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청받은 사람 택함받은 사람 (마22:1-14)
본문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소위 흔인 잔치 비유를 읽었습니다. 이 비유 에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천국을 잔칫집에 비유했습니다. 잔 칫집은 풍성하고 흥겨운 경험만큼이나 즐겁고 아름답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시작하면 내 삶이 불편해질 것으로 생각 해서 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이것도 못하고, 저것 도 해서 안되는 것으로 생각해서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오해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어디서 시작하셨습니까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치 에서 시작하셨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의미심장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마치 잔칫집에 참석해서 경험하는 뿌듯하고 아름다운 경험만큼이나 즐겁고 환희에 찬 것임을 우리에 게 가르치시려고 이런 의미 있는 장소를 공생애 사역의 첫번째 장소로 선택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 때의 일반적인 종교 분위기는 에세네파의 영향을 받고 있었 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에세네파는 금욕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독교를 금욕주의적인 것으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 그 시간부터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해서는 안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의 기독교에 대한 편견 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주 파격적으로 그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깨뜨리는 놀라운 사건으로 공생애의 삶을 시작하셨습니다. 물론 주님께서는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조용히 하니과 교제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의 공생애 의 시작은 잔칫집에서였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피하신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 속에 들어가셔서 그들과 같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 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이것은 그 당시 종교인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비난할 때 '저 사람은 먹고 마시고 즐기기를 좋아하는 사람 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도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 자기가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인 것처럼 표정을 짓고 신앙 생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금식도 안히십니다. 즐거워만 하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당신은 왜 그렇게 사십니까' 예수님께서 뭐라고 대답하셨어요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어떻게 금식할 수가 있느니꿋'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신랑과 함께 있을 때 잔칫집의 손님들과 함께 기뻐하며 즐 거워하는 이 성한 잔칫집의 분위기,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 인 것을 보여주고 싶어 하셨습니다. 전에 q느 목사님이 미국 선교사닙과 함께 일하셨는데 한번은 '한 국의 교인들은 그 표정이 왜 늘 울상이에요' 하고 물으시더래요. 그래서 얼른 신통한 대답이 생각나지 않아서 '한국 교인들은 늘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합니다.'고 대답했더니 미국 선교시님이 웃으시면서 이렇게 반문하더랍니다. '아니 한국 교인들은 그 예수님이 다시 사신 것을 잊어버렸나요' 다시 사신 예수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 그러나 우리는 주님 과 합께 교제하며 살아가는 즐거움을 놓치는 경우가 습니다. 여러분, 천국은 잔칫집과 같은 곳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이 잔칫집 의 기쁨만큼이나 성하고 즐거운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말해요 '목시은 왜 골프를 안하세요' 그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삶이, 목회를 하는 것이 너무 즐겁고 놀라워서 그 일하다 보니까 골프 할 시간이 없을 따름입니다. 그만큼 예수 믿는 삶 은 우리에게 놀라운 희열과 기쁨을 제공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외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시고 큰 잔치를 베푸시고 잔칫집과 같은 천국 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리고 이 놀라운 삶에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초청에 반응한 사람들을 보면 세 종류의 사람을 볼 수가 있습니다.
