얕은 삶과 깊은 삶 (눅5:4-6)
본문
갈릴리에서 태어난 베드로는 어릴 때부터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고기잡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장성했을 때는 고기를 잡아 생계를 이어가는 어부 가 되었습니다. 그날도 베드로는 저녘 늦게 그물을 어깨에 짊어지고 '많은 고기를 잡았으 면'하는 기대에 부풀어 집을 나서게 되었습니다. 갈릴리에 바다에 도착한 베드로는 배에다 그물을 싣고 얕은 곳으로 배를 저어갔습니다. 베드로가 얕 은 곳으로 나간 이유는 갈릴리 바다는 육지보다 6백척이나 낮아 헬몬산에서 바람이 불어오면 30분 이내에 풍랑이 드높아져서 배들이 미처 해안에 나오 기 전에 파선되고 맙니다. 또한 그 당시 물은 깊은 바다에 있는 고기까지 잡을 수 있을 만큼 좋지 못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저녁이 되면 물고기 떼가 얕은 곳으로 몰렸습니다. 이런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베드로는 그의 상식대로 얕은 곳으로 가서 그 물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한밤중이 지나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한밤중이 지나 새벽이 되도록 물고기 한마리 잡지 못 하고 인생의 깊은 허기증만을 느낀 채 빈배를 끌고 해안가로 나와야 했습니다. 베드로가 해안가에 배를 타고 그물을 씻고 있을 때, 몰려드는 군중에 밀린 예수님께서 성큼 베드로의 빈배에 올라 앉으셨습니다. 배에 탄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육지에서 조금 뜨기를 청하시고 청중을 향해 말씀을 증거하 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청중과 베드로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말쓰 믈 마치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눅 5:4)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는 바다의 생리나 고기잡이에 대해시는 전혀 모르실 텐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이 말씀에 순종한 베드로는 곧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 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눅 5;5)라고 말씀드린 후 배를 저어 깊은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물을 던져 당기지 그물에 고기가 가득했습니다. 얼마나 고기가 많았던지 베드로는 자기의 배에 다 채울 수 없어 동료의 배에까지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 베드로의 체험은 우리에게 중대한 인생문제를 시사해 줍니다.
1.얕은 곳에 그물을 던지는 인생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얕은 물에서 그물을 던지고 삽니다. 그 결 과 많은 사람들이 텅빈 마음을 갖고 살아가고 있으며 죽음의 피안에 이르기 까지 빈배같은 인생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얕은 물가의 삶 이란 어떤 삶을 말할까요 먼저 '얕은 물가'란 정욕을 따라 사는 삶을 말합니다. 육체의 본능을 좇는 육신의 정욕, 세속의 화려함을 좇는 안목의 정욕, 양심을 저버리면서까지 명예, 권력을 좇은 이 세상의 자랑 만을 갖고 사는 삶들은 모두 얕은 곳에 그물을 던지는 허탈한 삶입니다. 또한 얕은 물가란 현세중심의 삶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은채 어디에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자기 중심적으 로만 사는 삶, 세상적 복만 추구하는 지상주의의 삶, 쾌락만을 추구하는 감 각주의의 삶, 이러한 삶은 얕은 곳에 그물을 던지는 삶이요, 이런 삶으로 사는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텅비어 있을 뿐인 것입니다. 2천5백만 달러의 재산을 갖고 있는 80세의 부자 한 사람이 유명한 철학자 나폴레옹 힐을 찾아가 "어떻게 하면 마음속에 참된 만족과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 힐이 그 부자를 쳐다보고 웃 으면서 "아니, 2천5백만 달러의 재산을 갖고 있는 분이 나에게 평화와 만족 을 얻는 비결을 묻다니요" 라고 반문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부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2천5백만 달러의 재산을 모았지만, 그 2천 5백만 달러의 재산이 매일같이 내게 근심만 줄뿐, 내 마음 속에는 만족이 없답니다." 여러분, 얕은 곳에 그물을 던져 부귀,영화,공명을 아무리 취해봐야 텅빈 허무와 무의미를 뿌리칠 수 없스빈다. 이런 삶을 산 사람은 종국적으로 텅빈 인생의 배를 죽음의 피안에 갖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지위와 명예.재산을 얻었다고 할지 라도, 빈손들고 태어난 인생이 죽음의 피안에 배를 갖다댈 때에 아무 것도 싣고가지 못합니다. 빈손들고 하나님 앞에 서야 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야 합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제국을 세운 시이저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는 하늘 에 있는 새들조차 떨어뜨릴 수 있을 정도의 권세를 쥐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천하가 그의 호령에 벌벌 떨었습니다. 그러나 시이저는 얕은 곳에 그물 을 던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졌고 세월이 흐른 지금 은 그의 무덤조차 사라져 버리고 없습니다. 천하를 정복하라려던 나폴레옹 이나, 세계를 손아귀에 넣으려던 히틀러도 얕은 곳에 그물을 던진 어리석은 인물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와 나사로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이 사실을 절박하게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많은 재산을 상징하는 고운 베웃을 입고, 권세를 상징하는 자색 옷을 입은 이 부자는 하나님과 사후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고 밤낮 쾌락중심으로 연락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다 그의 '빈배'가 죽음의 피 안에 도착해 모든 것이 일장춘몽이 되었을 때 그는 하나님께 심판을 받고 버림을 받아 음부에서 고통당해야 했던 것입니다.
