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고 충성된 종 되자 (마25:14-30)
본문
오늘 본문에 나타난 종을 보면,두 가지 종류의 종이 있다. 착하고 충 성된 종이 있는 반면에 악하고 게으른 종이 있다. 누구나 악하고 게으 른 종이 있다. 누구나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기는 싫고, 착하고 충성 된 종이 되기를 원할 것이다. 그러나, 원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되기가 힘드는 것은 사실이다. 원치 않는 악한 종은 되기가 쉽고, 원하는 착하고 충성된 종은 되기가 매우 힘이 든다.
그러므로 되기 쉬운 악한 종이 안되고, 되기 어려운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는데는 남모르는 피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1. 종임을 인식해야 한다. 주님과 나와의 관계를 잘 인식해야 한다. 우리 주님은 구주도 되시고 선생님도 되시고 친구도 되시며, 왕도 되시고 주인도 되신다. 바울이나 베드로나 야고보는 자신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됨을 그의 서신들에게 고백했다. 그것은 겸손한 말이 아니고, 실제의 자기들의 직분을 말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피로 우리를 사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서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는 팔린 몸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예수님의 종이 되었다. 종은 어디까지나 주인을 위 한 존재이지, 자기 자신을 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먼저 인식해야 하겠다. 짐승들을 보면 쉽사리 알 수 있다. 닭이나 소나 고양이나 개를 보면, 그들이 자기 자신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주인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바울은 자기의 생사를 온전히 주인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했다. 그러나 오늘날 이 땅에는 자기의 종된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종들도 많이 있다. 특히, 하갈이 자기의 주인을 멸시하듯이, 오늘 주님을 멸 시하는 자신의 종됨을 인식못하는 자들이 있다.
2. 착하고 충성된 종은 힘써 활동해야 한다. 종들은 다 얼마씩의 자본을 받았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악한 종은 받 은 자본을 땅을 파고 묻어 두었다. 그는 자본을 활용하지 않았다. 즉, 자신의 책임을 회피했다. 의무를 수행하지 않았다. 자본이 적다고 그랬을까수량이 문제가 아니었다. 요는 성의가 문제 였다.오늘날, 이 문제는 신앙을 떠난다는 문제에서도 볼 수 있다. 땅 을 조금 가진 사람이라도 땅을 잘 이용하면 수십배를 갈고, 묵혀두는 사람보다 수입을 많이 올릴 수가 있다. 이스라엘이나 스위스 같은 나라들을 보자, 그들은 불우한 조건에서도 열심으로 활용했을 때에 오늘날 부유한 국가들이 되었다. 수량이 문제 가 아니다. 활용의 정도에 문제가 있다. 오늘 본문에 활용하는 종은 장사했다. 이득을 보았다. 자본을 늘였다. 종들은 일하기 위한 종들이지, 놀고 먹는 종이 아니다. 특히 주의 종들은 더 그러하다. 일해야 한다.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의 종들에게 맡기실 때에는 일을 하기만 하면 자본이 늘어나도록 축복해 주셨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주님께 받은 자본을 활용하자.가정에서,교회에 서, 사회에서 직장에서 주님께 받은 본분과 사명대로 활용하자.활용치 않은 자본은 죽은 자본이지 이득을 보는 살아 움직이는 자본은 안된다.
3. 근로해야 한다. 악한 종은 묻어두고, 무사주의로 지냈다. 악한 종은 아무일이 없는 자인 것 같았다. 그 이유는 자본이 땅속에 감추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착하고 충성된 종은 그렇지 않았다. 묻으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 고 그는 받은 즉시로 근로하기 시작했다. 그는 바로 가서 장사를 시작 했다. 장사는 쉬운일이 아니다. 항상 이익을 얻도록 성공하는 장사는 남모 르는 수고와 노력이 있어야 한다. 100분의 1은 천재적인 소질이요, 100분의 1은 천재적인 소질이요, 100분의 99는 노력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보면 세상만사는 노력이 있어야 된다는 말과 같다. 웨슬레(Wesley)는 그의 직무를 '위해서,새벽 4시에 일어났다.그리고 그는 30분간의 설교를 위하여, 30시간을 준비했다고 한다. 인간은 자기의 재능의 20분의 1만 활용하게 되고 20분의 19는 묵혀 둔다는 말도 있다. 그러고 보면, 20분의 19라는 능력 즉 자본과 땅속 에 묻어둔다는 말과 같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이 자본인 복음 을 가지고 역사를 하자. 노력을 하자. 복음 장사를 하기만 하면 믿지는 법은 없다.
4.끝까지 인내해야 한다. 본문의 종은 주인이 올 때까지 쉬지 않고 장사했다. 인내했다. 참고 견녔다. 오늘 우리들도 끝까지 인내하자. 긴 세월동안이라도 인내하 자. 우리 주님이 오셔서 계산하시는 그날까지 오늘 우리는 우리가 주의 종임을 다시 확인하자. 주님 앞에는 양반도, 고관대작도 다 종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일을 위해서 힘써 일하자. 우리의 손과 발, 머리와 본능을 그리고 시간과 지식을 영역과 신앙을, 소망과 사랑을, 재물과 권세를, 무엇이든지 있는대로 주님의 일을 위해서 동원해서 착 하고 충성된 종이 되자. 착하고 신실한 청지기 성경
본문:눅 19:11-28 교회마다 청지기 주일을 지키며 우리 주님의 청지기로 일년동안 맡았던 모든일에 대하여 주인되시는 주님앞에 새로운 결단과 결심이 서약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마태복음(25:14-30) 절에 있는 달란트의 비유와 대조가 되는 말씀이며 (눅17:7) 십절에 있는 무익한 종의 비유와 마태복음 20:1-16에 있는 포도원 일꾼의 비유로 서로 대조되는 말씀입니다. 이 몇 곳에 있는 말씀은 모두 하나님의 일꾼 또는 종 또는 재물 맡 은자 즉 청지기라는 명칭으로 나타난 그리스도인의 생활입니다.