1. 세상일씨만 접착하는 사람입퍼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을 외면했던 사람들입니다. 오늘 주신 말 4, 5절에 보면 이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가로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 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 더니 저희가 돌아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 차로 가고' 했습니다. 아름다운 잔치가 열렸는데 어떤 사람은 마침 밭을 샀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산 밭을 돌보기 위해서 부득이 잔치에 참석할 수가 없다고 말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의 상업 때문에 잔치에 갈 수 없다고 사 양했습니다. 예수님때 중동 지방에서는 고관이나 왕이 손님을 초청할 때 항상 두 번 초청했다고 합니다. 맨 처음에는 메시지를 보냅니다. 그 다음 잔 치가 임박해서 다시 확인을 했습니다. 하니님께서 우리를 초청하시는 것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 안에 사는 삶이 얼마나 놀라운가를 알게 하기 위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 메시아 가 오실 것을 선포하고 주님이 오실 때가 임박해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메시야가 오실 날이 임박했다고 사람들에게 알리셨습니다. 사람들은 걸으로는 다 메시야를 기다린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메시야가 이 땅에 찾아오셨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이 놀라운 사건 때문에 감 격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무관심 속에서 주님은 잊혀져가고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1절 이하에서 '자기 땅에 오매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소수의 사람들이 주님을 영접했을 뿐이었습니다. 왜 우리가 우리를 찾아오신 메시야를 영접하지 못합니까 왜 우리는 메시야를 통해서 소개되고 있는 이 놀랍고 벅찬 삶 속에 들어가지 않습니까 너무 일이 바빠서 나올 수가 없으시다고요 예수님께서는 밭을 돌보고 또 장사를 한다는 그 자체를 비난하신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밭이나 사섭 때문에 그보다 더 중요한 관심, 그보다 더 중요한 사건을 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인생의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세주로서 메시야가 오실 것을 얼마나 기다려 왔습니까
그런데 그들은 일상적인 삶을 구실로 이 놀라운 초 청을 거절하고 있습니다. 장사하는 것,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얼마나 귀합니까 다 좋은 일 입니다. 그러나 그 좋은 일을 하다가 가장 좋은 일을 잊어버릴 수 있 다는 사실을 우리는 오늘 주신 말씀에서 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이 맡은 일에 대해서 성실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적인 삶에 대한 성실 때문에 창조주 하나님을 외면 하면 그때부터 일에 대한 우리의 성실성이 우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내가 하고 있는 사업이 나로 하여금 하니닙을 더 사랑하게 만든다면 우리는 이 사업을 비난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오히려 이 사업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가난하고 어려웠을 때 주 님을 잘 섬기던 사람이 사업이 잘 되기 시작하면서 주님을 외면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제를 잃어버린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이런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메시야를 기다 다고 말해 왔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그들은 이 중요한 주제 앞에 무관 심했습니다. 그들은 일상생활에 대한 지나친 집착 때문에 그보다 더 중요한 목적과 삶의 의미를 망각한 채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것이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교훈입니다.
2. 그리스도를 락하고 거절하는 사람입니다. 6절 이하의 말씀을 보세요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니 임금이 노하여 군대 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싼' 했습니다. 마태복음 21장 45절 이하에 보면 이 말씀의 배경을 알 수가 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신 줄 알고 잡고자 하나' 습니다. 그들도 예수님의 비유가 자신들을 가리키는 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잡으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오늘 주신 말씀 이 시작되었습니다.그리고 그 말씀이 끝난 다음절인 15절을 보세요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로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론하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비유를 말씀하실 때 예루살렘 거리에서는 나사렛 예수 를 죽이기 위한 음모가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왜 그런 일을 당하셔야 했습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기쁜 소식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우리를 하니넙의 나라로 초청하십니다. 나 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제 하시며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하시며 기쁘게 살게 하기 위해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예수님에게 무관심합니다. 아니 주님을 죽일 필요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주님을 전하는 사람까지 무차별하게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에 대해 무관심했던 사람들과 구체적으로 주님을 핍박하고 있었던 사람들을 구별하고 계신 것을 오늘 주신 말에서 보 여주고 있습니다. 누가 예수님을 핍박했습니까 그 당시의 대제사장 들과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음모와 살인 계획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거리는 음모의 도시, 살인의 도시로 변모해 가고 있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보니까 임금이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군대를 보냈 습니다. 그리고 군인들은 동네를 모조리 불살랐습니다. 이 사건이 역 사적으로 그대로 실현되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예수님을 향해 돌 을 던지고 피를 뚜리게 만들었던 예루살을 바라보시면서 예수님이 눈물을 홀리신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드디어 이 도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예수의 복음을 전하던 사람들이 피를 흘리게 만들었습니다. 그로부터 약 4o년이 지난 후 예 루살렘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로마의 타이터스 황제가 파견한 군대들 이 이 팔레스틴에 찾아와서 문자 그대로 예루살렘을 돌 하나 남기지 않고 무너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도시 전체를 불사르고 유대인을 로마와 전세계로 끌고가 노예로 삼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그 를 거절하고 불신앙으로 가득 찼던 도시를 심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도시는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떻습니다. 이 암흑의 도시에 하나님의 영이 떠났을때 더 이상 예루살렘은 거룩한 도시일 수가 없었습니다. 메시야를 핍박하고 거절 하는 결과가 그렇게 되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3. 