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결과 (마25:14-30)
본문
독일의 한 지역에 큰 흉년이 들어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게 되었을 때 한 부자가 어린이들을 위해 매일 빵을 구워 하나씩 나누어 주게 되었답니다. 아이들은 서로 큰 빵을 먼저 집어가는데만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그중에 한 소녀는 항상 가장 작은 빵을 맨 마지막에 집으면서도 그 마음씨 착한 아저씨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부자는 그 소녀를 참 기특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어떠한 상을 줄까 생각하다가 다음날 빵을 구울때 가장 작은 빵속에 50센트 짜리 금화 6개를 넣었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아이들은 큰 빵에만 관심을 갖고 인사도 하지 않고 갔습니다만, 이 소녀는 그날도 맨 마지막까지 양보하여 그 작은 빵을 집어들고 감사의 인사를 하며 돌아갔습니다. 소녀가 집에서 빵을 먹다보니 웬 번쩍번쩍하는 금화가 들어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소녀는 무언가 잘못된 것 같아 아저씨를 찾아왔습니다. 마음씨 좋은 아저씨는 “얘야, 감사할 줄 아는 너에게 주는 상이니 안심하고 받아 가지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감사의 결과는 항상 축복된 것이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주님께서 열명의 문둥이를 치료해 주셨지만, 그 중에 사마리아 사람 한 명만 찾아와 감사하게 되었을때 다른 아홉에 대해서는 서운한 마음을 갖게 되셨고, 감사한 문둥이에게는 영생의 축복까지 주었습니다. 진실로 감사는 우리 영혼의 종착역을 판가름하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감사주일에 잘 인용하지 않는 곳이지만 저는 이 말씀을 감사라는 차원에서 다시 한 번 조명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 이 비유의 핵심은 감사하는 마음이 가져다 주는 결과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던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무엇인가 주인을 위해서 충성되게 일하게 되었으며, 감사하는 마음보다는 욕구불만과 원망의 마음을 가졌던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냉랭하고 굳은 마음으로 변하게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두 부류의 사람들이 왜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으며, 왜 싸늘한 마음으로 굳어졌는 지를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부르심에 감사했고,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그렇지를 못한 것 같습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선하시고 존경스런 자신들의 주인이 많은 종들 가운데서 자신들을 지목하고 불러 주신 것에 대하여 감지덕지하며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인이 나를 인정하여 주셨다는 사실, 나를 어여삐 여기셨다고 하는 사실 앞에 감격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여러분을 부르신 분이 누구십니까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여러분을 지목하시고 택하여 주신 분이 누구냔 말입니다. 그 분은 이 비유 가운데에 나오는 어떤 주인보다 위대하셔서 천지와 만물을 지으시고 운행해 가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최후의 심판자가 되시며 인생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이시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는 다시한번 이 근본적인 감사를 마음속 깊은 곳에서 가슴 벅차도록 고백할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다윗과 사울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사울은 자신을 택하시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부족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교만해져서 왕의 신분으로서는 할 수 없었던 제사를 집례하려 했고, 아말렉을 진멸하라 하였지만, 불순종하게 된 것입니다. 반면, 다윗은 역대상 17장 16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여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대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하며, 19절에서는 주의 종을 위하여 주의 뜻대로 이 모든 큰 일을 행하셨다 고 감사하며 눈물짓고 있습니다. 다윗의 감사는 다른 것이 아닌 부르심, 택하심에 대한 감사였음을 우리는 잘 알 수 있습니다. 