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챤의 직업관 (마25:24-26)
본문
1) 창세기 명령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번성하라. 정복하라. 다스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미지의 영역을 개척되지 않은 지식을 향해 전진하며, 허락하신 것들을 잘 유지하라는 말씀입니다. 아내가 가정을 돌보는 일이나 학생의 공부, 관공서에서의 일이 위의 세가지 명령에 포 함됩니다. 이 세 영역에서 일을 해야만 사람들에게는 만족이 있고 자기 실현의 보 람이 있으며 존재의 가치를 발견 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직업은 생계수 단이기 전에 하나님의 명령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명령을 이행한다는 자 세로 직업을 갖는 우리는 직업을 신성하게 여깁니다. 적성에 맞지 않아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회의에 빠져 있다면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할 것 입니다. 그렇지만 일상적인 생활의 반복이 짜증스러워 회의 한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깨닫지 못한 어리석음입니다. 직업에 대해 평가할 때 우리는 흔히 많은 사람들의 인정,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나, 얼마나 커다란 부피의 일을 다루는 것인가를 기준으로 삼게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측정 도구로 직업을 보아야 합니다. 이 직업이 하나님의 명령인가. 내가 내 직업에서 하나님 의 뜻을 이루고 있나를 질문해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건물앞을 청소하는 청소원의 직업에서 고귀함을 느낍니다. 그의 노동은 신성하며 성실하게 땀흘리기 때문입니다. 성실하게 노력하는 청소원의 삶은 부도덕하게 큰일을 벌여놓은 사람들의 인생과는 비교 할 수도 없도록 아름답습니다. 또한 우리는 회사 뒷뜰에서 폐지를 처분 하는 노동자의 노동을 가치있게 봅니다. 많은 직원들이 그로부터 땀흘려 일하는 숭고함을 배우려 노력했으며, 그를 함부로 무시하는 사람들에겐 존경을 표할수 없었습니다. 그는 "자원의 재생" 이라는 영역에서 땀을 투자하며 성실히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커다 란 것만을 추구하는 오늘, 작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의미있는 모든일에 의미있게 눈길을 주며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가는 그리스도인의 직업관이 더욱 필요한 때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 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1:28)
2) 하나님이 일하시므로 우리도 일합니다. 노동은 신선한 것이라고 많이 이야기 하지만 크리스챤은 노동의 신성함 에 대한 근거를 우리 창조주의 모범에서 찾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지으실때부터 노동을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일하 고 계시고 일을 만드신 분이기 때문에 노동은 신성한 것입니다.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시는 장면을 목격한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시비를 하였을 때(요5:17) 예수님의 답변은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 하시니 나도 일한다" 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과 자신들의 전통으로 일의 정당성의 근거를 삼았지만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사역의 근거를 하나님의 모범으로 부터 발견 하셨습니다. 직업과 일은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일하고 있 고 또 내가 일할 능력이 있기 때문에 해야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 이전에 우리의 창조자이신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은 모두가 거룩한 일입니다. 하나님 은 이제까지 일하고 계십니다. 그 증거가 성경이고 교회이고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쉬신다면 우주의 질서는 엉망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일해야 할때 일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계획하셨 던 질서는 어질러지고 맙니다.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 일에 대한 오해를 낳을 수도 있읍니다. 달란트의 비유(마 25:24-26)에서 책망받는 좋은 주인의 직업관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종은 주인이 부자인데다 능력있는 분이라서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로 파악했지만 주인의 답은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는데서 거두지 않고 헤치지 않는데서 모으지 않는다" 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일하시지 않아도 되는 분이지만 오늘도 일하고 계십니다. 자신의 피조물에 대한 모범에서 일하시는지도 모릅니다. 그분 은 쉬는 것은 원하시지만 직업에 대한 게으름은 싫어하십니다. 그런 까 닭에 우리는 마땅히 여호와께 직업을 구할 수 있고 직업을 위해 기도해 야 합니다. 이것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는 기도제목입니다. 직업을 구 하고자 하거나 일꾼을 찾고있는 기업인 모두에게 지금은 우리의 창조자 이신 하나님의 모범을 따라 그분이 일하시므로 우리도 일해야 한다는 그리스도인의 직업관이 필요한 때문입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음으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 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마 25:24-26).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 한다 하시매 (요 5:17).