이방 사람들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 8절 이하를 보세요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흔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 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이 가득한지라' 소위 선민이라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찾아오신 메시야를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 니까 하니닙은 마침내 이 복음을 이방인에게 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복음이 유럽과 아프리카와 남미 북미 전세계를 돌아 아시아까지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이 복음을 듣고 초청받아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이 잔치 자리에는 빈자리가 없습니다. 손님들이 가득하게 모여들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새롭게 초청 받은 무리 가운데 한 사람이 우리입니다. 이 비유의 말씀은 역사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 나지 않습니다, 초청을 받아서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이제 왕이 들어옵니다. 왕의 눈이 예복을 입지 않고 잔치에 참석한 사람에게 머 물렀습니다. 그 당시에는 중동을 중심한 나라의 궁증에서 열리는 파티에서는 궁 궐문 밖에서 예복을 나누어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초대받은 사람이 집에 예복이 없어도 미리 가서 나눠주는 예복으로 갈아 입으면 되었었 습니다. 파사 나라 궁중에서는 오신 손님들에게 예복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아예 예복을 한벌씩 선물로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 어떤 사람이 예복을 나눠주는데 받아 입지 아니하고 요샛말로 캐주얼한 옷을 입고 들어갔습니다. 이 사람의 문제가 무엇입 니까 예수님이 단순히 입는 옷만을 위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까 이 사건을 통해서 오늘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이 예복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님의 보혈과의 관계라고만 생각 할 것이 아닙니다. 이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이 사람은 잔치에 참석하는 참된 목적을 잊어버렸습니다. 이 잔치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오늘 주신 말씀 2절에 잔치의 목적이 선포되어 있습니다.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흔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 니'했습니다. 이 잔치가 누구를 위해 열렸어요아들인 왕자를 위한 잔치입니다. 그러나 자기 멋대로 입은 옷을 고집하면서 잔치에 참여한 사람은 무엇 이 문제입니까 궁중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하던지 왕과 왕 자를 기쁘시게 하려고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습니다. 왕자의 결혼식이 니 만큼 어떻게 하는 것이 왕자를 기쁘시게 하는 것인가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모든 손님이 예복을 입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복을 입지 않고 제멋대로 옷을 입은 사람은 왕과 왕자를 기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기 중심의 생각을 가지고 있 었습니다. 오늘 우리 한국 교인의 수는 전체 인구의 4분의 l에 이른다 합니다. 주일이면 많은 사람이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럽니다. 우리는 이것으로 만족해야 합니까 오늘 우리의 잔치는 어떻습니까 잔치의 주인공이 누굽니까 하니님과 그의 아들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이 주인공 되시는 분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마음을 쓰고 있습니까 우리 교회에 많은 사람이 나오시는 것을 우리는 기뻐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만족뻐서는 안됩니다. 더 중요한 문제는 우리 교회에 출석 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우리의 마음과 생활이 변 화되어 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궁중의 초청을 받으면 궁중의 법대로 예복을 받아 입을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들이 입고 있던 것은 벗어야 합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왕자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잔치에 참석했다면 마땅히 새 옷을 입 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연륜이 쌓입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우리 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직도 내 방식, 내 생각, 내 주장, 내 철학이 나를 지배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 내 생각, 내 주장, 내 방법, 내 철학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내 것을 포기할 용의가 있습니까 내 과거의 삶의 방법과 생각을 청산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옷을 입기 원하십니까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도전입니다.
그런데 오늘 주신 말씀에서 예수님은 한 사람을 지적하시면서 이야 기하셨습니다.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을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 고' 했습니다. 어떤 성경학자는 이 구절을 해석하면서 '아마도 이때 예수님은 이 한 사람을 지적하시면서 가 유다를 생각하고 계셨는지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가 유다는 어떤 사람인데요 그는 청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계신 곳에 같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이면 어디든지 가 유다도 있었습니다.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에게 '가 유다여, 당신은 정말 마음으로 부터 예수님을 만나고 있었소'라고 질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그는 그렇지 못했었습니다. 이제 오늘 주시는 말씀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14절 말씀을 보세요 '청함을 받는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했습니다. 여러분, 가 유다를 보세요 이 사람은 예수님에게 키스까지 했습니다. 가까운 사람 아닙니까그건데 예수님께서 그에게 '너1가 할 일 을 속히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가 유다가 예수님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있었을까요 예수님의 손 등에 키스까지 하는 이 사람을 누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까 누가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니라고 말할 수가 있 습니까 한번은 예수님이 베다니 마리아의 집을 방문하셨습니다.예수님의 큰 사랑을 받은 집입니다. 그래서 이 집에 예수님이 오시자마자 마리 아는 예수님 앞에 나아와 자기가 가지고 있던 가장 소중한 옥합을 깨 뜨려 그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채로 발을 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헌신의 모습입니까 그때 그 옆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가 유다가 뭐랬어요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 이것을 많은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얼른 들을 때 얼마나 의로운 말입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유다의 말 그 바탕에 깔려 있는 이 사람의 인격과 신앙과 그 삶의 모습을 바라보 고 계셨습니다. 마리아는 자기의 가장 소중한 옥합을 깨뜨렸습니다. 마리아의 마음 속에는 한가지 관심밖에는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어떻 게 기쁘게 해 드릴까' 하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하는 말에 속지 않으십니다.
