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의 하나님 (마22:23-32)
본문
우리가 믿는 우리의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 이십니다.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지켜 주시고 보호하여 주시는 하나님이 우리가 믿는 우리의 하나님입니다.다윗은 시편 23편에서 구체적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이름 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그의 고백은 구체적이고 체험적이고 확실한 고백이었습니다.우리의 신앙도 구체적이 고 체험적이고 그리고 확실해야 합니다.하나님은 분명히 '살아계신 하나님'이란 고 백이 우리에게 분명히 있어야 합니다. 오는 본문 말씀에 보면 소위 사두개파에 속하는 ;사두개인 =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예수님 당시의 유대 사회는 바리새파,사두개파 그리고 열심당으로 알려진 엣세 네파 등의 종교분파가 있었습니다.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사두개인들은 소수의 집단 이었지만 귀족계급에 속하는 고위층의 사람들이었습니다.대부분이 정치,종교 지도자 들이었습니다.그들은 오늘 봄문에서보면,예수님과 논쟁하기위해 예수님께 모여들었 습니다.그들의 주장은 ' 부활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본문 23절에 부활이 없다하는 사두개인들,그들은 사도행전 23:8절에 보면 부활 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부활이나 영적인 세계를 부인하였습니다.그들에게 오직 관심이 있는 것은 현세였으며,그들이 누리는 부귀와 권좌였습니다.그래서 그들은 '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오해하고,잘못알고 있었습니다. 본문에서 그들이 예수님께 논쟁하기 위해서 사용한 예화는 아주 유치한 것이었 습니다. 일곱 형제가 있었는데, 제일 맏형이 결혼했다가 자식이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형수 를 취할수 있는 법이 당시에 있었습니다.우리나라에도 옛날에 형사취수제라고 해서 이러한 관습이 있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일곱형제가 차례로 계속 죽어서 한 여자가 일곱형제에게 시집을 간 결과를 낳았습니다.그러면 부활 때에 이 여자는 누구의 아 내가 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29절에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고로 오해하 였도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사두개인들의 오해는, 하나님의 나라를 현세의 연장으 로 보았다는데 있습니다.그들은 너무나 현실에 집착하였습니다.그래서 부활도 없고, 영적인 세계도 없고,하나님의 나라도 바로 현실속에서 이루어 지는것으로 보았습니다.그들은 현실에서 너무나 많은 기득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권력과 재산과 명예를 모두 가지고 있었던 사두게인들 1 그들은 사실 하나님의 나라를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그리고 부활을 한사코 인정하 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그들은 뒤바뀌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현실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을 원하고 있 었습니다.그 결과 ' 그들은 죽은자의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본문 32절에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 이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은 죽은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자의 하나님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신앙생활 하는 우리들에게도 대단히 중요한 말씀입니다.우리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우리는 산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산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 죽은자의 부활을 우리는 반드시 믿어야합니다.우리의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이며 그리고 생명의 종교입니다.우리모두는 누구나 다 한번은 죽지만 사실 우리는 죽지 않습니다.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우리들에게는 죽음 이 없으며 하나님 나라의 영생이 있는 것입니다.우리가 지금 이 세상 가운데 속해 있지만 우리는 동시에 하나님의 나라에 속하여 있습니다.그 나라는 결코 사두개인들 이 오해하였던 세속의 연장이 아니라 이 나라는 영적인 나라인 것입니다.하나님이 살아계셔서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인 것입니다.우리는 지금 우리 안에 살아계시는, 그래서 말씀하시는,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해야합니다.하나님은 결코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자의 하나님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미워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형식적인 종교인들,습관적인 종교인들이었습니다.마태복음 23장에 보면 습관적이고 형식적인 종교인들,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죽은 하나님을 믿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책망하시는 말씀입니다.23장을 읽어보면 예수님이 분노하셨음을 쉽게 알수 있습니다. 화 있을진져 라는 말을 7번이나 반복사용 하시면서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하면서 분노하신 것을 찾아 볼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말만하고 행치 않았으며
(3) 사람들에게 보이고자
(5)하는 믿음을 가졌으 며 높아지려는 교만이 저들에게 있었으며 형식적인 율법의 준수는 있었으나 율법의 정신을 잃어버렸으며(23) 회칠한 무덤과도 같이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며(27)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 되 안으로는 불법과 외식이 가득하(28)였습니다. 이들은 이사야의 예언대로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먼 = 그러한 종교인들이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원하는 사람은 형식적인 종교인이 아니라 참다운 신앙인입니다. 하나님은 죽은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자의 하나님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 억하여야 합니다.우리의 삶이 살아계신 하나님과 날마다 동행하며,살아계신 하나님 이 나와 우리 가정과 우리 교회위에 함께하심을 분명히 확신 하면서,감사하며,찬양 하며,감격함을 가지고 산자의 하나님을 따르기를 우리의 하나님은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이 예배는 죽은 예배가 아니라 살아 있는 예배가 되어야만 합니다.창세기 4장에 보면 아벨의 제사와 가인의 제사가 나옵니다.그들은 각기 자신의 소산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사만을 받으셨습니다.창세기 4:3,4에 2 세월이 지난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말씀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께서는 제물만 받고, 안받고 하신 것이 아니라 제물과 함 께 가인과 아벨을 즉, 그들의 삶을 받으시기도 했고 안받으시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아니 하셨겠습니까 성경에 명확한 이유는 설명되 어 있지 않지만 가인의 제사는 삶이 없는 제사,형식적인 제사,즉 죽은 제사 죽은 예 배 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되어집니다.