3) 인생평가의 중요한 기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앞에 섰을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인생을 무엇으로 평가 하 실까요. 내가 얼마나 교회에 잘 봉사했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했는가, 얼마나 가난한 사람들을 관심있게 돌보았는가, 얼마 나 정직하게 살았는가. 하나님이 우리인생을 평가하실때, 이러한 기준들 도 중요하지만 그외에도 중요한 한가지가 더 있습니다. 그것은 직업입니다. 우리가 직업속에서 얼마나 성실하게 하나님 뜻을 분별하면서 하나님 의 일로서 직업에 임했는가를 평가 하십니다. 직업이 인생 평가의 중요 한 기준이 되는 것은 인생의 1/3에서 절반, 가사일을 담당하는 주부의 경우 2/3까지도 되는 많은 시간을 직업에 할애하기 때문입니다. 직업에 관한 좋은 예는 마태복음 25장에 나타난 달란트 비유입니다. 하나님은 세사람에게 돈을 맡기셨고 사업을 권유 하셨습니다. 사업을 통한 이익으 로 평가를 하신것은 그에게 맡긴 여러가지 것들을 잘 활용하는것이 중요 하다는 것을 말씀하시려는 비유라고도 생각 할 수 있지만 이 비유의 소 재는 분명 직업입니다. 달란트의 비유에서 일하지 않았던 사람, 즉 사업 을 않고 재능을 묻어 두었던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책망하셨습니다. 직업, 즉 사회생활을 제외하고 영적인 부분의 성과만으로 인생이 평가된다면 우리는 성과 속을 나누는 2원론에 빠지고 맙니다. 교회 일에 충실했다 하더라도 직업에 소홀하다면 하나님은 상과 동시에 책망을 주십니다. 직 업에 소홀하다는 것은 직업을 하나님의 일로 받아들이지 않았음을 의미 하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6장:5-9)에서는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하여. 단 마음으로 주께 하듯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말라.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하는 자나 주에게 그대로 받을줄을 앎이니라."라고 쓰고 있습니다. 종들이 상전을 섬기는 것과 상전이 종에게 일을 시키는 것은 그 시대 직장 생활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 자체를 하나님의 것으로 인식하시므로 이일을 종과 상 전과의 관계가 아닌 종과 하나님, 상전과 하나님의 관계로 파악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전영역을 하나님것이라고 이해한다면 직업은 하나님의 부르심, 즉 소명이어야 하고 그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 해야 옳습니다. 내가 직장이나 일속에서 직장의 기준, 법률, 상사나 동 료의 기준, 혹은 나의 기준으로 판단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눈으로 하나님의 기준으로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준으로 내가 얼마나 성실 했 나, 또 이 직업을 통해 얼마나 하나님뜻을 이루려 했나, 직업을 통해 얼 마나 그가 하나님께 성실 했는가를 측정하시는 분입니다. 지금은 하나님 께서 주신 직업속에서 하나님의 기준으로 성실하게 자신을 점검할 때 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직업을 통해 주신 뜻을 발견하고 그 뜻을 이루 어나가고 있는지 나 자신을 확인해야 할 때입니다.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 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다섯 달란트 받은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달란트를 남겼으되.(마25:15-17)
4) 직장은 선교의 연결점입니다. 우리나라 교회는 Home-Ministry를 중심으로 성장해 왔습니다. 열심있는 신앙인들은 신학교를 통해 전임사역자가 되도록 권고를 받았고 그 결과 신학교가 자라고 교회는 성장에 필요한 일꾼들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Campus와 Busimess Ministry 가 상대적으로 복음의 공백지역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최근 20여년에 걸쳐 몇몇 선교단체들에 의해 Campus Ministry가 실현되었고 이제는 Business 의 영역만이 비복음화지역으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크리스챤이 1/4을 점하는 나라에 살고 있지만 여 전히 사회가 어둡다고 느끼고 식당에서는 기도로 식사로 시작하는 모습 을 발견 할 수 없습니다. 가리워진 빛, 밟히는 소금이 되어버린(마:5장) 크리스챤이 많고 정당한 방법으로는 살기 어려운것도 바로 이 Business Ministry 의 결여 때문입니다. 사회를 구성하는 3대 요소인 가정, 학원, 직장중에서 직장은 가장 커다 란 영역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시간을 대부분 점하고 있는 이 Business Ministry 영역이 복음화되지 못한 것은 우리 크리스챤들이 앞 으로 복음화에 있어 관심가져야 할 중요한 과제입니다. 사회의 완전 복음화 즉 신앙과 생활의 일치에는 직장복음화가 중요합니다. 이 직장복음 화는 전임사역자들이 아닌 직업을 가진 평신도 사역자들이 현장에서 빛 과소금의 역할을 감당할때만 가능합니다. 이제는 많은 사명감있는 크리스챤들이 신학교대신 선교의 현장인 직장을 선택해야 할 때 입니다. 넘치고 있는 신학교보다 비어있는 직장복음화를 선택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 직장선교에 있어 전임사역자가 나서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직장과 사회 를 복음화하는데 있어 전임사역자가 이것을 감당할 수 없는 이유는 직장 생활과 사회생활의 특수성 때문입니다. 이 특수성들은 직접 체험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입니다. 구약에 있어 믿음의 선배들은 대부분 직업인이었습니다. 요셉, 다니엘, 다윗은 공무원이었고 아브라함과 욥은 목축업자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많은 숨 은 사역자들도 직업을 가진 평신도들 이었습니다. 바울도 고린도에서의 1년반 생활동안 6일은 밤낮으로 일하고 안식일을 통해 사역을 했다고 합니다.(데살로니가후서 3:8) 직업인 평신도들은 실제로 직장에서 많은 선교의 Contact point를 가지 게 됩니다. 깨어있는 크리스챤이라면 그런 기회를 놓쳐버리지 않을 것이 며 그 기회는 오늘 해외선교로까지 확장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의 성장과 더불어 경제 발전을 주신것은 결코 우연이 아 닙니다. 이는 교회가 선교할 수 있는 통로를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것 입니다. 공산권과 회교권을 포함한 아시아지역 국가들에 있어 전임 사역 자들이 전도를 목적으로 들어갈 수 없는데 반해 직업인인 평신도 사역자 들에게 그길이 계속 확대되고 있습니다. 전임 사역자들이 빛 가운데 빛 이라면 평신도 사역자들은 어둠가운데 빛입니다. 이것이 직장 선교에 있 어 평신도의 역할이 더 중요해진 또 다른 이유입니다. 지금은 직업인인 크리스챤들이 선교의 연결점으로 직업을 재인식할 때입니다. 그리고 직장 사역에 임하고 있는 자신을 냉정히 되돌아 볼 때입니다.
