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주려 온줄 아느냐? (눅12:49-59)
본문
예수님은 이 땅에 화평을 주려 오셨습니다.
1)평화의 왕그것은 예수님의 이름에서도 확인됩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때에 천사들이 찬양을 했는데 내용은 평화 대한 것이었습니다.(눅2:14)
2)선교 활동과정 이때 더욱 확실히 밝혀 주셨습니다. 육신의 병이나 영혼이 병들어 있는 사람들이 정죄당하고 도움을 청할 때 마다 "평안히가라"고 하셨는데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3)부활 후 승천하시기 전, 남기신 말씀은 이 점을 마지막으로 확인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그러나 예수께서는 和平(平和, 平安)을 주러 오셨다는 나의 자신 있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그는 스스로 제기한 질문에 대하여 단호한 부정으로 대답하십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아느냐 아니라. 도리어 分爭(分裂)케 하려 함이로다." 마태는 분쟁이라는 말 대신 "劒"(칼)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마10:34). 칼을 사두라든지, 평화의 왕이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고 선언하고 계시는 것은 충격적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습니다. 이 말은의미는 '평화의 왕은 교란자, 불화를 일으키는 자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한 逆說임이 분명합니다. 본 론
1. 예수은 자신을 교란자요 분쟁케 하는 자라고 선언하셨습니다. = 이 말씀은 자신을 정확하게 설명하신 말씀입니다. 주님은 이 땅을 밟았던 사람들 가운데서 과거나 지금이나 가장 葛藤을 일으키시는 분입니다. 재판을 받으실 때 고소되었던 대부분의 내용은 事實無根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를 고소한 자들이 제시한 한 가지 혐의는 진실된 것이었습니다. 주님을 고발한 사람들이 마음만 있었더라면 이를 입증할 만한 증인을 수없이 불러다 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저가 백성을 소동케 하였나이다"(눅23:5)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실제로 그렇게 하였습니다. 가시는 곳마다 조용하고 평온하던 마을들이 소동과 혼란으로 들끓었습니다. 백성이 그 분의 멧세지에 영향을 받아서 폭풍을 만난 바다처럼 어지럽고 불안정하였습니다.
1)가버나움 회당에서 있었던 일-어느 날 주님께서 고향 마을에 있는 會堂에 참석하셨습니다. 마침 안식일이었고 회당은 거룩한 聖日의 조용하고 평온한 분위기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회중이 모였을 때 예수께서는 친히 성경 말씀을 읽으셨습니다. 본문은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이사야61:1)로 시작되는 이사야서의 아름다운 구절이었습니다. 그런 후설교를 하시는 동안 예배자들은 은혜스러운 말씀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 고 감격어린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에게 은혜스러운 말씀과 함께 충격적인 다음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병자가 있었으되 한 사람도 고침을 받을 수 있는 믿음을 가진 이가 없었느니라. 이런 믿음을 가진이가 딱 한 사람 있었으니 그는 나아만이란 이방인이었느니라. 엘리야가목숨의 위협을 느껴 숨을 곳을 찾아 다니던 때에 이스라엘에는 많은 과부들이 있었느니라.그러나 엘리야에게 피신할 곳을 마련해 줄 용기를 가졌던유일한 과부는 이세벨의 고향 땅에 사는 이교도였느니라"(눅4:25-28참조)이 말씀으로 하여 예배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안식일의 평온은 성난 사람들의 항의로 깨뜨려졌습니다. 폭도들이 생겨났습니다. 이 자리를 피할 수있었던 것은 참으로 기적이었습니다.
2)거라사인의 지방에서 귀신을 좆았던 일-어느날은 미친 사람 하나가 있어 가끔 소란을 피우는 일은 있는 거라사인 지방에 당도하셨습니다. 이곳의 돼지 사육자들은 조용한 나날을 보내고있었습니다. 다만 더러운 귀신들려서 미친 사람이 무덤에 살면서 간혹 소란을 일으키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당도하시면서부터 진짜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그 곳에 들러서자마자 이 미친 사람의 병을 고쳐 주셨기때문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지난 날 미친 사람이었던 자가 옷을 입고 온전한 정신으로 예수님의 발 아래 앉은 것을 보자 자연히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미친 사람의 병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돼지 떼를몽땅 희생시켰던 사실은 이들을 흥분시키고 심기를 어지럽게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돼지떼보다 보잘것 없는 사람 하나를 더 중히 여기는 주님을어떻게 처리해야지 갈등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워낙 대단한 인물이지라 강제로 내쫓지는 못하고 마을 대표를 파견하여 예수께 떠나기를 간청하였습니다. 인간의 가치를 가장 중히 여기는 사람은 언제나 교란자가 됩니다.
