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인간의 요건 (마23:23-24)
본문
사람이라고 해서 다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본이 되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여야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다운 사람이 없으니 인간성 회복운동이 필요한 때라고 할 수 있다. 이 운동을 예수님께서 벌이셨다. 인간성 회복운동이 왜 일어나야 하 며 물질이 왜 필요한가를 본문에서 설명하고 계신다.
첫째, 의의 사람이 되라. 요즈음은 의인이 안 보인다. 의가 안보이는 것은 악의 그늘에 가리워 있기 때문이다. 우리 한국은 초대교회의 신앙 생활과 순교한 주의 종들에 의하여 기독교 100주년이 넘으면서 양적으로는 그 수가 무려 1200만명이나 된다. 한국인구약1/4에 가까운 수이다. 이러한 수가 참 신실한 신앙으로 그리스도를 닮아서 사랑과 자비를 행하고 전했다면 믿는자의 거울 앞에 악은 씻어 지고 선한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일당 백은 못한다고 해도 일당 3은 왜 못했을까 하는 것이다. 한성도가 세 사람의 지도자가 왜 못되었단 말인가 우리는 깊이 생각하고 회개해야 한다. 이땅에는 불교, 유교, 천주교 등 여러 종교집단들이 많이 있다. 교리는 다르지만 종교란 선과 자비가 있는 것이다. 그러함에도 이 사회는 날로 악하기만 하니 어찌 종교인이 있다고 하겠으며 종교인들을 보고 믿는 사람들이 있겠는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지금이 중세의 기독교 몰락과 다름이 없는 세대가 아 닌가 싶다. 우리 준미은 이 세대가 의를 완전히 버렸다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는 그 의를 다시 찾아야 한다. 이것을 찾지 못한다면 기독교는 버림받 을 수 밖에 없다. 믿는 자의 의가 없다면 서기관과 바리새인만도 못 하다고 우리 주님은 말씀하시며 결단코 이러한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마5:20-) 말씀 하고 있다. "악인의 삯은 허무하되 의를 뿌리는 자의 상은 확실하니라(잠11:18)의 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5:6)"
둘째, 어진 사람이 되라.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를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고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 사도 바울 선생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편지를 내면서 "우리의 마음이 넓었 으니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하듯 하노니 보답 하는 양으로 너히도 마음을 넓히라(고후 6:11-13)"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도 누구의 약점이 없나 하고 엿보고 엿듣는 일들이 너무 많다. 그런 것으로 약점을 노려서 상대에게 공격의 목표를 삼고 있다. 우리 마음속에 인자한 마음이 어데 갔는지 모르겠다. 우리 주님 말씀대로 이 좋은 마음을 어데나 버렸는지 찾아 간직해야 할 것이다.
셋째, 信의 사람이 되라 이 세대의 불신은 참으로 고질적인 병으로 치료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은 과제이다. 이 불신은 불신사회에서나 있을 것인데 오히려 기독교내에서 더 불신의 악종의 심하여 도려 내기가 힘들게 되어 있다. 믿는자 들이 성령님 성령 하면서도 자기 자신이 불신의 병에 들어 있는 것을 모르고 있다. 서로 보고도 못 믿는 세대인데 여호와 하나님을 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는 다, 천국이 있다. 하는 것들을 어찌 믿겠는가 말이다. 도마와 같은 사람도 예수님의 못자욱, 창자욱을 확인하고 인도에서 온몸에 창살이 고슴도치와 같이 되어 순교를 했는데 우리는 지금 신앙의 불신으로 겉은 믿는 자 같으 나 속은 텅빈 썩은 나무와 같은 형태가 아닌가 확인해 보아야 할 것이다. 기독교인은 믿음이 생명이다. 믿음이 없다면은 생명줄은 끊어진 것이다. 아무리 세상의 환경이 나를 속인다고 해도 나는 세상을 속이거나 불신할 수 없는 것이 기독교인의 길이다. 왜 우리 사회에 이토록 깊이 불신의 뿌리가 내리고 있는 것일까.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불신은 믿고 사는 사람들을 바보로 만든지가 이미 오래된 현실이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회개하고 뉘우치지 못한다면 창기와 세리만도 못하다는 책망을 받을 것이다. 스가랴 7:9-12절을 보면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피차에 인애와 긍휼을 베 풀며 약한자에게 돕고 도우면서 거짓없이 불신이 없게하라"고 했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등을 댄다고 하시며 불신과 업신여기는 죄를 용서하 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의.인.신.3자로 완전한 사람의 본을 보이시며 이러한 사람이 아니라면 아무리 좋은 선물이나 돈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하시면서 나를 믿으려면 먼저 버리고 잊은 것을 찾아 인간성을 회복하라고 가르치시고 있다. 요즈음 세태는 물질만능세대라 신앙까지도 돈으로 환산한다. 잘못된 것이다. 의와 인과 신이 회복되어 인간의 조건이 완성된다면 우리의 옛조상들이 얼 이 살아날 것이요 . 의리를 지키어 배신자가 없을 것이며 어진 마음으로 용 서와 이해로 평화가 오고 살인과 사기와 협잡과 불효자녀들과 살인자들이 없어질 것이며 신을 지키면 국민들이 서로 신뢰하여 살기 좋은 사회와 국가 가 이루어질 것이기에 마땅히 의와 인과 신의 잃어버린 것을 찾는 운동을 전기독교인과 전국민이 함께 노력하여 주님이 원하시지 않는 비인간성에서 참 인간성으로 회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어야 할 것이다. 참 신앙에 무너진 사단 성경