5) 일용할 양식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수단입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생계를 위해 직업을 가지며, 그 직업을 주로 생계 유지 의 수단으로 파악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그외에도 직업에 대한 여러 다른 의미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다른 의미들 때문에 종종 직업의 기본적인 의미인 생계를 위한 수고함은 간과해 버리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도 일용할 양식은 중요하고, 예수님께서도 주기도문에서 일용할 양식을 하나님께 요구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또한 마6장 산상 설교에 서 들꽃하나, 새 한마리도 돌보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당신의 자녀들 을 분명하게 돌보신다는 공급의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같은 공급 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친히 우리의 고용주가 되셨습니다. 우리는 자칫 내 노력의 댓가로 양식을 얻는다는 측면에서 직업을 보게되지만,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공급의 통로로 직업을 파악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고용주이기 때문에 직업을 가지고 수고한 사람 들에게 그 보수로 양식을 주시는 것입니다. 자신의 양식과 가족의 양식 을 위해 주야로 열심히 일하는 것은 세상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입니다.
누를 끼치면서 생계를 남에게 의지하는 일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일 할 능력이 있는한은 그냥 먹을 형편이 되어도 일해야 합니다. 이러한 모 범은 데살로니가 후서에서 바울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했다고 생각해서 일하는 것을 게을리 했 습니다. 깨어 있어서 종말에 대한 관심을 갖는것은 바람직하지만, 이것 이 지나쳐서 직업을 소홀히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수고함으로만 양식을 얻게하신데는 또 다른 이유 들이 있습니다. 창세기의 아담이래로 인간은 죄의 댓가로 수고해야만 소 산을 거둘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창3:17) 양식을 얻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기억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또한 수고함을 통한 하나님의 가르침 가운데는 심은대로 거둔 다는 법칙도 포함됩니다. 신앙이 훌륭한 그리스도인에게도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보시고 까마귀를 보내시지는 않습니다. 참된 믿음은 맡기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까마귀로부터 음식을 공급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양식 위해 일할때 노아시대처럼 하나님의 일을 잊어버 리고 일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내일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의 양식을 위 해 그리고 우리의 고용주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6)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통로입니다. 하나님의 손길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직접 이 우주를 다스리고 계십니다. 궤도를 도는 행성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미생물에 이 르기까지 이렇게 질서정연한 법칙속에서 움직이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서 이 우주의 통치자임을 보여주는 좋은 증거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 사회에서는 사람들을 통해 질서를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다스리시기 위해 네 가지 기관을 주셨습니다.
첫째는 국가요,둘째는 가정이요, 세째는 교회요, 네째는 직장입니다. 이 네가지 기관들을 우연히 생긴것이 아니므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기관이라는 시각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직장과 직업을 통해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기대하셨던 질서는 이러합니다.
첫째, 사람들이 살아가는데는 신체적, 감정적 그리고 지적인 필요등 여 러가지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 께서는 이 필요들을 서로의 직업을 통 해 채울수 있도록 계획하신 것입니다. 예를들어 저희 회사는 옷을 만드는 것이 주 사업인데 만약 옷을 만드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하루 아침 에 그 일을 그만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옷은 추위로 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고,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자존심을 보호하며 또한 자기표현 욕 구를 충족 시켜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옷을 만드는 사람들은 자기 직업을 통해 이 세가지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의 필요 를 채우는 중요한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받은 은사를 통해 하나님뿐 아니라 사람들을 섬기도록 하셨습니다.(베드로전서 4:10-11) 하나님 께서 주신 모든 직업은 서로를 위해서 매우 귀중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생산하는 재화에 땀의 댓가만을 덧붙여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일을 주의 일로 여기며 직업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 의 사람으로 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돌보시는 방법중의 하나로서 우리 자신에게 직업을 주셨고 그직업을 사용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다 이해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각자의 직업에 충실할때 이 세상을 다스 리시는 하나님의 일에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커다란 시계속의 작은 톱니바퀴 하나가 자기의 의미와 중요성을 다 알지 못한채 맡은 역 할을 하고는 있지만 중요성을 다 알지 못한채 맡은 역할을 하고는 있지 만 그 작은 부속품이 없이는 시계가 자기 일을 다할 수 없는것과 같습니다. 직업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통해 뜻을 이루어 가시려고 고안하신 한 통로입니다. 우리는 직업에 충실한 하루하루를 살며 그 가운데 서로 를 섬기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 가야 합니다. 각각 은사를 받는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것 같이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것 같이하라 이는 범 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베드로전서 4:10-11)