첫째 눅17:7-10 을 보면 종이 수고하였을 지라도 그 공로와 성과에 대하 여 그 댓가를 요구할 수 없다는 뜻의 말씀이 나타나 있습니다. 즉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들에서 돌아오면 주인이 그에게 앉아쉬 게하지 않고 도리어 주인의 먹을 것을 준비하고 그리고 그후에야 먹고마 시라 하지 않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이와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은 한 것 뿐입니다. 해야 옳다고 했습니다. 종은 주인이 보아 3가지를 겸비해야 합니다.
(1) 믿음직해야 합니다.
(2) 겸손해야 합니다
(3) 순종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충성스러운 종이 수고하고 공을 세운 후에도 가져야 할 겸손이요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요 바로 청지기의 자세인 것입니다. 종은 충성심이 있어야 하는데 맡은 일에 충성해야 하고 적은 일에 충성해야 하고 죽도 록 충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계십니다.
둘째 마태복음 20장에 나타난 포도원 일꾼에 대한 그 주인의 대우에 불평을 품는 비유가 오늘 우리들의 마음을 살리는 데 유익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천국을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 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주인과 같다고 했습니다. 교회는 진실로 그리스도를 위한 품꾼을 구하는 것입니다. 아침에 만난 품꾼에게도 한 데나리온을 약속하고 낮에 만난 품꾼도 해질 무렵에 들여보낸 품꾼도 해질 무렵에 들여보낸 품꾼에 게도 한 데나리온을 약속 하였는데 삯을 주려할 때 먼저 온자들 중에서 원망 불평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아침부터 온종일 수고하고 시달렸는데 해질 무렵에 한 시간 일한 저사람과 같은 대우를 한단 말입니까하고 항 의 소동이 납니다. 이것은 주의 일을 하는 사람이 남이 받는 보수나 대 우에 대해 시기나 질투로 자기에 대해 우대가 없음을 원망 불평하는 마 치 장사치와 같은 정신을 가진자들은 천국에서 용납되지 않는다는 경계 의 말씀인 것입니다. 삯을 위해 주를 섬기고 남의 직책과 대우에 시기와 질투로 불평하는 자들을 주님께서는 결코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천국의 소망으로 그리스도께서 구속해주신 사랑의 은총을 힘입어 감사와 찬양과 영광으로 맡은자의 일꾼으로 사명을 갈망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 우리가 주의 일에 어떤 댓가를 받고자 하는 자세가 아니고 봉사자의 자세로 주님의 무한하신 은총과 공의의 사랑에 빚진자의 심령으로 값겠다는 은혜의 보답의 신실함이 나타나야 하겠습니다. 약속의 말씀의 상급을 확신하여 믿어야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타난 달란트의 비유는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에 있어 서 기회와 능력의 분야는 다를지라도 충성스러운자는 같은 상급을 받을것 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하여 각가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나누어 맡겼습니다. 다섯 달란트 맡았던 자나 두 달란트 맡았던자나 다같 은 칭찬과 상급을 받았습니다.
넷째 그러나 오늘 읽은 본문에는 열무나의 은을 가지고 열 사람에게게 꼭 같이 분배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돌아오실 때 맞겼던 것을 도로 찾을 때 그 충성의 정도에 따 라 상급과 칭찬의 정도가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참으로 주님의 인간 을 쓰시는 원칙과 그에 대한 대우와 처리는 과학적이고도 불평할 수 없는 철저한 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네가지 사실에 청지기가 된자 로 마땅히 명심해야 될 청지기의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1. 우리의 수고는 자발적 봉사이며 또한 하나님의 종된 인간의 마땅한 본 분으로 이 수고에 대한 치하와 공로에 댓가를 요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2. 우리는 내게 맡기신 일에 충성하고 내게 약속한 것을 주님에 대한 감사한 것 뿐이고 남에게 대한 우대와 강급에 대한 원망과 시비가 없어야하 겠다는 것입니다.