2.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는 인생 우리가 이처럼 텅빈 인생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베드로처럼 얕은 물을 떠 나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던져야 합니다. 베드로의 배가 텅 비었을 때 예수님께서 성큼 베드로의 배에 올라타셨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 부귀 ,영화, 공명, 탐욕이 가득찬 배에는 예수님께서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그 때문에 성경은 "심령이 간나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 5:3)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이 "나는 죄인이요,나는 죄밖에 지은 것이 없다. 나는 어 디에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허무맹랑한 인생을 살 아왔다. 나는 죽어 한줌의 흙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정말 아 것도 자랑 할 것이 없는 비극적인 인생이다'라고 깨닫고 빈배가 될 때에 예수님께서 성큼 여러분 속에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빈 배가 되지 아니하고는 주님을 맞아들일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빈배가 되면 예수님께서 어떻게 찾아가실까요 옛날, 육신으로 베드로의 빈 배를 찾아가신 예수님께서는 오늘날은 목사,전도사, 장로,권 사, 집사,지역장, 구역장,아니면 평신도같은 전도자를 통해 여러분을 찾아 가십니다. 여러분이 전도자를 통해 찾아오신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시면 그 길로 여러분을 얕은 물에서 돌아서서 깊은 곳으로 향하게 됩니다. 깊은 곳은 바로 하나님의 품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의 가장 깊은 곳에 계십니다. 그 때문에 여러분이 예수님을 영접하면 여러분은 예수님을 통해 깊은 곳, 즉 하나님께로 갈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만이 하나님께 로 갈 수 있는 길이 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 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말씀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육신의 정욕,안목의 정욕, 이 세상의 자랑을 갖고 살던 '얕은 곳 의 삶'에서 돌이켜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품에 안기면 여러분은 깊은 곳 에 그물을 던지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질 때 여러분은 무엇을 잡을 수 있을까요 베드로가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렸을 때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었던 것처럼 여러분이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께로 가서 그물을 내리면 여러분은 문제의 해 답을 건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품에 안긴 사람들에게 문제의 해답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얕은 곳에서 그물을 내리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문제의 해답을 주 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인 생의 모든 문제의 해답을 '예수님' 으로 제시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어떤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되실까요 먼저 예수님께서는 죄악에 대한 문제의 해답이 되십니다. 우리는 죄악을 먹고 마시며 살아갑니다. 우리의 죄는 머리털보다 많습니다. 삶 자체가 죄 악 가운데 있는 우리로서는 어떠한 인간의 선한 행위로도 결코 이 죄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누가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까요 우리 가 깊은 곳에 들어가면 하나님께서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예수님을 주 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없으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 시고 33년 동안 죄없이 사심으로 율법을 다 완성하신 후 인류의 과거, 현 재, 미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일생의 죄 를 하나님 앞에 다 청산하셨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가 우리의 빈 배에 예수님을 모시고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죄를 한번도 짓지 않은 상태의 의로움,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설 수 있는 자격의 의로 움, 마귀에게 침소를 받지 않는 의로움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질병에 대한 문제의 해답이 되십니다. 이 세상에 좋은 약, 좋은 의사, 발전된 의술이나 오지만 그러나 미움의 병, 공포의 병, 좌 절의 병, 죄책의 병은 고칠 수 없습니다. 나아가서 성인병을 비롯해 고칠 수 없는 숱한 육체의 병 때문에 인간은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가 예수님과 함께 배를 저어 깊은 곳으로 가면 마음과 육체의 병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 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5)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의 질병을 모두 담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에 기간 중 많은 시간을 병자를 고치는데 사용하셨습니다. 