7) 하나님께서 성장시키시는 도구입니다. 직장 속에는 두가지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하나는 일자체가 주는 어려 움이고 또 하나는 인간 관계의 어려움 입니다. 직업속에 들어있는 이 어려움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3장에서 원죄를 지은 인간에게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 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 를 낼 것이라" 고 이르셨습니다. 그러나 직장과 직업속에 있는 이 두가 지 어려움 뒤에는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놀라운 계획들이 있습니다. 일과 인간관계의 어려움으로 부터 우리는 4가지의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 이 어려움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부족한 점을 발견하고 모난 부 분을 깍아 다듬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되고 예수님을 닮 아가게 되는 교육 수단으로 하나님께서는 이 어려움을 사용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직업속에서의 어려움을 하나님께서 주신것으로 이해할때 우리는 상당한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를 놓치 고 있는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둘째, 직업속의 어려움은 우리가 하나님께로 인도되거나 온전한 순종을 배우는 도구로써 사용됩니다. 실제로 사업의 실패나 어려움을 계기로 크 리스챤이 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이런 직업속의 어려움을 통해 온전한 Lord Ship을 자기 영역 속에서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100% 순종 하는 삶을 배우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계획입니다. 세째, 직업속에서의 어려움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죄를 기억하게 합니다. 나만의 죄, 인류의 원죄, 그리고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게 하는데 어려움 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일을 고통이 있는 노동으로 바꾸신데에는 그 속에서 죄를 기억 함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상태를 점검토록 하시 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네째, 우리로 하여금 거룩함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 어려움들이 사용됩니다. 적당한 어려움은 우리로 하여금 영적으로 깨어있게 하고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도록 합니다. 또한 나태와 유혹으로 부터 거 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하나님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답게 성장시키기 위해 직업의 어려움 들을 주셨고 이 어려움들이 성장의 도구로 사용되어짐을 원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기 위해 또한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안에 회복하기 위해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답게 성장하기 위해 우리는 직장과 일속에 감추어두신 하나님의 교육 수단들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 유익을 얻어야 합니다. 그래서 일 자체가 주는 어 려움과 인간관계의 어려움들로 부터 배우고 언제나 자신을 연단해 갈 수 있는 성숙한 직장인이 되어야 합니다.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 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 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 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베드로전서 2:18-21)
8)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는 통로입니다. 크리스챤의 주요 사명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회 복하는데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획도 이 하나님 나라의 회복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회복은첫째로 영혼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이고둘째로는 그 영혼들이 몸담고 있는 환경을 복음 화하는 것입니다.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가 복음화되어야 하는 한가 지 이유는, 사람이 그것들을 만들었지만 결국 사람들도 그로부터 영향을 받기 때문이며 또다른 커다란 이유는 그것들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 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는 하나님의 통치 영역속 에서 하나님의 법대로 다스려져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전 인구의 1/4이 크리스챤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평 화로운 방법을 통해 한 국가의 종교를 바꾸었다는 점에서는 인류 역사에 획기적인 기록을 남겼지만 교회의 증가와 더불어 사회의 악은 오히려 증 가하고 있습니다. 경제 발전과 더불어 심화되어온 이 악들을 이제 하나 의 인격을 갖춘 거대한 구조악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생성되는데 기여한 사람들조차도 통제 할 수 없을 만큼 구조악은 거대해져 있습니다. 탈세, 관료의 부패, 속임, 부정적, 생명경시, 살인, 강도, 윤리도덕의 붕괴, 뇌물, 배금사상, 출판, 영화등 문화의 타락, 이런 것들을 나날이 더 악 화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구조악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과 통로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사회 구조악의 문제는 교회의 개입도 한계가 있습니다. 유일한 방법은 직업을 통하는 것입니다. 크리스챤 공무원은 뇌물을 거절할 수 있고, 크리스챤 상인이라면 정직한 땀의 댓가만을 이익으로 취할 수 있습니다. 부유한 크리스챤이라면 자신 을 위한 재물사용을 절제할 수 있고 그 재물을 가난한 자들을 섬기는데 사용할 수 있으며, 가난한 크리스챤이라면 자기 직업을 위해 주님께 구 할수 있고 주어진 직업에서 가난하지만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일할 수 있습니다. 크리스챤 직장인은 자기 직장속에서 올바르지 못한 일에 대해 서는 바로 잡을 수 있고 바르지 못한 사람에게는 충고할 수 있으며 크리 스챤 기업인은 정직하게 세금을 낼 수 있습니다. 크리스챤 언론인과 출 판인들은 사람들을 타락시키는 내용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크리스챤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자기가 바르게 행동할뿐 아니라 바른 방향을 제 시 할수 있습니다. 크리스챤 직장인은 하나님의 뜻을 이땅 곳곳에서 나 타낼수 있는 분화구가 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마른 땅 곳곳에 설치된 스프링쿨러로 인해 아름다운 식물들이 사막을 덮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작은 벗이라도 어두움은 물러납니다. 작은 불 하나가 켜저 그 용 기로 또 다른 작은 불이 켜지고 곳곳에서 작은 불들이 하나 둘씩 켜진다 면 이 세상의 어둠을 완전히 몰아낼수 있습니다. 가정이나 교회에서는 바르게 살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회를 바꾸려는 것은 사회속에서 바르게 살때만 가능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선 크리스챤이 자신의 직업을 소명으로 대하고 하나님의 사랑으로서 일할때 구조악의 문제는 자연히 해결됩니다. 사역자 이상으로 평신도 크리스챤이 중요한 것은 그들이 직 업을 통해 문화와 사회를 복음화 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직업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해 가는 통로입니다.
9) 하나님의 영광을 드려내는 현장입니다. 행함으로 복음을 전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통해 신앙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신앙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거나 막 시작한 신앙생활에 실망하는 사람들의 경우 불성실한 크리스챤이 그 원인인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크리스챤이 삶의 모든 영역을 통해 모범 을 보이고 세상의 필요를 채우며 자신의 직무에 충실할때마다 그곳은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현장이 됩니다. (살전 2:9,4:11-12) 직업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경우는 이러합니다.
첫째, 직업자체를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우리의 봉사와 예배의 일부로 인식할 때 입니다. (골 3:23) 의사는 돈이나 자신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께 봉사한다는 의미로 환자 를 치료하고 우체부는 하나님 나라의 결속을 다진다는 의미로 편지를 배달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크리스챤다운 방법으로 일을 해갈때 가장 비 천한 일일지라도 가치있는 일로 여겨지며 모든 섬김의 영역에서 하나님 의 영광을 드러내게 됩니다.