물론 우리는 볼쌍한 사람을 도와야 합니다. 의로운 투쟁에 가담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 말씀 앞에서 저마다 물어 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하는 수많은 말보다도 내 마음 깊은 곳에 정말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해 드리 고 싶은 뜨거운 동기가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습니까 오늘 주신 말씀 12절을 보세요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 구무언이어늘' 했습니다. 예복을 입고 들어와야 하는데, 예복을 입을 수 있었는데, 일부러 입 지 않고 잔치 자리까지 들어온 이 사람, 입은 있어도 할 말이 없었습니다. 여러분, 가 유다가 주님의 손등에 키스하는 그 순간까지도 그 의 주변에 있던 제자들이 유다가 가짜라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를 의심하지도 않았습니다. 주님이 유다를 보시면서 '네가 할 일을 속히 하라.' 말하실 때 가 유다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다 알고 계시는데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유다는 머리를 숙이고 주님의 눈동자를 피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새' 왕의 눈길이 사람의 심장과 폐부를 살피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을 향해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내 행동의 동기를 보십니다. 내가 무 엇 때문에 교회에 나오는지 그 동기는 그 분만이 아십니다. 저는 부족 하지만 주님을 대신해서 묻습니다. 여러분은 이전의 헌웃을 벗으셨습 니까 그리고 주님이 원하시는 거룩한 예복을 입으셨습니까 이 말 앞에서 대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초청을 받은 사람은 많아도 택함을 받은 사람은 적습니다. 사순절을 맞아 우리 모두 거룩한 예복으로 갈 아입고 주님의 잔치에 참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오해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어디서 시작하셨습니까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치 에서 시작하셨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의미심장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마치 잔칫집에 참석해서 경험하는 뿌듯하고 아름다운 경험만큼이나 즐겁고 환희에 찬 것임을 우리에 게 가르치시려고 이런 의미 있는 장소를 공생애 사역의 첫번째 장소로 선택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 때의 일반적인 종교 분위기는 에세네파의 영향을 받고 있었 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에세네파는 금욕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독교를 금욕주의적인 것으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 그 시간부터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해서는 안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의 기독교에 대한 편견 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주 파격적으로 그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깨뜨리는 놀라운 사건으로 공생애의 삶을 시작하셨습니다. 물론 주님께서는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조용히 하니과 교제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의 공생애 의 시작은 잔칫집에서였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피하신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 속에 들어가셔서 그들과 같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 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이것은 그 당시 종교인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비난할 때 '저 사람은 먹고 마시고 즐기기를 좋아하는 사람 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도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 자기가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인 것처럼 표정을 짓고 신앙 생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금식도 안히십니다. 즐거워만 하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당신은 왜 그렇게 사십니까' 예수님께서 뭐라고 대답하셨어요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어떻게 금식할 수가 있느니꿋'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신랑과 함께 있을 때 잔칫집의 손님들과 함께 기뻐하며 즐 거워하는 이 성한 잔칫집의 분위기,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 인 것을 보여주고 싶어 하셨습니다. 전에 q느 목사님이 미국 선교사닙과 함께 일하셨는데 한번은 '한 국의 교인들은 그 표정이 왜 늘 울상이에요' 하고 물으시더래요. 그래서 얼른 신통한 대답이 생각나지 않아서 '한국 교인들은 늘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합니다.'고 대답했더니 미국 선교시님이 웃으시면서 이렇게 반문하더랍니다. '아니 한국 교인들은 그 예수님이 다시 사신 것을 잊어버렸나요' 다시 사신 예수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 그러나 우리는 주님 과 합께 교제하며 살아가는 즐거움을 놓치는 경우가 습니다. 여러분, 천국은 잔칫집과 같은 곳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이 잔칫집 의 기쁨만큼이나 성하고 즐거운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말해요 '목시은 왜 골프를 안하세요' 그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삶이, 목회를 하는 것이 너무 즐겁고 놀라워서 그 일하다 보니까 골프 할 시간이 없을 따름입니다. 그만큼 예수 믿는 삶 은 우리에게 놀라운 희열과 기쁨을 제공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외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시고 큰 잔치를 베푸시고 잔칫집과 같은 천국 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리고 이 놀라운 삶에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초청에 반응한 사람들을 보면 세 종류의 사람을 볼 수가 있습니다.