본문:욥 2:1-13 사단의 간악하고 잔인한 도전에 욥은 가정의 존속을 거의 상실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하나님만을 찬양했던 그의 신앙을 꿋굿하게 지켰 습니다. 본문에서는 참혹한 삼자적 시련과는 달리 직접적인 고통을 당하는 시험을 받스빈다. 욥은 고통스러운 육신적 질병을 당하면서도 인내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단의 잔인한 계획은 욥의 몸에 심한 '악창'이 나게 해서 그를 무너뜨리 려고 했지만 결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감 당할 수 없고 고통을 신앙의 힘으로 이겨내는 욥은 참으로 인정받을 만한 인물입니다. 이러한 시험의 과정에서 욥은 평소 마음을 같이하던 친구들의 방문을 받게 되는데 이르리 계기로 더욱 신앙을 돈독하게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유혹을 당할 수 있는 요소들이 사방에 깔려있는 이 시대적 상황속에서 비쳐지는 욥의 신앙행로가 바로 나의 신앙 행로가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강하다는 사단이라 할찌라도 능력의 한계가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섭리 속에 머물 수 밖에 없습니다. 욥을 넘어뜨리려 했던 첫번째 도전이 실패하게 되자 사단은 재차 하나님으 로부터 허락을 받아 욥의 몸에 극심한 악창이 생겨나게 했지마 소용이 없었 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감당할 시험 밖에은 허락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욥에게도 감당할 수 있는 시험, 즉 하나님의 섭리속에 있는 시험만을 허락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바른 신앙생활에 필요한 잠시 잠깐의 고통조차도 참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욥은 인간으로서는 감당하지 힘든 최악의 고통선상에서도 참신앙을 지켜가므로서 강한 신앙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2. 사단은 가까운 사람을 통해 시험합니다. 욥은 한때 모든 사람으로 부터 칭찬과 존경을 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신 앙적으로는 세상에서 소금의 역할을 성실히 감당했던 사람임을 물론 참신한 지도력까지 겸비한 지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욥은 사단으로부터 그의 가장 가까운 아내를 이용한 계략에 고통을 더하게 되는 아픔을 당하빈다. 그의 아내는 사단의 간교한 술법에 휘말려 고통을 당하는 욥의 처지를 위 라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남편을 하나님으로부터 격리시키는 사역에 동참하는 조언자가 되고만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들이 하나님을 원망하도록 하는 사단의 계책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성도여러분들의 가장 가까운 이들을 이용함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3. 사단은 참신앙인 앞에서는 무릎을 꿇고 맙니다. 극심한 악창으로 인하여 인간으로서는 도무지 감내할 수 없는 아픔을 겪어 야 했던 욥에게는 육신적인 고통보다 더 참기 어려운 아내의 태도와 언행이 있었지만 이것 또한 견뎌냈습니다. 사단은 성도 여러분들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험의 강도를 높이면서 다가오는데 물리치지 못하면 실패자가 되고 맙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 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참 신앙과 하나님의 보상 성경
본문:히 11:24-26, 잠 22:4 여러분, 제가 고상한 마귀가 있다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하시겠습니까그러나 분명히 있습니다. ".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고후 11:14)라고 말씀하신 것 같이 가장술이 능한 고상하게 보이는 마귀도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보상을 바라고 신앙 생활 하는 것은 저질 신앙 내지 잘 못된 신앙이라고 주장하고 가르치는 것을 말합니다. 도리어 유치해 보일 만 큼 단순하게 믿고 어린아이같이 믿는 이들에게 참 신앙이 있는 것을 많이 경험하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11장 13-15절에 있는 말씀을 잘 들어 보십시오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 라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 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예를들면 신앙생활을 하되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보상을 바라고 하면 잘못 된 것이라고 합니다. 