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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승리 (마27:45-50)

본문

정말 끝났다. 의와 공의를 배반한, 하나님 자신을 배반한 그 무섭고도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정오에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였는데, 이 시간이야말로 인류의 가장 어두웠던 시간이다. 인류의 총제적 타 락의 극단적 행실이 십자가 상에 달리신 하나님의 무죄한 아들이 상처 입은 몸에서 분명히 나타났다. 이 시간은 사단의 시간이었고 그는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였다. 고통의 세상의 소망은 그와 더불어 끝났고 고통과 아픔으로부터 범죄와 전쟁으로부터 해방된 세상의 소망이 나타난 것이다. 인간을 향한 선의로 지상에 평화의 그의 탄생을 알린 천사들은 하늘나라로 부터 조롱을 하고 있는 것같이 보인다. 어두움의 세력들을 대항하여 투쟁하는 인간에게는 소망이 없는 것같이 보였을 것이다.
1. 우리의 참된 전투는 영적 영역에 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다."
A. 그리스도인 생활의 삼대 적은 세상, 육, 그리고 마귀인데, 이들은 의로 운 생활을 하려고 노력할 때 당신을 대적하려고 함께 역사한다.
1. 우리가 세상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하나님께서 원래 모든 아름다움으로 창조하신 세상을 이야기하지 않고 하나님을 대적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하나님의 선물들을 오염시키고 악용하는 세상의 제도에 대해 이야기 한다.
A.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인, 세상의 모든 것은 아버지의 것이 아니고 세상의 것이다.
B. 이적을 믿는 자들이 사랑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 에 있지 아니하다."
c." 세상과 벗된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2. 우리 육과 우리의 영, 더 천한 것들을 요구하는 육과 더 순결한 삶을 추구하는 영 사이에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해 준다.
A. 인류의 영속을 위해 하나님께서 설계하신 재생의 영광스러운 선물, 그 것이 오직 성적인 기쁨만을 생각하는 오늘날의 사람들에 의해 어떻게 악용 되고 있는가를 보라.
B. 사람은 너무도 성에 빠져들 수 있으므로 성욕이 자기 보존욕보다 더 강 해진다. H.
I.V균에 감염되거나 현재 유행하고 있는 20여종의 성병에 감염될 위험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번잡한 성행위를 계속한다.
C. 성경은 우리에게 육과, 영,즉 천한 것들을 요구하는 육과 고등한 순결 한 삶을 추구하는 영 사이에 전쟁이 계속되고 있음을 말씀해준다.
3.우리가 마귀에 대해 말할 때,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한때는 지혜와 온전함 과 아름다움으로 충만하였고 기름부음을 받은 천사로 불리웠던 하나님의 아 름다운 창조물로 이야기하지만 그는 하나님을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고 그는 하늘나라로부터 신성 모독죄로 쫓겨났다.
A. 그는 아직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반란을 일으키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 해 제정한 의의 법에 항거하는 반란에 인간들이 합세하도록 모집한다.
B. 이제 그가 모집한 자들이 정부의 가장 높은 자리에서 통치하고 그 자들 이 동성 연애자들을 인정한다고 옹호하므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반란을 전개 하기로 결정하는데, 많은 사람들은 저들을 세력과 영향력이 있는 그 높은 지위에 대통령이 그의 아내의 압력하에서 임명하였다고 믿는다.
C. 이번 주 대법원에서는 주의회들 중 한 의회에게 의사당 벽에 붙어 잇는 십계명을 철거하도록 판결을 내렸다.
D. 마귀로 하나님의 법에 대항하고 반란을 일으키고 있고, 많은 열렬한 협 조자들을 갖고 있다.
B. 세상의 모든 압력, 육과 마귀의 압력을 물리치고 의로운 삶을 산다는 것은 쉽지 않다.
1. 그렇게 살 강한 욕구를 갖고 있다 할지라도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2. 여하한 소망이라도 있는가 나는 언제나 비틀거리고 넘어져야 하는 것 인가
3. 이상하게 보일 수 있어도, 육과 마귀인 세상을 아기는 의로운 삶에 대 한 소망은 십자가에 달린 그 상처입은 몸에 있다.