1. 세상일씨만 접착하는 사람입퍼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을 외면했던 사람들입니다. 오늘 주신 말 4, 5절에 보면 이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가로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 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 더니 저희가 돌아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 차로 가고' 했습니다. 아름다운 잔치가 열렸는데 어떤 사람은 마침 밭을 샀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산 밭을 돌보기 위해서 부득이 잔치에 참석할 수가 없다고 말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의 상업 때문에 잔치에 갈 수 없다고 사 양했습니다. 예수님때 중동 지방에서는 고관이나 왕이 손님을 초청할 때 항상 두 번 초청했다고 합니다. 맨 처음에는 메시지를 보냅니다. 그 다음 잔 치가 임박해서 다시 확인을 했습니다. 하니님께서 우리를 초청하시는 것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 안에 사는 삶이 얼마나 놀라운가를 알게 하기 위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 메시아 가 오실 것을 선포하고 주님이 오실 때가 임박해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메시야가 오실 날이 임박했다고 사람들에게 알리셨습니다. 사람들은 걸으로는 다 메시야를 기다린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메시야가 이 땅에 찾아오셨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이 놀라운 사건 때문에 감 격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무관심 속에서 주님은 잊혀져가고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1절 이하에서 '자기 땅에 오매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소수의 사람들이 주님을 영접했을 뿐이었습니다. 왜 우리가 우리를 찾아오신 메시야를 영접하지 못합니까 왜 우리는 메시야를 통해서 소개되고 있는 이 놀랍고 벅찬 삶 속에 들어가지 않습니까 너무 일이 바빠서 나올 수가 없으시다고요 예수님께서는 밭을 돌보고 또 장사를 한다는 그 자체를 비난하신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밭이나 사섭 때문에 그보다 더 중요한 관심, 그보다 더 중요한 사건을 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인생의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세주로서 메시야가 오실 것을 얼마나 기다려 왔습니까
그런데 그들은 일상적인 삶을 구실로 이 놀라운 초 청을 거절하고 있습니다. 장사하는 것,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얼마나 귀합니까 다 좋은 일 입니다. 그러나 그 좋은 일을 하다가 가장 좋은 일을 잊어버릴 수 있 다는 사실을 우리는 오늘 주신 말씀에서 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이 맡은 일에 대해서 성실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적인 삶에 대한 성실 때문에 창조주 하나님을 외면 하면 그때부터 일에 대한 우리의 성실성이 우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내가 하고 있는 사업이 나로 하여금 하니닙을 더 사랑하게 만든다면 우리는 이 사업을 비난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오히려 이 사업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가난하고 어려웠을 때 주 님을 잘 섬기던 사람이 사업이 잘 되기 시작하면서 주님을 외면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제를 잃어버린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이런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메시야를 기다 다고 말해 왔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그들은 이 중요한 주제 앞에 무관 심했습니다. 그들은 일상생활에 대한 지나친 집착 때문에 그보다 더 중요한 목적과 삶의 의미를 망각한 채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것이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교훈입니다.