현실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서 복받도록 하자고 하 면 그 것은 기복 신앙이라 잘못된 것이라고 욕을 하고 믿음으로 잘 살려고 하는 신자들의 믿음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물론 부흥사 혹은 목회자들 중 에는 축복을 빙자해서 헌금만 뽑아 내려는 사기성이 있는 자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서 복 받도록 가르치는 것이 다 잘못된 부흥사들도 더 큰 사탄의 종들입니다. 또한편 죄의 심판과 천국과 지옥을 가르치면 그것은 현실 도피주의라고 맹렬히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도 고상하게 보이는 사탄의 종들입니다. 교회들을 무더기로 파괴하고 죽이는 자들이 자유주의 신학자들인데 이 들의 대부분은 부활과 영생을 의미상으로만 해석하고 실재하는 부활과 영생 으리 믿지 안는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을 이야기하면 더욱이 저질신앙 내 지는 현실도피주의로 몰아부칩니다. 고상해 보이는 마귀요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 마귀입니다. 영생과 부활이 없고 천국과 지옥이 없다면 예수믿을 필요가 어디 있습니 까내세계관이 뚜렷하니까 사자밥이 되어 순교하면서도 찬송을 부르며 죽을 수가 있고 목이 잘리고 총살을 당하면서도 신앙의 정절을 지키며 기쁨으로 죽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12절에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내게 주리라"고 하셨지 그냥 보상의 약속이 없이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부활을 기대하시지 않고 고상하 게 만민의 죄를 위해 영원히 죽으셨습니까 천만에요. 누누히 "나는 죽었다 가 3일만에 부활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7절에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히 브리서 12장 26절에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더 크고 놀라운 상을 바라 보았기 때문에 잠시의 죄악 의 낙과 행복을 포기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제단에 바칠 수 있었던 행위는 단순히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행했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분"(롬 4:17)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아무 보상도 없는데 독자 이삭을 바쳤던 것 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의 보상만을 제일로 믿고 바라보는 신앙이 참 신앙이 요 산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보상을 믿지 않고 바라지 않는 것은 고상한 불 신앙입니다. 신구약 성경에 하나님이 어떤 명령을 하실 때에는 반드시 거기 에 보상을 약속하셨습니다. "우상 숭배 하지 말라"고 하시고 이 계명을 안 지키면 삼사대까지 그 죄값을 갚아 주고 지키면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신다 고 하셨습니다. 공산주의가 이 땅 위에서 실패한 이유는 물론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신론이 며 유물론이고 폭력주의 등의 원인도 있지만은 칼 막스의 이론에 가장 큰 맹점은 공산주의는 일한 만큼의 보상을 받지 못하는데 그 원인이 있습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보상 받기를 원하고, "내것"을 소유하기를 원하는데 공 산주의는 이 가장 중요한 본능을 충족시켜 주시 못하는데 있었던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을 다스리고 섭리 하시는데 그렇게 어리석은 분이 아닙니다. 목회자도 성경 말씀대로만 가르치고 설교하면 교회는 부흥하게 되어 있고 재정도 충족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 말씀안에 모든 것이 다 들 어 있습니다.
그런데 고상한체 하면서 하나님의 보상을 바로 가르치지 못하 면 신앙생활을 바로 하지 않고 교회도 운영이 안되는 것입니다.
1. 주를 위한 희생에도 보상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10-12절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 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 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 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고 보상을 약속하셨습니다. 산상수훈의 팔복에 매번 보상을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독자를 바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보상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9절에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 은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고 했습니다.