C. 그의 죽음으로 어두움의 세력으로부터 나의 구속을 사셨다. "너희가 알 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 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없고 점없는 어린양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1. 예수께서 잡히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이상한 말씀을 하셨다. "그날에 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는 내 안에 나로 너희 안에 있는 것을 알게 되리라."라고 그는 말씀하셨다.
2.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계시고, 나는 그 안에 있듯이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나는 그와 같이 십자가에 못박히셨다.
A.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 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바울은 말씀하셨다.
B.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 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하고 말하였다.
3. 그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나는 육에 대한 승리를 누린다.
A. "너희도 자신을 죄에 대하여도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 을 대하여는 산자로 여길찌어다"라고 그는 말하였다.
B. "죄에 대해 죽은 우리가 어찌 거기서 더 이상 살 수 있겠는가 라고 그 후 그는 물었다.
C. 당신은 온갖 종류의 가장 감각적이고 매혹적이고 흥분된 일들을 시체 앞에 내 놓을 것이고 그것이 흥분시킬 수 없을 것이니 그것은 죽은 것이다. (롬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d. 인간이 그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므로 죄의 몸인 육이 활동치 못하게 된다.KATA GERO는 떨어졌고 패배하였다. E. 바울이 그가 육과 더불어 싸우고 그 세력이 그의 삶을 지배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물었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 리로다."라는 말씀으로 자신의 질문에 대답하였다.
4.그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사단 또한 패배하였고, 그의 죽으심으로 말미 암아 뱀의 머리, 권세 또는 권위가 상하을 입었다.
A. 요한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요일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 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B. 어떻게 그가 마귀의 역사를 멸하셨는가' (골2:13) 또는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 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골2:14)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박으시고. (골2:15) 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골2:20)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
C. 우리는 사단이 패배한 원수인 것을 인정해야 한다.
D. 예수께서 성령님이 임하실 때, 그가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햐어 증거하시리라고 말씀하셨었고 그후 이 세상의 왕자가 심판을 받기 때문에 심판에 대하여 확대하여 말씀하셨다. E. 십자가 상에서 사단의 권세가 심판을 받았고 그가 패배하였으며, 예수 안에서 당신은 어두움의 권세를 이기는 승리에 들어갈 수 있다. F. 우리가 마구를 거부하면, 그는 우리로부터 도망칠 것이다. G. 십자가는 육과 마귀인 세상에 대한 우리의 승리를 말씀해 준다. 십자가의 도 성경


본문:고전 1:18 지구상에 많은 도가 있을지라도 인류의 죄를 담당하기위해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 제물로 바치기까지 하여 세워진 도는 없다. 인간의 타락은 죄로 인한 것임으로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인간을 구원할 어떠한 도도 없다. 히 9:22"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십자가 의 도가 가지고 있는 세가지의 큰 의미를 셋으로 나누어 볼때 세상 사랑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다)하나님께서 외아들을 육신을 입혀 세상에 보내시어 사람의 아들이 됨으로 한인간이 되게 하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얼마나 사랑하셨는가를 증명하신 것이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말씀중에 이처럼 아란 뜻은 얼머나 많은 측량할 수 없는 의미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럼으로 사람으 로서는 하나님께서 십자가로 통한 사랑의 표현을 하신 것은 다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고전 11:1 "그런즉 믿음,소망,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하셨다. 우리가 이 말씀중에서 볼 때 믿음과 소망은 세상에 있는 동안에 필요한 것 이라고 사랑은 영원한 것이 때문임을 잘아는 것이다. 롬 8:25"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나 적신이나 위험아나 칼이냐" 이러한 사랑으로 이루어진 교회가 오늘날 얼마나 사랑이 있는지는 의문이 많은 것이다. 분쟁과 분열과 시기와 감정은 고도에 달하여 얼마나 부끄러울 때가 많은 이러한 일들은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리지라고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이뤄 짐을 볼 수 있다. 마지막때에 교히가 사는 길은 하나님께로 부터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신적인 사랑을 다시 찾지 않고는 교회가 살았다고 인증받지 못할 것이라. 온 세상은 과학과 지식과 물질만능으로 충만 해짐으로 교회는 본질적 사랑이 상실되고 있으므로 이제는 자다가 깰때가 된줄로 안다(세월 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엡 5:16. 요3:16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중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 라고 기록되었다. 바로 이 말슴이 구원을 나타낸 것이다. 사람들에 입장에 서 볼때에는 구원이란 말자체가 실감 나지 않는 부분이다. 그러나 하나님편 에 서는 인간은 죽은자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에 좀처럼 실감이 없을 것이다.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하여도 알아듣지 못한다. 그러나, 예수믿는 자는 분명히 구원을 받는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믿을 수 있는 것인가 고전 12:3."성령님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수 없느니라 "고 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는 믿음은 세상에서 나는 것 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구원 얻은자에게 거저주신 선물이다.
