 어느 시대나, 젊은이들은 미래의 지도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런데, 지 도자가 되려는 사람이나, 또 이미 지도자가 된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절제입니다. 능력과 지혜를 가진 지도자도 있습니다. 부와 인기를 가진 지도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진정으로 존경 받는 지도자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절제해야 합니다. 절제하지 않는 사람 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존경하지 않는 사람의 지도력을 신뢰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믿고 따를 수 있는 지도자는, 결국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 기 때문입니다. 존경받는 지도자가 되는 데 필요한 절제에 대해서 생각 해 보십시다. 영적인 지도자에게 꼭 필요한 것도, 바로 이 절제입니다. 절제가 어떤 힘이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죽음을 눈 앞에 둔 상태에서도, 절제하셨습니다. 인내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에, 예수님은 대제사장 앞에서 심문을 당하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대제사장은 예수님이 가르치신 것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그동안 모든 유대 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으며, 은밀히 가르친 것이 하 나도 없으니, 이미 들은 자들에게 물어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요한복음 18장 22절과 23절을 보십시오. "이 말씀을 하시매 곁에 섰는 하속 하나가 손으로 예수를 쳐 가로되 네가 대제사 장에게 이같이 대답하느냐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말을 잘못하였 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거하라 잘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하 시더라." 이 날 밤, 예수님 주위에 둘러 섰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손 으로 때리고, 침을 뱉고 조롱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화를 내셨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주님이시 기 때문이라고요 물론 그렇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이렇게, 조용히,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신 것은, 이 모든 일이 여호와 하나님의 커다란 구속 계획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일과, 그 분의 뜻을 아셨기 때문에, 주님은 십자가 고난 앞에서 인내하실 수 있었습니다. 만일 지금 어떤 어려움이 나아갈 길을 막고 있다고 생각되신다면, 먼저 하나님의 뜻을 묻는 기도를 드리십시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감당하 기에 넉넉한 성령님의 열매를 맺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 께서는 분명히, 우리에게 먼저 그분의 뜻을 보이시고, 우리가 기쁨으로 그 일을 행할 수 있도록, 필요한 성령님의 열매들로 응답하실 겁니다. 물론 필요 하면, 영적인 지도자나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한 다른 형제자매의 도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자신을 다스리는 법, 곧 "절제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어떤 자리에 있든지, 우리와 함께 하는 모든 사람들이, 기쁜 마음으로 우리의 영적 지도력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 앞에 선한 지도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을 다스리는 절제된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기억하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 합니다. 지도자의 의사 결정 능력 (행 9:19-22) 어떤 신랄한 무신론자는, 성경은 "연약한 사람을 등장시켜, 마치 그가 어떤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다는 듯이 과장스러운 거짓말로, 약자를 위로하려 한 다"고 주장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의 눈에 비친 대로, 성경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는 모두 연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비록 연약했어도, 위대한 지도력을 발휘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렇다 면, 사람의 기준으로는 부족하고 자격 미달로 보이던 사람들이, 위대한 지 도자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들이 언제나, 능력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함께 했다는 말은, 결국 무슨 뜻입니까 "제가 얼마나 잘 하는지 두고 보십시오"라 고, 하나님을 그저 구경꾼으로, 옆 자리에 모셔 두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 하나님과 함께 일함으로써,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했던 모든 사람들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능력과 주권에 의지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러하셨고, 바울 사도와, 다른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과 주권에 의지한다고 해서, 우리가 어떤 일을 결정할 수 있는 선택권 이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는 지도자가 되기 원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은 충고가 있습니다. 지도자는 다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잘 알아야 하고, 때로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여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최종적인 판단과 "결정"은, 지도자 자신이 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도자는 충분한 자료를 모은 상태에서, 과감하고 결단 력있는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그럴 때, 그는 능력있는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까지도 주님을 핍박하던 그가, 곧 주님을 그리스도로 증거하기 시작합니다. 사도행전 9장 19절로 22절을 보십시오. ". 사울이 다메색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 부르는 사람을 잔해하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저희를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사울이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 을 굴복시키니라. " 그렇습니다. 성경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삶 의 목표를 발견하고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 일을 이루기 위해 열심으 로 노력했던 수많은 영적 지도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의 부르심에 응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았으며, 그 일에 어떤 희생이 필요한지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일을 미루지 않았습니다. 혹시, 지금 우리는 우리 가 결정해야 할 일을, 무책임하게 다른 사람에게 맡겨두고 있는 것은 아닙 니까