3. 같은 분량의 직책을 맡겼을 때에는 그 충성의 정도에 따라 상급이 다 르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이 네 가지의 진리를 우리 모두가 깨닫고 명 심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 하라고 하시며우리에게 당신의 므나를 나누어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장사 하는 말씀 은 현대어 영어 성경대로 번역한다면 맡아서 관리하라는 말입니다. Occupy Till
I, come 이라고 했습니다. 옛날 번역에는 Occupy 대신에 tr-ade란 말을 썼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을 우리가 우리 의 왕으로 오실분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을 맡아서 관리하라는 청지기 란 사실입니다. 그가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나라로 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백성이 피를 미워하여 우리는이 사람이 우리의 왕됨을 원치 아니한다고 하 였습니다. 우리는 그가 오시는 날 우리가 그를 위하여 우리에게 맡기신것 을 그의 뜻대로 보관하고 관리하여 그에게 충성하게 하고 그의 영광을 위 하여 그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져서 그의 나라가 임하도록 예비하여야 그 에게 한므나를 맡은 자로 당연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우리의 왕됨을 거절하고 내가 스스로 그의 맡기신 것에 대하여 왕노릇 한다면 그 결과가 주께서 왕권을 가지고 오실 때 어떻게 되겠습니까 한 므나로 열므라를 만 든자는 다섯 고을을 맡는데 한 므나를 받아 자기 마음대로 악한데 더러운 데 헛된 사욕에 맡기신 것을 허비함을 보고 나의 왕됨을 원치 아니하더니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사랑의 여러분 예수는 우리의 왕이십니다. 그는 평강의 왕이요 사랑의 왕 이요 의의 왕이십니다. 세상의 왕은 죽은 후에 그를 따라 죽는자의 없고 죽은 후에 그를 따라 죽는 자도 없습니다.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은 살아서 세계를 정복하는 큰 권세와 충성하는 군 대를 가지고 있었고 나폴레옹도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죽은 후에 그를 위해서 죽은 사람도 없고 그를 위해 재물을 바친자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와 허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때에 홀로 십자가에 죽으 시고 부활하여 승천하시고 재림해오신 예수는 그가 죽은 후 지금까지 온 세계 수억의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살고 또한 그를 위하여 바치고 그를위 하여 죽습니다. 주님 재림이 임박한 현실에 지난날의 일년을 주님의 주신 은사와 재능들 을 주님을 위해 많은 이익을 남기지 못했다면 주신 므나를 빼앗듯이 주신 것도 회수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부탁은 충성입니다. 작은 일에도 충 성이요 남이 보든 말든 맡은일에 충성하라는 것이요 댓가를 생각지 말고 죽도록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 명심해야 올해는 해내고 말것이라는 각오와 결단을 해야 합니다 오직 착하고 신실한 청지기로 주의 힘쓰십시다. 차고 넘치는 교회 성경
본문:슥 1:16-17 바벧론 포로에서 70년만에 귀환한 이스라엘 민족의 최대 과업은 무너진 성 과 성전을 재건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일을 앞장서서 추진하거나 이끈 선지자와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은 에스라,느헤미야,학개,스가랴 등이었습니다. 스가랴는 학개 선지자와 동시대를 살면서 예언활동을 폈습니다. 스가랴서의 내용은 크게 둘로 나뉩니다. 1-8장은 스가갸가 본 환상에 대하여,9장-14장은 예언에 관한 것입니다. 본문 16-17절은 70년만에 이스라엘 민족이 바벧론에서 예룻라렘으로 돌아 오게 된 이유와 예루살렘 성읍들이 받게 될 복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 보겠습니다.
1.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은 하나님의 긍휼 때문이었습니다. 16절을 보면 "내가 긍휼이 여김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은즉"이라고 했습니다. 주전 586년 예루살렘이 바벧론의 침략으로 함락되면서 유다 민족이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70년동안 바벧론에서 포로생활을 해야 겠습니다. 유 다 포로들의 소망은 하루라도 빨리 해방되어 조국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그러나 자기들의 힘으로 해방되거나 자유를 얻는 것은 불가능 했습니다. 이유는 당시 바벧론은 세계 최대강국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흥국가로 부상했던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주전 538년 바벧론을 멸망시키면서 유대 인들에게 해방을 주었고 즉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재건하도록 허락 했습니다. 이 사건을 스가랴 1:16은 "내가 긍휼히 여겼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남이 해 주었을 때와 내가 해낼 수 없는 일을 도와 주었을 때의 고마움이나 감동은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상상도 못했던 해방은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이 그들을 긍휼히 보셨던 것입니다. 유다 민족이 바벧론 포로생활을 끝내고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은 두 가지 였습니다.
첫째는 싸워서 이기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둘째는 바벧론 왕이 특혜를 베풀어 주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불가능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페르시아를 일으켜 바벧론을 멸망시키시고 유다 민족을 해방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러한 은혜는 비단 유다민족만 받은 것이 아닙니다. 나도 받았고, 여러분 도 받았습니다. 내 힘으로는 어림도 없었던 일들, 내 노력으로는 불가능했 던 그 일들을 하나님께서 해결 해 주셨습니다. 죄에서 건져 주셨고, 위기에서 보호해 주셨고, 시험에서 구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까지 살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흔히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것을 성취했을 때 그것을 성공이나 축복 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주택복권 10장을 매번 샀습니다. 그리고 당첨 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당첨만 되면 10의 5조는 하나님께 드리고 5조는 자기가 쓰겠다며 기도를 했지만 500장의 복권을 샀어도 당첨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도도 소용없고 쓸데없다"며 기도 무용론을 펴기 시작했습니다.이 기도가 옳은 기도입니까 이태리의 경우 정초에 파는 복권을 30억 리라 짜리도 있습니다. 우리 돈으 로는 15억 정도가 됩니다.
그런데 그동안 30억 리라의 복권에 당첨된 40명을 추적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단 한명도 잘 사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단명에 죽었거나 감옥 에 들어 갔거나 파산을 했습니다. 많다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닙니다. 40명의 이태리 복권 당첨자들의 경우만 보더라도 그들은 오히려 많이 가졌다는 것 때문에 불행해 졌습니다. 우리의 행복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긍휼을 받으며 살고 있다는 것 그것이 은혜인 것입니다.