첫째,영혼의 구원이다. 벧전 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사람들이 영혼의 존재를 인증하지 못하는 입장에서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집이 구원을 얻 으리라 하나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또한 "믿고 구원을 얻은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요1:12).
둘째 부활이다. 요11:25"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모든 자는 죽어 도 살겠고"하셨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부활의 신앙이기도 하며 믿는자들의 결국은 부활의 선 물을 받게 되는 것이다. "고전 15:24에는 만일 믿는 자들에게 부활이 없다 면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실 필요가 없고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은 헛것이라 하였다. 살전 4: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 나팔로 좇아 강림하시 니 그리스도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고 기록되었다. 그럼으로 성도들은 부활의 신앙과 재림의 신앙으로 항상 살아가야 한다.
셋째 들림이다. 들림은(휴거) 받는 일이다. 살전 4:16 예수재림시 살아남은 자도 부활한 성도들과 함께 구름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여 항상 주와 함 께 있으리라고 기록되었다. 마 24:22 그날들을 감하지 아니하고 육체가 살아서 공중에서 예수님을 맞 게 되는 것이다.제자들도 부활의 신앙과 재림의 신앙을 믿고 항상 준비하고 살았다. 오늘을 사는 성도들은 예수께서 재림하실 것을 믿는 성도가 되어 항상 준비 해야 할 것이다. 눅 21:36 이름으로 너희는 장차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앞에 서 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분부하셨다. 십자가의 도 성경


본문:고전 1:18-25 벌써 3월의 첫번째 주일 예배를 드리게 됐습니다. 한국의 3월은 춘 3 월이라 해서 남쪽으로부터 꽃소식을 전해주는 봄을 상징하는 달입니다.
그런데 교회의 3월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얼룩진 아픔의 시 간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어쩌면 봄의 생명을 얻기 위해 겨울내 얼어 붙은 땅을 헤치는 새싹들의 고통이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3 월은 4월의 부활을 위해 있는 한 과정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이해하고 그의 가르침을 바르게 교 훈 받는 일은 중요한 것입니다. 저는 오늘 바울사도가 고린도교회에 전하는 십자가의 도라는 말씀을 통해 지금 우리의 신앙이 어떤 자리에 서야 하는가를 찾고 더 가까이 주님을 따르는 복된 성도의 길을 찾아가려 합니다. 고린도교회는 지금 심각한 분파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들은 나 름대로 바울에게 또는 아볼로에게 그리고 게바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분쟁에 휘말려 있는 상황입니다. 이들은 자기 가 좋아하거나 세례를 베풀어 준 사람들에 대해서만 인정하려는 생각 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세례를 베푼것에 대해 믿음을 위해서라고 함으로써 무 엇이 중요한지 판단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들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십자가의 도를 가르쳐야할 필요성을 찾은 것입니다. 성도는 십자가 도를 이해해야 합니다.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사야 29:14절과 예레미야 8:9의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내가 지혜있는 자 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유대인들은 전통 적으로 유전에 매여 표적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십자가는무엇 으로 보였겠습니까 패배요 파멸이요 죽음이였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에게 있어서 십자가는 미련하게 보일 뿐인 것입니다. 헬라인은 최고의 지혜를 찾습니다. 철학적 논리에 매여 사는 그들에 게 십자가의 죽음은 어떻게 비쳤겠습니까 허무하고 가련하고 슬픈 일 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를 구하는 헬라인들에게도 미련한 것일 뿐입니다. 