그렇다면, 이제 다음으로 미루거나 다른 사람에게 미루지 말고, 양 어깨로 그 일을 결정하는 책임을 짊어지십시오. 진정한 지도자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책임을 맡겨두지 않습니다. 오늘도 주님을 우리 삶의 주인 으로 모시고, 주님의 부르심을 좇아,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결정하고 책임지 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지도자의 생각-그 꿈과 비젼 (고전 2:1-5) 직업을 가진, 직장인들에게 자신의 직장 상사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으로, 설문 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대부분의 사원들은, 직장 상사가 무엇보다 "이해심이 있어야 하고, 추진력과 업무 능력이 있어 야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이것은 해마다 실시된 설문 조사에서, 거의 비슷 하게 나타난 현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의 설문 조사에서는 아 주 흥미로운 사실이 있었습니다. 사회 생활의 문턱에 들어서는 신입 사원 이 자신의 상사에게 바라는 사항이, 중견 사원이 자신의 최고 상사에게 바 라는 사항과 뚜렷한 차이를 나타낸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입 사원이 자신 의 상사에게 바란 것이 무엇이었을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요즘 신입 사원 들은, 자신의 상사가, 자신의 개성을 인정해 주고, 자신이 잘 알지 못했던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이를 개발하도록 끊임없이 격려해 주는 상사 이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은 직장 생활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가 정과 교회에서도 마찬가집니다. 능력있는 지도자는,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도록 격려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 을 격려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만일 우리가 가정과 교회와 직장에서 지도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면, 우리는 먼저 우리들이 해야 할 일 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적을 알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은 아무도 그것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목적을 알고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명확하게 설명 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은 그 목표를 자기 가슴에 품고, 우리를 좇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끝내, 그 일을 함께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 사 도를 보십시오. 바울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았고, 그래서 그 일을 자신 의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사도 바울의 목적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이었 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한 구원의 메시지를 세상에 전하겠다는 꿈과 비젼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의 꿈을 알리기 위해,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썼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1절과 2 절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 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 하였음이라." 그렇습니다. 능력있는 지도력의 비밀은, 함께 일하는 것에 있습니다. 어떤 일을 혼자서 해치워 버리고 나서, 이런 식으로 하라고 명령 하는 것은, 진정한 지도력이 아닙니다. 자신이 갖게 된 큰 꿈을, 다른 사람 에게 알려서, 그들이 기꺼이 그 일에 함께 할 수 있도록, 길을 보여주고 방 법을 알려주고, 무엇보다 나아가야 할 목표를 명확하게 제시하는 것, 이것 이 바로 지도자가 할 일입니다.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 방향을 알 때, 사람들은 더욱 힘있게 나아가는 법입니다. 오늘도 하나님 안에 품은 자 신의 꿈을 함께 나누고, 할 일을 나누며, 나아가 함께 그 일을 이루는 복된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지도자의 의지 (눅 9:51-52) 국어 사전에서는 "지도자"를 가리켜, 단체 등의 조직이나 방침 등을 결정 하고, 본래의 목적을 향해 구성원을 통솔, 인도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 한 사람의 지도자가 있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들이 무리가 되어 한 집단을 구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무리가 어떤 목적을 향해 움직이고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그 집단의 구성원을 통솔하고 인도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합니다. 이 힘은 사람들에게 미치는 지도자의 영향력을 말하는 데, 우리는 이 힘을 지도력이라고 부릅니다. 지도력이 발휘되는 방법과 지 도자의 스타일은 지도자마다 다를 수 있지만, 지도자에게는 무리를 통솔하는 긍정적인 힘, 곧 지도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막상 지도력을 발휘 해야 하는 지도자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종종 지도력의 한계에 부딪칠 때가 있다고 고백합니다. 이때, 지도력의 한계를 넘어서게 할 수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지도자의 강한 의지입니다. 누가복음 9장 51절을 보십시 오.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 게 결심하시고." 예루살렘이 어떤 곳입니까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 그리고 승천이 일어날 장소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그 길이 그분 자신의 최후가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계셨습니다.
그렇다면 주님도 인간이신지라, 두려움과 갈등, 고뇌에 빠지지 않을 수 없으셨을 겁니다. 그런데 그날, 주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고개를 들어, 예루살렘을 향해 올 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셨고, 또 그렇게 하셨습니다. 다니엘을 생각해 보십시 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바벨론에 끌려와서, 3년 동안이나 유대인의 민족적인 주체성을 말살하려는 느부갓네살 왕국의 집중적인 교육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다니엘은 평범한 지도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 려운 시대를 헤쳐나갈 만한 강한 의지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끝까지 마음에 결심한 바를 꺽지 않았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왕의 음식 과 포도주를 먹도록 강요할 때에도, 다니엘은 자신의 결심을 굽히지 않고, 하나님의 지혜를 구했습니다. 지도자의 강한 의지는, 기도에서 출발합니다. 느혜미야를 보십시오. 기도하는 사람은 준비된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사람 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은, 그 분의 길에서 흔들리지 않으며, 다른 사람을 그분의 길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주님 안에서 온갖 어려움을 이겨냈던 강한 의지의 영적 지도자 들처럼,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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