2.선행에도 보상을 약속했습니다. 마태복음 6장 1절에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 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고 하셨는데, 사람에게 칭찬듣기 위해 선을 행하는 것은 불신앙이요, 하나님의 보상을 바라고 행하는 것이 신앙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3. 물질의 보상도 약속했습니다. 마가복음 10장 29-30절을 들어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 를 버린자는 금세에 있어.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얻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복음을 위해서 주님의 교회를 위해 서 물질과 가정을 희생하면 금세와 내세에 크게 갚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을 안믿으니까 못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6장 38절에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주시고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수입되는 물질의 10분의 1을 하나님께서 무조건 나한테 가져오라 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도 분명한 보상을 약속하셨습니다. 말라 기 3장 10절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의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 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분명히 약속하셨고 이것을 믿고 꾸준히 순종해 본 사람은 다 체험을 했습니다. 못 믿으니까 아까와서 못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인데 10분의 1만 바치겠느냐 하는 사람은 고상한 체 하는 불신앙의 사람입니다. 제대로 믿고 제대로 십일조하고 소닐이 오고 환란이 와도 꾸준히 하는 사람은 마침 내 그 말씀이 진실임을 체험합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의 배를 빌려 타시고 언덕 위의 많은 무리에게 설교 하셨는데 나중에 그 배에 가득히 고기를 잡아오게 하신 것을 보면, 적은 헌신 하나에도 보상해 주시는 것을 봅니다. 저와 우리 교회가 교리수호할 때 말로 다 혈용할 수 없는 고통을 받고 핍 박, 협박과 중상모략을 받고 심지어 생명의 위협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나 신앙적 의분과 사명감에서 끝까지 싸워 승리 했습니다. 그랬더니 교회적으 로 개인적으로 큰 축복을 받고 있고 앞으로도 엄청난 상급을 주실 줄 믿습니다.
4. 생명에 대한 보상도 약속했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큰 보상을 약속했습니다. 가장 귀한 것이 생명이므로 생명을 바 쳐 순교한 이들의 보상이 하늘 나라에서 제일 큰 것으로 봅니다. 사도 바울 이 부활장에서 말씀하시다가 결론으로 말씀하기를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자들아 견고하여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니라"고 보상을 약속했습니다. 목숨을 버리면 그에 대한 보상은 더욱 엄청난 것입니다. 예수님도 "내가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고 했습니다.
5. 기도의 보상도 약속 했습니다. 기도의 생활을 많이 한 사람은 물질희생 못지 않게 엄청난 상을 하나님 나라에서 받으리라고 분명히 믿습니다. 물론 세상에서도 보상을 받습니다. 마 태복음 6장 6절에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공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맹할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리 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중언부언하는 기도는 아무 런 상급이나 응답이 있을 수 없고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앞에 진심으 로 하는 기도만이 응답이 있고 상급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마틴루터는 "기도는 중노등이다"고 했습니다. 나라를 위해 교회를 위해 멸 망할 영혼이 구원받기 위해 시간과 정력을 바쳐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 큰 상을 받을 생활입니다. 또한 자신이 기도 생활을 통해 받는 축복은 엄청난 것입니다. 기도는 저금통장에 저금해 두는 것 보다 더 확실한 것입니다. 믿음으로 간절히 기도해 둔 것은 언젠가는 기도의 열매를 따 먹는 때가 온느 것입니다. 10년 후에나 20년 후에나 자식대에 가서라도 기도의 응답은 오는 법입니다. 우리의 모든 생활을 하나님 중심으로 하면서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헌신하면 천배 만배 보상해 주 시는 것입니다. 역대의 위대한 성도들은 이 하나님의 보상을 믿기 때문에 세상 모든 것을 분토와 같이 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가 되어서 하나님의 보상을 믿지 않는 시대가 되었고 도리어 그것은 유 치한 신앙이나 저질적인 신앙으로 취급해 버립니다. 신앙이 타락한 시대의 징조입니다. 그러나 주의 할 것은 헌금이나 봉사를 당장 눈앞에 보이는 잇속으로 한다 든지 조급한 보상을 바라고 하다가 낙심 한다든지 하는 것은 그 동기가 잘 못된 것입니다. 