이러한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그것은 유대인들에게는 기분 나쁜 일이 되고 이방인들에게는 관심의 대상이 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이 능력이요 지혜가 되는 것인 가를 이해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입니다. (도) 호 로고스는 그 말씀 입니다. 십자가의 말씀이라는 뜻인데 십자가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 예수를 이해할 수는 없 습니다. 십자가가 없으면 구원이 없습니다. 십자가에 감추어진 말씀은 세상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지혜요 생명의 능력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찾는 표적이나 헬라인이 좋아하는 지혜는 미련하고 가치있는 것이 되고 맙니다. 멸망하는 자도 현재 계속적으로 멸망하는 자도 현재 계속적으로 멸망 되어져가는 자들이라는 뜻인데 이것은 멸망 받기로 되어져 있는 자들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멸망 되어져가는 자들이라는 뜻인데 이것은 멸 망 받기로 되어져 있는 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멸망 되어져가는 자들에게는 십자가의 도가 어리석은 것입니다. 모리아 의미는 가치도 없는 것을 말합니다. 멸망되기로 작정된 사람 들에게 십자가는 무슨 뜻이 있겠습니까의미나 가치도 찾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십자가의 도를 아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만일 교회는 다니지만 십자가의 도가 아무런 가치도 의미도 찾을 수 없다면 그 사람은 가련하고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입니다. "구원 얻은" 소조메코이스는 소조 구원하다.해방하다의 현재 수동태 분사로써 지금 구원의 완성 을 위하여 나가는 것을 뜻합니다. 능력은 뒤나미스는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시키는 힘을 발하는데 거 대한 바위덩어리를 깨버리는 다이나마이트와 같은 힘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원받은 백성들에게 십자가의 도는 위대한 생명 력이요 힘이요 세상이 모르는 지혜요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이 소중 한 십자가의 진리를 깨달아 기뻐하는 성도되시길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를 위해 이토록 값진 진리를 보여주셨습니까 그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백성을 위한 축복입니다. 이 세상의 지혜나 지 식으로 깨달을 수 없는 진리이기 때문에 십자가의 도를 주셨습니다. 세상이라는 코스모스는 장식이나 치장된 것을 말합니다. 지혜는 소피 아인데 세상적 철학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세상은 무엇인가에 단장된 것인데 세상 철학으로 뒤덮여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도를 알지 못하고 어리석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고 미련하고 가치없게 여기지는 것입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죽음입니까 얼마나 허망한 일입니까 그러나 믿음으로 구원받은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 것을 감사 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십자가의 도는 그렇기 때문에 구원받은 백성 을 위해 주신 가르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나 십자가의 죽음 은 그래서 우리에게 잊을 수가 없습니다. 고맙고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바울사도의 말씀 을 조용히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 혜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의 달리신 모습을 보는 믿음의 메세지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가장 미련한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가장 약한 모 습이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류를 구원하는 능력이었고 감추인 하 늘의 지혜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십자가를 보십시다. 그리고 그가 준 생명의 능력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하늘의 신령한 세계를 축복된 지혜의 사람이 되 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십자가와 비폭력 성경