2. 그들이 돌아온 것은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기 위해서였습니다. 16절을 보면 "내가 긍휼이 여김으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 내 집이 그 가운데 건축 되리니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치어지리라"고 했습니다. 그 뜻은 하나님께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셨는 데 그 이유는 예루살렘에 먹줄을 치고 무너진 성전을 다시 건축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목적이 보다 거룩한 것이었습니다. 자기 집짓고 돈벌고 자 식낳고 70년 동안 억눌려 살았던 욕망을 터트리며 향락을 일삼기 위해 돌아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종류의 망각이 있습니다. 하나는 행복한 망각입니다. 지난 날의 불행했던 기억과 불쾌했던 감정들, 다시 말하면 더 이상 기억할 필요가 없는 것들을 잊어버리는 것은 행복한 망각입니다. 그러나 다른 하나의 망각은 불행한 망각입니다. 그것은 잊어선 안될 것들 을 잊어버리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면 지난 날 받았던 은혜라든지, 하나님 과의 약속이라든지, 가난하고 불행했을 때의 겸손한 자세라든지. 이런 것 들을 잊어버리는 것은 불행한 망각입니다. 그런 것들은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내가 오늘 왜 어떻게 여기에 있는가를 생각해 보십시다. 다시 말하면 나는 왜, 무엇 때문에, 살아 있으며 존재하는가를 생각해 보 아야 합니다. 돈벌고 잘 살고 일하고 놀고 먹고 마시는 것이 내가 존재하는 이유라면 예수를 모르는 사람과 다를게 뭐가 있겠습니까 70년 동안 유다 민족이 그토록 애타게 열망했던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도록 인도하신 하나님의 뜻이 성전 건축이었던 것처럼, 우리의 존재이유나 생존 이유도 보다 더 높고 신령한 데서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보다 더 값지고 귀한 것을 위해 나 자신의 삶을 드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위해 나의 시간과 물질과 능력을 바쳐야 합니다. 어떤 한국 여행객이 로마 시내를 거닐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덩치 큰 사내 들이 앞뒤로 막더니 마치 수사관인양 패스포트를 보자고 했습니다. 순간 깡 패라는 직감이 들었지만 상황이 험했기 때문에 지갑을 꺼내주었습니다. 지 갑 속엔 500불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500불을 꺼내더니 마치 위조지폐 라고 가려내려는 듯 이리저리 살펴보면 요즘 위조화폐가 많다는등 너스레를 떠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여행객 왼손목의 금빛 나는 로렉스 시계를 보더니 슬며시 500불 을 지갑에 넣어주며 위조지폐는 아닌것 같다면 손목의 시계를 보자고 하더 라는 것입니다. 순순히 풀어주었더니 이리저리 뜯어 보고 흔들어 보고 만져 본 후 이런 고 급 시계를 손목에 차고 다니면 위험하니 주머니에 넣어주겠다며 여행객 주 머니에 시계를 넣어 준후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시계를 꺼내보니 로렉스 시계는 가져가고 그 사람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넣고 갔더라는 것입니다. 총총히 사라져가는 그들 뒤에 대고 한국 여행객이 회심의 미소를 띠며 중 얼거린 말이 있습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구". 그 로렉스 시계는 남대문 시장에서 구입 한 3만원 짜리 가짜였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얘기를 듣고 처음엔 박장대소를 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한참동 안 생각했습니다. 남의 것을 뻔뻔하게 탐닉하는 로마 사람, 위기를 모면하고 익살을 떠는 한 국 남자, 3만원 짜리 로렉스시계를 만들어 진짜처럼 국제 무대에 내놓는 한 국의 장인기술, 속고 속는 우리시대. 실로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왜 삽니까 왜 여행을 합니까 왜 일합니까 왜 공부를 합니까 왜 자식을 낳습니까 왜 사업을 합니까 그것들이 하나님과 상관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살려 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이유는 하나님과 상관있는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그 뜻을 따라 살라는 것입니다. 그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3. 넘치도록 다시 풍부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17절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이 회복되고 다시 차고 넘치는 복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 기억하고 분명히 해야 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차고 넘치는 회복과 복은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복은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임한다는 것입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음악인 가운데 정 명훈씨를 들 수 있습니다. 그는 현재 빠리 바스띠유 오페라의 상임 지휘자로 구라파 음악계의 거장으 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가 한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음악인이 순 수하게 음악을 사랑하면 언젠가는 그가 사랑하는 음악이 돈과 명예와 인기 와 행복 등 모든 것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러나 음악인이 음악을 사랑하지 않고 그 음악이 가져다 줄 것들 예를 들면 돈, 명예, 인기, 따위 등을 사랑 하게 되면 음악은 그를 떠나게 될 것이다. 음악인은 음악 자체를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얘기는 그리스도인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과도 흡사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순수하게 사랑하고 섬기면 하나님은 나에게 성공과 명예와 인기와 돈을 가져다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 이 주시는 것들 예를 들면 돈, 명예,인기,행복 따위등을 사랑하면 하나님은 나를 떠나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를 사랑해야 하겠습니까 돈이나 명예나 성공 때문에 하나님을 외면하고 산다면 하나님도 그 부산물도 나를 언젠가는 떠날 것입니다. 본문을 주목합시다. "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할 것이라".여기서 말하는 성읍은 예루 살렘과 유다 나라를 뜻합니다. 그리고 내 가정과 교회와 나라를 의미합니다. 어떻게 해야 풍부하게 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일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감당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맨 끝 순서에 놓고 틈나면 생각하고 여력생기면 감당 한다면 하나님도 나의 문제를 맨 끝 순서에 두실 것입니다. 이번 주간부터 새벽부흥회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부흥사경회가 시작됩니다. 이번 사경회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축복의 기회입니다. 시간시간 참석합시다. 은혜를 갈망합시다. 가족이 함께 참석합시다. 시간을 지키고 늦지 맙시다. 기도로 준비합시다. 은혜는 준비한 만큼 받는 법입니다. 축복은 자기 그릇대로 받는 법입니다. 주님께 나오는 일과 은혜받는 일을 우선순위 1번에 둡시다. 은혜 못받고 은혜 잊어버리면 되는 것이 없습니다. 사업도, 장사도, 회사도 가정도 은혜 받아야 신장하고 평안하고 융성합니다. 은혜 받기 위해 마련한 잔치에 빠지게 맙시다. 그리고 차고 넘치는 은혜와 축복을 받읍시다.
