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예수를 다시 찾자 (눅2:41-50)
본문
이 부분은, 유일한 예수님의 유년시절 이야기 입니다. 사복음서를 통틀어서 예수님의 유년시절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은 오늘 읽은 본문 밖에 없습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유년시절에 대해서 거의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데 반해서, 본문 만큼은 그나마 유독 예수님의 유년시절 모습이 어떠했는지에 대해 작은 일부분이나마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개 전기(傳記) 작가들은 한 인물의 어린 시절을 매우 중요하게 다룬다는 사실을 우리가 그동안 읽어왔던 전기문을 통해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토록 한 인물의 어린시절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해당 인물의 어릴적 성장 환경이 훗날 그의 사상과 행동이 형성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구약을 통틀어 예수님의 유년시절에 대해 간략하게 나마 언급하고 있는 유일한 부분인 이 본문을 통해 예수님의 유년시절이 어떠했으며, 또 평범한 우리들의 삶과는 얼마나 많은 차이점이 있는가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 본문을 대할 때의 우리들의 자연스런 경향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일반적이고도 상투적(常套的)인 시각에서 벗어나, 다른 각도에서 말씀의 교훈을 찾아 봤습니다. 오늘 본문 49절에 보면,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육신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는 어떻게 하다가 예수님을 잃어 버리게 됐고, 또 이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지 말씀을 통해 잠깐 상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어떻게 해서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을 잃어 버리게 됐는가 하는 점입니다. 유대인 소년들은 열 세 살 전후로 해서 소위 ‘율법의 아들’ 이라는 법적 책임 을 지게 되는 전례가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님도 이 절기의 전례를 따라 유월 절에 예루살렘 성전으로 갔습니다. 절기의 날들을 마치고서 번화한 시가지에 많은 인파와 행사로 인해 요셉과 마리아는 가장 귀중한 아들을 잃어버리고는 딴 데 정신이 팔려서 갈릴리 나사렛으로 내려갈 때 예수님이 함께 동행하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어떻게 해서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을 잃어 버리게 됐습니까 그것은,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동행하는 줄로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눅2:43-45) 우리도 정신없이 바쁘고 복잡한 생활속에서 예수님을 잃어 버린 줄도 모르고 함께 동행하고 있는 줄로 착각하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둘째, 잃어버린 예수님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연히 다시 찾아 나서야 합니다. 예수님이 동행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이나 간 다음에 그제서야 예수님 을 잃어버린 줄 알고서 허겁지겁 친족과 아는 사람에게 물어 물어서 찾으면서 결국 예루살렘으로 다시 올라갔습니다. 오늘도 나는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하는 지체는 겸허하게 자 신을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주님과 함께 하고 있습니까 과연 예수님께서 나의 삶의 주인이 되셔서, 말과 생각을 지배하고 계십니까 또한 나는 과연 주님 안에 거하고 있음을 확신하십니까 만약, 주님을 잃어버리셨다면 요셉과 마리아가 잃어버린 예수님을 찾으려고 사 방팔방 알아보며 수소문해서 결국 예수님을 찾아 만났듯이, 우리도 주님을 찾 으러 만사 제쳐놓고, 찾으러 나서야 합니다. 주님과 나 사이를 떼어 놓은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규모없이 바쁘게만 살아가는 우리의 생활일 수도 있고, 하나님과 나만 의 영적 교제인 말씀 묵상과 영적호흡인 기도의 중단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잃어버린 주님을 어디서 찾을 수 있습니까
셋째, 잃어버린 주님은 성전에서 찾아야 합니다. (46절 상반절 참조) 요셉과 마리아는 혼쭐이 나서 결국 사흘이 지난 후에야 예수님을 성전에서 찾 았습니다. 잃어버린 주님을 집에서, 직장에서, 학원에서, 군대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혹은 베스트셀러나 사랑하는 사람들, 애인, 또는 우리 주변, 세상 그 어디에서도 주 님을 찾을 수 없습니다. 잃어버린 주님은 오직 성전에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성전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의 모임’ 인 오늘날 교회라 해도 틀리 지 않습니다. 우리가 오늘 이렇게 적은 인원이지만, 예수님 중심으로 모여서 찬양하고 말씀 을 나누며 교제를 하는 이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에 오면 예수를 만나고 찾을 수 있습니다.
