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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고로 내려가는 길 (눅10:30-37)

본문

예수님의 전도사역은 열두제자와 70인의 제자를 파송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예수님의 이 땅에서의 최우선 과제는 잃어버린 자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이 이며 더 나아가 이 생명을 풍성케 하는 일이다. 누가복음 10장은 예수님이 70여 제자들의 전도 보고를 받으시고 성령님으로 그 기쁨을 나타내시는 감동적인 예수님의 감사의 찬양이 나온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최대 관심은 사람들이 생명을 찾는 일이기 때문이다. 연이어 예수님은 율법사에게 "어떻게 영생을 얻으리이까"라는 질문을 받는다. 이 질문 에 답하여 예수님은 여리고로 내려가는 강도 만난 사람과 이를 도와주는 선 한 사마리안의 비유를 말씀하신다. 이 이야기는 비유라기 보다는 여리고로 가는 이 험한 길에서 자주 일어나는 사건을 말씀하셨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어떻 게 사랑을 실천할 것인가를 친히 몸으로 보여주시고 또한 말씀하시면서 진 정 이웃을 보여주셨고 이 땅에서 우리는 누구를 만나야 이 사랑을 받을 수 있는가를 말씀하신다.
1. 여리고의 길은 험한 길이다. 여리고라는 도시는 물질 문명의 본산지로 무역이 흥왕하던 오랜 상업도시 였다. 요단에서 약 8km 서쪽에 위치해 있지만 여기로의 길은 특히 험한 길 이다. 많은 경사와 낭떠러지 그리고 험한 굴곡들이 있다 . 우리는 이 여리고로의 길을 우리의 험한 인생 나그네길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모양과 형태는 다르더라도 우리 인생의 길은 고생과 수고, 그리고 아픔과 질병이 끊이 지 않는 험한 길인 것이다. 신문지상에 새겨지는 끔찍한 사건들이 바로 내 이웃에게서 빈번히 일어나 고 있으며 나 자신에게도 언제 그러한 일이 생길지 모르는 가운데 이 세상 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은 '여리고'라는 도시로 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생존의 문제를 위해, 명예를 위해, 부를 위해 누구나가 그 도시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2.끊임없이 만나는 강도 '강도'란 물건만을 빼앗는 절도와 다르다. 우리 옷을 벗기고 때록, 해치 고, 죽이려고 하는 무서운 대상인 것이다. 이 땅에 죄가 들어온 후로 사탄 은 무고한 아벧을 죽이면서부터 죽이고 피 흘리기를 좋아했으며, 그의 악으 리 더욱 번성케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 세상 마지막 때에는 전쟁과 기근으로 세상의 많은 생명을 삼킬 것 을 요한은 계시를 통하여 기룩해 주었다. 더구나 무역도시인 여리고로 내려 가는 사람들은 돈 보따리를 거의 지니고 다니기 때문에 강도들은 틈틈히 사람들을 해치고 죽이려는 강도처럼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마치 저주 받은 이 땅은 가시나무와 엉겅퀴로 뒤엉켜 있는 듯 우리의 삶도 많은 대적 들을 만나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3.강도 만난 자를 치유할 자 그러면 강도를 만나 벗겨지고, 찢기고, 빼앗김을 받은 자는 누구에 의하여 구원 받으며 생명을 보존할 수 있을 것인가 그의 옆을 스친 사람들은 많았다. 종교적인 책임자인 제사장, 경건한 종족인 레위인, 그들은 인정과 도덕 심이 많은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강도 만난 이웃을 피하여 갔지만 한 사람은 그를 접근하여 치유의 손길을 내밀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사마리아인,아니 오히려 천대 받던 사라미아인은 그의 가진 전부를 내어주고 피흘리며 죽어가는 사람을 기름과 포도주로 치 유한다. 기름은 '성령님'의 역사의 상징이며 포도주는 '피'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생명을 씻기는 데에는 그리스도의 피가 있어야 하며, 성령님의 도움으로 이 사실을 믿어야만 새생명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이 사마리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이다.그에게는 포도주와 기름이 있었고 능히 이것들로 사람을 살리실 수 있는 분이시다. 아무리 착하고 선한 사람이 강도 만나 죽게된 사람을 살리려하여도 기름과 포도주가 없이는 치유가 불가능한 것이다. 이 강도만난 자는 바로 만날만한 자를 만난 것이다. 이 만남은 생명을 소생케 할 수 있는 만남이었고,치유를 받을 수 있는 만남이었다.
4. 주막에서 호보함을 받았다 (10:35). 이 사마리아인은 고쳐만 주고 떠나간 것이 아니라 주막까지 태우고 가서 그곳에서 그가 다시 올때까지 보호하도록 주막 주인에게 부탁하였다. 다시는 강도를 만나지 않고 보호 받을 수 있도록 완벽한 방어의 장소까지 데려 간 것이다. 이 주막은 바로 교회의 그림자인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 사탄 의 형벌로 부터 구원은 받았지만 끊임없이 역사하는 권세로부터 해방 받기 위해서는 교회라는 서역 안에 보호받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이름만 있으면 모든 것이 공급되는 교회생활 ! 주막에서 거하는 강도 만난 자는 모든 필요를 사마리아인이 지불해 준다. 완벽한 보호를 보장하고 떠난 것이다. 이 주막안에 있으면 사탄의 권세는 접근할 수가 없는 것이다. 성령님의 운행함이 끊이지 않고 하나님의 전능의 손길이 떠나지 않는 아름다운 성교회! 우리모두 이 주막 안에서 보호 받아야 할 자들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5. 다시 와서 그의 집으로 데려간다. 이 사마리아인은 자기의 일을 끝낸 후에 다시와서 이를 데려간다고 했다. 주막에서 오래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 더욱 온전하고 아름다운 집으로 그를 데려갈 것이다. 모든 것을 갚아주시고, 영광의 처소로 우리를 데려가겠다고 약속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요 14:1-3) 우리의 주막 인생은 기쁨과 소망으로 가득차 있 어야 한다.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 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계 22:20) 이 약속들은 기다리는 주막 의 나그네는 곧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성도의 모습일 것이다. 우리는 비록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비참하게 강도를 만났지만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와의 귀한 만남에서 모든 상처와 아픔을 깨끗이 치유받고, 아름다 운 영광의 기업을 바라보면서 잠시 잠깐 주막에 머무는 성도들이다. 이 아 름다운 주막생활을 통하여 더욱 우리의 육과 영과 혼이 강건하여 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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