목동에 불과했던 그를 부르셔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시고 사울의 집 처럼 멸문의 길로 들어서지 않고, 다윗의 씨를 통해서 세세토록 왕위가 이어진 것이라는 말씀 앞에 다윗왕은 무릎 꿇고 감사의 눈물을 한 없이 흘리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결코 다윗보다 못한 부르심이 아닙니다. 다윗은 육신의 왕으로 불렀지만 우리는 영적인 면에서, 또한 영원한 나라에서 왕같은 제사장으로 불러 주셨지 않습니까! 우리의 부르심에 대하여 감사할 수 있는자만이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드온의 300용사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끝까지 택함 받은 사실에 감사하였기에 죽음을 무릅쓰고 미디안 대군을 향해 전진해 가는 용감한 군사가 되었습니다. 감사로 나아갔던 그들의 발걸음은 승리의 깃발만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부르심에 감사했던 두 사람은 마지막에 칭찬 듣는 종이 되었고, 그렇지 못한 종은 영원한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둘째,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종은 맡기심에 감사했습니다. 그들은 주인의 소중한 재산을 그들에게 맡기신 것에 대하여 감사했던 것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주인의 맡기심에 감사하지 못했음이 분명합니다. 다른 두 종에 비해 적게 맡은 것에 대한 불만이 가득찼던 것인데, 그가 주인이 맡긴 달란트를 수건에 싸서 땅 속에 묻어 버렸다는 것은 그의 불만과 굳은 마음을 잘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한 달란트라고는 하지만 약 1억원에 해당하는 돈이었으므로 결코 작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이 많든, 적든 다 소중한 것임을 알아 감사할 줄 아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처럼 맡겨진 것에 대해 감사하지 못하면 비극으로 끝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맡겨진 것이 작은 것입니까 결혼한 분이라면 남편이나, 아내나, 또한 자녀, 부모님 뿐아니라 이웃과, 친척 모두 내게 맡겨진 사람들입니다.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사람들 중 누구라도 주님께로부터 적게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비록 내게 맡겨진 것이 적은 것이라 할지라도 감사하지 못하면 참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벙어리가 늘 불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말할 수 없고 노래도 할 수 없는 자신을 비관하며 살아가던 중 어느날 길을 걷다 연못에 사람이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벙어리는 그 사람에게 줄을 던져주어 살려 주었습니다. 꺼내놓고 보니, 그 사람은 소경이었습니다. 벙어리는 ‘야, 그래도 나는 눈이 있어서 아무데나 갈 수 있구나’하며 자신의 처지에 대해 처음으로 감사했답니다. 물론 이 벙어리의 감사는 이기적이며, 성서적이지 못한 감사입니다. 우리는 내게 맡겨진 외모와 재산과 재능이 어떠하든지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다른 두 사람에 비해 자신의 달란트가 적은 것이 불만이었으므로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어 영원한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제목과 같이 감사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의 결과는 어떤 차이가 있었습니까
첫째,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종은 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주인은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하지 않았습니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이 지금 감사로 충만한 상태라고 생각해 보십시요. 여러분의 눈빛은 너무도 선하게 될 것이고, 말은 부드럽기 그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사람앞에 착한 사람으로 언제나 행동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감사로 무장하지 아니하면 우리의 말투는 험악하기 그지 없을 것이며, 이웃을 불안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감사할 수 있는 사람만 하나님께 착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만 사람에게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주인에 대해 감사했던 두 종은 주인의 마음이 흡족하리만큼 착한 사람이 되어 극찬을 받고 상급과 위로를 받았습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 모두 감사하는 성도가 되어 사납고 일그러진 우리의 심령과 생활이 치료 받을 수 있도록 합시다. 감사로 가득찬 마음만이 모든 악한 것들과 어두움의 일을 벗도록 할 것입니다. 흉악한 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간 모든 사람들은 한결같이 부모님이나 사회에 불만이 많았던 사람입니다. 감사는 착한 행동을 낳는 원동력이요, 근원이라는 것을 꼭 잊지 마십시요.