둘째, 직업속의 모든 관계에서 공경하는 마음과 섬기는 자세로 임할 때 입니다. (딤전 6:1-2) 상사는 물론 동료나 아랫사람까지도 공경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섬겨야 합니다. 말씀대로 아래위가 함께 섬기는 모습이야말로 하나님 나라의 아 름다운 질서를 실현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직업인들은 최선을 다해 정직하게 일해야 합니다. (딛2:9-10) 우리는 직업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잘 드 러냈던 예를 로마제국의 초기 기독교 전파과정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크리스챤 노예들은 정직했고 복종했으며 최선을 다해 주인을 섬겼습니다. 그 결과 주인들로 하여금 신앙의 길로 들어서게 하였고 더 나아가 로마 전체를 신앙의 길로 들어서게 하였습니다. 깨어있는 크리스챤 직장인이 라면 직업자체를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통로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직업가운데 이루어지는 모든 관계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과의 생활 속에서 크리스챤 직장인들이 솔선수범하며 필요를 감당해갈때 그 선한 행위는 복음으로 전파되며 직 업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현장이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일하게 하신 이유이며 직업을 통해 우리에게 기대하신 또 하나의 요구이기도 합니다.
2) 하나님이 일하시므로 우리도 일합니다. 노동은 신선한 것이라고 많이 이야기 하지만 크리스챤은 노동의 신성함 에 대한 근거를 우리 창조주의 모범에서 찾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지으실때부터 노동을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일하 고 계시고 일을 만드신 분이기 때문에 노동은 신성한 것입니다.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시는 장면을 목격한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시비를 하였을 때(요5:17) 예수님의 답변은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 하시니 나도 일한다" 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과 자신들의 전통으로 일의 정당성의 근거를 삼았지만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사역의 근거를 하나님의 모범으로 부터 발견 하셨습니다. 직업과 일은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일하고 있 고 또 내가 일할 능력이 있기 때문에 해야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 이전에 우리의 창조자이신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은 모두가 거룩한 일입니다. 하나님 은 이제까지 일하고 계십니다. 그 증거가 성경이고 교회이고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쉬신다면 우주의 질서는 엉망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일해야 할때 일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계획하셨 던 질서는 어질러지고 맙니다.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 일에 대한 오해를 낳을 수도 있읍니다. 달란트의 비유(마 25:24-26)에서 책망받는 좋은 주인의 직업관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종은 주인이 부자인데다 능력있는 분이라서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로 파악했지만 주인의 답은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는데서 거두지 않고 헤치지 않는데서 모으지 않는다" 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일하시지 않아도 되는 분이지만 오늘도 일하고 계십니다. 자신의 피조물에 대한 모범에서 일하시는지도 모릅니다. 그분 은 쉬는 것은 원하시지만 직업에 대한 게으름은 싫어하십니다. 그런 까 닭에 우리는 마땅히 여호와께 직업을 구할 수 있고 직업을 위해 기도해 야 합니다. 이것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는 기도제목입니다. 직업을 구 하고자 하거나 일꾼을 찾고있는 기업인 모두에게 지금은 우리의 창조자 이신 하나님의 모범을 따라 그분이 일하시므로 우리도 일해야 한다는 그리스도인의 직업관이 필요한 때문입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음으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 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마 25:24-26).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 한다 하시매 (요 5:17).
3) 인생평가의 중요한 기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앞에 섰을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인생을 무엇으로 평가 하 실까요. 내가 얼마나 교회에 잘 봉사했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했는가, 얼마나 가난한 사람들을 관심있게 돌보았는가, 얼마 나 정직하게 살았는가. 하나님이 우리인생을 평가하실때, 이러한 기준들 도 중요하지만 그외에도 중요한 한가지가 더 있습니다. 그것은 직업입니다. 우리가 직업속에서 얼마나 성실하게 하나님 뜻을 분별하면서 하나님 의 일로서 직업에 임했는가를 평가 하십니다. 직업이 인생 평가의 중요 한 기준이 되는 것은 인생의 1/3에서 절반, 가사일을 담당하는 주부의 경우 2/3까지도 되는 많은 시간을 직업에 할애하기 때문입니다. 직업에 관한 좋은 예는 마태복음 25장에 나타난 달란트 비유입니다. 하나님은 세사람에게 돈을 맡기셨고 사업을 권유 하셨습니다. 사업을 통한 이익으 로 평가를 하신것은 그에게 맡긴 여러가지 것들을 잘 활용하는것이 중요 하다는 것을 말씀하시려는 비유라고도 생각 할 수 있지만 이 비유의 소 재는 분명 직업입니다. 달란트의 비유에서 일하지 않았던 사람, 즉 사업 을 않고 재능을 묻어 두었던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책망하셨습니다. 직업, 즉 사회생활을 제외하고 영적인 부분의 성과만으로 인생이 평가된다면 우리는 성과 속을 나누는 2원론에 빠지고 맙니다. 교회 일에 충실했다 하더라도 직업에 소홀하다면 하나님은 상과 동시에 책망을 주십니다. 직 업에 소홀하다는 것은 직업을 하나님의 일로 받아들이지 않았음을 의미 하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6장:5-9)에서는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하여. 단 마음으로 주께 하듯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말라.