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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사와 사마리아인 (눅10:2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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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마리아"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분 서 너무나 많이 들 어서 평생 다시 듣지 않아도 좋은 정도일 것입니다. 사마리아인이라 면 친절한 사람이나 좋은 이웃을 상지하게 되어 길에 가다가 차가 고 장이 나서 고치고 있는 사람을 보고 도와주지 않고 지나 갈때마다 나 쁜 율법인이나 레위 사람을 연상하여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될 정도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윤리적 의무를 가르켜 주는 설화가 되 어 버려서 이야기를 들어도 별로 자극도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비유로 생각하여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아 듣고 새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그 배경부터 공부해 봅시다. 예수님 생시에 강도가 많았고 예루살렘에서 여러고로 가는 길이 험 하였다거나 포도주로 소독하고 기름으로 상처를 치료하였다는 것도 전 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알아야 할 것은 첫째로 그 당시 제사 장들이 어떠한 직을 차지하고 어떠한 역할을 하였는지, 둘째로 유대 사회에서 사마리아 사람들이 어떠한 직위를 차지하고 있었는가를 생각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사장들은 유대사회에서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만이 아니라 경제적로도 제일 높은 계급에 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즉 십일조를 걷어 들일 뿐 아니라 큰 은행을 경영하였고, 살인죄 이외의 모든 소송 사건을 판결하며 로마 정권하에 정부의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샂드은 한 나라의 권위를 대표하고 레위 사람들과 마찬가 지로 예식을 거행할 때 정결해야 되었으므로 절대로 죽은 시체를 다 치지도 않을 정도 였습니다. 즉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유대나라의 권위를 대표하고 그를 보호해야 되었기 때문에 자기들의 위신을 손상시킬 일은 자기를 위하여 뿐 아니라 나라 전체를 위하여 서도 하지 않던 것입니다. (참조:전기된 The Parables of Jesus and Jerusalem in the Times of Jesus)
둘째로 중요한 점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율법없이 살지만 돈이 많은 로마인이나 희랍사람들 또는 무식한 시리아 사람들 같은 외국인들이 아닙니다. 사마리아는 이스라엘 북쪽에 있던 왕국으로서 주전 8 세기에 아씨리아 나라로 잡혀간 후 혼족결혼을 하였습니다. 그 이유로 유대인들이 바벨로니아에서 돌아와 성전을 지었을 때 성전에 들어가지 못하는 백 척을 당하였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과 유대인들 사이에는 피차간 에 반감이 심하여 마치 친형제자매가 원수가 된 것 같았습니다. 사마라아 사람들은 그리심 산에서 하나님 제사를 드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하나되시는 하나님을 예루살렘에서 섬기라는 신명기율법에 거역되는 것이므로 유대인들이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반면에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들에게 복수하는 행동을 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이 요세푸스 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월절에는 제사장들이 밤 열 두시 후에는 예루살렘 성문을 열어두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몇몇 사마리 아인들이 몰래 성안에 들어와 성전입구에서부터 사 방에 사람의 뼈를 뿌려놓는 일이 있었습니다." (참조:전기 Antiquiies.18) 또 예를 하나 더 들자면 예루살렘에 올라 가려고 사마리아를 거쳐 가는 갈릴리 유대인들을 죽인 일이 있습니다. 이것을 원수 갚기 위 하여 갈릴리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의 마을을 태워 버린 일이 있는데(눅 9:51-56) 로마 제국 판사가 사마리아인들로 구성된 군인들을 시켜서 유대인들을 죽인 일이 있습니다. 그 후 이 사건이 시리아 법정에 상정되었을 때 양쪽 주모자들은 십자가에 달려 죽이고 대제사 장을 쇠사슬에 매어 로마 황제 앞에 나가게 하여 변명을 강요한 일이 있습니다. 그때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이 각각 음모를 하였는데 유대인들은 로마 황후의 마음을 산 결과 대제사장을 잡아가게 만든 일 곱 사마리아인을 로마황제가 사형시키고 로마 판사는 귀양가게 된 일 이 있습니다. (참고:요세푸스의 Jewish War
2, pp. 232-236; Antiquities 20,pp. 119-136) 이러한 관계는 현재 P.L.O. 와 유대인 사이, 또는 북 아일랜드의 구 교와 신교인들이 싸우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였습니다. 예수님 서 말씀하신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의 중점인 누가복음 10:30-36을 먼저 공부하려 합니다. 아래에 있는 저자의 번역을 자세히 읽으시고 특히 마지막 나오는 질문을 명심하셔서 생각해 보시 며 다같이 토의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도 내려가는 도중에 강도를 만났다. 강도들이 그의 옷을 벗기고 반쯤 죽 어갈 정도로 때려놓고 가버렸다. 마침 유대인 제사장 이 그 길을 지나다 죽어가는 사람이 길가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비 서 가버렸다. 다음에 지나가던 레위 사람도 그를 보고 그냥 가버렸다. 다음에 지나가던 사마리아 사람은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곁에 가서 상 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부어주고 자기가 타고온 나귀에 그를 태우고 여관에 데리고 가서 간호하였다. 다음날 아침에 그는 두 데나리온을 여관 주인에게 주 면서 다친 사람을 돌보아 달라고 부탁하고 비용이 더 든 경우에는 자기가 돌아가는 길에 들릴 때 갚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러면 이 셋 중에서 누가 강도를 만 난 자의 이웃이 되겠는가 비유의 의도 이 비유는 유대사회에서 지위가 높은 제사장이나 레위 사람은 좋은 사람이고 사마리아 사람들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만일 한 사마리아 사람이 다른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를 하였다면 자기들을 자랑하는 것에 불과하여 비유의 역할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갈릴리에 살던 사람들은 제사장들이 경건하게 제사드리며 왕들이 어질게 다스리던 옛시절을 그리워 하며 과거의 좋은 전통을 현실에 맞게 해석하여 적용하려고 노력하던 사람 들입니다. 그들은 제사장이 다 죽어가는 사람을 혼자서 살펴보려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다는 것도 알았고 또 도와준 사마리아 사람이 쓰러 져 있는 사람이 유대인인줄 알고도 도와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읍니다.