둘째, 감사했던 두 종은 충성된 사람이 되었고, 불평했던 한 사람은 게으른 종이 되었습니다. 감사하는 밝은 마음을 가진 두 종은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었던 것입니다. 주인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그들로 하여금 주인을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움직이게 했습니다. 감사가 있는 사람은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활발히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예배시간만은 뛰지 맙시다.) 감사하는 마음을 소유한 두 종은 주인을 위해 충성되게 일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계시록 2장 10절에서는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기도 합니다만 죽도록 충성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아는 사람임을 꼭 기억할 수 있도록 합시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감사할 줄 모르다가 그의 마음은 한없이 완고해져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으른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본문의 말씀 가운데서도 주인은 게으른 종이라고 호되게 꾸짖고 있습니다. 불평불만으로 가득찬 그의 마음은 사람에게나 하나님께 마음을 굳게 하였다고 설명했듯이 그의 마음의 상태가 그의 행동 가운데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주인이 준 소중한 달란트를 수건에 쌓아 묶었습니다. 또한 그는 땅을 파고 묻어버려 주인의 것을 땅속에 방치하는 무례함도 보이고 있습니다. 그가 주인의 것을 소중히 여겼다면 결코 땅속에 묻을 순 없을 것입니다. 귀하고 아름다운 곳에 감추어 둘 수도 있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또한 그는 주인에게 “당신은 굳은사람이라”고 직접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마음이 굳은 마음인 것처럼 말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의 완악한 마음의 상태가 수건으로 묶어 싸고 땅속에 묻어 버리는 것으로 나타났듯이 감사를 잃어버린 마음에서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꽁꽁 얼어붙은 싸늘한 그 마음에서 무슨 일을 기대할 것입니까 우리 이제 95년 추수 감사절을 맞이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더욱 회복받아 지금까지 움직이지 못한 발과 손이 있다면 움직이도록 합시다. 잠잠하던 입술이었다면 입을 열어 고백합시다. 감사로 가득찬 여러분의 마음만이 주님을 위해 일어나는 그리스도의 충성된 군사로 일어서게 될 것입니다. 감사의 결과는 이처럼 엄청난 결과를 가져옵니다. 여러분의 행동의 열매는 감사의 결과임을 기억하고 감사함으로 굳어져가는 우리의 마음을 항상 풀어낼 수 있어야겠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위해 이른 아침부터 해가 질때까지 충성되게 일하는 착하고 충성된 종들이 다 되도록 합시다. 이제 저는 다시금 욥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며 여러분이 지금까지 무엇 때문에 감사하는 삶을 살지 못하였는지 반문해 보고 싶은 것입니다. 욥은 수백 수천의 소와 양을 하루아침에 잃게 되었고, 같은 날에 10명의 자녀를 잃었습니다. 그때 그는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며 그는 범죄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여기 이 자리에 앉아계신 분 가운데 이 욥보다 고난 가운데 있는 이가 있습니까 지금 욥보다 기가막힐 운명에 처한 이가 있느냔 말입니다.
그렇다면 날마다 저 하늘을 향해 삿대질하며 원망 하십시요. 그래도 당신은 천국에 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아무리 우리가 처한 환경이나 처지가 비참해도 욥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이 욥의 이야기는 우리 인간들이 처할 수 있는 최악의 상태가 아닙니까 그에게 그 이후 아내도 떠났고, 그의 몸은 심한 피부병과 악질로 인해 기왓장으로 몸을 박박 긁어야 견딜 수 있는 고통의 나날이었지 않습니까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믿음을 잃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욥의 이야기는 옛날 옛적의 한 사람 동방의 의인 욥의 이야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주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하며 그 분의 뒤를 따르는 모든 성도들이 반드시 이루어야 되는 신앙의 차원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욥이 원망하느냐 안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이 이기는가 마귀가 승리하는가가 결판나게 되어있었지 않습니까 다행히도 욥이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기에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셨고 마귀는 패배자가 되어 떠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하루하루의 삶을 감사하며 살아가느냐 원망하며 살아가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빛내느냐, 근심되게 만드느냐를 떠나 마귀와의 게임에서 하나님을 패배자로 만들 것인가 승리자로 만들 것인가를 판가름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신앙인이 되어 믿음있음을 증명해 보일 뿐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첫째,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부르심에 감사했고,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그렇지를 못한 것 같습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선하시고 존경스런 자신들의 주인이 많은 종들 가운데서 자신들을 지목하고 불러 주신 것에 대하여 감지덕지하며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인이 나를 인정하여 주셨다는 사실, 나를 어여삐 여기셨다고 하는 사실 앞에 감격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여러분을 부르신 분이 누구십니까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여러분을 지목하시고 택하여 주신 분이 누구냔 말입니다. 