3)젊은 부자 관원-주님은 개인적으로도 葛藤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느 마을에서는 名譽와 尊敬을 한 몸에 받던 젊은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젊음이 있었고 富가있었고 地位등 이 세상에서 말하는 값진 것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깊은 종교심을 가진 인물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 상당히 만족해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에 관해 들리는 소문들이 그이 길을 흔들어 놓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젊은 랍비가 행하고 있는일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남을 위하여 얼마나 쓰고 있는가'라는질문을 한다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 이 젊은 부자 관원의 마음은 흔들리고있었습니다. 마침 예수님께서 그 마을을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내면적 갈등은 절정에 달하였고 마음이 어지러지자, 그는 자신이 貴族임에도 불구하고 달려가 이 목수의 발아래 무릎을 꿇고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얻을 수 있습니까'를 물었습니다. 이 렇게 준비된 마음을 가진 부자 였지만, 영생을 얻기 위한 대가는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 부자는 자리를 물러 나온 후, 발걸음이 매우 무거웠습니다. 그는 마음의 아픔을 느끼고 목메어 울먹이면서 떠났습니다. 이렇듯 예수께서는 젊은 부자 관원이 가졌던 거짓된 평안을 빼앗아 버렸던 것입니다.
4)십자가 위의 사형수-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었던 사람은 보통 죄수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로마에게 정복당한 조국을 위하여 목숨을 바쳤던 열렬한 애국 지사였고 혁명가였씁니다. 군대를 조직하여 全面戰을 펼 수 없었던 그는 여기저기 서 출몰하여 遊擊戰을 展開하였습니다. 적지 않은 피를 흘렸습니다. 이러한희생을 감수하며 얻은 이름은 혁명가였습니다. 그가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되었을 때 그에게 남은 餘恨은 한 가지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적에게 더큰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것는 것뿐이었습니다. 그 혁명가는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고 용감하게 갈보리 언덕으로 걸어갔습니다. 나라를 극진히 사랑한 애국지사로 인간답게 싸웠고, 인간답게 죽을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조용하던 마음에 갈등을 일으키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가운데 서 있는 십자가를 진 사람, 소문으로만 듣던 갈리리 목수 출신의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이제 그는 주님의 모습에 자신을 비추어 보았습니다. 그 혁명가는 지옥과 같은 고통을 당하고 있으면서도 '나는 의로운 고통을 당하고있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실로 그의 내면적 고뇌가 너무나 컸기 때문에 그의 몸이 당하는 고통은 잊혀졌습니다. 그의 고통은 그가 당하고 있는 상황에 있지 않고 그의 인간적인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과 함께 죽어 가고 있는 절은 랍비 예수님께 얼굴을 돌려 기도를 드렸습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눅23:42)이렇듯예수께서는 사람과 사람을 분열시켰습니다. 그와 접촉하였던 어떤 사람들은 그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는 사람으로 그를 사랑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를 십자가에 못박을 만큼 증오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두 집단 역시 분리될수 밖에 없었습니다. 주님은 예나 지금이나 위대한 교란자이십니다. 그는 분열케 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2. 왜 이런 사태가 벌어지는 것일까(WHY)
1)주님의 인품으로 인하여 우리를 교란시키십니다.-어떤 사람의 소년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학교공부를 지독히도 싫어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그는 내 가족들에게 실망을 안겨 주었습니다. 진정으로 읽기를 배울 뜻이 없었습니다. 읽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더 가치있게 보이는 다른 일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두 살가량 어린 소녀가 우리 집에서 여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소녀에게 말과가축을 용감하게 다루는 내 솜씨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는 말을 타는 솜씨가 대단하였습니다. 이 소녀가 그에게 보낸 감탄은 그의 가슴을 뛰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곧 이 소녀는 나와 무척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소녀는 읽기를 너무나 잘하였습니다. 이 소녀는 처음으로 그에게 무지는 추하고 부끄러운 일임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이런 느낌을 너무나강하게 받았기 때문에 그는 스스로에게 다짐하였습니다. "나도 언젠가는 이소녀만큼 많은 것을 알도록 해야지." 그에게는 이 때가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2)주님은 자연법을 통하여 우리를 교란시키십니다.-이 세계는 의로움을 바탕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잘못을 저지르면 고통을 받게 됩니다. 고통은 우리의 적이 아니라 우리의 친구입니다. 어떤 병이들면 그 병은 고통을 통하여 자신의 정체를 알려 줍니다. 이 고통은 지극히못마땅한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알려 주는 신호등입니다. 만일 이 병이 고통을 주어 그 병명을 알려 주지 않으면 간혹 병명도 모른체 죽게 될 것입니다. 신체적 건강에 법칙이 있듯이 영적인 건강에도 법칙도 있습니다. 우리는사회적, 국가적인 고민거리들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고민거리들은 때로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값비싼 투쟁으로 나타납니다. 이런 고민들은 보다 들물게 나타나긴 하나 군중의 폭력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계를 파멸시키는 전쟁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런 모든 비극적인 고통들은 내면 적인 부패가 외적으로 분출된 것입니다. 이런 모든 비극적인 고통들은 우리가 전적으로 무시할 수는 없는 언어로 우리에게 삶의 터전의 질서를 바로세우라고 외치는 목소리들입니다. 오늘 날 평화에 대한 갈망이 널리 퍼져있습니다. 그러나 평화에 대한 갈망은 형제애를 새롭게 자각한 데서 나온것이 아니라 비참한 전쟁의 고통을 겪었기 때문에 나타난 것입니다. 이렇듯주님은 죄가 낳는 고통스러운 결과들을 통하여 우리를 교란시키십니다.