본문:마 26:47-53 여러분이 기도해 주셔서, 이번 필리핀 교역자 집회(Philippine church Growth conference)를 큰 은혜 가운데 잘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누구 하나 병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번 같이 간 "순례자 중창단"도 노래를 잘 불 러서 시간마다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마지막 날은 약
2,000명이 모였는데 기립박수를 하며 앉을 줄을 몰랐습니다. 그렇게 부르짖으며 뜨겁게 기도하는 교역자 집회는 처음이라고 합니다. 더욱이 함께 갔던 우리 중창단 청년들이 눈물을 흘리며 은혜를 받고 하는 말이, 우리 교회가 그렇게 중요한 선교사업을 하는 줄을 몰랐고, 담임목사 가 그렇게 큰 일을 하는 줄을 몰랐다고 이구동성으로 간증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마침, 고난주일이고 다음 주일은 부활주일입니다. 오늘부터 한 주 간은 준미의 고난을 기억하며 그 고난에 동참하는 심정으로 육신의 쾌락을 가급적 멀리하고, 하루 이틀이라도 금식을 하거나 하루 한 때씩 금식기도하 며 지나가는 것도 좋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십자가와 비폭력'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생각하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수난주간에 온갖 고난을 다 받으면서도 복수하시거나 저 주하시며 폭력을 사용하시지 않은 사실을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가롯 유다가 예수님께 입맞추며 예수님을 넘겨 줄 때도 "나쁜 놈, 스승을 30냥에 팔아먹다니!"하고 호통을 치거나 저주할만도 한데,예수님은 도리어 부드럽게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고 친구라고 부르며 사랑어린 어조로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몽치를 들고와서 예수님을 잡으려는 것을 보고 제자중의 하나가 (다 른 복음에 베드로) 검을 들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그 귀를 떨어뜨릴 때, 예수님께서는 도리어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 로 망하느니라"말씀하고 또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영 더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고 말씀하시며 떨어진 원수의 귀를 도로 붙여 주었습니다. 예수님이 하시려고만 한다면 12개 사단도 더되는 천군 천사를 보내달래서, 단번에 전 로마군인과 대제시장의 무리들을 죽여버릴 수도 있었으나 끝까지 참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그 극심한 고통중에서도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은, 저주나 폭력적인 말씀이 아니라 죄인들의 죄를 용서 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누가복음 23장 33-34절에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는 기도를 하셨습니다.폭력을 쓰셔야 할 때 도리 어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셨습니다. 산상수훈에서도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 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어느 사본에는 "아버지여, 저들을 용소해 주옵소서"(Father, forgive them) 한번 하신 것이 아니라 여러 번 되풀이 하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갈보리 산에 도착했을 때에도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해 주옵소서"하셨고 못박기 위해 십자가 형틀에 눕힐때에도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해 주옵소서 "하셨고 굵은 못이 살과 뼈를 뚫고 들어갈 때에도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 해 주옵소서"하셨고, 십자가 형톨에 못박은 후 일이켜 세울 때에 손 발 못 자국마다 살이 찢어지며 피가 쏟아질 때에도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해 주 옵소서"하셨고, 십자가 형틀에서 조롱하는 무리들을 내려다 보시면서도 '아 버지여, 저들을 용소해 주옵소서"기도하셨고, 그 옷을 놓고 제비 뽑을 때에 도 "아버지여, 저들을 용소해 주옵소서"하고 기도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도는 사랑과 용서의 도라고 한다면, 사탄 마귀는 복수 와 살인과 폭력입니다. 한마디로 살인과 폭력은 사탄 마귀의 속성이며 사탄의 도구입니다.