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하는 자나 주에게 그대로 받을줄을 앎이니라."라고 쓰고 있습니다. 종들이 상전을 섬기는 것과 상전이 종에게 일을 시키는 것은 그 시대 직장 생활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 자체를 하나님의 것으로 인식하시므로 이일을 종과 상 전과의 관계가 아닌 종과 하나님, 상전과 하나님의 관계로 파악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전영역을 하나님것이라고 이해한다면 직업은 하나님의 부르심, 즉 소명이어야 하고 그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 해야 옳습니다. 내가 직장이나 일속에서 직장의 기준, 법률, 상사나 동 료의 기준, 혹은 나의 기준으로 판단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눈으로 하나님의 기준으로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준으로 내가 얼마나 성실 했 나, 또 이 직업을 통해 얼마나 하나님뜻을 이루려 했나, 직업을 통해 얼 마나 그가 하나님께 성실 했는가를 측정하시는 분입니다. 지금은 하나님 께서 주신 직업속에서 하나님의 기준으로 성실하게 자신을 점검할 때 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직업을 통해 주신 뜻을 발견하고 그 뜻을 이루 어나가고 있는지 나 자신을 확인해야 할 때입니다.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 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다섯 달란트 받은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달란트를 남겼으되.(마25:15-17)
4) 직장은 선교의 연결점입니다. 우리나라 교회는 Home-Ministry를 중심으로 성장해 왔습니다. 열심있는 신앙인들은 신학교를 통해 전임사역자가 되도록 권고를 받았고 그 결과 신학교가 자라고 교회는 성장에 필요한 일꾼들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Campus와 Busimess Ministry 가 상대적으로 복음의 공백지역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최근 20여년에 걸쳐 몇몇 선교단체들에 의해 Campus Ministry가 실현되었고 이제는 Business 의 영역만이 비복음화지역으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크리스챤이 1/4을 점하는 나라에 살고 있지만 여 전히 사회가 어둡다고 느끼고 식당에서는 기도로 식사로 시작하는 모습 을 발견 할 수 없습니다. 가리워진 빛, 밟히는 소금이 되어버린(마:5장) 크리스챤이 많고 정당한 방법으로는 살기 어려운것도 바로 이 Business Ministry 의 결여 때문입니다. 사회를 구성하는 3대 요소인 가정, 학원, 직장중에서 직장은 가장 커다 란 영역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시간을 대부분 점하고 있는 이 Business Ministry 영역이 복음화되지 못한 것은 우리 크리스챤들이 앞 으로 복음화에 있어 관심가져야 할 중요한 과제입니다. 사회의 완전 복음화 즉 신앙과 생활의 일치에는 직장복음화가 중요합니다. 이 직장복음 화는 전임사역자들이 아닌 직업을 가진 평신도 사역자들이 현장에서 빛 과소금의 역할을 감당할때만 가능합니다. 이제는 많은 사명감있는 크리스챤들이 신학교대신 선교의 현장인 직장을 선택해야 할 때 입니다. 넘치고 있는 신학교보다 비어있는 직장복음화를 선택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 직장선교에 있어 전임사역자가 나서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직장과 사회 를 복음화하는데 있어 전임사역자가 이것을 감당할 수 없는 이유는 직장 생활과 사회생활의 특수성 때문입니다. 이 특수성들은 직접 체험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입니다. 구약에 있어 믿음의 선배들은 대부분 직업인이었습니다. 요셉, 다니엘, 다윗은 공무원이었고 아브라함과 욥은 목축업자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많은 숨 은 사역자들도 직업을 가진 평신도들 이었습니다. 바울도 고린도에서의 1년반 생활동안 6일은 밤낮으로 일하고 안식일을 통해 사역을 했다고 합니다.(데살로니가후서 3:8) 직업인 평신도들은 실제로 직장에서 많은 선교의 Contact point를 가지 게 됩니다. 깨어있는 크리스챤이라면 그런 기회를 놓쳐버리지 않을 것이 며 그 기회는 오늘 해외선교로까지 확장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의 성장과 더불어 경제 발전을 주신것은 결코 우연이 아 닙니다. 이는 교회가 선교할 수 있는 통로를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것 입니다. 공산권과 회교권을 포함한 아시아지역 국가들에 있어 전임 사역 자들이 전도를 목적으로 들어갈 수 없는데 반해 직업인인 평신도 사역자 들에게 그길이 계속 확대되고 있습니다. 전임 사역자들이 빛 가운데 빛 이라면 평신도 사역자들은 어둠가운데 빛입니다. 이것이 직장 선교에 있 어 평신도의 역할이 더 중요해진 또 다른 이유입니다. 지금은 직업인인 크리스챤들이 선교의 연결점으로 직업을 재인식할 때입니다. 그리고 직장 사역에 임하고 있는 자신을 냉정히 되돌아 볼 때입니다.
5) 일용할 양식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수단입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생계를 위해 직업을 가지며, 그 직업을 주로 생계 유지 의 수단으로 파악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그외에도 직업에 대한 여러 다른 의미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다른 의미들 때문에 종종 직업의 기본적인 의미인 생계를 위한 수고함은 간과해 버리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도 일용할 양식은 중요하고, 예수님께서도 주기도문에서 일용할 양식을 하나님께 요구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또한 마6장 산상 설교에 서 들꽃하나, 새 한마리도 돌보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당신의 자녀들 을 분명하게 돌보신다는 공급의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같은 공급 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친히 우리의 고용주가 되셨습니다. 우리는 자칫 내 노력의 댓가로 양식을 얻는다는 측면에서 직업을 보게되지만,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공급의 통로로 직업을 파악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고용주이기 때문에 직업을 가지고 수고한 사람 들에게 그 보수로 양식을 주시는 것입니다. 자신의 양식과 가족의 양식 을 위해 주야로 열심히 일하는 것은 세상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입니다.
