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놀라운 능력 (눅8:11)
본문
가끔씩 우리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을 얼마 나 경험하며 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할 때가 있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인간의 능력 이외의 것은 전혀 신뢰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현 대 사회에 섞여 살면서, 어느 부분 세상에 만연된 생각에 동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나오는 걱정일는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흔히, 지금은 이미 "기 적이 사라진 시대"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도 과학과 기술이 이룩할 미래의 모습에 대해서는 무한대의 기대감을 보입니다. 이것은 마치, 과학을 통한 기적을 바라는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개인적인 삶에서 영적인 힘을 상실한 것은, 어쩌면 우리의 생활에서 어떤 중요한 부분이 상실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렇 다면,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삶을 무력하게 만드는 원인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대해서, 신학자 토레이 박사(R.
A.Torrey)의 대답은 명쾌합니다. 토 레이 박사에 의하면, "만일 그리스도인이 그의 생활과 신앙(예배)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충분히 경험하기 원한다면, 그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 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보다 필요한 것은 없습니다. 음식을 섭취하지 않으면 육체의 건강을 지킬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데 시간을 들이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의 영적 인 생명력은 유지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삶을 유지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곧 우리에게 주어진 "성경"은,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입니다. 성경에서 일점 일획 도 더하거나 덜할 수 없는 이유는, 성경 안에 하나님의 뜻이 온전한 형태 로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죄에서 지킬 뿐만 아 니라(시 119:11), 우리의 삶에 성령님의 열매를 맺도록 인도하는 능력을 가지 고 있습니다(눅 8:11). 예레미야 23장 29절을 보십시오. "나 여호와가 말하 노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 니하냐." 그렇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고 (행 2:37),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며(벧전 1:23), 우리의 믿음과(롬 10:17) 기도의 근거가 됩니다(요일 5:14-15). 뿐만 아니라, 의심을 이길 힘을 줍니다(요 20:31).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삶을 지키고 풍성하게 하는 유일한 힘(파워)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에 불 같은 힘,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힘이 있다고 말씀하 십니다. 만일 우리가 그 힘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는 먼저 하나님 의 말씀과 그분의 능력에 의지하는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오늘도 어떤 피조물보다 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에 의지하며 사는 믿음의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그러나 확실한 하나님의 능력 눅 1:26-38 나사렛이라고 불리는 작은 마을에, 마리아라는 처녀가 살았습니다. 마리아는 요셉이라는 청년과 결혼하기로 되었습니다.
그런데 결혼식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때에, 천사가 나타나 마리아에게 충격적인 말을 했습니다. 천사 가 전한 말은 "마리아가 곧 아기를 낳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여 기에 덧붙여 천사는, 마리아를 통해 태어날 그 아기가 "지극히 높으신 이 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듣게 될 것"이라는 말도 했습니다. 그러나 결혼하지 않은 여성에게 아이를 낳게 될 것이라는 말은, 듣기에 참 이상한 소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사를 통해 전해진 하나님 의 말씀을 들은 마리아는, 믿음으로 반응했습니다. 누가복음 1장 35절과 38 절을 보십시오.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님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 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 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그렇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께 항의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통해 이루시려는 계획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러한 마리아 의 반응은, 하나님께 대한 전폭적인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한, 믿음의 행동 입니다. 마리아가 이렇게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신뢰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성품과 그분의 능력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진정한 신뢰는, 상대를 아는 지식에서 나옵니다. 상대를 바 로 알지 못하면서 그 사람을 신뢰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아니, 그러 한 믿음은 신뢰가 아니라, 스스로 속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지금 그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있습니다. 마리아가 아는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모세와 야곱과 함께 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들과 어떻게 동행하셨는지 알았기 때문에, 마리아는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고, 그분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전폭적으로 신뢰하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 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성경을 읽을 수 있는 특권이 주어져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제까지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셨는지 보여주는 "과거(역사)"가 있 고, 앞으로 어떤 일이 있을 것인가를 보여주는 "미래"가 있습니다. 뿐만 아 니라, 성경은 믿음으로 바라보는 자에게, "오늘" 그가 해야 할 일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모든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고, 믿음이 성장하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크신 팔 민 11:4-5, 10-15, 18-23, 31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만난 어려움은 얼마나 큰 것이었습니까 그리고 그 어려움을 지나는 동안, 우리가 경험한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애굽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는 동안,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도 여러 가지 어려움을 만났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크고 심각한 것 이 음식 문제였습니다. 