그러므로 혹시 사마리아 사람으로 잘못 알고 도와줄 수 있다 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이 셋 중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는가"라는 질문으 이해한다면 여러 조건을 불 구하고 이웃이라면 도움을 주는 자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나단의 비유를 들은 다윗 왕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좋은 의도나 신앙의 전문직 보다는 실제로 행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비유는 좋은 일을 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은 알지만 어떤 경우에 말씀하셨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이 귀절에는 예수님게서 어떤 율법사의 질문을 받고 대답하신 것을 되 어 있으나 마가복음 12:28-34절과 마태복음 22:33-40절에도 예수님 서 비유를 들지 않으시고 이 말씀하신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실제로는 여러 번 말씀하신 것을 후에 누가복음에 합한 것인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누가복음에 나온대로 한 번 생긴 일을 마가나 마태가 비유는 빼고 이야기만 성경에 기록하고 누가는 당시의 상황을 기록했다고 해석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누 가복음 1:25-37절을 보면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라는 질문에 예수님 서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느냐"고 반문하셨 습니다. 같은 율법인이 "그러면 누가 내 이웃이냐"라고 질문하였을 때 예수님 서는 곧 대답하시지 않고 비유를 통하여 "이 셋 중 누가 강도 만나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라는 반문을 하셨습니다.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라는 대답을 들으시고 그것을 긍정하시면서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심으로써 율법인이 자기 질문에 자기 가 대답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유는 질문한 사람의 의문 을 비추어 주어 스스로 볼 수 있게 만드는 거울의 역할을 한 것입니다. 이러한 대화방법은 유대나라에서 랍비들이 흔히 쓰던 것으로 예수님 서도 같은 방법을 쓰신 것입니다. (막 2:1-3:6; 12:1-17) 만일에 예수님 서 영생을 얻기 위하여 사랑해야 될 이웃이 누 구냐는 질무에 대답하셨다면 더 깊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왜나면 예수님 서는 이웃은 의로운 자가 아니라 자비를 베푸는 자 라고 대답하심으로써 의롭다고 자칭하는 자들에게 알아 듣게 말씀 하신 것입니다. 즉 도움이 필요한 자는 누구든지 도와야 한다는 것이 십계명 중 제 이계명이므로 그것에 복종하여 실행 해야한다는 의미이며 한 걸은 더 나아가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즉 예수님 서 드신 비유는 "누가 내 이웃이냐"는 율법사에게 "누가 이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겠느냐"고 반문 하심으로써 "누가 내 이웃이냐"는 문제에 끝이지 않고 "이웃이 필 요할 때 누가 내 이웃이 되느냐"는 깊은 관심사로 만드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 질문을 한 율법사가 자기자신을 강도의 손에 잡힌 사람의 입장으로 화하여 도움이 필요하게 느 지고 자비스러운 사마리아인의 행위가 얼마나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만드 신 것입니다. 이 비유를 깨달은 사람은 누구나 길가에 쓰러져서 죽어 가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고
그러므로써 자기를 돕는 사람이 바로 자기 이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절실히 느 끼게 되면 "가서 이와 같이 하게" 되는 것입니다. 비유를 통하여 배울 점 우리는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들을 때 "가서 그와 같이 하라"는 것을 명심하고 그 외의 내용, 즉 그들이 유대사회에서 천대받 던 사람들이라든지 강도 만난 사람이 갈가에 쓰러져 있었다는 것은 잊어버리게 됩니다. 비유에서 나오는 사마리아 사람은 우리 사회에서 어떤 특수한 사람들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각자에게 경우에 따라서 대상의 인물이 있게 될 것입니다.
첫째로 여러분 각자는 사마리아인이 누구인지 생각해 보시고,
둘째로 곤경에 빠져 버림 받은 체험담을 해보시고,
셋째로 그 때에 "누가 이웃"이 되었는 지 깨닫게 된 이야기를 다같이 토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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