누를 끼치면서 생계를 남에게 의지하는 일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일 할 능력이 있는한은 그냥 먹을 형편이 되어도 일해야 합니다. 이러한 모 범은 데살로니가 후서에서 바울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했다고 생각해서 일하는 것을 게을리 했 습니다. 깨어 있어서 종말에 대한 관심을 갖는것은 바람직하지만, 이것 이 지나쳐서 직업을 소홀히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수고함으로만 양식을 얻게하신데는 또 다른 이유 들이 있습니다. 창세기의 아담이래로 인간은 죄의 댓가로 수고해야만 소 산을 거둘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창3:17) 양식을 얻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기억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또한 수고함을 통한 하나님의 가르침 가운데는 심은대로 거둔 다는 법칙도 포함됩니다. 신앙이 훌륭한 그리스도인에게도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보시고 까마귀를 보내시지는 않습니다. 참된 믿음은 맡기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까마귀로부터 음식을 공급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양식 위해 일할때 노아시대처럼 하나님의 일을 잊어버 리고 일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내일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의 양식을 위 해 그리고 우리의 고용주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6)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통로입니다. 하나님의 손길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직접 이 우주를 다스리고 계십니다. 궤도를 도는 행성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미생물에 이 르기까지 이렇게 질서정연한 법칙속에서 움직이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서 이 우주의 통치자임을 보여주는 좋은 증거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 사회에서는 사람들을 통해 질서를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다스리시기 위해 네 가지 기관을 주셨습니다.
첫째는 국가요,둘째는 가정이요, 세째는 교회요, 네째는 직장입니다. 이 네가지 기관들을 우연히 생긴것이 아니므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기관이라는 시각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직장과 직업을 통해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기대하셨던 질서는 이러합니다.
첫째, 사람들이 살아가는데는 신체적, 감정적 그리고 지적인 필요등 여 러가지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 께서는 이 필요들을 서로의 직업을 통 해 채울수 있도록 계획하신 것입니다. 예를들어 저희 회사는 옷을 만드는 것이 주 사업인데 만약 옷을 만드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하루 아침 에 그 일을 그만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옷은 추위로 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고,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자존심을 보호하며 또한 자기표현 욕 구를 충족 시켜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옷을 만드는 사람들은 자기 직업을 통해 이 세가지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의 필요 를 채우는 중요한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받은 은사를 통해 하나님뿐 아니라 사람들을 섬기도록 하셨습니다.(베드로전서 4:10-11) 하나님 께서 주신 모든 직업은 서로를 위해서 매우 귀중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생산하는 재화에 땀의 댓가만을 덧붙여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일을 주의 일로 여기며 직업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 의 사람으로 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돌보시는 방법중의 하나로서 우리 자신에게 직업을 주셨고 그직업을 사용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다 이해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각자의 직업에 충실할때 이 세상을 다스 리시는 하나님의 일에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커다란 시계속의 작은 톱니바퀴 하나가 자기의 의미와 중요성을 다 알지 못한채 맡은 역 할을 하고는 있지만 중요성을 다 알지 못한채 맡은 역할을 하고는 있지 만 그 작은 부속품이 없이는 시계가 자기 일을 다할 수 없는것과 같습니다. 직업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통해 뜻을 이루어 가시려고 고안하신 한 통로입니다. 우리는 직업에 충실한 하루하루를 살며 그 가운데 서로 를 섬기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 가야 합니다. 각각 은사를 받는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것 같이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것 같이하라 이는 범 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베드로전서 4:10-11)
7) 하나님께서 성장시키시는 도구입니다. 직장 속에는 두가지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하나는 일자체가 주는 어려 움이고 또 하나는 인간 관계의 어려움 입니다. 직업속에 들어있는 이 어려움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3장에서 원죄를 지은 인간에게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 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 를 낼 것이라" 고 이르셨습니다. 그러나 직장과 직업속에 있는 이 두가 지 어려움 뒤에는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놀라운 계획들이 있습니다. 일과 인간관계의 어려움으로 부터 우리는 4가지의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 이 어려움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부족한 점을 발견하고 모난 부 분을 깍아 다듬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되고 예수님을 닮 아가게 되는 교육 수단으로 하나님께서는 이 어려움을 사용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직업속에서의 어려움을 하나님께서 주신것으로 이해할때 우리는 상당한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를 놓치 고 있는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둘째, 직업속의 어려움은 우리가 하나님께로 인도되거나 온전한 순종을 배우는 도구로써 사용됩니다. 실제로 사업의 실패나 어려움을 계기로 크 리스챤이 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이런 직업속의 어려움을 통해 온전한 Lord Ship을 자기 영역 속에서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100% 순종 하는 삶을 배우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계획입니다. 세째, 직업속에서의 어려움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죄를 기억하게 합니다. 나만의 죄, 인류의 원죄, 그리고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게 하는데 어려움 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일을 고통이 있는 노동으로 바꾸신데에는 그 속에서 죄를 기억 함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상태를 점검토록 하시 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네째, 우리로 하여금 거룩함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 어려움들이 사용됩니다. 