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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과 함께 있는가? (눅5:3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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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생활에서 금식이나 고행은 어느 종교에서나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석 가, 이슬람교도 금식은 5대 기둥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라마단 달은 한달 내내 새 벽부터 해질 때까지금식해야 한다. 힌두교도 자제와 교행을 중시한다. 20세기 힌 두교의 거성이엇던 간디는 진리, 비폭력, 금욕 이 세가지를 그의 기본사상으로 삼 았다. 기독교에도 주님게서 40일간 금식하셧고, 중세기 수도사들은 금식과 고행을 덕망 으로 삼앗다. 바리새인들, 세례요한의 제자들도 자주 금식.
그런데 예수님은 누구보다 경건하고 거룩한 분같은데 잔치집에 들어가고 우리식으 로 말하자면, 나물밥뿐만 아니라, 돼지고기든 개고기든 향어회든 주인이 차려주는 대로 가리지 않고 다 잘 잡수셨다. 그러니 바리새인의 제자들이 주님께 왜 금식하 지 않느냐고 질문한 것이다. 소위 우리들보다 열심도 없고 경건성이 부족하지 않느 냐는 것이다. 예수님의 대답은 간단하셨다. 혼인집에서 잔치를 하는데 신랑의 시중을 드는 우인 들이 금식을 하겠느냐! 금식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러나 언젠가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 때는 금식할 것이다. 혼인집 신랑은 예수님, 왜 예수님은 신랑으로 표현하셨을까 신랑은 기쁨의 심볼 이다. 혼인잔치의 주인공이다. 천국의 주인이신 주님이 오셨다는 것은 지상에 최대 의 잔치이다. 성경에 주님은 예수님의 천국복음운동을 잔치로 많이 비유, 왕이 자 기 아들을 위해 잔치배설. 예수님이 계신 곳은 항상 잔치집과 같았다. 눅 5장 사건들-주님의 부르심을 받는 일, 주님을 만나는 일, 주님과 함께 있는 일은 항상 경이요 기쁨이요, 거룩함에 접하는 신비의 순간순간이다. 아! 그 주님이 오늘 이 자리에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도 요한은 맨 처음 주님을 만나 함께 있었던 날을 일생 잊지 못하여 성령님을 모신 신약의 교회예배는 하나의 잔치집으로 나타난다. 오순전날 성령님이 모인 무리에게 충만히 임하였을 때 예루살렘교회모습은 잔치집을 방불케 햇다. 행 2:46에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여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우리가 소위 성찬이라고 하는 엄숙한 예식이 처음에는 떡을 떼며 기쁨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한 표현이엇다. 날마다 금식한 것이 아니라 날마다음식을 먹으며 즐거워 했으니 잔치집이 아니고 무엇인가! 행 8장에 빌립 집사님이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능력을 행하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잇더라고 햇다.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 기쁨이 있더라 했다. 왜그런가 주님의 복음자체가 기쁨의 소식이이다. 예수님이 신랑이요 천국 잔치의 주인이기에 그 도를 기쁜 소식 즉 복음이라 하고, 복음을 받는 사람들은 기뻐하게 된다. 눅 2:10에 천사가 목자들에게 말하길,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 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하였다. 이 복음은 성령님의 능력 가운데 전파된다. 그러기에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복음이 전파되고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심령마다 기쁨이 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를 의심없이 나의 구주로 믿어야 한다. 복음이요, 천국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는 하늘의 기쁨을 맞 볼 수는 결코 없습니다. 어떤 부부가 한동안 교회에 주일 예배에 나왔는데, 에배 때마다 머 리가 아프고 졸음만 오더랍니다. 왜 그럴까요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 요, 주님을 영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배의 주인으로 오신 주님과 나와의 인격 적인 관계를 맺지 못한 채 하나의 에배 의식에만 참석하고 마음에 위안을 받고자 하면 그 분은 주님의 기쁨을 얻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일 예배마다 천국의 잔치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부활하신 주님께서 매 주일마다 제자들이 모인 자리 가운데 찾아 오셧다. 밧모섬에 서 요한이 환산중에 주일날 주님께서 그의 교회들 가운데 다니시는 광경을 보았다. 이와같이 우리의 신랑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예배가운데 함께 계신다.
그러므로 주일 예배에는 온 교인이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지상에서 최고의 잡치집 에 간다는 마음으로 나오시기 바란다. 실제 부활하신 주님께서 임재하심을 믿으시 고 큰 기쁨으로 힘을 다해 찬송하라. 주일날 결혼식이 있다고 예배에 빠지는 분들 이 더러 계신데, 그 분은 친척이 섭섭해 할까봐 걱정은 하면서도 자기의 신랑 되신 주님께서 섭섭해 하시는 것은 깨닫지 못하고 잇는 것이다. 잔치에 초청한 가장 가 까운 친구가 빠지면 얼마나 섭섭합니까! 우리 하나님이 그렇게 섭섭해 하신다고 말씀하셧다(눅 14:21).
