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이웃이 있는 신앙 (눅10:25-37)

본문

온통 2000년대의 개방 사회에서 우리 나라의 위상과 경제 전망에 대한 각계각층의 기대와 전망들로 차 있습니다. 특히 정치와 경제적 측면에서 기대하는 바가 크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기독교를 향한 사회의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무엇일까 새해를 마지하면서 우리 모두 한번쯤 깊이 생각해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오늘 읽은말씀은 흔히 사마리아인의 비유라고 합니다. 어떤날 예수님께 율법사가 찾아와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자못 진지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때 우리 주님께서는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어 있느냐 고 되물었을 때, 이 율법사는 거침없이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라고.정확하게 대답하였습니다. 이때 주님께서는 "네 대답이 옳다. 이를 행하라. 그리하면 살리라!"라고 대답했더니,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고 되물었을 때, 주님께서는 한 비유를 들어 설명해 준 것이 오늘의 본문 내용입니다. 그 비유의 내용인즉, 어떤 사람이 예루살롑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죽게 되었는데 그리로 제사장이 지나갔고, 레위인도 지나갔지만,모두 그를 피하여 갔지만,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 중에 이 사람을 보고는 그를 주막까지 실어다 주인에게 잘 부탁하고 그 비용을 다 지불하였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면서 율법사에게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인가 고 물으면서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하였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많이 듣고 또 들어서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말씀에서 다시 깊이 발견해야 할 진리의 교훈이 시대적 요청으로 우리 앞에 다가섰다는 말씀입니다.
1.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웃과의 관계에서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는 교훈입니다. 사실 깊이 생각해 보면 이 비유는 단순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이기 보다 우리 신앙 인들에게 주는 '올바른 하나님과의 관계 비유'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강도 만난 사람은 우리의 모든 분야에서 만날 수 있는 이웃입니다. 그러나, 율법사처럼 오늘의 신앙 인들에게 이웃이 구체적인 개개인이 아니고, 머리 속에서만 있는 개념일 경우가 많습니다. 민중 신학에서 말하는 소위 '민중'이라는 개념과 같이 민중은 있어도 개인과의 만남이 없는 민중일 뿐이라고 비판하는 소리같이 우리 믿는 사람들이 늘 말하는 이웃사랑이란 구체적 개인이 없는 이웃일 경우가 많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애국 애족을 부르짖는 사람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애국 애족은 있으나, 구체적 나라사랑과 겨레 사랑의 행위는 없다는 말입니다. 국가와 민족은 있어도 이웃이 없는 생활들 많이 있습니다. 나라 사랑, 겨례 사랑은 열심히 외치지만 이웃간의 교제는 없다는 말입니다.
2.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웃 없는 신앙이 너무나 많아졌습니다. 많은 교회들, 많은 기도원들, 그리고 신년 축복성회등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모두 나의 하나님 뿐이지 너의 하나님은 없습니다. 오늘의 한국 교회의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너무나 이것이 분명해 져 있습니다. 교파간의 무관심, 아니면 적대감, 아집으로 굳어진 우월감! 모두 이웃이 없는 하나님과의 관계일 뿐입니다. 강도 만난 사람을 피하여 가는 가는 것처럼, 오늘도 한국 교회의 신자들의 생각에는 부흥회 가는 길에는 열심이지만, 기도원에서 하나님과의 자기만의 관계는 돈독하지만, 죽어 가는 이웃은 보이질 않습니다. 기독교 2000년 역사 속에서 나타난 사례들을 보기를 바랍니다. 제정 러시아 시대에 그 화려했던 크레물린 궁전을 보시기를 바랍니다. 교회들과 신자들이 많은 것을 소유하고 대 지주로 많은 영토를 소유하고 있으면서 이웃이 없는 반복된 예배 행위 속에 어느날 갑자기 낫과 망치 앞에 붉은 피를 흘려야 했던 산 증거를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웃이 없는 신앙!,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가 없는 하나님 신앙이라면, 그것이 오늘의 남미의 여러 나라들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래서 남미에서 하는 말이 성당은 있어도 하나님은 없고, 크리스천은 있어도 예수는 없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서, 오늘 우리 한국의 신자들도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경제 성장과 함께 많은 교회들이 세워 졌습니다. 그리고 도시에는 대형 교회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새로 생겨났습니다. 몇십명 몇 백명 모이는 교회는 교회 축에도 못 들게 되었습니다. 수천명, 수 만명 모여야 교회가 부흥되었다고 말 할 형편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생각해 보면, 그 많은 신자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은 있어도 이웃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점이 문제입니다. 그러나, 이점을 심각하게 생각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신앙의 율법사들은 어느 교회엘 가도 많지만, 사마리아인의 마음을 품은 사람들은 적습니다. '누가 내 이웃인가' 고 하나님께 큰 소리로 기도하는 사람들은 많아도,여행 중에 자신의 노자에서 떼어 주는 행동 있는 사마리아인은 적습니다. 모두가 자기 변명과 더 큰 일 때문에 총총걸음으로 피해 가는 사람들 뿐입니다.