우리가 질병을 안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우리의 질병은 십자가상에서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담당하신 것입니다. 저는 국내외 대성회를 인도하면서 깊은 곳으로 가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할 때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치료의 영을 비와같이 부어주셔서 성도 들의 심신이 고침을 받는 것을 나는 분명 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미신과 공포의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되십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미신에 묶여 살고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나라는 대만이나 홍콩,일본 등에 집회를 인도하러 가면 겉으로는풍 요로워 보이지만 왠지 사람들이 불안에 떠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 은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우상을 더욱 섬기고 심지어 길을 지나다가 돌 위 에 돌이 올려져 있으면 절을 합니다. 모든 생활환경 여건이 이처럼 미신 투 성이입니다. 그들이 그러면 그럴수록 평안을 얻기보다는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힙니다. 인간은 파멸케하는 것이 외부적인 조건이 아니라 내적인 공포와 불안입니다. 미신과 불안과 공포는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만들어 결국에는 파멸케하 고 맙니다. 그 때문에 성경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 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깊은 곳, 하나님께 나아가면 우주의 모든 권세를 쥐고계신 하나님께서는 미신과 공포를 제거하여주십니다.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요일 4:18)라고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을 사랑하 고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속에 갖고 있으면 미신과 공포에서 자유를 얻게되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예수님께서는 삶의 패배에 대한 문제의 해답이 되십니다. 예수님 께서는 우리의 삶의 성공의 바탕이 되십니다. 성경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 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8:9).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할 하셨으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갈 3:13-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깊은 곳으 로 가면 하나님께서 가난과 저주를 청산하신 예수님을 우리의 삶의 바탕으 로 제시해 주실 것이요, 우리가 그 예수님을 믿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생활태도를 갖고 살면 우리의 생활엔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이 넘 쳐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되십니다. 우리가 깊 은 곳으로 가면 하나님께서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사망의 열쇠를 갖고 계 신 예수님을 문제의 해답으로 주시기 때문에 사망이 우리를 건드리지 못합니다. 바울은 사망을 이렇게 조롱했습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 냐"(고전 15:55) 예수님께서도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1-3)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러므로 깊은 곳에 들어가면 죽음이란 새 하늘 과 새땅과 새예루살렘에 들어가는 한 과정이요, 입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모시고 하나님께로 가서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면 바로 이와같은 문제를 해결받고 축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3. 가득한 인생 본문에는 베드로가 깊은 곳에 들어가서 그물을 던지니 어찌나 고기가 많이 잡혔던지 자신의 배 뿐 아니라 동료의 배에까지 나누어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깊은 곳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삶의 사탕으로 삼으면 우리에게 영생이 들어오고, 삶의 무한한 의미가 채워지고, 축복받는 삶이 채 워지고, 사랑의 삶이 채워져 베드로처럼 남에게 나누어주는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남에게 나누어주기 보다 남에게 받기만을 원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사람이 이 기주의적으로 살면 자기도 죽고 남도 죽이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깊은 곳으로 가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 아, 하나님 주심으로 살면서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삶을 살아야 겠습니다. 남을 위해 기도해주고, 사랑의 손길로 도와주고, 상처를 치료해주고, 내가 받은 행복과 기쁨을 나누어주는 삶이 그리스도인들의 올바른 삶이 태도인 것입니다. 