3)예수님은 우리의 작정한 뜻을 교란시키십니다.-그는 끊임없이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계3:20). 주님은 우리의 길이 불행에 빠지도록 방관하지않으십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느끼는 불만, 보다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우리의 열망, 봉사하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우리의 열의, 이 모든 것은 다우리가 최선을 다하도록 부르시는 주님의 교란시키시는 음성인 것입니다.
3. 이렇게 교란시키는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WHAT)= 진정한 평화를 주시고 거짓된 평화를 빼앗아 가기 위함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평화를 주려고 오신 것이기는 하지만, 여기에서우리가 주님의 뜻에 협력할 때, 평화를 주실 수 있습니다. 평화는 원인이아니라 결과입니다. 평화를 발견하려면 평화의 조건을 충족시키려는 뜻을지녀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는다면 평화는 찾아 오지않습니다. (이야기) 어렸을 때, 맨 발로 뛰놀던 때가 간혹있었니다. 그때, 돌에부딪쳐서 멍도 들고 발톱이 젖혀지기도 합니다. 무진장 아파서 머큐롬(아까징끼)을 연거푸 발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모두 허사였고 단 한가지 치료방법은 병원에 가는 것이 었습니다. 주님께서도 영적인 수술을 요하는 병이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또한 만일 네오른 손이 너를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마5:29-30)평화를 해치는 것은 오른 눈을 빼어 내버리고 오른 손을 찍어 내버리는 것만큼 고통스러운일이라 할지라고 제거해 버리려는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예언자 이사야가"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사48:22)고 단호히 선언하였습니다. 바울 역시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님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먹을 것과 마실 것이 풍족하다고 평안해 지는 것은아닙니다. 진정한 평화가 있으려면 먼저 義가 있어야 합니다. 의는 바른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자신과의 바른 관계, 다른 사람과의 바른관계를 뜻합니다. 의롭지 못한 것을 기초로 하여 세우려는 평화는 그것이아무리 희망적인 것으로 보인다 할지라도 파멸하고 말 것입니다.
4.어떻게 하면 평화를 발견할 수 있을까(HOW) 개인인 평화를 얻기를 원하신다 전적으로 순종하는 마음을 평화의 왕에게 내맡기는 때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야기) 어느 선교사의 체험담입니다. 히말리야 산맥을 내려오는데 어떤 사람이 아래에서 산을 향하여 올라오고 있었답니다. 가까오는데 쇠사슬이 절거럭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좀더 가까와지자 이 사람의 목 둘레에거대한 사슬이 달려 있고 이 사슬이 가슴으로부터 거의 온 몸을 감고 있는것을 보았습니다. 도저히 그냥 지나쳐 갈 수가 없어서 그 연유를 이야기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수년 전에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하여 신부님을 찾아갔답니다. 신부님은 그에게 아주 힘든 참회를 하도록 당부했습니다. 신부님의 말을 따랐으나 평안이 없더랍니다. 이번에는 그의 목에 무거운 사슬을 달아 주고는 히말리야 정상까지 올라가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그는 히말리야산을 올라가는 중이라는 것입니다. 그 선교사는 그의 목에서 사슬을 풀어주고 곁에 앉힌 다음 '평화의 왕'되신 예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기 시작했습니다. 평화는 예수 그리스도께서주시는 선물이며 이 선물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께 내어 줌으로써 받을 수있는 것임 성경을 찾아가며 일어 주었답니다. 곧 깨달음의 빛이 찾아들었고그이 얼굴에 평안이 감돌았답니다. 그 삶은 마을로 내려갔고 마을 사람들에게 평화의 왕에 대하여 전해 주더랍니다.