3. 사마리아인의 경우에서 이웃은 율법사처럼, 누가 내 이웃인가 하는 이론과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자기의 길에서, 그리고 자기의 것으로 봉사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인간 개인이었습니다. 즉 자기의 것을 떼어 주는 베풂의 대상이 이었습니다. 즉 봉사할 대상을 갖고 있는 사람만이 오늘의 필요한 사람입니다. 크게 보면 오늘의 우리 나라를 이르켜 세울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말 잘하는 사람들, 설교잘 하는 목사나 종교인, 명강의로 해박한 지식인, 아닙니다!. 이름 없이 자신의 길에서 자기의 생활비 속에서 베풀 수 있는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 바로 이렇게 부각되어 져야 할 때입니다. 이웃 없는 하나님 신앙에서 이웃이 되어 주는 신앙의 전환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러기 위하여서는 이제 우리의 시앙생활에서 이웃이 없는 신앙이 되지 말고, 이웃과 함께 하는 신앙으로 전환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도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라고 하지 않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그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늘의 한국 교회의 문제 중에 하나는 극단적인 개인주의적 신앙입니다. 나와 하나님만이 있지, 우리가 없다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인 동시에 우리의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 사회는 개방과 개혁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과거에 잘못된 관행과 아집에서 말씀의 본질적 뜻으로 되돌아가는 운동이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오늘의 종교개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들마다 새해에는 구체적인 피해 가는 길이 되지 말고, 사마리아인 처럼 베풂의 현장들을 가지는 계획들을 세워 나가야 할 것이고, 전 교우들은 자신의 신앙생활 속에서 한가지 이상 봉사할 대상을 찾아 나서야 할 것입니다. 봉사할 대상 없이 믿는 신앙생활이란 이제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질 날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가 예수 믿어 궁극적으로는 죽어 천당에 가는 것이 최후의 목적이지만, 천국 백성으로서의 삶의 모습을 이 땅위에서도 실현하면서 살아야 할 본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지나온 세월에서 혹시 제사장과 레위인 처럼,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도 그 길을 피해 간 일은 없지 않는지.깊이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넓은 의미에서 오늘의 강도 만난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어떤 의미에서 우리 한반도의 허리 잘린 상태라고 봅니다. 사실 열강들의 틈바구니에서 우리 민족이 원해서 갈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강대국들의 이념의 주먹과 사상의 창검 앞에 얻어맞아 허리를 못쓰게 된 반신 불수와 같은 모습이 우리 나라의 형편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 나라를 이르켜 세울 사람들이 누구라고 보십니까사회 각계각층에 들어가 있는 우리 크리스천들이라고 봅니다. 법을 제정하는 국회에서, 법을 집행하는 행정부에서, 그리고 교욱을 담당한 교단에서, 그리고 기업을 경영하는 현장에서, 그리고 국방을 담당한 위치에서,그리고 가장 중요한 가정을 지키는 주부들의 입장에서, 이웃이 있는 신앙 인들이 되는데 있습니다. 그렇다고 율법사처럼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라고 묻지 말고,너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 고 했던 주님의 명령 따라서 나의 길, 나의 생활의 현장에서 이웃이 되어 주는 눈길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눈, 그런 손길들이 있는 곳에서, 치유의 역사는 일어나고야 말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는 금년 표어처럼, 더 큰 은사를 사모하는 성도들이 다 되어야 하겠습니다. 더 큰 은사가 무엇입니까 사랑의 은사입니다. 사랑은 모든 법을 능가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구체적 행위 속에서 무르익고, 그 사랑을 심어 가는 사람에게는 영원을 심어 가는 행복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은 떨어지고, 변하고 없어지지만 사랑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세월이 가도, 마음속에 심겨진 사랑은 지워지질 않습니다. 사랑을 받은 사람도 그 사랑을 영원토록 간직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괴롭고, 가장 외롭고, 가장 여려울 때, 그 한마디가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웁니다.
그러므로 믿음,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537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