그러므로 되기 쉬운 악한 종이 안되고, 되기 어려운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는데는 남모르는 피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1. 종임을 인식해야 한다. 주님과 나와의 관계를 잘 인식해야 한다. 우리 주님은 구주도 되시고 선생님도 되시고 친구도 되시며, 왕도 되시고 주인도 되신다. 바울이나 베드로나 야고보는 자신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됨을 그의 서신들에게 고백했다. 그것은 겸손한 말이 아니고, 실제의 자기들의 직분을 말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피로 우리를 사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서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는 팔린 몸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예수님의 종이 되었다. 종은 어디까지나 주인을 위 한 존재이지, 자기 자신을 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먼저 인식해야 하겠다. 짐승들을 보면 쉽사리 알 수 있다. 닭이나 소나 고양이나 개를 보면, 그들이 자기 자신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주인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바울은 자기의 생사를 온전히 주인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했다. 그러나 오늘날 이 땅에는 자기의 종된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종들도 많이 있다. 특히, 하갈이 자기의 주인을 멸시하듯이, 오늘 주님을 멸 시하는 자신의 종됨을 인식못하는 자들이 있다.
2. 착하고 충성된 종은 힘써 활동해야 한다. 종들은 다 얼마씩의 자본을 받았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악한 종은 받 은 자본을 땅을 파고 묻어 두었다. 그는 자본을 활용하지 않았다. 즉, 자신의 책임을 회피했다. 의무를 수행하지 않았다. 자본이 적다고 그랬을까수량이 문제가 아니었다. 요는 성의가 문제 였다.오늘날, 이 문제는 신앙을 떠난다는 문제에서도 볼 수 있다. 땅 을 조금 가진 사람이라도 땅을 잘 이용하면 수십배를 갈고, 묵혀두는 사람보다 수입을 많이 올릴 수가 있다. 이스라엘이나 스위스 같은 나라들을 보자, 그들은 불우한 조건에서도 열심으로 활용했을 때에 오늘날 부유한 국가들이 되었다. 수량이 문제 가 아니다. 활용의 정도에 문제가 있다. 오늘 본문에 활용하는 종은 장사했다. 이득을 보았다. 자본을 늘였다. 종들은 일하기 위한 종들이지, 놀고 먹는 종이 아니다. 특히 주의 종들은 더 그러하다. 일해야 한다.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의 종들에게 맡기실 때에는 일을 하기만 하면 자본이 늘어나도록 축복해 주셨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주님께 받은 자본을 활용하자.가정에서,교회에 서, 사회에서 직장에서 주님께 받은 본분과 사명대로 활용하자.활용치 않은 자본은 죽은 자본이지 이득을 보는 살아 움직이는 자본은 안된다.
3. 근로해야 한다. 악한 종은 묻어두고, 무사주의로 지냈다. 악한 종은 아무일이 없는 자인 것 같았다. 그 이유는 자본이 땅속에 감추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착하고 충성된 종은 그렇지 않았다. 묻으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 고 그는 받은 즉시로 근로하기 시작했다. 그는 바로 가서 장사를 시작 했다. 장사는 쉬운일이 아니다. 항상 이익을 얻도록 성공하는 장사는 남모 르는 수고와 노력이 있어야 한다. 100분의 1은 천재적인 소질이요, 100분의 1은 천재적인 소질이요, 100분의 99는 노력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보면 세상만사는 노력이 있어야 된다는 말과 같다. 웨슬레(Wesley)는 그의 직무를 '위해서,새벽 4시에 일어났다.그리고 그는 30분간의 설교를 위하여, 30시간을 준비했다고 한다. 인간은 자기의 재능의 20분의 1만 활용하게 되고 20분의 19는 묵혀 둔다는 말도 있다. 그러고 보면, 20분의 19라는 능력 즉 자본과 땅속 에 묻어둔다는 말과 같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이 자본인 복음 을 가지고 역사를 하자. 노력을 하자. 복음 장사를 하기만 하면 믿지는 법은 없다.
4.끝까지 인내해야 한다. 본문의 종은 주인이 올 때까지 쉬지 않고 장사했다. 인내했다. 참고 견녔다. 오늘 우리들도 끝까지 인내하자. 긴 세월동안이라도 인내하 자. 우리 주님이 오셔서 계산하시는 그날까지 오늘 우리는 우리가 주의 종임을 다시 확인하자. 주님 앞에는 양반도, 고관대작도 다 종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일을 위해서 힘써 일하자. 우리의 손과 발, 머리와 본능을 그리고 시간과 지식을 영역과 신앙을, 소망과 사랑을, 재물과 권세를, 무엇이든지 있는대로 주님의 일을 위해서 동원해서 착 하고 충성된 종이 되자. 착하고 신실한 청지기 성경
본문:눅 19:11-28 교회마다 청지기 주일을 지키며 우리 주님의 청지기로 일년동안 맡았던 모든일에 대하여 주인되시는 주님앞에 새로운 결단과 결심이 서약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마태복음(25:14-30) 절에 있는 달란트의 비유와 대조가 되는 말씀이며 (눅17:7) 십절에 있는 무익한 종의 비유와 마태복음 20:1-16에 있는 포도원 일꾼의 비유로 서로 대조되는 말씀입니다. 이 몇 곳에 있는 말씀은 모두 하나님의 일꾼 또는 종 또는 재물 맡 은자 즉 청지기라는 명칭으로 나타난 그리스도인의 생활입니다.