(예화)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는 원래 귀족 출신으로 온갖 부귀영화를누리며 살아왔으나 참 만족을 얻지 못했고, 작품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에게갈채를 받았으나 죄에 대한 공포와 불안한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한적한 시골 길을 걸어가던 중 한 순박한 시골 농부를 만났는데, 그 얼굴에는 유난히도 평화가 깃들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그에게 가서 평화스런 삶의 비결이 무엇인가고 물었다. 그러자 농부는 이렇게 대답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기 때문이죠. 그래서 내 마음은 기쁨에 가득차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톨스토이는 그날부터 진지하게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다. 그후 그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과거의 불안과 공포는 사라지게 되었다. 교우 여러분! 진리가 비진리와 타협하지 않는 한, 대립과 분열은 분명히 일어납니다. 이러한 현상은 가족 중에서도 일어날수 있습니다. 장례를 지낼때에도 드러납니다. 인간이 죄를 버리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을 때에만 비로소평안을 누릴수 있는 것입니다. 맺는 말
(예화) 스위스의 한 순교자는 복음때문에 화형을 당하였다. 사형 집행시간이 되어 순교자는 장작더미 위에 맨발로 올라섰다. 그러나 그는 평안한자태였으며 미소조차 머금고 있었다. 이제 막 장작더미에 불을 질러 화형을집행하려는 순간 순교자는 형리를 가까이 와달라고 불렀다. 집행관이 가까이 다가왔다. "왜 그런가 마직말 유언이라도 있는가" 집행관이 거만하게 물었다. "아니요, 유언은 없습니다. 이 순간은 제가 기다리던 순간이었소. 부족한죄인이지만 그리스도 앞으로 가는 순간이기 때문이요.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요."이때 말을 들은 집행관은 소리질렀다. "너는 분명히 죽음이 두려운거야." 이때 순교자는 조용히 말했다. "나으리 죄송하지만 나으리 손을 저의 심장에 대보십시오. 제에게 죽음이무서운 것이라면 저의 심장은 심하게 평상시 보다 빠르게 뛴다면 믿음을 갖지 않아도 하나님을 부인하여도 좋습니다" 집행관은 두려움마저 느끼고 있었지만 그래도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제해가며 떨리는 손을 순교자의 가슴에 대보았다. 아니라다를까 순교자의 가슴은 화형전의 것이 아니라 평온히 자고 있는 사람의 것이었다. 집행관은 시비로움을 느꼈다. 도대체 죽음앞에서 평온할 수 있는 그 비범한 용기는 어디서 솟아나는 것일까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평화를 주려고 여러분의 마음과 나의 마음에 나아가온 세상에 평화를 주려고 오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전부를 그에게들릴 때에만 그는 이 평화를 우리에게 주실 수 있습니다.
(예화) 외국의 잡지에 이런 실화가 실려 있었습니다. 전쟁에 나갔던 약혼자를 잃은 여인이 전사 통지서를 쥐고 비 오는 날 저녁 동리 강에 있는 큰 다리를 실의속에 거닐게 되었습니다. 이 여인은 끝내 약혼자를 잃은 슬픔을 극복하지 못하고 투신자살을 결심하고 마악 다리에서 뛰어 내리려는 순간 한 중년 남자가 나타나 팔을 급히 잡았습니다. "여기는 추우니 우리 다리 지키는 조그만 사무실에 가서 이야기합시다"그래서 이 여인이 난로가 있는 그 사무실로 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며 통곡하는데 그 사람이 아무 말하지 않고 두 손을 잡더니 "하나님, 이 여인에게 실의를 딛고 일어설 평화와 소망과 용기를 주옵소서"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이 여이는 말할 수 없는 평화와 삶의 소망과 의욕을 느꼈습니다. 조금 후 이 사람이 인자하게 웃으며 "하나님께서는 자매님을 사랑하십니다. 이 사랑을 깨닫고 새 출발하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이후 이 여인은 집에 돌아왔는데 곰곰이 생각하니 그 다리지기가 너무 고마와 다시 인사하러 그 곳에 갔더니 사무실도 그 사람도 보이지않았습니다. 이 여인은 비로소 그 다리지기가 하나님께서 보낸 천사였다는사실을 알고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새 출발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음속의평화 이것은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해이 평화를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십니다. 누구든지 예수님 안에서 이 평화를얻고 모든 정신적 곤고를 극복하며 행복한 인생을 살수 있습니다.