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어봉S구驪 만약에 이 예배를 하나님이 받지 않으신다고 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로마서 12:1에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 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예배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 하나님이 받으시는 삶은 죽은자의 것이 아닌 산자의 것이며,산자의 예배이며,산자의 삶,산자의 하나님,산자의 경배와 찬양을 받으시는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기억하고, 형식적인 종교인이 아니라 살아 있는 신앙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지금도 분명히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요한복음 11:25에 나는 '부활이요 생명'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복음 6:35에서는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14:6절에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노라 고 말씀하셨습니다.구체적인 우리의 삶속에서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참다운 신앙인의 삶을 살아야 할것입니다. ' 살아계신 하나님은 우리를 먼저 찾아오셔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임 마누엘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요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이 산자의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의 삶입니다. ' 살아계신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시고,우리를 보호하시고 간섭하여 우리를 지켜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는 고백이 산자의 하나님을 따르는 우리들의 고백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걱정과 근심,어떠한 두려움도 떨쳐버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속에서 감사하고 찬양 하며 감격함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 살아계신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성장하고 변화되어야 합니다.산자의 하나님을 따 르는 자들의 특성은 성장과 변화에 있습니다.날마다 새롭게 더욱 성숙하게 변화되어 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너희의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 고 우리를 조롱합니다.그 때 무엇이라고 하시렵니까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인 도하시며,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형식적 인 종교인이 아니라 살아 있는 신앙인이 되어야 할것입니다. 부활이 없다고 하는 자들,시편 14편 1절 말씀대로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 이 없다 고 하는 자들은 진정 어리석은 자들입니다.그들도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곧 알게됩니다.그러나 그 때는 이미 늦은 심판의 때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이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보다 더욱 어리석은 사람이 있습니다.그 사람들 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교회에 출석을 하면서도,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 을 분명히 확신하지 못하고 산자의 하나님을 따르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후 안식후 첫날새벽, 여자들이 향품을 가지고 예수 의 시체를 찾았습니다. 이 때 찬란한 옷을 입은 천사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어찌하여 산자를 죽은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눅24:5-6)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며,우리의 예배와 기도를 기뻐받으시는 분이라는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사두개인들처럼 죽은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자의 하나님'을 따라서 복된 삶,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기원합니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감사 드립니다. 저희들의 신앙이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들처럼 형식적인 죽은 신앙이 아니라 살아있는 산 신앙을 가지고 '산자의 하나님'을 따르기를 원합니다. 날마다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산 예배를 드리게 하시며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그런데 문제는 일곱형제가 차례로 계속 죽어서 한 여자가 일곱형제에게 시집을 간 결과를 낳았습니다.그러면 부활 때에 이 여자는 누구의 아 내가 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29절에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고로 오해하 였도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사두개인들의 오해는, 하나님의 나라를 현세의 연장으 로 보았다는데 있습니다.그들은 너무나 현실에 집착하였습니다.그래서 부활도 없고, 영적인 세계도 없고,하나님의 나라도 바로 현실속에서 이루어 지는것으로 보았습니다.그들은 현실에서 너무나 많은 기득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권력과 재산과 명예를 모두 가지고 있었던 사두게인들 1 그들은 사실 하나님의 나라를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그리고 부활을 한사코 인정하 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그들은 뒤바뀌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현실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을 원하고 있 었습니다.그 결과 ' 그들은 죽은자의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본문 32절에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 이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은 죽은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자의 하나님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신앙생활 하는 우리들에게도 대단히 중요한 말씀입니다.우리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우리는 산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산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 죽은자의 부활을 우리는 반드시 믿어야합니다.우리의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이며 그리고 생명의 종교입니다.우리모두는 누구나 다 한번은 죽지만 사실 우리는 죽지 않습니다.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우리들에게는 죽음 이 없으며 하나님 나라의 영생이 있는 것입니다.우리가 지금 이 세상 가운데 속해 있지만 우리는 동시에 하나님의 나라에 속하여 있습니다.그 나라는 결코 사두개인들 이 오해하였던 세속의 연장이 아니라 이 나라는 영적인 나라인 것입니다.하나님이 살아계셔서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인 것입니다.우리는 지금 우리 안에 살아계시는, 그래서 말씀하시는,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해야합니다.하나님은 결코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자의 하나님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미워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형식적인 종교인들,습관적인 종교인들이었습니다.마태복음 23장에 보면 습관적이고 형식적인 종교인들,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죽은 하나님을 믿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책망하시는 말씀입니다.23장을 읽어보면 예수님이 분노하셨음을 쉽게 알수 있습니다. 화 있을진져 라는 말을 7번이나 반복사용 하시면서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하면서 분노하신 것을 찾아 볼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말만하고 행치 않았으며