또한 인간에게 뇌물을 쓰듯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중심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된 삶으로, 언젠가는 하나님이 상 주실 것 을 믿고 행동해야 합니다. 인생은 하나님 앞에서 심는 만큼 거두게 되는 법 입니다.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는 법입니다. 악한 것을 심으면 악한 것을 많이 거두게 됩니다. 썩을 것으로 심으면 썩을 것을 거두고 영적인 것을 심으면 영원한 것을 거두고 영적인 것을 심으면 영원한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받게 됩니다. 잠언 22장 4절에 "겸손과 영호와를 경외 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고 참으로 좋은 약속을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
첫째, 의의 사람이 되라. 요즈음은 의인이 안 보인다. 의가 안보이는 것은 악의 그늘에 가리워 있기 때문이다. 우리 한국은 초대교회의 신앙 생활과 순교한 주의 종들에 의하여 기독교 100주년이 넘으면서 양적으로는 그 수가 무려 1200만명이나 된다. 한국인구약1/4에 가까운 수이다. 이러한 수가 참 신실한 신앙으로 그리스도를 닮아서 사랑과 자비를 행하고 전했다면 믿는자의 거울 앞에 악은 씻어 지고 선한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일당 백은 못한다고 해도 일당 3은 왜 못했을까 하는 것이다. 한성도가 세 사람의 지도자가 왜 못되었단 말인가 우리는 깊이 생각하고 회개해야 한다. 이땅에는 불교, 유교, 천주교 등 여러 종교집단들이 많이 있다. 교리는 다르지만 종교란 선과 자비가 있는 것이다. 그러함에도 이 사회는 날로 악하기만 하니 어찌 종교인이 있다고 하겠으며 종교인들을 보고 믿는 사람들이 있겠는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지금이 중세의 기독교 몰락과 다름이 없는 세대가 아 닌가 싶다. 우리 준미은 이 세대가 의를 완전히 버렸다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는 그 의를 다시 찾아야 한다. 이것을 찾지 못한다면 기독교는 버림받 을 수 밖에 없다. 믿는 자의 의가 없다면 서기관과 바리새인만도 못 하다고 우리 주님은 말씀하시며 결단코 이러한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마5:20-) 말씀 하고 있다. "악인의 삯은 허무하되 의를 뿌리는 자의 상은 확실하니라(잠11:18)의 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5:6)"
둘째, 어진 사람이 되라.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를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고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 사도 바울 선생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편지를 내면서 "우리의 마음이 넓었 으니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하듯 하노니 보답 하는 양으로 너히도 마음을 넓히라(고후 6:11-13)"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도 누구의 약점이 없나 하고 엿보고 엿듣는 일들이 너무 많다. 그런 것으로 약점을 노려서 상대에게 공격의 목표를 삼고 있다. 우리 마음속에 인자한 마음이 어데 갔는지 모르겠다. 우리 주님 말씀대로 이 좋은 마음을 어데나 버렸는지 찾아 간직해야 할 것이다.
셋째, 信의 사람이 되라 이 세대의 불신은 참으로 고질적인 병으로 치료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은 과제이다. 이 불신은 불신사회에서나 있을 것인데 오히려 기독교내에서 더 불신의 악종의 심하여 도려 내기가 힘들게 되어 있다. 믿는자 들이 성령님 성령 하면서도 자기 자신이 불신의 병에 들어 있는 것을 모르고 있다. 서로 보고도 못 믿는 세대인데 여호와 하나님을 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는 다, 천국이 있다. 하는 것들을 어찌 믿겠는가 말이다. 도마와 같은 사람도 예수님의 못자욱, 창자욱을 확인하고 인도에서 온몸에 창살이 고슴도치와 같이 되어 순교를 했는데 우리는 지금 신앙의 불신으로 겉은 믿는 자 같으 나 속은 텅빈 썩은 나무와 같은 형태가 아닌가 확인해 보아야 할 것이다. 기독교인은 믿음이 생명이다. 믿음이 없다면은 생명줄은 끊어진 것이다. 아무리 세상의 환경이 나를 속인다고 해도 나는 세상을 속이거나 불신할 수 없는 것이 기독교인의 길이다. 왜 우리 사회에 이토록 깊이 불신의 뿌리가 내리고 있는 것일까.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불신은 믿고 사는 사람들을 바보로 만든지가 이미 오래된 현실이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회개하고 뉘우치지 못한다면 창기와 세리만도 못하다는 책망을 받을 것이다. 스가랴 7:9-12절을 보면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피차에 인애와 긍휼을 베 풀며 약한자에게 돕고 도우면서 거짓없이 불신이 없게하라"고 했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등을 댄다고 하시며 불신과 업신여기는 죄를 용서하 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의.인.신.3자로 완전한 사람의 본을 보이시며 이러한 사람이 아니라면 아무리 좋은 선물이나 돈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하시면서 나를 믿으려면 먼저 버리고 잊은 것을 찾아 인간성을 회복하라고 가르치시고 있다. 요즈음 세태는 물질만능세대라 신앙까지도 돈으로 환산한다. 잘못된 것이다. 의와 인과 신이 회복되어 인간의 조건이 완성된다면 우리의 옛조상들이 얼 이 살아날 것이요 . 의리를 지키어 배신자가 없을 것이며 어진 마음으로 용 서와 이해로 평화가 오고 살인과 사기와 협잡과 불효자녀들과 살인자들이 없어질 것이며 신을 지키면 국민들이 서로 신뢰하여 살기 좋은 사회와 국가 가 이루어질 것이기에 마땅히 의와 인과 신의 잃어버린 것을 찾는 운동을 전기독교인과 전국민이 함께 노력하여 주님이 원하시지 않는 비인간성에서 참 인간성으로 회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어야 할 것이다. 참 신앙에 무너진 사단 성경