성경은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 6:38)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남을 살리려고 할 때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에게 임합니다. 성경은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채워주신 것은 베드로의 배를 먼저 채워주신 것과 같 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베드로처럼 남의 삶에 우리가 받은 은혜, 구원,축복을 나누어 주기위해 남은 여생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만 알 고 남에게 줄줄 모르면 우리는 또다시 깊은곳에서 얕은 곳으로 밀려나고 맙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중심으로 살면서 최선을 다해 남에게 나누어주는 삶을 살 때는 우리의 영혼에, 우리의 생활에 하나님의 축복은 끝없이 임 할 것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얕은 곳에 그물을 던지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직 세상의 부귀,영화, 공명만이 삶의 전부요 행복의 근원인양 착각 하여 빈배로 살다가 죽음의 피안에 이를 때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 삶은 더 깊은 곳에 있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영원무궁하신 하나님 품, 하나님의 자원으로 들어가는 삶이 깊은 삶이요, 참 삶입니다. 하나님의 자원 속 에는 가뭄이 없습니다. 경제공황이나 죽음도 없습니다. 이 자원 속에는 영 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며,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하나님의 성령님의 역사가 약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시간,여러분은 얕은 곳을 떠나 예수님과 함께 깊은 하나님께로 들어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얕은 곳에 그물을 던지는 인생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얕은 물에서 그물을 던지고 삽니다. 그 결 과 많은 사람들이 텅빈 마음을 갖고 살아가고 있으며 죽음의 피안에 이르기 까지 빈배같은 인생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얕은 물가의 삶 이란 어떤 삶을 말할까요 먼저 '얕은 물가'란 정욕을 따라 사는 삶을 말합니다. 육체의 본능을 좇는 육신의 정욕, 세속의 화려함을 좇는 안목의 정욕, 양심을 저버리면서까지 명예, 권력을 좇은 이 세상의 자랑 만을 갖고 사는 삶들은 모두 얕은 곳에 그물을 던지는 허탈한 삶입니다. 또한 얕은 물가란 현세중심의 삶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은채 어디에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자기 중심적으 로만 사는 삶, 세상적 복만 추구하는 지상주의의 삶, 쾌락만을 추구하는 감 각주의의 삶, 이러한 삶은 얕은 곳에 그물을 던지는 삶이요, 이런 삶으로 사는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텅비어 있을 뿐인 것입니다. 2천5백만 달러의 재산을 갖고 있는 80세의 부자 한 사람이 유명한 철학자 나폴레옹 힐을 찾아가 "어떻게 하면 마음속에 참된 만족과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 힐이 그 부자를 쳐다보고 웃 으면서 "아니, 2천5백만 달러의 재산을 갖고 있는 분이 나에게 평화와 만족 을 얻는 비결을 묻다니요" 라고 반문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부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2천5백만 달러의 재산을 모았지만, 그 2천 5백만 달러의 재산이 매일같이 내게 근심만 줄뿐, 내 마음 속에는 만족이 없답니다." 여러분, 얕은 곳에 그물을 던져 부귀,영화,공명을 아무리 취해봐야 텅빈 허무와 무의미를 뿌리칠 수 없스빈다. 이런 삶을 산 사람은 종국적으로 텅빈 인생의 배를 죽음의 피안에 갖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지위와 명예.재산을 얻었다고 할지 라도, 빈손들고 태어난 인생이 죽음의 피안에 배를 갖다댈 때에 아무 것도 싣고가지 못합니다. 빈손들고 하나님 앞에 서야 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야 합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제국을 세운 시이저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는 하늘 에 있는 새들조차 떨어뜨릴 수 있을 정도의 권세를 쥐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천하가 그의 호령에 벌벌 떨었습니다. 그러나 시이저는 얕은 곳에 그물 을 던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졌고 세월이 흐른 지금 은 그의 무덤조차 사라져 버리고 없습니다. 천하를 정복하라려던 나폴레옹 이나, 세계를 손아귀에 넣으려던 히틀러도 얕은 곳에 그물을 던진 어리석은 인물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와 나사로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이 사실을 절박하게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많은 재산을 상징하는 고운 베웃을 입고, 권세를 상징하는 자색 옷을 입은 이 부자는 하나님과 사후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고 밤낮 쾌락중심으로 연락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다 그의 '빈배'가 죽음의 피 안에 도착해 모든 것이 일장춘몽이 되었을 때 그는 하나님께 심판을 받고 버림을 받아 음부에서 고통당해야 했던 것입니다.