애굽에서 비참하고 굴욕적인 노예 생활을 하고 있 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이 명하신 땅으로 인도해 낸 지 겨우 두 달이 지났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벌써 음식 투정을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매일 그들에게 내려주신 만나에 대해서 불평했으며, 끝내 애굽 땅에서 먹은 하찮은 음식을 들먹이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들 은 고기를 먹기 원했습니다. 그리고 고기를 먹을 수 없다면,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원했습니다. 이 일로 인해, 모세는 큰 좌절과 어려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 나아갔을 때, 하나님은 크게 진노하시며,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되, 하루나 이틀이나 닷새 나 열흘이나 이십 일만 아니라, 한 달 동안 고기가 코에서 넘쳐 싫어하기 까지, 물리도록 먹게 하겠다"고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까지 그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모세였으므로, 모세는 아마 하나님께서 어린이와 여성을 포함한 육십 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을 먹일 고기를 주 실 것으로 믿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얼마나 많은 고기 를 모아야 이 백성을 다 먹일 수 있겠느냐고 하나님께 반문합니다. 하나님 은 이런 모세의 믿음을 탓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민수기 11장 2 3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 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 과연,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메추라기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 셨습니다(민 11:31).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진정으로 믿으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달라질 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하나님께 기도하십니까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고 계십니까 믿음의 조상, 모세 조차, 하나님의 능력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한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언제나 성실하게 그분의 약속을 지키십니다. 오늘도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의 터에 굳게 서서, 믿음 안에서 생활하는 축복 된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는 하나님 계 21:6 하나님의 능력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의 창조 능력 만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은, 혼돈과 공허의 상태에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일에서 뿐만 아니라, 그 지으신 우주 만물을 운행하 시는 일과, 피조물을 구원하시는 일에서도 동일하게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또,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서 우리에게 나타났습니다. 성경 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시기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도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셨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은 예수께서 죽은 나사렛을 살리 셨을 때나(요 11:1-12:19), 바다와 바람을 잠잠케 하셨을 때에도 동일하게 나타났습니다(마 8:23-27). 뿐만 아니라, 우리가 죄 가운데에서 구원 받은 것도, 오로지 주님의 능력 때문인 것을 기억하십니까 우리가 주님의 능 력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가 자신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와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이 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의롭다 일컬음을 받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와 그분의 능력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은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현재, 현실의 삶에서 주님의 능력을 경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변함없이 그분의 능력을 경험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어떻게 그 사실을 확신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내린 것 이어야 합니다. 성경이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8절을 보십시오.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 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알파와 오메가'라는 말로, 그분의 능력을 설명하셨 습니다. 알파와 오메가는 헬라어 알파벳의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인데, "시 작과 끝", "처음과 마지막"이라는 문자적인 의미 외에, 유대식 표현 방식으 로는 "전체와 완전함"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능력은 영 원할 뿐만 아니라 완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능력의 하나님께서 과거에 "이미" 우리와 함께 하셨고, 지금도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시며, 앞으로도 "계속" 함께 하실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 며,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하실 수 없는 일 마 5:48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 그리스도인에게 이렇게 항의할 때가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말한대로, 하나님이 뭐든지 하 실 수 있다면, 당신의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도 들어올릴 수 없는 큰 바위 를 만들 수 있으실테죠. 그러면 결국 하나님도 그 바위를 들어올리지 못할 테니, 당신의 말은 모순(矛盾)이 아닙니까 "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능 력이 무한하시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나님의 능력을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입니다(변증의 오류). 