2. 그리스도를 락하고 거절하는 사람입니다. 6절 이하의 말씀을 보세요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니 임금이 노하여 군대 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싼' 했습니다. 마태복음 21장 45절 이하에 보면 이 말씀의 배경을 알 수가 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신 줄 알고 잡고자 하나' 습니다. 그들도 예수님의 비유가 자신들을 가리키는 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잡으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오늘 주신 말씀 이 시작되었습니다.그리고 그 말씀이 끝난 다음절인 15절을 보세요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로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론하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비유를 말씀하실 때 예루살렘 거리에서는 나사렛 예수 를 죽이기 위한 음모가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왜 그런 일을 당하셔야 했습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기쁜 소식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우리를 하니넙의 나라로 초청하십니다. 나 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제 하시며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하시며 기쁘게 살게 하기 위해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예수님에게 무관심합니다. 아니 주님을 죽일 필요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주님을 전하는 사람까지 무차별하게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에 대해 무관심했던 사람들과 구체적으로 주님을 핍박하고 있었던 사람들을 구별하고 계신 것을 오늘 주신 말에서 보 여주고 있습니다. 누가 예수님을 핍박했습니까 그 당시의 대제사장 들과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음모와 살인 계획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거리는 음모의 도시, 살인의 도시로 변모해 가고 있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보니까 임금이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군대를 보냈 습니다. 그리고 군인들은 동네를 모조리 불살랐습니다. 이 사건이 역 사적으로 그대로 실현되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예수님을 향해 돌 을 던지고 피를 뚜리게 만들었던 예루살을 바라보시면서 예수님이 눈물을 홀리신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드디어 이 도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예수의 복음을 전하던 사람들이 피를 흘리게 만들었습니다. 그로부터 약 4o년이 지난 후 예 루살렘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로마의 타이터스 황제가 파견한 군대들 이 이 팔레스틴에 찾아와서 문자 그대로 예루살렘을 돌 하나 남기지 않고 무너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도시 전체를 불사르고 유대인을 로마와 전세계로 끌고가 노예로 삼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그 를 거절하고 불신앙으로 가득 찼던 도시를 심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도시는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떻습니다. 이 암흑의 도시에 하나님의 영이 떠났을때 더 이상 예루살렘은 거룩한 도시일 수가 없었습니다. 메시야를 핍박하고 거절 하는 결과가 그렇게 되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3. 이방 사람들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 8절 이하를 보세요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흔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 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이 가득한지라' 소위 선민이라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찾아오신 메시야를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 니까 하니닙은 마침내 이 복음을 이방인에게 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복음이 유럽과 아프리카와 남미 북미 전세계를 돌아 아시아까지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이 복음을 듣고 초청받아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이 잔치 자리에는 빈자리가 없습니다. 손님들이 가득하게 모여들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새롭게 초청 받은 무리 가운데 한 사람이 우리입니다. 이 비유의 말씀은 역사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 나지 않습니다, 초청을 받아서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이제 왕이 들어옵니다. 왕의 눈이 예복을 입지 않고 잔치에 참석한 사람에게 머 물렀습니다. 그 당시에는 중동을 중심한 나라의 궁증에서 열리는 파티에서는 궁 궐문 밖에서 예복을 나누어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초대받은 사람이 집에 예복이 없어도 미리 가서 나눠주는 예복으로 갈아 입으면 되었었 습니다. 파사 나라 궁중에서는 오신 손님들에게 예복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아예 예복을 한벌씩 선물로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 어떤 사람이 예복을 나눠주는데 받아 입지 아니하고 요샛말로 캐주얼한 옷을 입고 들어갔습니다. 이 사람의 문제가 무엇입 니까 예수님이 단순히 입는 옷만을 위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까 이 사건을 통해서 오늘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이 예복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님의 보혈과의 관계라고만 생각 할 것이 아닙니다. 이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이 사람은 잔치에 참석하는 참된 목적을 잊어버렸습니다. 이 잔치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오늘 주신 말씀 2절에 잔치의 목적이 선포되어 있습니다.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흔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 니'했습니다. 이 잔치가 누구를 위해 열렸어요아들인 왕자를 위한 잔치입니다. 그러나 자기 멋대로 입은 옷을 고집하면서 잔치에 참여한 사람은 무엇 이 문제입니까 궁중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하던지 왕과 왕 자를 기쁘시게 하려고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습니다. 왕자의 결혼식이 니 만큼 어떻게 하는 것이 왕자를 기쁘시게 하는 것인가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모든 손님이 예복을 입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복을 입지 않고 제멋대로 옷을 입은 사람은 왕과 왕자를 기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기 중심의 생각을 가지고 있 었습니다. 오늘 우리 한국 교인의 수는 전체 인구의 4분의 l에 이른다 합니다. 주일이면 많은 사람이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럽니다. 우리는 이것으로 만족해야 합니까 오늘 우리의 잔치는 어떻습니까 잔치의 주인공이 누굽니까 하니님과 그의 아들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이 주인공 되시는 분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마음을 쓰고 있습니까 우리 교회에 많은 사람이 나오시는 것을 우리는 기뻐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만족뻐서는 안됩니다. 더 중요한 문제는 우리 교회에 출석 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우리의 마음과 생활이 변 화되어 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궁중의 초청을 받으면 궁중의 법대로 예복을 받아 입을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들이 입고 있던 것은 벗어야 합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왕자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잔치에 참석했다면 마땅히 새 옷을 입 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연륜이 쌓입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우리 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직도 내 방식, 내 생각, 내 주장, 내 철학이 나를 지배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 내 생각, 내 주장, 내 방법, 내 철학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내 것을 포기할 용의가 있습니까 내 과거의 삶의 방법과 생각을 청산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옷을 입기 원하십니까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도전입니다.