2.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는 인생 우리가 이처럼 텅빈 인생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베드로처럼 얕은 물을 떠 나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던져야 합니다. 베드로의 배가 텅 비었을 때 예수님께서 성큼 베드로의 배에 올라타셨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 부귀 ,영화, 공명, 탐욕이 가득찬 배에는 예수님께서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그 때문에 성경은 "심령이 간나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 5:3)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이 "나는 죄인이요,나는 죄밖에 지은 것이 없다. 나는 어 디에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허무맹랑한 인생을 살 아왔다. 나는 죽어 한줌의 흙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정말 아 것도 자랑 할 것이 없는 비극적인 인생이다'라고 깨닫고 빈배가 될 때에 예수님께서 성큼 여러분 속에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빈 배가 되지 아니하고는 주님을 맞아들일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빈배가 되면 예수님께서 어떻게 찾아가실까요 옛날, 육신으로 베드로의 빈 배를 찾아가신 예수님께서는 오늘날은 목사,전도사, 장로,권 사, 집사,지역장, 구역장,아니면 평신도같은 전도자를 통해 여러분을 찾아 가십니다. 여러분이 전도자를 통해 찾아오신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시면 그 길로 여러분을 얕은 물에서 돌아서서 깊은 곳으로 향하게 됩니다. 깊은 곳은 바로 하나님의 품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의 가장 깊은 곳에 계십니다. 그 때문에 여러분이 예수님을 영접하면 여러분은 예수님을 통해 깊은 곳, 즉 하나님께로 갈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만이 하나님께 로 갈 수 있는 길이 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 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말씀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육신의 정욕,안목의 정욕, 이 세상의 자랑을 갖고 살던 '얕은 곳 의 삶'에서 돌이켜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품에 안기면 여러분은 깊은 곳 에 그물을 던지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질 때 여러분은 무엇을 잡을 수 있을까요 베드로가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렸을 때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었던 것처럼 여러분이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께로 가서 그물을 내리면 여러분은 문제의 해 답을 건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품에 안긴 사람들에게 문제의 해답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얕은 곳에서 그물을 내리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문제의 해답을 주 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인 생의 모든 문제의 해답을 '예수님' 으로 제시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어떤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되실까요 먼저 예수님께서는 죄악에 대한 문제의 해답이 되십니다. 우리는 죄악을 먹고 마시며 살아갑니다. 우리의 죄는 머리털보다 많습니다. 삶 자체가 죄 악 가운데 있는 우리로서는 어떠한 인간의 선한 행위로도 결코 이 죄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누가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까요 우리 가 깊은 곳에 들어가면 하나님께서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예수님을 주 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없으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 시고 33년 동안 죄없이 사심으로 율법을 다 완성하신 후 인류의 과거, 현 재, 미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일생의 죄 를 하나님 앞에 다 청산하셨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가 우리의 빈 배에 예수님을 모시고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죄를 한번도 짓지 않은 상태의 의로움,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설 수 있는 자격의 의로 움, 마귀에게 침소를 받지 않는 의로움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질병에 대한 문제의 해답이 되십니다. 이 세상에 좋은 약, 좋은 의사, 발전된 의술이나 오지만 그러나 미움의 병, 공포의 병, 좌 절의 병, 죄책의 병은 고칠 수 없습니다. 나아가서 성인병을 비롯해 고칠 수 없는 숱한 육체의 병 때문에 인간은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가 예수님과 함께 배를 저어 깊은 곳으로 가면 마음과 육체의 병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 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5)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의 질병을 모두 담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에 기간 중 많은 시간을 병자를 고치는데 사용하셨습니다. 우리가 질병을 안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우리의 질병은 십자가상에서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담당하신 것입니다. 저는 국내외 대성회를 인도하면서 깊은 곳으로 가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할 때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치료의 영을 비와같이 부어주셔서 성도 들의 심신이 고침을 받는 것을 나는 분명 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미신과 공포의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되십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미신에 묶여 살고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나라는 대만이나 홍콩,일본 등에 집회를 인도하러 가면 겉으로는풍 요로워 보이지만 왠지 사람들이 불안에 떠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 은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우상을 더욱 섬기고 심지어 길을 지나다가 돌 위 에 돌이 올려져 있으면 절을 합니다. 