본문:욥 2:1-13 사단의 간악하고 잔인한 도전에 욥은 가정의 존속을 거의 상실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하나님만을 찬양했던 그의 신앙을 꿋굿하게 지켰 습니다. 본문에서는 참혹한 삼자적 시련과는 달리 직접적인 고통을 당하는 시험을 받스빈다. 욥은 고통스러운 육신적 질병을 당하면서도 인내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단의 잔인한 계획은 욥의 몸에 심한 '악창'이 나게 해서 그를 무너뜨리 려고 했지만 결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감 당할 수 없고 고통을 신앙의 힘으로 이겨내는 욥은 참으로 인정받을 만한 인물입니다. 이러한 시험의 과정에서 욥은 평소 마음을 같이하던 친구들의 방문을 받게 되는데 이르리 계기로 더욱 신앙을 돈독하게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유혹을 당할 수 있는 요소들이 사방에 깔려있는 이 시대적 상황속에서 비쳐지는 욥의 신앙행로가 바로 나의 신앙 행로가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강하다는 사단이라 할찌라도 능력의 한계가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섭리 속에 머물 수 밖에 없습니다. 욥을 넘어뜨리려 했던 첫번째 도전이 실패하게 되자 사단은 재차 하나님으 로부터 허락을 받아 욥의 몸에 극심한 악창이 생겨나게 했지마 소용이 없었 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감당할 시험 밖에은 허락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욥에게도 감당할 수 있는 시험, 즉 하나님의 섭리속에 있는 시험만을 허락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바른 신앙생활에 필요한 잠시 잠깐의 고통조차도 참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욥은 인간으로서는 감당하지 힘든 최악의 고통선상에서도 참신앙을 지켜가므로서 강한 신앙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2. 사단은 가까운 사람을 통해 시험합니다. 욥은 한때 모든 사람으로 부터 칭찬과 존경을 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신 앙적으로는 세상에서 소금의 역할을 성실히 감당했던 사람임을 물론 참신한 지도력까지 겸비한 지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욥은 사단으로부터 그의 가장 가까운 아내를 이용한 계략에 고통을 더하게 되는 아픔을 당하빈다. 그의 아내는 사단의 간교한 술법에 휘말려 고통을 당하는 욥의 처지를 위 라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남편을 하나님으로부터 격리시키는 사역에 동참하는 조언자가 되고만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들이 하나님을 원망하도록 하는 사단의 계책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성도여러분들의 가장 가까운 이들을 이용함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3. 사단은 참신앙인 앞에서는 무릎을 꿇고 맙니다. 극심한 악창으로 인하여 인간으로서는 도무지 감내할 수 없는 아픔을 겪어 야 했던 욥에게는 육신적인 고통보다 더 참기 어려운 아내의 태도와 언행이 있었지만 이것 또한 견뎌냈습니다. 사단은 성도 여러분들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험의 강도를 높이면서 다가오는데 물리치지 못하면 실패자가 되고 맙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 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참 신앙과 하나님의 보상 성경
본문:히 11:24-26, 잠 22:4 여러분, 제가 고상한 마귀가 있다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하시겠습니까그러나 분명히 있습니다. ".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고후 11:14)라고 말씀하신 것 같이 가장술이 능한 고상하게 보이는 마귀도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보상을 바라고 신앙 생활 하는 것은 저질 신앙 내지 잘 못된 신앙이라고 주장하고 가르치는 것을 말합니다. 도리어 유치해 보일 만 큼 단순하게 믿고 어린아이같이 믿는 이들에게 참 신앙이 있는 것을 많이 경험하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11장 13-15절에 있는 말씀을 잘 들어 보십시오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 라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 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예를들면 신앙생활을 하되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보상을 바라고 하면 잘못 된 것이라고 합니다. 