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청년아 일어나라 (눅7:11-17)

본문

사람 사는 이야기 중에 기쁜 일에 관한 이야기 보다 슬픈 이야기 또는 고 통스러운 이야기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보게 됩니다. 여기 슬픈 이야기 중에 슬프고 안타까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나인성에 외아들을 데리고 사는 한 과부가 있었는데 그녀의 소망이요 기둥인 청년 아들이 죽어서 장사지내는 이야기 입니다.
1.과부의 독자 청년의 죽음(12) "성문에 가까이 오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그 어 미의 독자요 어미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오거늘"(12) 아 내의 소망이요 생계 부양자인 남편을 잃은 후 가난과 슬픔과 외로운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유일한 소망이요 위로자가 되는 외아들이 있 었습니다. 이제 커서 청년이 되어 어머니의 힘이 될 수 있고 아버지를 대신하여 어머 니를 부양할 수 있는 나이였는데 애석하게도 그 아들이 죽게 되었습니다. 죽음은 우리의 소망을 절망으로 바꾸고 그동안 애써서 수고한 것도 아무 것 도 아닌 허무한 것으로 만들고야 맙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행렬에 참여하였지만 이 불쌍한 여인의 불행을 막아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죽음은 그의 남편을 뺏어 가던이 이번에는 아들까지 뺏앗아 갔습니다. 여러 아들이 있는 집에서 데려가지 않고 남편도 없고 단 하나밖에 없는 외 아들을 그것도 젊은 청년에 나이에 데려 간다는 말인가 죽음이란 대관절 무 었이기에 이렇게도 무정하며 인정 사정없다는 말입니까 인류 역사 상 죽음 과 싸워서 이긴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2.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러 오신 예수님(13-15)
1)주님의 자비심이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13)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이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매"(13) 이 여인의 공로나 죽은 청년의 착한 행실 때문에 주님이 죽은 자를 살려 주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 고 살다가 가정 식구들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슬픔만 안겨 주는 인생을 불쌍 이 여기셔서 인류의 죄짐을 지고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선행이나 공로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시고 불쌍 이 여기셔서 독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독자들의 죽음의 슬픔을 겪는 부모의 심정으로 하나님 한분 고통을 당하시고 우리에게는 기쁨을 주 셨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 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2:2:8-9)
2)예수님은 그 여인의 울음을 그쳐주셨습니다.(13하) "울지 말라 하시고" 우리는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슬퍼하지 마십시요''울지 마십시요' '염 려하지 마십시요'라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우리에게는 슬픔을 그치게 할 능 력도 없고 울음을 멈추게 할 길도 없으면서 말로만 위로할 수 밖에 없는 연 약한 인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울음을 변하여 웃음으로 바꿔줄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염 려 근심을 해결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시기 때문에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 고 울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분은 하늘에서 내려오신 창조주 하나님의 전능 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3)죽음의 행렬을 멈추시는 예수님(14) "가까이 오사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맨 자들이 서는 지라"(14) 인류 역사상 우리 인간을 불행케 하고 슬프고 고 통스럽게 하고 모든 것을 헛되게 하는 죽음의 행렬을 멈추게 할 자는 없었 습니다. 누구도 죽음에 대해서는 멀리하고 죽음의 문제에 대해서는 손을 대는 자들이 없습니다. 수많은 연구소가 있고 수많은 학 박사들이 있지만 죽음의 문제에 대하여 논문을 쓰는 자가 없고 해결책을 발표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만 은 죽음에 대하여 손을 대시고 그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온 인류가 가는 죽 음의 행렬을 바꾸기 위해서 역사 속에 뛰어 들어 오셨습니다. 죽음의 행렬 을 생명의 행령로 바꾸셨습니다.
4)죽은 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14) "예수께서 가라사대 청년아 내가 네 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살아 있는 자에게 말할 수 있지만 죽은 자에게 말하 여 듣게 하고 그 말에 따라서 일어 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만은 이 일을 하셨습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면 무덤에 있는 성도들의 이름을 불러 다 일으켜 살리실 것입니다. 말씀으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살 리신 것은 쉬운 일입니다. 흙에다 생기를 넣어서 사람이 되게 하신 분이시 고 사람에게서 영혼을 불러가서 죽게 하신 하나님이 영혼을 돌아 오게 하여 살게 하시는 일이 우리 인간에게는 불가능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에게는 쉬은 일입니다. 즉시 일어나서 말도 하게 하셨습니다. 천하 인간에 예수 외에는 우리 인간 을 죄와 죽음에서 구원할 이름을 주신 일이 없고 어떤 사람도 사람을 구원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신 예수님만은 인류를 죽음에서 구원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 공자님 소크라데스 마호멧 자기 생명도 살리지 못하는 주제에 누구 를 살립니까. 예수님은 자신이 무덤에서 사흘만에 살아 나심으로 죽은 사람이 살 수 있 다는 것을 친히 보여 주셨고 이 청년을 살리셨고 죽어서 나흘이나 되어 썩 은 냄새가 나는 나사로도 살리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고 아니 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6) 5)죽은 아들을 살려 그의 어머니에게 돌려 주신 예수님(15) "예수께서 그 를 어미에게 주신데" 세상의 임금들은 남의 귀한 아들들을 전쟁터나 산업전 선에 데려가서 죽거나 부상당하여 그의 부모에게 돌려 주기가 일수요 어떤 때는 시체는 고사하고 머미카락 몇개와 손톱 몇개를 돌려 줄 뿐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은 죽은 아들을 살리어 그 어미 품에 안겨주는 사랑의 왕이요 우리가 섬길만한 영원한 왕이십니다. 무책임한 왕 이 아니시고 자기 백성을 돌볼 줄 아시고 죽음의 문제까지도 책임 질 줄 아 시는 분이십니다. 슬픔과 절망과 눈물과 통곡의 소리 나는 안타까운 죽음의 행렬을 멈추게 하고 죽은 자를 살리시어 기쁨과 환희와 감격의 행령로 바꾸어 주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죽음의 행렬을 생명의 행령로 지옥으로 가는 행렬을 천국 으로 절망을 소망으로 슬픔을 기쁨으로 울음을 웃음으로 초상집을 잔치집으 로 바꿔 주셨습니다. 이 주님을 믿읍시다! 주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540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