1)평화의 왕그것은 예수님의 이름에서도 확인됩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때에 천사들이 찬양을 했는데 내용은 평화 대한 것이었습니다.(눅2:14)
2)선교 활동과정 이때 더욱 확실히 밝혀 주셨습니다. 육신의 병이나 영혼이 병들어 있는 사람들이 정죄당하고 도움을 청할 때 마다 "평안히가라"고 하셨는데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3)부활 후 승천하시기 전, 남기신 말씀은 이 점을 마지막으로 확인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그러나 예수께서는 和平(平和, 平安)을 주러 오셨다는 나의 자신 있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그는 스스로 제기한 질문에 대하여 단호한 부정으로 대답하십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아느냐 아니라. 도리어 分爭(分裂)케 하려 함이로다." 마태는 분쟁이라는 말 대신 "劒"(칼)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마10:34). 칼을 사두라든지, 평화의 왕이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고 선언하고 계시는 것은 충격적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습니다. 이 말은의미는 '평화의 왕은 교란자, 불화를 일으키는 자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한 逆說임이 분명합니다. 본 론
1. 예수은 자신을 교란자요 분쟁케 하는 자라고 선언하셨습니다. = 이 말씀은 자신을 정확하게 설명하신 말씀입니다. 주님은 이 땅을 밟았던 사람들 가운데서 과거나 지금이나 가장 葛藤을 일으키시는 분입니다. 재판을 받으실 때 고소되었던 대부분의 내용은 事實無根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를 고소한 자들이 제시한 한 가지 혐의는 진실된 것이었습니다. 주님을 고발한 사람들이 마음만 있었더라면 이를 입증할 만한 증인을 수없이 불러다 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저가 백성을 소동케 하였나이다"(눅23:5)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실제로 그렇게 하였습니다. 가시는 곳마다 조용하고 평온하던 마을들이 소동과 혼란으로 들끓었습니다. 백성이 그 분의 멧세지에 영향을 받아서 폭풍을 만난 바다처럼 어지럽고 불안정하였습니다.
1)가버나움 회당에서 있었던 일-어느 날 주님께서 고향 마을에 있는 會堂에 참석하셨습니다. 마침 안식일이었고 회당은 거룩한 聖日의 조용하고 평온한 분위기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회중이 모였을 때 예수께서는 친히 성경 말씀을 읽으셨습니다. 본문은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이사야61:1)로 시작되는 이사야서의 아름다운 구절이었습니다. 그런 후설교를 하시는 동안 예배자들은 은혜스러운 말씀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 고 감격어린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에게 은혜스러운 말씀과 함께 충격적인 다음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병자가 있었으되 한 사람도 고침을 받을 수 있는 믿음을 가진 이가 없었느니라. 이런 믿음을 가진이가 딱 한 사람 있었으니 그는 나아만이란 이방인이었느니라. 엘리야가목숨의 위협을 느껴 숨을 곳을 찾아 다니던 때에 이스라엘에는 많은 과부들이 있었느니라.그러나 엘리야에게 피신할 곳을 마련해 줄 용기를 가졌던유일한 과부는 이세벨의 고향 땅에 사는 이교도였느니라"(눅4:25-28참조)이 말씀으로 하여 예배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안식일의 평온은 성난 사람들의 항의로 깨뜨려졌습니다. 폭도들이 생겨났습니다. 이 자리를 피할 수있었던 것은 참으로 기적이었습니다.
2)거라사인의 지방에서 귀신을 좆았던 일-어느날은 미친 사람 하나가 있어 가끔 소란을 피우는 일은 있는 거라사인 지방에 당도하셨습니다. 이곳의 돼지 사육자들은 조용한 나날을 보내고있었습니다. 다만 더러운 귀신들려서 미친 사람이 무덤에 살면서 간혹 소란을 일으키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당도하시면서부터 진짜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그 곳에 들러서자마자 이 미친 사람의 병을 고쳐 주셨기때문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지난 날 미친 사람이었던 자가 옷을 입고 온전한 정신으로 예수님의 발 아래 앉은 것을 보자 자연히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미친 사람의 병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돼지 떼를몽땅 희생시켰던 사실은 이들을 흥분시키고 심기를 어지럽게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돼지떼보다 보잘것 없는 사람 하나를 더 중히 여기는 주님을어떻게 처리해야지 갈등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워낙 대단한 인물이지라 강제로 내쫓지는 못하고 마을 대표를 파견하여 예수께 떠나기를 간청하였습니다. 인간의 가치를 가장 중히 여기는 사람은 언제나 교란자가 됩니다.