성경은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하실 수 있다고 말씀 하시지만(마 19:26/ 눅 1:37), 그러나 하나님은 그분의 성품에 위배되는 일 은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이 무한하다"고 말할 때, 이것은 "하나님께서 못하실 일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죽으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지으실 수 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또 사각형 모양의 원을 그리실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이 무한하시다"고 말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말할 때,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은, 그분이 창조하신 우주에 대한 온전한 통치권을 의미 합니다. 전도서 3장 14절을 보십시오. "무릇 하나님의 행하시는 것은 영원 히 있을 것이라 더할 수도 없고 덜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 은 사람으로 그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그렇 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인간의 지혜로 "전부"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이 행하시는 일이 온전하며, 또 그분을 영광되게 하는 일인 줄로 알고 믿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하실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에 위배되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죄를 지으실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 의 능력은, 오직 하나님의 성품으로만 제한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신명기 32장 4절을 보십시오. "그는 반석이시니 그 공덕이 완전하고 그 모든 길이 공평하며 진실무망하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정직하시도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주님 안에서 더욱 성숙해가는 축복된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능력의 근원이신 하나님 느 9:6 신학자들이 "하나님은 전능하시다"고 말할 때, '전능하다'는 말의 뜻은 무 엇입니까 전능하다는 말은 "모든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뜻으로, 영어 로는 "옴니 포텐트(omnipotent)"라고 합니다. 라틴어에서 비롯된 이 말은, "옴니(omni)"라는 단어와 "포텐트(potent)"라는 단어가 합쳐져서 이루어진 합성어입니다. 라틴어에서 "옴니(omni)"란, "모든 것" 또는 "우주"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포텐트(potent)"란, "무력이나 권위, 또는 영향력을 휘두른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학자 토저 박사(A.W.Tozer)는, '하나님의 전 능하심'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무한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가 지고 계신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다함(제한, 한계)이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무한한 능력을 소유하고 계시다.스스로 존재하시는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그분의 존재 자체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능력의 근원이 되신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대한 토저 박사의 말은 다소 어렵게 들리지만, "하나님이, 모든 능력(power)의 시작(근원)이 되신다"는 진리 중의 진리를 설 명한 것입니다. 확실히 하나님은 흑암과 혼돈과 공허로부터, 빛과 우주와 거기 거하는 생명을 지으셨습니다. 창세기 1장 1절과 3절을 보십시오. "태 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 시매 빛이 있었고."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완전한 무(無)'에서 '완 벽한 유(有)'를 창조하실만큼, 아니,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그 어떤 능력 보다도 큽니다. 어느 햇살 눈부신 오후에, 어두운 방에 들어가 닫혀있던 창 문을 열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창문을 비집 고, 어둠 사이로 빛이 들어옵니다. 그리고 그 빛은, 이제까지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어둠을 몰아냅니다. 빛이 어둠을 이긴 것입니다. 저녁이 되었 습니다. 다시 어둠이 밀려옵니다. 저녁이 되었다고 해서,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어둠이 오는 것을 보고, 우리는 이미 그 방에 작 은 불을 켜두었습니다. 밤이 되었다고 해서, 어둠이 빛을 몰아내는 것은 아 닙니다. 아주 작은 불빛만으로도, 빛은 어둠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빛이 언제나 어둠을 이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능력은 세상의 어떤 능력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오늘도 세상을 지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크신 능력에 의지하며 사는 복된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A.Torrey)의 대답은 명쾌합니다. 토 레이 박사에 의하면, "만일 그리스도인이 그의 생활과 신앙(예배)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충분히 경험하기 원한다면, 그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 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보다 필요한 것은 없습니다. 음식을 섭취하지 않으면 육체의 건강을 지킬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데 시간을 들이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의 영적 인 생명력은 유지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삶을 유지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곧 우리에게 주어진 "성경"은,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입니다. 성경에서 일점 일획 도 더하거나 덜할 수 없는 이유는, 성경 안에 하나님의 뜻이 온전한 형태 로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죄에서 지킬 뿐만 아 니라(시 119:11), 우리의 삶에 성령님의 열매를 맺도록 인도하는 능력을 가지 고 있습니다(눅 8:11). 예레미야 23장 29절을 보십시오. "나 여호와가 말하 노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 니하냐." 그렇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고 (행 2:37),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며(벧전 1:23), 우리의 믿음과(롬 10:17) 기도의 근거가 됩니다(요일 5:14-15). 뿐만 아니라, 의심을 이길 힘을 줍니다(요 20:31).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삶을 지키고 풍성하게 하는 유일한 힘(파워)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에 불 같은 힘,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힘이 있다고 말씀하 십니다. 만일 우리가 그 힘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는 먼저 하나님 의 말씀과 그분의 능력에 의지하는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오늘도 어떤 피조물보다 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에 의지하며 사는 믿음의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그러나 확실한 하나님의 능력 눅 1:26-38 나사렛이라고 불리는 작은 마을에, 마리아라는 처녀가 살았습니다. 마리아는 요셉이라는 청년과 결혼하기로 되었습니다.