그 분은 이 비유 가운데에 나오는 어떤 주인보다 위대하셔서 천지와 만물을 지으시고 운행해 가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최후의 심판자가 되시며 인생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이시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는 다시한번 이 근본적인 감사를 마음속 깊은 곳에서 가슴 벅차도록 고백할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다윗과 사울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사울은 자신을 택하시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부족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교만해져서 왕의 신분으로서는 할 수 없었던 제사를 집례하려 했고, 아말렉을 진멸하라 하였지만, 불순종하게 된 것입니다. 반면, 다윗은 역대상 17장 16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여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대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하며, 19절에서는 주의 종을 위하여 주의 뜻대로 이 모든 큰 일을 행하셨다 고 감사하며 눈물짓고 있습니다. 다윗의 감사는 다른 것이 아닌 부르심, 택하심에 대한 감사였음을 우리는 잘 알 수 있습니다. 목동에 불과했던 그를 부르셔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시고 사울의 집 처럼 멸문의 길로 들어서지 않고, 다윗의 씨를 통해서 세세토록 왕위가 이어진 것이라는 말씀 앞에 다윗왕은 무릎 꿇고 감사의 눈물을 한 없이 흘리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결코 다윗보다 못한 부르심이 아닙니다. 다윗은 육신의 왕으로 불렀지만 우리는 영적인 면에서, 또한 영원한 나라에서 왕같은 제사장으로 불러 주셨지 않습니까! 우리의 부르심에 대하여 감사할 수 있는자만이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드온의 300용사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끝까지 택함 받은 사실에 감사하였기에 죽음을 무릅쓰고 미디안 대군을 향해 전진해 가는 용감한 군사가 되었습니다. 감사로 나아갔던 그들의 발걸음은 승리의 깃발만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부르심에 감사했던 두 사람은 마지막에 칭찬 듣는 종이 되었고, 그렇지 못한 종은 영원한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둘째,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종은 맡기심에 감사했습니다. 그들은 주인의 소중한 재산을 그들에게 맡기신 것에 대하여 감사했던 것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주인의 맡기심에 감사하지 못했음이 분명합니다. 다른 두 종에 비해 적게 맡은 것에 대한 불만이 가득찼던 것인데, 그가 주인이 맡긴 달란트를 수건에 싸서 땅 속에 묻어 버렸다는 것은 그의 불만과 굳은 마음을 잘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한 달란트라고는 하지만 약 1억원에 해당하는 돈이었으므로 결코 작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이 많든, 적든 다 소중한 것임을 알아 감사할 줄 아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처럼 맡겨진 것에 대해 감사하지 못하면 비극으로 끝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맡겨진 것이 작은 것입니까 결혼한 분이라면 남편이나, 아내나, 또한 자녀, 부모님 뿐아니라 이웃과, 친척 모두 내게 맡겨진 사람들입니다.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사람들 중 누구라도 주님께로부터 적게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비록 내게 맡겨진 것이 적은 것이라 할지라도 감사하지 못하면 참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벙어리가 늘 불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말할 수 없고 노래도 할 수 없는 자신을 비관하며 살아가던 중 어느날 길을 걷다 연못에 사람이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벙어리는 그 사람에게 줄을 던져주어 살려 주었습니다. 꺼내놓고 보니, 그 사람은 소경이었습니다. 벙어리는 ‘야, 그래도 나는 눈이 있어서 아무데나 갈 수 있구나’하며 자신의 처지에 대해 처음으로 감사했답니다. 물론 이 벙어리의 감사는 이기적이며, 성서적이지 못한 감사입니다. 우리는 내게 맡겨진 외모와 재산과 재능이 어떠하든지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다른 두 사람에 비해 자신의 달란트가 적은 것이 불만이었으므로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어 영원한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제목과 같이 감사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의 결과는 어떤 차이가 있었습니까
첫째,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종은 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주인은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하지 않았습니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이 지금 감사로 충만한 상태라고 생각해 보십시요. 여러분의 눈빛은 너무도 선하게 될 것이고, 말은 부드럽기 그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사람앞에 착한 사람으로 언제나 행동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감사로 무장하지 아니하면 우리의 말투는 험악하기 그지 없을 것이며, 이웃을 불안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감사할 수 있는 사람만 하나님께 착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만 사람에게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주인에 대해 감사했던 두 종은 주인의 마음이 흡족하리만큼 착한 사람이 되어 극찬을 받고 상급과 위로를 받았습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 모두 감사하는 성도가 되어 사납고 일그러진 우리의 심령과 생활이 치료 받을 수 있도록 합시다. 감사로 가득찬 마음만이 모든 악한 것들과 어두움의 일을 벗도록 할 것입니다. 흉악한 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간 모든 사람들은 한결같이 부모님이나 사회에 불만이 많았던 사람입니다. 감사는 착한 행동을 낳는 원동력이요, 근원이라는 것을 꼭 잊지 마십시요.