3)젊은 부자 관원-주님은 개인적으로도 葛藤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느 마을에서는 名譽와 尊敬을 한 몸에 받던 젊은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젊음이 있었고 富가있었고 地位등 이 세상에서 말하는 값진 것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깊은 종교심을 가진 인물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 상당히 만족해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에 관해 들리는 소문들이 그이 길을 흔들어 놓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젊은 랍비가 행하고 있는일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남을 위하여 얼마나 쓰고 있는가'라는질문을 한다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 이 젊은 부자 관원의 마음은 흔들리고있었습니다. 마침 예수님께서 그 마을을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내면적 갈등은 절정에 달하였고 마음이 어지러지자, 그는 자신이 貴族임에도 불구하고 달려가 이 목수의 발아래 무릎을 꿇고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얻을 수 있습니까'를 물었습니다. 이 렇게 준비된 마음을 가진 부자 였지만, 영생을 얻기 위한 대가는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 부자는 자리를 물러 나온 후, 발걸음이 매우 무거웠습니다. 그는 마음의 아픔을 느끼고 목메어 울먹이면서 떠났습니다. 이렇듯 예수께서는 젊은 부자 관원이 가졌던 거짓된 평안을 빼앗아 버렸던 것입니다.
4)십자가 위의 사형수-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었던 사람은 보통 죄수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로마에게 정복당한 조국을 위하여 목숨을 바쳤던 열렬한 애국 지사였고 혁명가였씁니다. 군대를 조직하여 全面戰을 펼 수 없었던 그는 여기저기 서 출몰하여 遊擊戰을 展開하였습니다. 적지 않은 피를 흘렸습니다. 이러한희생을 감수하며 얻은 이름은 혁명가였습니다. 그가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되었을 때 그에게 남은 餘恨은 한 가지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적에게 더큰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것는 것뿐이었습니다. 그 혁명가는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고 용감하게 갈보리 언덕으로 걸어갔습니다. 나라를 극진히 사랑한 애국지사로 인간답게 싸웠고, 인간답게 죽을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조용하던 마음에 갈등을 일으키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가운데 서 있는 십자가를 진 사람, 소문으로만 듣던 갈리리 목수 출신의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이제 그는 주님의 모습에 자신을 비추어 보았습니다. 그 혁명가는 지옥과 같은 고통을 당하고 있으면서도 '나는 의로운 고통을 당하고있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실로 그의 내면적 고뇌가 너무나 컸기 때문에 그의 몸이 당하는 고통은 잊혀졌습니다. 그의 고통은 그가 당하고 있는 상황에 있지 않고 그의 인간적인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과 함께 죽어 가고 있는 절은 랍비 예수님께 얼굴을 돌려 기도를 드렸습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눅23:42)이렇듯예수께서는 사람과 사람을 분열시켰습니다. 그와 접촉하였던 어떤 사람들은 그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는 사람으로 그를 사랑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를 십자가에 못박을 만큼 증오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두 집단 역시 분리될수 밖에 없었습니다. 주님은 예나 지금이나 위대한 교란자이십니다. 그는 분열케 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2. 왜 이런 사태가 벌어지는 것일까(WHY)
1)주님의 인품으로 인하여 우리를 교란시키십니다.-어떤 사람의 소년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학교공부를 지독히도 싫어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그는 내 가족들에게 실망을 안겨 주었습니다. 진정으로 읽기를 배울 뜻이 없었습니다. 읽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더 가치있게 보이는 다른 일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두 살가량 어린 소녀가 우리 집에서 여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소녀에게 말과가축을 용감하게 다루는 내 솜씨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는 말을 타는 솜씨가 대단하였습니다. 이 소녀가 그에게 보낸 감탄은 그의 가슴을 뛰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곧 이 소녀는 나와 무척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소녀는 읽기를 너무나 잘하였습니다. 이 소녀는 처음으로 그에게 무지는 추하고 부끄러운 일임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이런 느낌을 너무나강하게 받았기 때문에 그는 스스로에게 다짐하였습니다. "나도 언젠가는 이소녀만큼 많은 것을 알도록 해야지." 그에게는 이 때가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2)주님은 자연법을 통하여 우리를 교란시키십니다.-이 세계는 의로움을 바탕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잘못을 저지르면 고통을 받게 됩니다. 고통은 우리의 적이 아니라 우리의 친구입니다. 어떤 병이들면 그 병은 고통을 통하여 자신의 정체를 알려 줍니다. 이 고통은 지극히못마땅한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알려 주는 신호등입니다. 만일 이 병이 고통을 주어 그 병명을 알려 주지 않으면 간혹 병명도 모른체 죽게 될 것입니다. 신체적 건강에 법칙이 있듯이 영적인 건강에도 법칙도 있습니다. 우리는사회적, 국가적인 고민거리들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고민거리들은 때로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값비싼 투쟁으로 나타납니다. 이런 고민들은 보다 들물게 나타나긴 하나 군중의 폭력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계를 파멸시키는 전쟁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런 모든 비극적인 고통들은 내면 적인 부패가 외적으로 분출된 것입니다. 이런 모든 비극적인 고통들은 우리가 전적으로 무시할 수는 없는 언어로 우리에게 삶의 터전의 질서를 바로세우라고 외치는 목소리들입니다. 오늘 날 평화에 대한 갈망이 널리 퍼져있습니다. 그러나 평화에 대한 갈망은 형제애를 새롭게 자각한 데서 나온것이 아니라 비참한 전쟁의 고통을 겪었기 때문에 나타난 것입니다. 이렇듯주님은 죄가 낳는 고통스러운 결과들을 통하여 우리를 교란시키십니다.