I. 사탄의 종교와 폭력 생명의 종교이며 참된 진리인 기독교는 비폭력적인 반면에 사탄의 종교인 사이비 종교는 모두 죽이고 멸망시키는 폭력을 사용합니다. 예수님이 마귀의 속성을 잘 설명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도 적(마귀)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을 살리시는 분이요,마귀는 생명을 죽이는 살인자입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는 마귀가 어떤 놈인가를 잘 말씀해 주셨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버지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음으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 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고 사탄은 죽이는 살인자요, 거짓말장이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거짓된 종교, 사이비 종교는 사탄의 종교이므로, 거짓을 진리처럼 말하다가 최후에는 사람을 죽이는 폭력을 행사합니다. 요사이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일본의 "오움 진리교"라는 사이비 종교는, 옛날 히틀러가 600만 유태인을 죽일 때 쓰던 것보다 더 무섭고 독 한 살인가스 사린(Sarin)을 만들어서 많은 사람을 죽이려다가 발각이 되었 습니다. 사이비 종교는 그 기원이 사탄의 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잘못된 종 교처럼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옛날 백백교의 교주 정해룡이란 사람도 많은 처첩을 두고 군주처럼 호화로 게 살다가 비위에 안맞으면 애첩도 죽이고 교도들도 마구 죽였습니다. 그가 체포되어 사형집행한 뒤에 그의 집 지하실을 보니까 시체가 48구나 발견되었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겠습니까 그의 두개골이 지금도 국 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관되어 있는데, 그 목적은 범죄형 두개골의 표본으로 연구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린 대로 짐 존스(Jim Jones)란 사람이 인민사원(People'w temple)이란 선교집단을 만들어 혹세무민한다가 남미 가이아나에서 914명의 추종자들을 독글물로 죽였고, 1993년 텍사스에서는 데이비드 코레시란 사람 이 불을 질러 추종자들 80여명을 살해했고, 작년 94년 10월에 뤽 주레라는 사람이 스위스에서 잘못된 재림론을 말하면서 자기는 재림주라고 하다가 불 을 질러 48명을 죽였습니다. 이슬람교 혹은 회회교는 "한 손에는 코란,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정복하는 곳마다 사람들에게 "코란을 받든지 칼을 받든지 하라"고 폭력으로 종굘 를 강요했습니다. 엇그제 TV에서 어떤 사람이 이슬람교를 잘 미화시켜 선전하면서 "한손에는 칼, 한손엔 코란"이란 근거가 확실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가슴이 썸 뜩했습니다. 요사이도 걸핏하면 비행기 납치극을 벌이다가 수틀리면 인질들을 쏴죽이고 폭탈테러를 해서 많은 인명을 살상하는 것을 자주봅니다. 미국에 무역회관을 폭탄테러해서 수많은 사상을 낸 것도 결국 회회교도들 의 짓임이 밝혀지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그 종교의 교훈이 아름답고 그럴듯해 보여도 폭력으로 살인을 일삼는 것은 사탄의 종교입니다 터툴리안(Tertullian)교부는 "종교를 강요하는 것은 확실히 종교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몇년 전 구원파 종교가 연루된 오대양사건도 수십명이 살해된 것이 발견되 었고, 요사이 영생교에서도 엉터리 없는 거짓말로 혹세무민하다 수많은 사람을 죽여 암매장한 사실이 들어났습니다. 살인하는 것을 일삼는 종교는 사탄의 종교요, 마귀의 장난임을 알아야 합니다.
II. 정치와 폭력 정치에도 사탄이 지배하는 정치집단이 있습니다. 이런 정치는 역시 살인과 폭력을 일삼습니다. 최근의 대표적인 폭력집단은 캄푸치아(캄보디아)를 장악했던 폴 포트 정치 집단일 것입니다. 공산주의 집단으로 10대의 아이들을 무장시켰거 수 백만 을 죽이고 나라를 쑥밭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잔인성은 "킬링필드'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 12-13절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 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 라"고 한 이 말씀은, 사탄이 정사와 권세를 잡고 사람들을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히틀러가 독가스로 유태인 600만명을 죽인 사실은 너무나도 잘 아는 사실 입니다. 사탄의 사상인 공산주의의 창시자인 칼 막스는 1948년 "공산당 선 언"에서 "전 세계 노동자들이여 다 단결하여 공장과 기업체의 주인인 자본 가의 재산을 빼앗아 공동 소유를 만들자"고 하면서 거짓말이나 방화 파괴나 폭력, 살인도 불사한다고 했습니다. 후르시쵸프는 폭로하기를 "스탈린은 1936-1938년 2월까지, 그 동안의 숙청 에서 10월 혁명이전까지 공산당에 입당한 사람들 중에는 50%을, 군장성급에는 60%을 사형시켰다"고 했습니다. "비밀 경찰두목 에조프가 스탈린에게 바친 사형자 명단이 책으로 나왔는데 383권이나 되고, 그가 죽은 소련인은 4천5백만명이었다고"라고 (로버트 콘 퀘스트 저 the great terror) 했습니다. 모택동은