모든 생활환경 여건이 이처럼 미신 투 성이입니다. 그들이 그러면 그럴수록 평안을 얻기보다는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힙니다. 인간은 파멸케하는 것이 외부적인 조건이 아니라 내적인 공포와 불안입니다. 미신과 불안과 공포는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만들어 결국에는 파멸케하 고 맙니다. 그 때문에 성경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 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깊은 곳, 하나님께 나아가면 우주의 모든 권세를 쥐고계신 하나님께서는 미신과 공포를 제거하여주십니다.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요일 4:18)라고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을 사랑하 고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속에 갖고 있으면 미신과 공포에서 자유를 얻게되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예수님께서는 삶의 패배에 대한 문제의 해답이 되십니다. 예수님 께서는 우리의 삶의 성공의 바탕이 되십니다. 성경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 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8:9).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할 하셨으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갈 3:13-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깊은 곳으 로 가면 하나님께서 가난과 저주를 청산하신 예수님을 우리의 삶의 바탕으 로 제시해 주실 것이요, 우리가 그 예수님을 믿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생활태도를 갖고 살면 우리의 생활엔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이 넘 쳐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되십니다. 우리가 깊 은 곳으로 가면 하나님께서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사망의 열쇠를 갖고 계 신 예수님을 문제의 해답으로 주시기 때문에 사망이 우리를 건드리지 못합니다. 바울은 사망을 이렇게 조롱했습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 냐"(고전 15:55) 예수님께서도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1-3)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러므로 깊은 곳에 들어가면 죽음이란 새 하늘 과 새땅과 새예루살렘에 들어가는 한 과정이요, 입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모시고 하나님께로 가서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면 바로 이와같은 문제를 해결받고 축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3. 가득한 인생 본문에는 베드로가 깊은 곳에 들어가서 그물을 던지니 어찌나 고기가 많이 잡혔던지 자신의 배 뿐 아니라 동료의 배에까지 나누어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깊은 곳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삶의 사탕으로 삼으면 우리에게 영생이 들어오고, 삶의 무한한 의미가 채워지고, 축복받는 삶이 채 워지고, 사랑의 삶이 채워져 베드로처럼 남에게 나누어주는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남에게 나누어주기 보다 남에게 받기만을 원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사람이 이 기주의적으로 살면 자기도 죽고 남도 죽이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깊은 곳으로 가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 아, 하나님 주심으로 살면서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삶을 살아야 겠습니다. 남을 위해 기도해주고, 사랑의 손길로 도와주고, 상처를 치료해주고, 내가 받은 행복과 기쁨을 나누어주는 삶이 그리스도인들의 올바른 삶이 태도인 것입니다. 성경은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 6:38)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남을 살리려고 할 때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에게 임합니다. 성경은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채워주신 것은 베드로의 배를 먼저 채워주신 것과 같 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베드로처럼 남의 삶에 우리가 받은 은혜, 구원,축복을 나누어 주기위해 남은 여생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만 알 고 남에게 줄줄 모르면 우리는 또다시 깊은곳에서 얕은 곳으로 밀려나고 맙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중심으로 살면서 최선을 다해 남에게 나누어주는 삶을 살 때는 우리의 영혼에, 우리의 생활에 하나님의 축복은 끝없이 임 할 것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얕은 곳에 그물을 던지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직 세상의 부귀,영화, 공명만이 삶의 전부요 행복의 근원인양 착각 하여 빈배로 살다가 죽음의 피안에 이를 때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 삶은 더 깊은 곳에 있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영원무궁하신 하나님 품, 하나님의 자원으로 들어가는 삶이 깊은 삶이요, 참 삶입니다. 하나님의 자원 속 에는 가뭄이 없습니다. 경제공황이나 죽음도 없습니다. 이 자원 속에는 영 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며,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하나님의 성령님의 역사가 약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시간,여러분은 얕은 곳을 떠나 예수님과 함께 깊은 하나님께로 들어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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