그런데 결혼식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때에, 천사가 나타나 마리아에게 충격적인 말을 했습니다. 천사 가 전한 말은 "마리아가 곧 아기를 낳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여 기에 덧붙여 천사는, 마리아를 통해 태어날 그 아기가 "지극히 높으신 이 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듣게 될 것"이라는 말도 했습니다. 그러나 결혼하지 않은 여성에게 아이를 낳게 될 것이라는 말은, 듣기에 참 이상한 소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사를 통해 전해진 하나님 의 말씀을 들은 마리아는, 믿음으로 반응했습니다. 누가복음 1장 35절과 38 절을 보십시오.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님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 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 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그렇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께 항의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통해 이루시려는 계획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러한 마리아 의 반응은, 하나님께 대한 전폭적인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한, 믿음의 행동 입니다. 마리아가 이렇게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신뢰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성품과 그분의 능력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진정한 신뢰는, 상대를 아는 지식에서 나옵니다. 상대를 바 로 알지 못하면서 그 사람을 신뢰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아니, 그러 한 믿음은 신뢰가 아니라, 스스로 속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지금 그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있습니다. 마리아가 아는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모세와 야곱과 함께 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들과 어떻게 동행하셨는지 알았기 때문에, 마리아는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고, 그분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전폭적으로 신뢰하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 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성경을 읽을 수 있는 특권이 주어져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제까지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셨는지 보여주는 "과거(역사)"가 있 고, 앞으로 어떤 일이 있을 것인가를 보여주는 "미래"가 있습니다. 뿐만 아 니라, 성경은 믿음으로 바라보는 자에게, "오늘" 그가 해야 할 일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모든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고, 믿음이 성장하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크신 팔 민 11:4-5, 10-15, 18-23, 31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만난 어려움은 얼마나 큰 것이었습니까 그리고 그 어려움을 지나는 동안, 우리가 경험한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애굽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는 동안,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도 여러 가지 어려움을 만났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크고 심각한 것 이 음식 문제였습니다. 애굽에서 비참하고 굴욕적인 노예 생활을 하고 있 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이 명하신 땅으로 인도해 낸 지 겨우 두 달이 지났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벌써 음식 투정을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매일 그들에게 내려주신 만나에 대해서 불평했으며, 끝내 애굽 땅에서 먹은 하찮은 음식을 들먹이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들 은 고기를 먹기 원했습니다. 그리고 고기를 먹을 수 없다면,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원했습니다. 이 일로 인해, 모세는 큰 좌절과 어려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 나아갔을 때, 하나님은 크게 진노하시며,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되, 하루나 이틀이나 닷새 나 열흘이나 이십 일만 아니라, 한 달 동안 고기가 코에서 넘쳐 싫어하기 까지, 물리도록 먹게 하겠다"고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까지 그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모세였으므로, 모세는 아마 하나님께서 어린이와 여성을 포함한 육십 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을 먹일 고기를 주 실 것으로 믿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얼마나 많은 고기 를 모아야 이 백성을 다 먹일 수 있겠느냐고 하나님께 반문합니다. 하나님 은 이런 모세의 믿음을 탓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민수기 11장 2 3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 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 과연,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메추라기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 셨습니다(민 11:31).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진정으로 믿으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달라질 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하나님께 기도하십니까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고 계십니까 믿음의 조상, 모세 조차, 하나님의 능력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한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언제나 성실하게 그분의 약속을 지키십니다. 오늘도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의 터에 굳게 서서, 믿음 안에서 생활하는 축복 된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는 하나님 계 21:6 하나님의 능력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의 창조 능력 만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은, 혼돈과 공허의 상태에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일에서 뿐만 아니라, 그 지으신 우주 만물을 운행하 시는 일과, 피조물을 구원하시는 일에서도 동일하게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또,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서 우리에게 나타났습니다. 성경 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시기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도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셨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은 예수께서 죽은 나사렛을 살리 셨을 때나(요 11:1-12:19), 바다와 바람을 잠잠케 하셨을 때에도 동일하게 나타났습니다(마 8:23-27). 