3,500만 내지 6,300만명을 죽였다고 합니다. 북한의 김일성 김정 일은 정적들과 반동분자들을 무수히 살해했다고 귀순자들이 폭로했습니다. 무슨일이 있어도 살인하는 폭력은 정당방위 외에 쓰지말아야 합니다.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III. 사회와 폭력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나라들은 살인을 일삼는 폭력집단인 마피아가 잡 고 있습니다. 로버트 케네디도 마피아를 근절하겠다는 말을 했다가 살해되 었다고 하는 말도 있습니다. 일본도 야쿠자라는 깡패집단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고 합니다. 일본에 최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대개 야쿠자들이라고 합니다. 이 집단 에서 저 집단 두목을 죽이면, 몇 일후에 저쪽 집단에서 또 죽입니다. 군대도 경찰도 법관도 손을 못댄다고 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큰 일입니까 이 야쿠자가 한국의 깡패단과 손잡고 세력을 뻗치려다가 한국의 형사들이 하도 졸졸 따라 다니니까 결국 그만 두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언제 또 상륙할지 모릅니다. 어찌하든지 깡패 부랑자가 판치지 못하는 나라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됩니다. 데모를 해도 비폭력 데모를 해야지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화염병을 던지는 행위를 해서는 안됩니다. 공산주의의 폭력주의의 영향을 받은 대학들은 살인도 불사합니다. 경찰의 고문을 비난하던 대학생들이 신나를 뿌려서 여러 명의 경찰을 살인한 것은 사탄의 역사입니다. 모 전문대생이 동료를 정부의 푸락치라고 각목으로 때 려 죽인 것도 사탄의 역사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사회에 폭력이 난무하거나 폭력이 지배해서는 안됩니다. 공의가 춤을 추고 진리가 마음껏 노래하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IV. 가정과 폭력 폭력은 사탄의 속성이므로 이런 사탄이 가정에 들어오면, 사랑의 채찍의 차원을 넘어서 폭력과 공포가 지배하는 가정들이 많게 됩니다. 결코 폭력을 써선 안됩니다. 아내를 구타하거나 화풀이로 자식을 구타해선 안됩니다. 이 마귀의 역사를 근절하지 않으면 가정이 파괴되고 자식들을 불량자가 됩니다. 엇그제 바람난 여자가 아이가 둘씩이나 있는데 남편을 살해했다고 합니다. 음란 마귀와 살인 마귀가 역사한 것입니다. 아버지를 살해했습니다. 이것이 전부 다 " 도적질하고 죽이는" 사탄의 역사입니다. 사변 후 얼마 안되어 모 장로가 사업상 요정에 갔다가 술집 아가씨한데 책 잡히는 짓을 했는데, 주일마다 예배당 앞자리에 와 앉아서 괴롭히고, 돈을 줘도 줘도 끝이 없고, 계속 공갈협박하니까 참다 참다가 결국은 조용한 집 에서 그녀를 죽여 마당에 암매장했다가 들통이 난 사실이 있습니다. 그 장로를 나쁘게 보기 전에 그의 입장을 이해해야 될 것입니다. 그 장로는 살인과 폭력은 사탄의 짓인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살인 폭력은 써서 안된다는 것을 모르고, 참다 참다 못해 마귀의 짓을 했던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폭력을 쓸 생각도 해선 안됩니다. 에베소서 4장 26-27절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 지 못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분노를 품었다가도 속히 풀어버리지 않으면,마귀가 틈을 타서 폭력을 쓰고 살인하게 됩니다. 어찌하든지 가정폭력이 역사해선 안됩니다. 폭력과 도적질하고 죽이는 짓 은 사탄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자살은 더 큰 폭력이며 더 큰 마귀의 역사 입니다. 종교도,국가도, 사회도, 가정도 폭력이 지배하면 사탄에게 속한 것입니다. 폭력은 절대금물입니다. 선은 악에게 핍박을 받아도, 악을 핍박하지는 못하는 법입니다. 할렐루야! 십자가와 면류관 성경


본문:요 17:1-8 본문인 요한복음 17장에는 주님의 유명한 대제시장으로서의 중보의 기도가 나옵니다. 기도의 내용은 주님 자신을 위한 기도(5절까지)와 제자들을 위한 기도(19일까지)와 온 교회를 위한 기도(20절서부터)로 되어 있습니다. 오늘 은이 기도를 살펴보면서 십자가와 면류관의 관계를 깨닫고,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저 갈보리 언덕까지 올라갈 수 있기를 먼저 축원합니다.