첫째 눅17:7-10 을 보면 종이 수고하였을 지라도 그 공로와 성과에 대하 여 그 댓가를 요구할 수 없다는 뜻의 말씀이 나타나 있습니다. 즉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들에서 돌아오면 주인이 그에게 앉아쉬 게하지 않고 도리어 주인의 먹을 것을 준비하고 그리고 그후에야 먹고마 시라 하지 않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이와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은 한 것 뿐입니다. 해야 옳다고 했습니다. 종은 주인이 보아 3가지를 겸비해야 합니다.
(1) 믿음직해야 합니다.
(2) 겸손해야 합니다
(3) 순종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충성스러운 종이 수고하고 공을 세운 후에도 가져야 할 겸손이요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요 바로 청지기의 자세인 것입니다. 종은 충성심이 있어야 하는데 맡은 일에 충성해야 하고 적은 일에 충성해야 하고 죽도 록 충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계십니다.
둘째 마태복음 20장에 나타난 포도원 일꾼에 대한 그 주인의 대우에 불평을 품는 비유가 오늘 우리들의 마음을 살리는 데 유익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천국을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 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주인과 같다고 했습니다. 교회는 진실로 그리스도를 위한 품꾼을 구하는 것입니다. 아침에 만난 품꾼에게도 한 데나리온을 약속하고 낮에 만난 품꾼도 해질 무렵에 들여보낸 품꾼도 해질 무렵에 들여보낸 품꾼에 게도 한 데나리온을 약속 하였는데 삯을 주려할 때 먼저 온자들 중에서 원망 불평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아침부터 온종일 수고하고 시달렸는데 해질 무렵에 한 시간 일한 저사람과 같은 대우를 한단 말입니까하고 항 의 소동이 납니다. 이것은 주의 일을 하는 사람이 남이 받는 보수나 대 우에 대해 시기나 질투로 자기에 대해 우대가 없음을 원망 불평하는 마 치 장사치와 같은 정신을 가진자들은 천국에서 용납되지 않는다는 경계 의 말씀인 것입니다. 삯을 위해 주를 섬기고 남의 직책과 대우에 시기와 질투로 불평하는 자들을 주님께서는 결코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천국의 소망으로 그리스도께서 구속해주신 사랑의 은총을 힘입어 감사와 찬양과 영광으로 맡은자의 일꾼으로 사명을 갈망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 우리가 주의 일에 어떤 댓가를 받고자 하는 자세가 아니고 봉사자의 자세로 주님의 무한하신 은총과 공의의 사랑에 빚진자의 심령으로 값겠다는 은혜의 보답의 신실함이 나타나야 하겠습니다. 약속의 말씀의 상급을 확신하여 믿어야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타난 달란트의 비유는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에 있어 서 기회와 능력의 분야는 다를지라도 충성스러운자는 같은 상급을 받을것 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하여 각가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나누어 맡겼습니다. 다섯 달란트 맡았던 자나 두 달란트 맡았던자나 다같 은 칭찬과 상급을 받았습니다.
넷째 그러나 오늘 읽은 본문에는 열무나의 은을 가지고 열 사람에게게 꼭 같이 분배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돌아오실 때 맞겼던 것을 도로 찾을 때 그 충성의 정도에 따 라 상급과 칭찬의 정도가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참으로 주님의 인간 을 쓰시는 원칙과 그에 대한 대우와 처리는 과학적이고도 불평할 수 없는 철저한 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네가지 사실에 청지기가 된자 로 마땅히 명심해야 될 청지기의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1. 우리의 수고는 자발적 봉사이며 또한 하나님의 종된 인간의 마땅한 본 분으로 이 수고에 대한 치하와 공로에 댓가를 요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2. 우리는 내게 맡기신 일에 충성하고 내게 약속한 것을 주님에 대한 감사한 것 뿐이고 남에게 대한 우대와 강급에 대한 원망과 시비가 없어야하 겠다는 것입니다.