3)예수님은 우리의 작정한 뜻을 교란시키십니다.-그는 끊임없이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계3:20). 주님은 우리의 길이 불행에 빠지도록 방관하지않으십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느끼는 불만, 보다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우리의 열망, 봉사하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우리의 열의, 이 모든 것은 다우리가 최선을 다하도록 부르시는 주님의 교란시키시는 음성인 것입니다.
3. 이렇게 교란시키는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WHAT)= 진정한 평화를 주시고 거짓된 평화를 빼앗아 가기 위함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평화를 주려고 오신 것이기는 하지만, 여기에서우리가 주님의 뜻에 협력할 때, 평화를 주실 수 있습니다. 평화는 원인이아니라 결과입니다. 평화를 발견하려면 평화의 조건을 충족시키려는 뜻을지녀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는다면 평화는 찾아 오지않습니다. (이야기) 어렸을 때, 맨 발로 뛰놀던 때가 간혹있었니다. 그때, 돌에부딪쳐서 멍도 들고 발톱이 젖혀지기도 합니다. 무진장 아파서 머큐롬(아까징끼)을 연거푸 발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모두 허사였고 단 한가지 치료방법은 병원에 가는 것이 었습니다. 주님께서도 영적인 수술을 요하는 병이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또한 만일 네오른 손이 너를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마5:29-30)평화를 해치는 것은 오른 눈을 빼어 내버리고 오른 손을 찍어 내버리는 것만큼 고통스러운일이라 할지라고 제거해 버리려는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예언자 이사야가"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사48:22)고 단호히 선언하였습니다. 바울 역시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님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먹을 것과 마실 것이 풍족하다고 평안해 지는 것은아닙니다. 진정한 평화가 있으려면 먼저 義가 있어야 합니다. 의는 바른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자신과의 바른 관계, 다른 사람과의 바른관계를 뜻합니다. 의롭지 못한 것을 기초로 하여 세우려는 평화는 그것이아무리 희망적인 것으로 보인다 할지라도 파멸하고 말 것입니다.
4.어떻게 하면 평화를 발견할 수 있을까(HOW) 개인인 평화를 얻기를 원하신다 전적으로 순종하는 마음을 평화의 왕에게 내맡기는 때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야기) 어느 선교사의 체험담입니다. 히말리야 산맥을 내려오는데 어떤 사람이 아래에서 산을 향하여 올라오고 있었답니다. 가까오는데 쇠사슬이 절거럭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좀더 가까와지자 이 사람의 목 둘레에거대한 사슬이 달려 있고 이 사슬이 가슴으로부터 거의 온 몸을 감고 있는것을 보았습니다. 도저히 그냥 지나쳐 갈 수가 없어서 그 연유를 이야기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수년 전에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하여 신부님을 찾아갔답니다. 신부님은 그에게 아주 힘든 참회를 하도록 당부했습니다. 신부님의 말을 따랐으나 평안이 없더랍니다. 이번에는 그의 목에 무거운 사슬을 달아 주고는 히말리야 정상까지 올라가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그는 히말리야산을 올라가는 중이라는 것입니다. 그 선교사는 그의 목에서 사슬을 풀어주고 곁에 앉힌 다음 '평화의 왕'되신 예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기 시작했습니다. 평화는 예수 그리스도께서주시는 선물이며 이 선물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께 내어 줌으로써 받을 수있는 것임 성경을 찾아가며 일어 주었답니다. 곧 깨달음의 빛이 찾아들었고그이 얼굴에 평안이 감돌았답니다. 그 삶은 마을로 내려갔고 마을 사람들에게 평화의 왕에 대하여 전해 주더랍니다.