1. 예수님의 기도의 자세 예수님에게는 예언자로서의 사명, 왕으로서의 사명, 대제사장으로서의 삼 대사역이 있었습니다. 본문의 주님의 기도는 제사장으로서의 사역입니다. 이 주님의 기도의 자세에서 우리들의 기도의 자세와 비교하면서도전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기도할 때 가장 중요한 자세는 우리 아버지께 기도한다는 자세여야 합니다. 주님은 1절에 '아버지여'라고 하였고, 11절에는 '거룩하신 아버지' 라고 하였으며 25절에는 '의로우신 아버지여'하고 말씀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을 대할 때 아버지와 아들이란 인격적 관계를 가지고 대하셨으나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주시는 우상과 같은 존재로 대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는 하나님 중심의 기도이지만 우리들은 우리들 신앙의 대 상이요 기도의 대상이 되시는 하나님은 인격적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인격적 관게를 가지고 기도해야 이루어집니다.
둘째로,주님은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시면서 기도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보고 계신다는 확신에서 하신 자세입니다. 물론 육신의 눈을 위로 보아야만 된다는 그런 좁은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외형 이야 어떻게 하든 문제가 아닙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의 영혼이 땅을, 즉 세상 것을 바라보면서 세상중심의 기도를 하고, 확신없이 중언부언 기도 하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지 못하면서 기도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적어도 우리의 마음과 영혼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해야 합니다.
2. 주님의 기도의 내용
첫째로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 게 하게 하옵소서'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아들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아 버지의 뜻인 십자가를 지는 것, 죽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영화 롭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 타나고, 그가 하나님이신 것이 만민에게 나타나고,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이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가 없고 모두가 나 중심의 기도입니다.
둘째는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달라는 기도입니다. 3절에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영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 대상입니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라고 했을 때 이것은 구원지식의 대상으로 오직 하나님만을 인 정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가 나오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계시되고 나타나 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9-10절에 보면 주님과 하나님을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과의 인격적 만남이 있고 성육하신 하나님을 만나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로 예수님께서 우리의 주가 되시고, 메시야가 되시고 하나님이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보내신 분임을 말씀을 통해서 알고 믿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믿음에는 지정의, 즉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비결이 무엇인지 천국은 어떤 곳인지 아는 지식과,성경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정적 동의와, 말씀에 모든 것을 맡기는 의지적 헌신이 있을 때 온전한 신앙이 됩니다.
3. 십자가와 영광의 관계 1절 마지막 부분에 보면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는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즉 십자가를 통하여 아버지 하나님이 영광을 받게 하옵소서'라는 기도입니다. 이것은 시 자가와 영광의 관계를 말씀한 것입니다. 'No Cross,No Crown' 이라는 루터 의 유명한 말처럼 십자가 없이는 면류관도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갈6:14)고 한 것입니다. 주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시야를 상실하고란 뜻) 자기 십자가를 지고 (누가는 매일이란 말을 더 첨가한다)나를 (계속해서)좇을 것이니라'(마 16:24)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지신 대속의 십자가를 질 수는 없 지만 짐으로서의, 고난으로서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우리들에게 활당된 짐으로 우리는 십자가를 기쁨으로 지시기를 바랍니다. 인도의 성자인 썬다싱은 십자가를 호도맛에 비유하여 겉은 쓰지만 안은 달다고 했습니다. 사실 십자가는 처음에는 내가 지는 것 같지만 나중에는 십자가가 나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는 멸망하는 사람들에게는 미 련하게 보이지만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만을 자랑하고, 십자가만을 사랑하고,십자가만을 전합시다. 십자가만을 꼭 붙잡읍시다. 우리에게는 멀리서 바라만 보는 십자가가 아니고 가까이서 믿고 지고서 살아가는 십자가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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