둘째,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어 예수믿는 자들의 심령속에 들어 오시는 성령님으 로 내 마음을 충만하게 해야 한다. 성령님충만한 심령이 곧 신랑과 함게 잇는 자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님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 락이라 (롬 14:17) 성령님의 열매는 사랑,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이다. 성령님의 충만을 받을 때야말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능력이 가슴속에서 넘쳐나는 것이다. 오늘 잔치집의 음식이 핍적함이 없이 풍성하도록 해 주시는 교회의 주방장이 누구냐! 성령님이시다. 성령님 님을 뒷전에 두고서는 잔치의 재미를 볼 수 없다.
그렇다면 금식이란 우리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물론 중요한 일을 앞두었거나 생사를 걸고 기도해야 할 문제가 잇을 때, 금식을 할 때가 있습니다만, 오늘 본문을 통해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신랑과의 관 계로 인하여 금식을 하느냐 하지 않으냐 하는 것이다. 신랑이 그대와 함게 있다 면 금식할 필요 없다. 그러나 신랑이 멀리 잇다든지 사라져 버렸다면 금식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신랑되신 주님은 그리스도의 신부들로부터 멀리 떠나실 때도 잇는가 교리적으로는 한 번 택함받은 백성은 절대 버림받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영적 삶에 잇어서 경험적으로 볼 때 우리와 신랑과의 관계는 밀착되기도 하고 까마득히 멀어지기도 한다. 아가서는 솔로몬과 술람미여인과의 사랑의 노래이다. 그것은 오늘날 그리스도와 그 신부된 성도들간의 사랑을 보여주는 글이다. 아가서를 보면 그 토록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에 두번 사랑의 갈등이 나타난다. 술람미 편에서보면 신랑을 잃어버려 고민하는 장면이 두 번나오는데, 아가서 3장 1-4는 결혼하기 전 연애시절에 님을 잃고 되찾고자 밤거리를 헤메는 안타까운 불쌍한 여인의 모습이 나오고, 악 5:2-8에는 결혼 한후에 신랑을 잃어버려도 다시 밤중에 일어나 신랑 을 찾는 몸부림을 친다. 그 때 신부는 에루살렘 여자들에게 이렇게 부탁한다. "너희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낫다고 하려므나" 왜 병이 났는가! 사랑하는 님이 안계시니까 그렇다. 그러니 음식이 넘어가겟는가! 잠이 오지 않는다. 사랑하므로 병이 낫다. 우리 신앙생활에도 그럴 때가 잇다. 기도를 해도 기도가 않된다. 찬송을 불러도 은혜가 않된다. 예배시간마다 졸음은 왜 그리 쏟아지는지. 그 아름답던 녹음 방초 우거진 은혜의 동산에서 주님의 은헤를 누리던 달콤한 때는 지나고 영적 겨울을 만 난 것이다. 자꾸만 시험이 발생한다. 오! 나의 신랑이여, 어디 계신가! 언제 오십 니까!
그런데 이 때 정말 신랑을 사랑하는 사람은 신랑을 만나기 위해 몸부림치며 기도 한다. 금식을 하고 철야를 하고 처절한 괴로움으로 주님의 응답을 기다리고 부르짖는다. 곁에서 보는 사람들이 저 여편네 병이 낫구만 하고 안타까와 할 정도다. 다윗도 그 랫다. 그는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헐떡임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시 42:
1) 어느 고라자손은 시 84:2"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이렇게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사람은 반듯이 만난다. 다윗은 그렇게 간절히 하나님을 찾더니 결국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의 손길을 체험하고 고백하기를,시 63:3-5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 할 것이라. 이러므로 내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인하여 내 손을 들리이다. 골수와 기름진 것 을 먹음과 같이 내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술람미 여인은 그녀의 님을 찾아 나서서 애타게 찾앝을 때 결국 재회의 감격을 얻 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영적 잠에서 깨어나기를 원치 않는다. 그토록 신랑과의 달콤 한 교제를 맞보앗고 은혜가 무엇인지를 알면서도 침체의 상태에서 마냥 머물러 있는 이들도 적지 않는다. 김소월의 시 "못잊어"란 시가 있다. 첫 소절에 "못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데로 한 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 힐 날 있으리다." 님을 찾아 나서는 적극적 열정보다는 잊지 못하여 하는 소박한 애심을 노래 한것. 그보다 더 건절한 노랫말이 바다가 육지라면 배떠난 부두에서 울고 있지 않련만 . 이 몸이 철새라면 님계신 곳가지 훨훨 날아 가련만. 하는 노래. 주님을 그렇게 찾자. 나를 간절히 찾는 자들이 나를 만나리라. 당신의 상태는 신랑과 함게 잇는가 아니면 신랑을 빼앗긴 상태인가 신랑과 함게 잇다면, 기뻐하라. 찬송하라. 당신의 봉사는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신다.
그러므로 충성봉사하라. 신랑이 멀리 게신가 사모하라. 뽕나무에라도 올라가 서 주님의 얼굴을 보고자 했던 삭개오처럼 주님을 찾으라. 금식하고, 새벽에 일어 나 기도하라. 밤중에 일어나 골방에서 탄식하며 기도하라. 그러면 신랑의 다정한 음성을 듣게 될 것이다. 그 분의 기븜이 강물처럼 당신의 영혼에 채워 짐을 경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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