그런데 오늘 주신 말씀에서 예수님은 한 사람을 지적하시면서 이야 기하셨습니다.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을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 고' 했습니다. 어떤 성경학자는 이 구절을 해석하면서 '아마도 이때 예수님은 이 한 사람을 지적하시면서 가 유다를 생각하고 계셨는지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가 유다는 어떤 사람인데요 그는 청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계신 곳에 같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이면 어디든지 가 유다도 있었습니다.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에게 '가 유다여, 당신은 정말 마음으로 부터 예수님을 만나고 있었소'라고 질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그는 그렇지 못했었습니다. 이제 오늘 주시는 말씀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14절 말씀을 보세요 '청함을 받는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했습니다. 여러분, 가 유다를 보세요 이 사람은 예수님에게 키스까지 했습니다. 가까운 사람 아닙니까그건데 예수님께서 그에게 '너1가 할 일 을 속히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가 유다가 예수님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있었을까요 예수님의 손 등에 키스까지 하는 이 사람을 누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까 누가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니라고 말할 수가 있 습니까 한번은 예수님이 베다니 마리아의 집을 방문하셨습니다.예수님의 큰 사랑을 받은 집입니다. 그래서 이 집에 예수님이 오시자마자 마리 아는 예수님 앞에 나아와 자기가 가지고 있던 가장 소중한 옥합을 깨 뜨려 그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채로 발을 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헌신의 모습입니까 그때 그 옆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가 유다가 뭐랬어요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 이것을 많은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얼른 들을 때 얼마나 의로운 말입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유다의 말 그 바탕에 깔려 있는 이 사람의 인격과 신앙과 그 삶의 모습을 바라보 고 계셨습니다. 마리아는 자기의 가장 소중한 옥합을 깨뜨렸습니다. 마리아의 마음 속에는 한가지 관심밖에는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어떻 게 기쁘게 해 드릴까' 하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하는 말에 속지 않으십니다.
물론 우리는 볼쌍한 사람을 도와야 합니다. 의로운 투쟁에 가담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 말씀 앞에서 저마다 물어 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하는 수많은 말보다도 내 마음 깊은 곳에 정말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해 드리 고 싶은 뜨거운 동기가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습니까 오늘 주신 말씀 12절을 보세요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 구무언이어늘' 했습니다. 예복을 입고 들어와야 하는데, 예복을 입을 수 있었는데, 일부러 입 지 않고 잔치 자리까지 들어온 이 사람, 입은 있어도 할 말이 없었습니다. 여러분, 가 유다가 주님의 손등에 키스하는 그 순간까지도 그 의 주변에 있던 제자들이 유다가 가짜라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를 의심하지도 않았습니다. 주님이 유다를 보시면서 '네가 할 일을 속히 하라.' 말하실 때 가 유다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다 알고 계시는데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유다는 머리를 숙이고 주님의 눈동자를 피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새' 왕의 눈길이 사람의 심장과 폐부를 살피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을 향해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내 행동의 동기를 보십니다. 내가 무 엇 때문에 교회에 나오는지 그 동기는 그 분만이 아십니다. 저는 부족 하지만 주님을 대신해서 묻습니다. 여러분은 이전의 헌웃을 벗으셨습 니까 그리고 주님이 원하시는 거룩한 예복을 입으셨습니까 이 말 앞에서 대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초청을 받은 사람은 많아도 택함을 받은 사람은 적습니다. 사순절을 맞아 우리 모두 거룩한 예복으로 갈 아입고 주님의 잔치에 참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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