둘째, 감사했던 두 종은 충성된 사람이 되었고, 불평했던 한 사람은 게으른 종이 되었습니다. 감사하는 밝은 마음을 가진 두 종은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었던 것입니다. 주인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그들로 하여금 주인을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움직이게 했습니다. 감사가 있는 사람은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활발히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예배시간만은 뛰지 맙시다.) 감사하는 마음을 소유한 두 종은 주인을 위해 충성되게 일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계시록 2장 10절에서는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기도 합니다만 죽도록 충성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아는 사람임을 꼭 기억할 수 있도록 합시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감사할 줄 모르다가 그의 마음은 한없이 완고해져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으른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본문의 말씀 가운데서도 주인은 게으른 종이라고 호되게 꾸짖고 있습니다. 불평불만으로 가득찬 그의 마음은 사람에게나 하나님께 마음을 굳게 하였다고 설명했듯이 그의 마음의 상태가 그의 행동 가운데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주인이 준 소중한 달란트를 수건에 쌓아 묶었습니다. 또한 그는 땅을 파고 묻어버려 주인의 것을 땅속에 방치하는 무례함도 보이고 있습니다. 그가 주인의 것을 소중히 여겼다면 결코 땅속에 묻을 순 없을 것입니다. 귀하고 아름다운 곳에 감추어 둘 수도 있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또한 그는 주인에게 “당신은 굳은사람이라”고 직접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마음이 굳은 마음인 것처럼 말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의 완악한 마음의 상태가 수건으로 묶어 싸고 땅속에 묻어 버리는 것으로 나타났듯이 감사를 잃어버린 마음에서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꽁꽁 얼어붙은 싸늘한 그 마음에서 무슨 일을 기대할 것입니까 우리 이제 95년 추수 감사절을 맞이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더욱 회복받아 지금까지 움직이지 못한 발과 손이 있다면 움직이도록 합시다. 잠잠하던 입술이었다면 입을 열어 고백합시다. 감사로 가득찬 여러분의 마음만이 주님을 위해 일어나는 그리스도의 충성된 군사로 일어서게 될 것입니다. 감사의 결과는 이처럼 엄청난 결과를 가져옵니다. 여러분의 행동의 열매는 감사의 결과임을 기억하고 감사함으로 굳어져가는 우리의 마음을 항상 풀어낼 수 있어야겠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위해 이른 아침부터 해가 질때까지 충성되게 일하는 착하고 충성된 종들이 다 되도록 합시다. 이제 저는 다시금 욥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며 여러분이 지금까지 무엇 때문에 감사하는 삶을 살지 못하였는지 반문해 보고 싶은 것입니다. 욥은 수백 수천의 소와 양을 하루아침에 잃게 되었고, 같은 날에 10명의 자녀를 잃었습니다. 그때 그는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며 그는 범죄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여기 이 자리에 앉아계신 분 가운데 이 욥보다 고난 가운데 있는 이가 있습니까 지금 욥보다 기가막힐 운명에 처한 이가 있느냔 말입니다.
그렇다면 날마다 저 하늘을 향해 삿대질하며 원망 하십시요. 그래도 당신은 천국에 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아무리 우리가 처한 환경이나 처지가 비참해도 욥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이 욥의 이야기는 우리 인간들이 처할 수 있는 최악의 상태가 아닙니까 그에게 그 이후 아내도 떠났고, 그의 몸은 심한 피부병과 악질로 인해 기왓장으로 몸을 박박 긁어야 견딜 수 있는 고통의 나날이었지 않습니까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믿음을 잃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욥의 이야기는 옛날 옛적의 한 사람 동방의 의인 욥의 이야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주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하며 그 분의 뒤를 따르는 모든 성도들이 반드시 이루어야 되는 신앙의 차원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욥이 원망하느냐 안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이 이기는가 마귀가 승리하는가가 결판나게 되어있었지 않습니까 다행히도 욥이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기에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셨고 마귀는 패배자가 되어 떠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하루하루의 삶을 감사하며 살아가느냐 원망하며 살아가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빛내느냐, 근심되게 만드느냐를 떠나 마귀와의 게임에서 하나님을 패배자로 만들 것인가 승리자로 만들 것인가를 판가름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신앙인이 되어 믿음있음을 증명해 보일 뿐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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