현실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서 복받도록 하자고 하 면 그 것은 기복 신앙이라 잘못된 것이라고 욕을 하고 믿음으로 잘 살려고 하는 신자들의 믿음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물론 부흥사 혹은 목회자들 중 에는 축복을 빙자해서 헌금만 뽑아 내려는 사기성이 있는 자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서 복 받도록 가르치는 것이 다 잘못된 부흥사들도 더 큰 사탄의 종들입니다. 또한편 죄의 심판과 천국과 지옥을 가르치면 그것은 현실 도피주의라고 맹렬히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도 고상하게 보이는 사탄의 종들입니다. 교회들을 무더기로 파괴하고 죽이는 자들이 자유주의 신학자들인데 이 들의 대부분은 부활과 영생을 의미상으로만 해석하고 실재하는 부활과 영생 으리 믿지 안는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을 이야기하면 더욱이 저질신앙 내 지는 현실도피주의로 몰아부칩니다. 고상해 보이는 마귀요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 마귀입니다. 영생과 부활이 없고 천국과 지옥이 없다면 예수믿을 필요가 어디 있습니 까내세계관이 뚜렷하니까 사자밥이 되어 순교하면서도 찬송을 부르며 죽을 수가 있고 목이 잘리고 총살을 당하면서도 신앙의 정절을 지키며 기쁨으로 죽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12절에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내게 주리라"고 하셨지 그냥 보상의 약속이 없이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부활을 기대하시지 않고 고상하 게 만민의 죄를 위해 영원히 죽으셨습니까 천만에요. 누누히 "나는 죽었다 가 3일만에 부활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7절에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히 브리서 12장 26절에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더 크고 놀라운 상을 바라 보았기 때문에 잠시의 죄악 의 낙과 행복을 포기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제단에 바칠 수 있었던 행위는 단순히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행했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분"(롬 4:17)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아무 보상도 없는데 독자 이삭을 바쳤던 것 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의 보상만을 제일로 믿고 바라보는 신앙이 참 신앙이 요 산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보상을 믿지 않고 바라지 않는 것은 고상한 불 신앙입니다. 신구약 성경에 하나님이 어떤 명령을 하실 때에는 반드시 거기 에 보상을 약속하셨습니다. "우상 숭배 하지 말라"고 하시고 이 계명을 안 지키면 삼사대까지 그 죄값을 갚아 주고 지키면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신다 고 하셨습니다. 공산주의가 이 땅 위에서 실패한 이유는 물론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신론이 며 유물론이고 폭력주의 등의 원인도 있지만은 칼 막스의 이론에 가장 큰 맹점은 공산주의는 일한 만큼의 보상을 받지 못하는데 그 원인이 있습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보상 받기를 원하고, "내것"을 소유하기를 원하는데 공 산주의는 이 가장 중요한 본능을 충족시켜 주시 못하는데 있었던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을 다스리고 섭리 하시는데 그렇게 어리석은 분이 아닙니다. 목회자도 성경 말씀대로만 가르치고 설교하면 교회는 부흥하게 되어 있고 재정도 충족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 말씀안에 모든 것이 다 들 어 있습니다.
그런데 고상한체 하면서 하나님의 보상을 바로 가르치지 못하 면 신앙생활을 바로 하지 않고 교회도 운영이 안되는 것입니다.
1. 주를 위한 희생에도 보상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10-12절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 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 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 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고 보상을 약속하셨습니다. 산상수훈의 팔복에 매번 보상을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독자를 바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보상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9절에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 은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고 했습니다.
