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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준비 (마24:3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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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의 내용은 신자들로 하여금 주의 오심을 준비하게 하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 한 평생의 삶만을 위해서 살면 된다. 그러나가 것만 보자니 너무 허무한 것이다. 신자들에게 이 세상은 너무도 짧은 것이요 진짜는 뒤에 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짧은 기간은 뒤에 오는 영원한 삶의 준비 단계이다.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삶은 엄청난 중요성 을 가진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일생이 오래 오래 계속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시집가고 장가가고 돈벌고 권력을 잡는데 모든 정력을 다 쏟아 넣는다.어떤 고상한 사람은 부귀영화를 마다하고 예술이나 작품활동에 전념하기도한다.극소수지만 더 수준이 높은 경우는 평생을 선행하고 자선사업에만 몰두하는 사람들을 본다. 훌륭한 삶이다. 존경할만 하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은 여기 있다. 과연 그것이 영원한 삶에 유익이 되는가 시집장가 가지말고 권세영화를 버리라는 말 하려는게 절대 아니다. 그것을 방해하거나 손해를 끼치면 버려야 한다. 그러나 악을 행 하지 않고서야 세상의 일과 영원의 일이 완전 반대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영원한 삶을 향해서 사는 사람들은 세상에서도 사랑과 존경을 받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일시적으로 어렵기도 하고 시련과 억울함을 당하기도 한다.세상 사람들에게 임하는 모든 괴로움이 다 신자들에게도 임하 기도 한다.하지만 신자들은 그게 무엇이건 영원한 삶에 유익을 주는 것으로 바꿀 수 있다. 그래야만 현재의 삶에 영원한 가치를 주게 된다. 결국 누구에게나 영원한 삶이 온다. 영원한 삶의 시작은 도적이 오는 것처럼 급하게 예고없이 온다. 한때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이 있었다."당신은 영원을 어디에서 보낼 것입니까" 아무리 고개를 돌리 고 안보려고 해도 죽음은 어김없이 그리고 정확하게 다가온다. 약간의 시간 차일뿐이다. 10년 더 산다고 해도 지나고 보면 며칠 더 사는 것 과 같다. 이 일을 객관적으로 살펴보자. 어떤 사람이 어느날 사망선고를 듣는다. 암의 말기 단계로 몇 달 밖에 삶이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일은 누구에게나 다 닥쳐온다. 그것이 조금 일찍 오고 늦게 올 뿐이지 하나님의 시계로 보면 일이분 차이 밖에 없다. 암을 극복하고 일어났 다고 해도 나중에 보면 더 살뿐이다.
 결국은 어김없이 죽음이 온다. 그때 일어나는 대표적인 반응은 분노, 타협,순응의 단계이다. 왜 하 필 자기에게 이것이 닥쳤느냐는 억울함을 표현한다. 하나님에게 "이럴 수 있습니까"하고 원망한다.그러다가 "나를 살려주시면 이러저러한 일 을 하겠습니다"고 한다.이래도 저래도 안될 때는 포기하고 삶을 정리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안 보이는 어둠 저편을 두려워하면서도 비교적 담담해 진다. 그러나 결국 그 날이 다가왔을 때의 놀라움이 얼마나 크겠는가 사랑 하는 사람들을 놓아두고 혼자 비행기를 타고 미지의 나라로 가는것이다. 자기의 마지막 숨을 몰아쉬면서 이것이 이 세상의 마지막이구나고 생각할 때의 당황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두려워진다. 세상에 남겨둔 모 든게 다 의미가 없다. 도대체 무얼하면서 한 평생 긴긴 세월을 보냈던 가! 그날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 준비는 주인을 기다리는 종의 입장 으로 해야 한다. 우리는 천하만물의 주인이 아니다. 돈도 사업도 집도 다 빌려받은 것이다.그것으로 우리의 먹고 살 것도 만들어내지만 근본 적으로 주인을 위해서 그 모든 것을 사용해야 한다. 그만이 영원한 생 명을 가지고 있으며 그 생명을 나누어 주는 분이다. 그를 위해서 살아 야 한다. 그 주인은 자기의 사업을 맡겨주었다. "마음껏 해서 이번 이익을 많 이 남겨보아라." 여기서 이익이란 재물을 말하는게 아니다. 영원한 나라를 위해서 남기는 무엇이다.그것으로 자기의 삶을 윤택하게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의 영혼에 유익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는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위해서도 일해야한다.
그렇다면 주인의 뜻에 합당한 종 이 된다. 하지만 자기가 가진 것으로 방탕하게 살고 남을 업신 여기면서 지내 다가는 무서운 일을 당할 것이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 고 그냥 어영부영하다가 죽음의 사자가 별안간 나타난다. 그 날이 강 도처럼 급하게 그리고 무섭게 임하게 된다. 그저 얼마 남지 않았다 생각하면된다. 어떤 사람들은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이스라엘의 건국으로 말한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너무도 불명확한 설명이다.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억지이다. 단지 예수는 시대의 변화를 통해서 종말을 알게 하려는 것 뿐이다. 정말로 예수의 시대에서 한 세대가 지나기 전에 종말의 예언 들이 그대로 임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종말은 무섭게 나타날 것이다. 준비하는 사람 곧 충성된 종에게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 그는 자기의 힘으로 아무 것도 남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오로지 주인의 것으로 남겨야만 가치가 있는 것이다. 주인이 주신 것이 무엇 인가 구원의 확신이다. 곧 죄사함이요 영원한 생명과 능력이다. 아니 그리스도 전체이다. 그것을 가진 자신의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 알아 야 한다. 하루하루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살아라.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각성되어 있는 사람은 항상 깨어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힘으로 사는 사람은 열매를 많이 남기는 사람이다.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선행하라. 선행의 최상은 믿는 것이요, 기도해서 필요한 힘을 받아내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주신 사랑의 힘으로 살라.어느때 주인이 오시건 두려움 없이 만 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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