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 (눅10:25-37)
본문
우리는 우리가 신의 구원문제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데 오늘 예수님의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는 이 문제를 아주 명료하게 대답하고 있습니다. 어떤 율법사(성경공부를 많이한 성경선생님)가 예수님에게 찾아와 구원에 대한 물음을 합니다. 물음 "선생님 내가 무엇을 어데게 해야 구원을 얻으리이까"(누가복음 10:25) 이 물음에는 종교의 핵심이 있습니다.모든 종교는 이 구원의 문제를 해결하는 처방전을 중심 내용으로 내세웁니다.이것은 당연히 오늘 우리도 질문해 야하는 내용일것입니다. 대답과 물음 "율법에는 무엇이라 기록되어 있느냐" 대답 "네 몸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신명기 6:5 레위기 19:18 이 대답은 옳은 대답이었고 예수님은 칭찬 하십니다.그는 이미 성경전체를 궤뚫고 있는 지혜로운 율법사임을 알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늘 구원에 이르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론적으로만 알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오늘 율법사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1.누가복음 10:25
2.누가복음 10:29
3.또 하나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이미 방법을 알고 있었지만 실행치 못하는 이론적인 신앙인이 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 보건데 그는 기쁨도 확신도 없습니다. 물음 "그러면 네 이웃은 누구 입니까(누가 복음 10:30) 대답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 어떤 한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 갑니다.그길은 걸어서 4시간여 걸리는 길이었고 주변은 석회암의 험한 바위산과 민둥산 사이에 있는 좁고 꼬불꼬불한 혐곡의 길이었습니다. 이런 지경이기에 가끔 강도사건이 일어나곤 했는데 오늘 어떤 사람이 강도 를 만나 저항하다 시모한 상처를 입었고 어쩌면 그 사람은 죽게될 형편에 처해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몇 부류의 사람들이 지나갔습니다. 처음 사람은 제사장 이었습니다.그는 이 상황을목도하고는 구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 순간 그는 율법의 말씀 때문에 실행할수 없었습니다. 레위기 24:4 민수기 13:11 만일 그 사람이 구하는 도중에 죽기라도 한다면 일주일동안 아니 당장 예배 를 인도할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그래서 제사장은 그냥 지나갈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음 당신은 당신의 일때문에 도와야 할 일을 외면하고 방관한적은 없읍니 까 두번째 사람은 레위인이었습니다.그는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이었습니다.그 도 처참한 모습을 보았지만 도울 마음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이런일은 구제 부에서 할일이라고 생각하였고 혹시 쓰러져 있는 사람은 아픔을 위장한 강 도일지 모른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래서 레위인은 그냥 지나갈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음 당신은 당신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혹은 적당한 자기 합리화로 방관한 적은 없습니까 이곳에 우리의 참 모습이 있습니다. 아무도 있지않고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곳,바로 그때 두개의 것이 공존하는 데 하나는 죄악이요,하나는 선입니다.이처럼 아무것도 없고 일체의 요구와 형식도 필요없는 곳에서 우리의 본색은 드러납니다. 생각의 나눔 당신은 이런 상황에서 어데게 했겠습니까 물음:그들의 솔직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에 우리의 결단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앙은 실존적이어야 합니다. 누구에겐가 의해 주어진 신앙이 아니라 내가 결단하는 신앙 신앙은 하나님과 단독적으로 설수 있는 모습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율법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중에 누가 강도 만난자의 이웃이겠는가"("누가복음 10:36") 여기에 예수님의 혁명적인 말씀이 숨어 있습니다. "종교지도자,목사,장로 말의 허무와 입술만의 봉사와 예배는 무익하다 나를 모른다 할지라도 선을 행하는 이들이 더 휼륭하다." 그 강도만난 사람은 바로 예수 였습니다. 마태복음 25:35-36 마태복음 25:40 우리의 부끄러움이 여기에 있습니다. 물음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을수 있습니까
1.누가복음 10:25
2.누가복음 10:29
3.또 하나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이미 방법을 알고 있었지만 실행치 못하는 이론적인 신앙인이 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 보건데 그는 기쁨도 확신도 없습니다. 물음 "그러면 네 이웃은 누구 입니까(누가 복음 10:30) 대답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 어떤 한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 갑니다.그길은 걸어서 4시간여 걸리는 길이었고 주변은 석회암의 험한 바위산과 민둥산 사이에 있는 좁고 꼬불꼬불한 혐곡의 길이었습니다. 이런 지경이기에 가끔 강도사건이 일어나곤 했는데 오늘 어떤 사람이 강도 를 만나 저항하다 시모한 상처를 입었고 어쩌면 그 사람은 죽게될 형편에 처해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몇 부류의 사람들이 지나갔습니다. 처음 사람은 제사장 이었습니다.그는 이 상황을목도하고는 구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 순간 그는 율법의 말씀 때문에 실행할수 없었습니다. 레위기 24:4 민수기 13:11 만일 그 사람이 구하는 도중에 죽기라도 한다면 일주일동안 아니 당장 예배 를 인도할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그래서 제사장은 그냥 지나갈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음 당신은 당신의 일때문에 도와야 할 일을 외면하고 방관한적은 없읍니 까 두번째 사람은 레위인이었습니다.그는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이었습니다.그 도 처참한 모습을 보았지만 도울 마음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이런일은 구제 부에서 할일이라고 생각하였고 혹시 쓰러져 있는 사람은 아픔을 위장한 강 도일지 모른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래서 레위인은 그냥 지나갈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음 당신은 당신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혹은 적당한 자기 합리화로 방관한 적은 없습니까 이곳에 우리의 참 모습이 있습니다. 아무도 있지않고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곳,바로 그때 두개의 것이 공존하는 데 하나는 죄악이요,하나는 선입니다.이처럼 아무것도 없고 일체의 요구와 형식도 필요없는 곳에서 우리의 본색은 드러납니다. 생각의 나눔 당신은 이런 상황에서 어데게 했겠습니까 물음:그들의 솔직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에 우리의 결단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앙은 실존적이어야 합니다. 누구에겐가 의해 주어진 신앙이 아니라 내가 결단하는 신앙 신앙은 하나님과 단독적으로 설수 있는 모습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율법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중에 누가 강도 만난자의 이웃이겠는가"("누가복음 10:36") 여기에 예수님의 혁명적인 말씀이 숨어 있습니다. "종교지도자,목사,장로 말의 허무와 입술만의 봉사와 예배는 무익하다 나를 모른다 할지라도 선을 행하는 이들이 더 휼륭하다." 그 강도만난 사람은 바로 예수 였습니다. 마태복음 25:35-36 마태복음 25:40 우리의 부끄러움이 여기에 있습니다. 물음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을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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