뿐만 아니라, 우리가 죄 가운데에서 구원 받은 것도, 오로지 주님의 능력 때문인 것을 기억하십니까 우리가 주님의 능 력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가 자신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와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이 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의롭다 일컬음을 받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와 그분의 능력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은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현재, 현실의 삶에서 주님의 능력을 경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변함없이 그분의 능력을 경험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어떻게 그 사실을 확신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내린 것 이어야 합니다. 성경이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8절을 보십시오.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 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알파와 오메가'라는 말로, 그분의 능력을 설명하셨 습니다. 알파와 오메가는 헬라어 알파벳의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인데, "시 작과 끝", "처음과 마지막"이라는 문자적인 의미 외에, 유대식 표현 방식으 로는 "전체와 완전함"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능력은 영 원할 뿐만 아니라 완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능력의 하나님께서 과거에 "이미" 우리와 함께 하셨고, 지금도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시며, 앞으로도 "계속" 함께 하실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 며,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하실 수 없는 일 마 5:48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 그리스도인에게 이렇게 항의할 때가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말한대로, 하나님이 뭐든지 하 실 수 있다면, 당신의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도 들어올릴 수 없는 큰 바위 를 만들 수 있으실테죠. 그러면 결국 하나님도 그 바위를 들어올리지 못할 테니, 당신의 말은 모순(矛盾)이 아닙니까 "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능 력이 무한하시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나님의 능력을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입니다(변증의 오류). 성경은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하실 수 있다고 말씀 하시지만(마 19:26/ 눅 1:37), 그러나 하나님은 그분의 성품에 위배되는 일 은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이 무한하다"고 말할 때, 이것은 "하나님께서 못하실 일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죽으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지으실 수 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또 사각형 모양의 원을 그리실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이 무한하시다"고 말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말할 때,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은, 그분이 창조하신 우주에 대한 온전한 통치권을 의미 합니다. 전도서 3장 14절을 보십시오. "무릇 하나님의 행하시는 것은 영원 히 있을 것이라 더할 수도 없고 덜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 은 사람으로 그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그렇 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인간의 지혜로 "전부"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이 행하시는 일이 온전하며, 또 그분을 영광되게 하는 일인 줄로 알고 믿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하실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에 위배되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죄를 지으실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 의 능력은, 오직 하나님의 성품으로만 제한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신명기 32장 4절을 보십시오. "그는 반석이시니 그 공덕이 완전하고 그 모든 길이 공평하며 진실무망하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정직하시도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주님 안에서 더욱 성숙해가는 축복된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능력의 근원이신 하나님 느 9:6 신학자들이 "하나님은 전능하시다"고 말할 때, '전능하다'는 말의 뜻은 무 엇입니까 전능하다는 말은 "모든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뜻으로, 영어 로는 "옴니 포텐트(omnipotent)"라고 합니다. 라틴어에서 비롯된 이 말은, "옴니(omni)"라는 단어와 "포텐트(potent)"라는 단어가 합쳐져서 이루어진 합성어입니다. 라틴어에서 "옴니(omni)"란, "모든 것" 또는 "우주"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포텐트(potent)"란, "무력이나 권위, 또는 영향력을 휘두른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학자 토저 박사(A.W.Tozer)는, '하나님의 전 능하심'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무한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가 지고 계신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다함(제한, 한계)이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무한한 능력을 소유하고 계시다.스스로 존재하시는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그분의 존재 자체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능력의 근원이 되신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대한 토저 박사의 말은 다소 어렵게 들리지만, "하나님이, 모든 능력(power)의 시작(근원)이 되신다"는 진리 중의 진리를 설 명한 것입니다. 확실히 하나님은 흑암과 혼돈과 공허로부터, 빛과 우주와 거기 거하는 생명을 지으셨습니다. 창세기 1장 1절과 3절을 보십시오. "태 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 시매 빛이 있었고."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완전한 무(無)'에서 '완 벽한 유(有)'를 창조하실만큼, 아니,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그 어떤 능력 보다도 큽니다. 어느 햇살 눈부신 오후에, 어두운 방에 들어가 닫혀있던 창 문을 열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창문을 비집 고, 어둠 사이로 빛이 들어옵니다. 그리고 그 빛은, 이제까지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어둠을 몰아냅니다. 빛이 어둠을 이긴 것입니다. 저녁이 되었 습니다. 다시 어둠이 밀려옵니다. 저녁이 되었다고 해서,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어둠이 오는 것을 보고, 우리는 이미 그 방에 작 은 불을 켜두었습니다. 밤이 되었다고 해서, 어둠이 빛을 몰아내는 것은 아 닙니다. 아주 작은 불빛만으로도, 빛은 어둠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빛이 언제나 어둠을 이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능력은 세상의 어떤 능력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오늘도 세상을 지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크신 능력에 의지하며 사는 복된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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