(3) 사람들에게 보이고자
(5)하는 믿음을 가졌으 며 높아지려는 교만이 저들에게 있었으며 형식적인 율법의 준수는 있었으나 율법의 정신을 잃어버렸으며(23) 회칠한 무덤과도 같이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며(27)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 되 안으로는 불법과 외식이 가득하(28)였습니다. 이들은 이사야의 예언대로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먼 = 그러한 종교인들이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원하는 사람은 형식적인 종교인이 아니라 참다운 신앙인입니다. 하나님은 죽은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자의 하나님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 억하여야 합니다.우리의 삶이 살아계신 하나님과 날마다 동행하며,살아계신 하나님 이 나와 우리 가정과 우리 교회위에 함께하심을 분명히 확신 하면서,감사하며,찬양 하며,감격함을 가지고 산자의 하나님을 따르기를 우리의 하나님은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이 예배는 죽은 예배가 아니라 살아 있는 예배가 되어야만 합니다.창세기 4장에 보면 아벨의 제사와 가인의 제사가 나옵니다.그들은 각기 자신의 소산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사만을 받으셨습니다.창세기 4:3,4에 2 세월이 지난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말씀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께서는 제물만 받고, 안받고 하신 것이 아니라 제물과 함 께 가인과 아벨을 즉, 그들의 삶을 받으시기도 했고 안받으시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아니 하셨겠습니까 성경에 명확한 이유는 설명되 어 있지 않지만 가인의 제사는 삶이 없는 제사,형식적인 제사,즉 죽은 제사 죽은 예 배 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되어집니다.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어봉S구驪 만약에 이 예배를 하나님이 받지 않으신다고 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로마서 12:1에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 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예배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 하나님이 받으시는 삶은 죽은자의 것이 아닌 산자의 것이며,산자의 예배이며,산자의 삶,산자의 하나님,산자의 경배와 찬양을 받으시는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기억하고, 형식적인 종교인이 아니라 살아 있는 신앙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지금도 분명히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요한복음 11:25에 나는 '부활이요 생명'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복음 6:35에서는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14:6절에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노라 고 말씀하셨습니다.구체적인 우리의 삶속에서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참다운 신앙인의 삶을 살아야 할것입니다. ' 살아계신 하나님은 우리를 먼저 찾아오셔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임 마누엘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요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이 산자의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의 삶입니다. ' 살아계신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시고,우리를 보호하시고 간섭하여 우리를 지켜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는 고백이 산자의 하나님을 따르는 우리들의 고백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걱정과 근심,어떠한 두려움도 떨쳐버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속에서 감사하고 찬양 하며 감격함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 살아계신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성장하고 변화되어야 합니다.산자의 하나님을 따 르는 자들의 특성은 성장과 변화에 있습니다.날마다 새롭게 더욱 성숙하게 변화되어 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너희의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 고 우리를 조롱합니다.그 때 무엇이라고 하시렵니까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인 도하시며,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형식적 인 종교인이 아니라 살아 있는 신앙인이 되어야 할것입니다. 부활이 없다고 하는 자들,시편 14편 1절 말씀대로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 이 없다 고 하는 자들은 진정 어리석은 자들입니다.그들도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곧 알게됩니다.그러나 그 때는 이미 늦은 심판의 때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이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보다 더욱 어리석은 사람이 있습니다.그 사람들 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교회에 출석을 하면서도,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 을 분명히 확신하지 못하고 산자의 하나님을 따르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후 안식후 첫날새벽, 여자들이 향품을 가지고 예수 의 시체를 찾았습니다. 이 때 찬란한 옷을 입은 천사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어찌하여 산자를 죽은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눅24:5-6)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며,우리의 예배와 기도를 기뻐받으시는 분이라는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사두개인들처럼 죽은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자의 하나님'을 따라서 복된 삶,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기원합니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감사 드립니다. 저희들의 신앙이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들처럼 형식적인 죽은 신앙이 아니라 살아있는 산 신앙을 가지고 '산자의 하나님'을 따르기를 원합니다. 날마다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산 예배를 드리게 하시며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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