적당한 어려움은 우리로 하여금 영적으로 깨어있게 하고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도록 합니다. 또한 나태와 유혹으로 부터 거 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하나님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답게 성장시키기 위해 직업의 어려움 들을 주셨고 이 어려움들이 성장의 도구로 사용되어짐을 원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기 위해 또한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안에 회복하기 위해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답게 성장하기 위해 우리는 직장과 일속에 감추어두신 하나님의 교육 수단들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 유익을 얻어야 합니다. 그래서 일 자체가 주는 어 려움과 인간관계의 어려움들로 부터 배우고 언제나 자신을 연단해 갈 수 있는 성숙한 직장인이 되어야 합니다.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 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 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 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베드로전서 2:18-21)
8)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는 통로입니다. 크리스챤의 주요 사명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회 복하는데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획도 이 하나님 나라의 회복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회복은첫째로 영혼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이고둘째로는 그 영혼들이 몸담고 있는 환경을 복음 화하는 것입니다.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가 복음화되어야 하는 한가 지 이유는, 사람이 그것들을 만들었지만 결국 사람들도 그로부터 영향을 받기 때문이며 또다른 커다란 이유는 그것들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 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는 하나님의 통치 영역속 에서 하나님의 법대로 다스려져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전 인구의 1/4이 크리스챤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평 화로운 방법을 통해 한 국가의 종교를 바꾸었다는 점에서는 인류 역사에 획기적인 기록을 남겼지만 교회의 증가와 더불어 사회의 악은 오히려 증 가하고 있습니다. 경제 발전과 더불어 심화되어온 이 악들을 이제 하나 의 인격을 갖춘 거대한 구조악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생성되는데 기여한 사람들조차도 통제 할 수 없을 만큼 구조악은 거대해져 있습니다. 탈세, 관료의 부패, 속임, 부정적, 생명경시, 살인, 강도, 윤리도덕의 붕괴, 뇌물, 배금사상, 출판, 영화등 문화의 타락, 이런 것들을 나날이 더 악 화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구조악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과 통로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사회 구조악의 문제는 교회의 개입도 한계가 있습니다. 유일한 방법은 직업을 통하는 것입니다. 크리스챤 공무원은 뇌물을 거절할 수 있고, 크리스챤 상인이라면 정직한 땀의 댓가만을 이익으로 취할 수 있습니다. 부유한 크리스챤이라면 자신 을 위한 재물사용을 절제할 수 있고 그 재물을 가난한 자들을 섬기는데 사용할 수 있으며, 가난한 크리스챤이라면 자기 직업을 위해 주님께 구 할수 있고 주어진 직업에서 가난하지만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일할 수 있습니다. 크리스챤 직장인은 자기 직장속에서 올바르지 못한 일에 대해 서는 바로 잡을 수 있고 바르지 못한 사람에게는 충고할 수 있으며 크리 스챤 기업인은 정직하게 세금을 낼 수 있습니다. 크리스챤 언론인과 출 판인들은 사람들을 타락시키는 내용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크리스챤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자기가 바르게 행동할뿐 아니라 바른 방향을 제 시 할수 있습니다. 크리스챤 직장인은 하나님의 뜻을 이땅 곳곳에서 나 타낼수 있는 분화구가 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마른 땅 곳곳에 설치된 스프링쿨러로 인해 아름다운 식물들이 사막을 덮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작은 벗이라도 어두움은 물러납니다. 작은 불 하나가 켜저 그 용 기로 또 다른 작은 불이 켜지고 곳곳에서 작은 불들이 하나 둘씩 켜진다 면 이 세상의 어둠을 완전히 몰아낼수 있습니다. 가정이나 교회에서는 바르게 살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회를 바꾸려는 것은 사회속에서 바르게 살때만 가능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선 크리스챤이 자신의 직업을 소명으로 대하고 하나님의 사랑으로서 일할때 구조악의 문제는 자연히 해결됩니다. 사역자 이상으로 평신도 크리스챤이 중요한 것은 그들이 직 업을 통해 문화와 사회를 복음화 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직업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해 가는 통로입니다.
9) 하나님의 영광을 드려내는 현장입니다. 행함으로 복음을 전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통해 신앙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신앙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거나 막 시작한 신앙생활에 실망하는 사람들의 경우 불성실한 크리스챤이 그 원인인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크리스챤이 삶의 모든 영역을 통해 모범 을 보이고 세상의 필요를 채우며 자신의 직무에 충실할때마다 그곳은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현장이 됩니다. (살전 2:9,4:11-12) 직업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경우는 이러합니다.
첫째, 직업자체를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우리의 봉사와 예배의 일부로 인식할 때 입니다. (골 3:23) 의사는 돈이나 자신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께 봉사한다는 의미로 환자 를 치료하고 우체부는 하나님 나라의 결속을 다진다는 의미로 편지를 배달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크리스챤다운 방법으로 일을 해갈때 가장 비 천한 일일지라도 가치있는 일로 여겨지며 모든 섬김의 영역에서 하나님 의 영광을 드러내게 됩니다.
둘째, 직업속의 모든 관계에서 공경하는 마음과 섬기는 자세로 임할 때 입니다. (딤전 6:1-2) 상사는 물론 동료나 아랫사람까지도 공경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섬겨야 합니다. 말씀대로 아래위가 함께 섬기는 모습이야말로 하나님 나라의 아 름다운 질서를 실현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직업인들은 최선을 다해 정직하게 일해야 합니다. (딛2:9-10) 우리는 직업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잘 드 러냈던 예를 로마제국의 초기 기독교 전파과정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크리스챤 노예들은 정직했고 복종했으며 최선을 다해 주인을 섬겼습니다. 그 결과 주인들로 하여금 신앙의 길로 들어서게 하였고 더 나아가 로마 전체를 신앙의 길로 들어서게 하였습니다. 깨어있는 크리스챤 직장인이 라면 직업자체를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통로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직업가운데 이루어지는 모든 관계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과의 생활 속에서 크리스챤 직장인들이 솔선수범하며 필요를 감당해갈때 그 선한 행위는 복음으로 전파되며 직 업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현장이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일하게 하신 이유이며 직업을 통해 우리에게 기대하신 또 하나의 요구이기도 합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