3. 같은 분량의 직책을 맡겼을 때에는 그 충성의 정도에 따라 상급이 다 르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이 네 가지의 진리를 우리 모두가 깨닫고 명 심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 하라고 하시며우리에게 당신의 므나를 나누어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장사 하는 말씀 은 현대어 영어 성경대로 번역한다면 맡아서 관리하라는 말입니다. Occupy Till
I, come 이라고 했습니다. 옛날 번역에는 Occupy 대신에 tr-ade란 말을 썼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을 우리가 우리 의 왕으로 오실분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을 맡아서 관리하라는 청지기 란 사실입니다. 그가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나라로 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백성이 피를 미워하여 우리는이 사람이 우리의 왕됨을 원치 아니한다고 하 였습니다. 우리는 그가 오시는 날 우리가 그를 위하여 우리에게 맡기신것 을 그의 뜻대로 보관하고 관리하여 그에게 충성하게 하고 그의 영광을 위 하여 그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져서 그의 나라가 임하도록 예비하여야 그 에게 한므나를 맡은 자로 당연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우리의 왕됨을 거절하고 내가 스스로 그의 맡기신 것에 대하여 왕노릇 한다면 그 결과가 주께서 왕권을 가지고 오실 때 어떻게 되겠습니까 한 므나로 열므라를 만 든자는 다섯 고을을 맡는데 한 므나를 받아 자기 마음대로 악한데 더러운 데 헛된 사욕에 맡기신 것을 허비함을 보고 나의 왕됨을 원치 아니하더니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사랑의 여러분 예수는 우리의 왕이십니다. 그는 평강의 왕이요 사랑의 왕 이요 의의 왕이십니다. 세상의 왕은 죽은 후에 그를 따라 죽는자의 없고 죽은 후에 그를 따라 죽는 자도 없습니다.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은 살아서 세계를 정복하는 큰 권세와 충성하는 군 대를 가지고 있었고 나폴레옹도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죽은 후에 그를 위해서 죽은 사람도 없고 그를 위해 재물을 바친자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와 허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때에 홀로 십자가에 죽으 시고 부활하여 승천하시고 재림해오신 예수는 그가 죽은 후 지금까지 온 세계 수억의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살고 또한 그를 위하여 바치고 그를위 하여 죽습니다. 주님 재림이 임박한 현실에 지난날의 일년을 주님의 주신 은사와 재능들 을 주님을 위해 많은 이익을 남기지 못했다면 주신 므나를 빼앗듯이 주신 것도 회수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부탁은 충성입니다. 작은 일에도 충 성이요 남이 보든 말든 맡은일에 충성하라는 것이요 댓가를 생각지 말고 죽도록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 명심해야 올해는 해내고 말것이라는 각오와 결단을 해야 합니다 오직 착하고 신실한 청지기로 주의 힘쓰십시다. 차고 넘치는 교회 성경
본문:슥 1:16-17 바벧론 포로에서 70년만에 귀환한 이스라엘 민족의 최대 과업은 무너진 성 과 성전을 재건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일을 앞장서서 추진하거나 이끈 선지자와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은 에스라,느헤미야,학개,스가랴 등이었습니다. 스가랴는 학개 선지자와 동시대를 살면서 예언활동을 폈습니다. 스가랴서의 내용은 크게 둘로 나뉩니다. 1-8장은 스가갸가 본 환상에 대하여,9장-14장은 예언에 관한 것입니다. 본문 16-17절은 70년만에 이스라엘 민족이 바벧론에서 예룻라렘으로 돌아 오게 된 이유와 예루살렘 성읍들이 받게 될 복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 보겠습니다.
1.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은 하나님의 긍휼 때문이었습니다. 16절을 보면 "내가 긍휼이 여김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은즉"이라고 했습니다. 주전 586년 예루살렘이 바벧론의 침략으로 함락되면서 유다 민족이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70년동안 바벧론에서 포로생활을 해야 겠습니다. 유 다 포로들의 소망은 하루라도 빨리 해방되어 조국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그러나 자기들의 힘으로 해방되거나 자유를 얻는 것은 불가능 했습니다. 이유는 당시 바벧론은 세계 최대강국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흥국가로 부상했던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주전 538년 바벧론을 멸망시키면서 유대 인들에게 해방을 주었고 즉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재건하도록 허락 했습니다. 이 사건을 스가랴 1:16은 "내가 긍휼히 여겼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남이 해 주었을 때와 내가 해낼 수 없는 일을 도와 주었을 때의 고마움이나 감동은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상상도 못했던 해방은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이 그들을 긍휼히 보셨던 것입니다. 유다 민족이 바벧론 포로생활을 끝내고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은 두 가지 였습니다.
첫째는 싸워서 이기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둘째는 바벧론 왕이 특혜를 베풀어 주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불가능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페르시아를 일으켜 바벧론을 멸망시키시고 유다 민족을 해방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러한 은혜는 비단 유다민족만 받은 것이 아닙니다. 나도 받았고, 여러분 도 받았습니다. 내 힘으로는 어림도 없었던 일들, 내 노력으로는 불가능했 던 그 일들을 하나님께서 해결 해 주셨습니다. 죄에서 건져 주셨고, 위기에서 보호해 주셨고, 시험에서 구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까지 살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흔히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것을 성취했을 때 그것을 성공이나 축복 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주택복권 10장을 매번 샀습니다. 그리고 당첨 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당첨만 되면 10의 5조는 하나님께 드리고 5조는 자기가 쓰겠다며 기도를 했지만 500장의 복권을 샀어도 당첨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도도 소용없고 쓸데없다"며 기도 무용론을 펴기 시작했습니다.이 기도가 옳은 기도입니까 이태리의 경우 정초에 파는 복권을 30억 리라 짜리도 있습니다. 우리 돈으 로는 15억 정도가 됩니다.
그런데 그동안 30억 리라의 복권에 당첨된 40명을 추적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단 한명도 잘 사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단명에 죽었거나 감옥 에 들어 갔거나 파산을 했습니다. 많다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닙니다. 40명의 이태리 복권 당첨자들의 경우만 보더라도 그들은 오히려 많이 가졌다는 것 때문에 불행해 졌습니다. 우리의 행복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긍휼을 받으며 살고 있다는 것 그것이 은혜인 것입니다.