2.선행에도 보상을 약속했습니다. 마태복음 6장 1절에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 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고 하셨는데, 사람에게 칭찬듣기 위해 선을 행하는 것은 불신앙이요, 하나님의 보상을 바라고 행하는 것이 신앙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3. 물질의 보상도 약속했습니다. 마가복음 10장 29-30절을 들어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 를 버린자는 금세에 있어.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얻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복음을 위해서 주님의 교회를 위해 서 물질과 가정을 희생하면 금세와 내세에 크게 갚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을 안믿으니까 못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6장 38절에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주시고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수입되는 물질의 10분의 1을 하나님께서 무조건 나한테 가져오라 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도 분명한 보상을 약속하셨습니다. 말라 기 3장 10절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의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 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분명히 약속하셨고 이것을 믿고 꾸준히 순종해 본 사람은 다 체험을 했습니다. 못 믿으니까 아까와서 못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인데 10분의 1만 바치겠느냐 하는 사람은 고상한 체 하는 불신앙의 사람입니다. 제대로 믿고 제대로 십일조하고 소닐이 오고 환란이 와도 꾸준히 하는 사람은 마침 내 그 말씀이 진실임을 체험합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의 배를 빌려 타시고 언덕 위의 많은 무리에게 설교 하셨는데 나중에 그 배에 가득히 고기를 잡아오게 하신 것을 보면, 적은 헌신 하나에도 보상해 주시는 것을 봅니다. 저와 우리 교회가 교리수호할 때 말로 다 혈용할 수 없는 고통을 받고 핍 박, 협박과 중상모략을 받고 심지어 생명의 위협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나 신앙적 의분과 사명감에서 끝까지 싸워 승리 했습니다. 그랬더니 교회적으 로 개인적으로 큰 축복을 받고 있고 앞으로도 엄청난 상급을 주실 줄 믿습니다.
4. 생명에 대한 보상도 약속했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큰 보상을 약속했습니다. 가장 귀한 것이 생명이므로 생명을 바 쳐 순교한 이들의 보상이 하늘 나라에서 제일 큰 것으로 봅니다. 사도 바울 이 부활장에서 말씀하시다가 결론으로 말씀하기를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자들아 견고하여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니라"고 보상을 약속했습니다. 목숨을 버리면 그에 대한 보상은 더욱 엄청난 것입니다. 예수님도 "내가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고 했습니다.
5. 기도의 보상도 약속 했습니다. 기도의 생활을 많이 한 사람은 물질희생 못지 않게 엄청난 상을 하나님 나라에서 받으리라고 분명히 믿습니다. 물론 세상에서도 보상을 받습니다. 마 태복음 6장 6절에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공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맹할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리 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중언부언하는 기도는 아무 런 상급이나 응답이 있을 수 없고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앞에 진심으 로 하는 기도만이 응답이 있고 상급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마틴루터는 "기도는 중노등이다"고 했습니다. 나라를 위해 교회를 위해 멸 망할 영혼이 구원받기 위해 시간과 정력을 바쳐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 큰 상을 받을 생활입니다. 또한 자신이 기도 생활을 통해 받는 축복은 엄청난 것입니다. 기도는 저금통장에 저금해 두는 것 보다 더 확실한 것입니다. 믿음으로 간절히 기도해 둔 것은 언젠가는 기도의 열매를 따 먹는 때가 온느 것입니다. 10년 후에나 20년 후에나 자식대에 가서라도 기도의 응답은 오는 법입니다. 우리의 모든 생활을 하나님 중심으로 하면서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헌신하면 천배 만배 보상해 주 시는 것입니다. 역대의 위대한 성도들은 이 하나님의 보상을 믿기 때문에 세상 모든 것을 분토와 같이 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가 되어서 하나님의 보상을 믿지 않는 시대가 되었고 도리어 그것은 유 치한 신앙이나 저질적인 신앙으로 취급해 버립니다. 신앙이 타락한 시대의 징조입니다. 그러나 주의 할 것은 헌금이나 봉사를 당장 눈앞에 보이는 잇속으로 한다 든지 조급한 보상을 바라고 하다가 낙심 한다든지 하는 것은 그 동기가 잘 못된 것입니다. 또한 인간에게 뇌물을 쓰듯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중심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된 삶으로, 언젠가는 하나님이 상 주실 것 을 믿고 행동해야 합니다. 인생은 하나님 앞에서 심는 만큼 거두게 되는 법 입니다.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는 법입니다. 악한 것을 심으면 악한 것을 많이 거두게 됩니다. 썩을 것으로 심으면 썩을 것을 거두고 영적인 것을 심으면 영원한 것을 거두고 영적인 것을 심으면 영원한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받게 됩니다. 잠언 22장 4절에 "겸손과 영호와를 경외 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고 참으로 좋은 약속을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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