결론:가만히 있기만 해도 힘들고 바쁜 생활속에서 우리는 가장 귀중한 주님을 잊고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을 잃어버리고서는 마치 자신과 동행하는 줄 착각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잃 어버린 주님을 반드시 다시 찾아야만 합니다. 주님은 성전에, 교회에 계십니다. 날마나 성전을 향해서, 교회를 향해서 모이기 를 힘써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을 다시 만날 수 있습니다. 잃어버린 주님을 다시 찾아 만남으로 새로운 힘과 나아가 냉랭한 생활속에서 구원의 기쁨을 회복하는 우리 모든 지체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첫째, 어떻게 해서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을 잃어 버리게 됐는가 하는 점입니다. 유대인 소년들은 열 세 살 전후로 해서 소위 ‘율법의 아들’ 이라는 법적 책임 을 지게 되는 전례가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님도 이 절기의 전례를 따라 유월 절에 예루살렘 성전으로 갔습니다. 절기의 날들을 마치고서 번화한 시가지에 많은 인파와 행사로 인해 요셉과 마리아는 가장 귀중한 아들을 잃어버리고는 딴 데 정신이 팔려서 갈릴리 나사렛으로 내려갈 때 예수님이 함께 동행하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어떻게 해서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을 잃어 버리게 됐습니까 그것은,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동행하는 줄로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눅2:43-45) 우리도 정신없이 바쁘고 복잡한 생활속에서 예수님을 잃어 버린 줄도 모르고 함께 동행하고 있는 줄로 착각하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둘째, 잃어버린 예수님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연히 다시 찾아 나서야 합니다. 예수님이 동행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이나 간 다음에 그제서야 예수님 을 잃어버린 줄 알고서 허겁지겁 친족과 아는 사람에게 물어 물어서 찾으면서 결국 예루살렘으로 다시 올라갔습니다. 오늘도 나는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하는 지체는 겸허하게 자 신을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주님과 함께 하고 있습니까 과연 예수님께서 나의 삶의 주인이 되셔서, 말과 생각을 지배하고 계십니까 또한 나는 과연 주님 안에 거하고 있음을 확신하십니까 만약, 주님을 잃어버리셨다면 요셉과 마리아가 잃어버린 예수님을 찾으려고 사 방팔방 알아보며 수소문해서 결국 예수님을 찾아 만났듯이, 우리도 주님을 찾 으러 만사 제쳐놓고, 찾으러 나서야 합니다. 주님과 나 사이를 떼어 놓은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규모없이 바쁘게만 살아가는 우리의 생활일 수도 있고, 하나님과 나만 의 영적 교제인 말씀 묵상과 영적호흡인 기도의 중단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잃어버린 주님을 어디서 찾을 수 있습니까
셋째, 잃어버린 주님은 성전에서 찾아야 합니다. (46절 상반절 참조) 요셉과 마리아는 혼쭐이 나서 결국 사흘이 지난 후에야 예수님을 성전에서 찾 았습니다. 잃어버린 주님을 집에서, 직장에서, 학원에서, 군대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혹은 베스트셀러나 사랑하는 사람들, 애인, 또는 우리 주변, 세상 그 어디에서도 주 님을 찾을 수 없습니다. 잃어버린 주님은 오직 성전에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성전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의 모임’ 인 오늘날 교회라 해도 틀리 지 않습니다. 우리가 오늘 이렇게 적은 인원이지만, 예수님 중심으로 모여서 찬양하고 말씀 을 나누며 교제를 하는 이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에 오면 예수를 만나고 찾을 수 있습니다.
결론:가만히 있기만 해도 힘들고 바쁜 생활속에서 우리는 가장 귀중한 주님을 잊고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을 잃어버리고서는 마치 자신과 동행하는 줄 착각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잃 어버린 주님을 반드시 다시 찾아야만 합니다. 주님은 성전에, 교회에 계십니다. 날마나 성전을 향해서, 교회를 향해서 모이기 를 힘써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을 다시 만날 수 있습니다. 잃어버린 주님을 다시 찾아 만남으로 새로운 힘과 나아가 냉랭한 생활속에서 구원의 기쁨을 회복하는 우리 모든 지체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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