(예화)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는 원래 귀족 출신으로 온갖 부귀영화를누리며 살아왔으나 참 만족을 얻지 못했고, 작품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에게갈채를 받았으나 죄에 대한 공포와 불안한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한적한 시골 길을 걸어가던 중 한 순박한 시골 농부를 만났는데, 그 얼굴에는 유난히도 평화가 깃들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그에게 가서 평화스런 삶의 비결이 무엇인가고 물었다. 그러자 농부는 이렇게 대답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기 때문이죠. 그래서 내 마음은 기쁨에 가득차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톨스토이는 그날부터 진지하게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다. 그후 그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과거의 불안과 공포는 사라지게 되었다. 교우 여러분! 진리가 비진리와 타협하지 않는 한, 대립과 분열은 분명히 일어납니다. 이러한 현상은 가족 중에서도 일어날수 있습니다. 장례를 지낼때에도 드러납니다. 인간이 죄를 버리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을 때에만 비로소평안을 누릴수 있는 것입니다. 맺는 말
(예화) 스위스의 한 순교자는 복음때문에 화형을 당하였다. 사형 집행시간이 되어 순교자는 장작더미 위에 맨발로 올라섰다. 그러나 그는 평안한자태였으며 미소조차 머금고 있었다. 이제 막 장작더미에 불을 질러 화형을집행하려는 순간 순교자는 형리를 가까이 와달라고 불렀다. 집행관이 가까이 다가왔다. "왜 그런가 마직말 유언이라도 있는가" 집행관이 거만하게 물었다. "아니요, 유언은 없습니다. 이 순간은 제가 기다리던 순간이었소. 부족한죄인이지만 그리스도 앞으로 가는 순간이기 때문이요.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요."이때 말을 들은 집행관은 소리질렀다. "너는 분명히 죽음이 두려운거야." 이때 순교자는 조용히 말했다. "나으리 죄송하지만 나으리 손을 저의 심장에 대보십시오. 제에게 죽음이무서운 것이라면 저의 심장은 심하게 평상시 보다 빠르게 뛴다면 믿음을 갖지 않아도 하나님을 부인하여도 좋습니다" 집행관은 두려움마저 느끼고 있었지만 그래도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제해가며 떨리는 손을 순교자의 가슴에 대보았다. 아니라다를까 순교자의 가슴은 화형전의 것이 아니라 평온히 자고 있는 사람의 것이었다. 집행관은 시비로움을 느꼈다. 도대체 죽음앞에서 평온할 수 있는 그 비범한 용기는 어디서 솟아나는 것일까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평화를 주려고 여러분의 마음과 나의 마음에 나아가온 세상에 평화를 주려고 오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전부를 그에게들릴 때에만 그는 이 평화를 우리에게 주실 수 있습니다.
(예화) 외국의 잡지에 이런 실화가 실려 있었습니다. 전쟁에 나갔던 약혼자를 잃은 여인이 전사 통지서를 쥐고 비 오는 날 저녁 동리 강에 있는 큰 다리를 실의속에 거닐게 되었습니다. 이 여인은 끝내 약혼자를 잃은 슬픔을 극복하지 못하고 투신자살을 결심하고 마악 다리에서 뛰어 내리려는 순간 한 중년 남자가 나타나 팔을 급히 잡았습니다. "여기는 추우니 우리 다리 지키는 조그만 사무실에 가서 이야기합시다"그래서 이 여인이 난로가 있는 그 사무실로 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며 통곡하는데 그 사람이 아무 말하지 않고 두 손을 잡더니 "하나님, 이 여인에게 실의를 딛고 일어설 평화와 소망과 용기를 주옵소서"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이 여이는 말할 수 없는 평화와 삶의 소망과 의욕을 느꼈습니다. 조금 후 이 사람이 인자하게 웃으며 "하나님께서는 자매님을 사랑하십니다. 이 사랑을 깨닫고 새 출발하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이후 이 여인은 집에 돌아왔는데 곰곰이 생각하니 그 다리지기가 너무 고마와 다시 인사하러 그 곳에 갔더니 사무실도 그 사람도 보이지않았습니다. 이 여인은 비로소 그 다리지기가 하나님께서 보낸 천사였다는사실을 알고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새 출발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음속의평화 이것은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해이 평화를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십니다. 누구든지 예수님 안에서 이 평화를얻고 모든 정신적 곤고를 극복하며 행복한 인생을 살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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