2. 그들이 돌아온 것은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기 위해서였습니다. 16절을 보면 "내가 긍휼이 여김으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 내 집이 그 가운데 건축 되리니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치어지리라"고 했습니다. 그 뜻은 하나님께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셨는 데 그 이유는 예루살렘에 먹줄을 치고 무너진 성전을 다시 건축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목적이 보다 거룩한 것이었습니다. 자기 집짓고 돈벌고 자 식낳고 70년 동안 억눌려 살았던 욕망을 터트리며 향락을 일삼기 위해 돌아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종류의 망각이 있습니다. 하나는 행복한 망각입니다. 지난 날의 불행했던 기억과 불쾌했던 감정들, 다시 말하면 더 이상 기억할 필요가 없는 것들을 잊어버리는 것은 행복한 망각입니다. 그러나 다른 하나의 망각은 불행한 망각입니다. 그것은 잊어선 안될 것들 을 잊어버리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면 지난 날 받았던 은혜라든지, 하나님 과의 약속이라든지, 가난하고 불행했을 때의 겸손한 자세라든지. 이런 것 들을 잊어버리는 것은 불행한 망각입니다. 그런 것들은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내가 오늘 왜 어떻게 여기에 있는가를 생각해 보십시다. 다시 말하면 나는 왜, 무엇 때문에, 살아 있으며 존재하는가를 생각해 보 아야 합니다. 돈벌고 잘 살고 일하고 놀고 먹고 마시는 것이 내가 존재하는 이유라면 예수를 모르는 사람과 다를게 뭐가 있겠습니까 70년 동안 유다 민족이 그토록 애타게 열망했던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도록 인도하신 하나님의 뜻이 성전 건축이었던 것처럼, 우리의 존재이유나 생존 이유도 보다 더 높고 신령한 데서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보다 더 값지고 귀한 것을 위해 나 자신의 삶을 드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위해 나의 시간과 물질과 능력을 바쳐야 합니다. 어떤 한국 여행객이 로마 시내를 거닐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덩치 큰 사내 들이 앞뒤로 막더니 마치 수사관인양 패스포트를 보자고 했습니다. 순간 깡 패라는 직감이 들었지만 상황이 험했기 때문에 지갑을 꺼내주었습니다. 지 갑 속엔 500불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500불을 꺼내더니 마치 위조지폐 라고 가려내려는 듯 이리저리 살펴보면 요즘 위조화폐가 많다는등 너스레를 떠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여행객 왼손목의 금빛 나는 로렉스 시계를 보더니 슬며시 500불 을 지갑에 넣어주며 위조지폐는 아닌것 같다면 손목의 시계를 보자고 하더 라는 것입니다. 순순히 풀어주었더니 이리저리 뜯어 보고 흔들어 보고 만져 본 후 이런 고 급 시계를 손목에 차고 다니면 위험하니 주머니에 넣어주겠다며 여행객 주 머니에 시계를 넣어 준후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시계를 꺼내보니 로렉스 시계는 가져가고 그 사람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넣고 갔더라는 것입니다. 총총히 사라져가는 그들 뒤에 대고 한국 여행객이 회심의 미소를 띠며 중 얼거린 말이 있습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구". 그 로렉스 시계는 남대문 시장에서 구입 한 3만원 짜리 가짜였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얘기를 듣고 처음엔 박장대소를 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한참동 안 생각했습니다. 남의 것을 뻔뻔하게 탐닉하는 로마 사람, 위기를 모면하고 익살을 떠는 한 국 남자, 3만원 짜리 로렉스시계를 만들어 진짜처럼 국제 무대에 내놓는 한 국의 장인기술, 속고 속는 우리시대. 실로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왜 삽니까 왜 여행을 합니까 왜 일합니까 왜 공부를 합니까 왜 자식을 낳습니까 왜 사업을 합니까 그것들이 하나님과 상관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살려 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이유는 하나님과 상관있는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그 뜻을 따라 살라는 것입니다. 그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3. 넘치도록 다시 풍부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17절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이 회복되고 다시 차고 넘치는 복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 기억하고 분명히 해야 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차고 넘치는 회복과 복은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복은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임한다는 것입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음악인 가운데 정 명훈씨를 들 수 있습니다. 그는 현재 빠리 바스띠유 오페라의 상임 지휘자로 구라파 음악계의 거장으 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가 한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음악인이 순 수하게 음악을 사랑하면 언젠가는 그가 사랑하는 음악이 돈과 명예와 인기 와 행복 등 모든 것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러나 음악인이 음악을 사랑하지 않고 그 음악이 가져다 줄 것들 예를 들면 돈, 명예, 인기, 따위 등을 사랑 하게 되면 음악은 그를 떠나게 될 것이다. 음악인은 음악 자체를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얘기는 그리스도인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과도 흡사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순수하게 사랑하고 섬기면 하나님은 나에게 성공과 명예와 인기와 돈을 가져다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 이 주시는 것들 예를 들면 돈, 명예,인기,행복 따위등을 사랑하면 하나님은 나를 떠나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를 사랑해야 하겠습니까 돈이나 명예나 성공 때문에 하나님을 외면하고 산다면 하나님도 그 부산물도 나를 언젠가는 떠날 것입니다. 본문을 주목합시다. "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할 것이라".여기서 말하는 성읍은 예루 살렘과 유다 나라를 뜻합니다. 그리고 내 가정과 교회와 나라를 의미합니다. 어떻게 해야 풍부하게 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일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감당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맨 끝 순서에 놓고 틈나면 생각하고 여력생기면 감당 한다면 하나님도 나의 문제를 맨 끝 순서에 두실 것입니다. 이번 주간부터 새벽부흥회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부흥사경회가 시작됩니다. 이번 사경회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축복의 기회입니다. 시간시간 참석합시다. 은혜를 갈망합시다. 가족이 함께 참석합시다. 시간을 지키고 늦지 맙시다. 기도로 준비합시다. 은혜는 준비한 만큼 받는 법입니다. 축복은 자기 그릇대로 받는 법입니다. 주님께 나오는 일과 은혜받는 일을 우선순위 1번에 둡시다. 은혜 못받고 은혜 잊어버리면 되는 것이 없습니다. 사업도, 장사도, 회사도 가정도 은혜 받아야 신장하고 평안하고 융성합니다. 은혜 받기 위해 마련한 잔치에 빠지게 맙시다. 그리고 차고 넘치는 은혜와 축복을 받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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