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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무엇을하리이까? (눅3:7-14)

본문

오늘 우리는 옛날 머리에서 발끝까지 고결함으로 치장하고 다니던 바리새인과 탐욕스럽고 냉혹한 세리들과 ,연일 계속되는 전투로 야만적인 습성이 젖어있는 군병과 여러종류의 사람들이 광야의 한 선지자 앞에 나와 무릎을 꿇는 모습을 본문을 통하여 볼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영적인 권위를 상실하고,아브라함이 그들의 조상이라는 특권을 유보하고,세리는 자기가 축적한 재물을 내어 놓고,군병들은 그들의 칼을 버리고서 물로 세례를 받고, 그들의 죄를 씻게해 달라고 간청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광야에서 낙타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으로 연명하면서도도한 영적인 권위를 가지고 회개를 외치는 그는 세례자 요한입니다. 그는 자만심에 빠져서 진정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잃어버리고, 모든 세속적인 가치추구로 말미암아 진정 소유해야 할 것을 잃어 버린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리라'고 말함으로써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는 미망에 사로잡혀 타락한 상태에 빠진 유대인들을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사실은 틀림없는 그들의 특권 이지마는, 그것이 자만심을 일으켜 신앙생활을 소홀하게 된다면 오히려 독약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이 경건한 조상의 후예라는 것이 특권이 될 수도 있지 마는,우리 가정이 직분자의 가정이라는 것이 특권이 될 수도 있지 마는, 명예로운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자만심을 일으켜 신앙생활 을 소홀하게 한다면, 오히려 넘어지게 하는 걸림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았다고 해서 믿지않는 사람들을 가볍게 볼 근거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매우 늙었을 때에 그에게 아들을 주신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무수히 많은 영적인 자녀들을 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뜻은 먼저 우리가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은혜를 경험하고, 주님을 향한 넘치는 사랑으로 말미암아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맡기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명예요, 특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우리의 책임을 감당하지 못할 때,우리는 책망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능히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말씀은 돌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 전혀 구원의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에게도 믿음을 주셔서, 당신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기 에 합당한 인물로 삼으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열심을 내십시다. 이스라엘에서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당한 것은 후사를 잇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후사가 없는 사람의 기업은 다른 사람의 차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기업은 이것이 누구의 기업이었노라고 인구에 회자 되는 것입니다. 6월 18일은총동원주일입니다. 이 날을 위하여 우리 모두 영적인 후사를 많이 낳읍시다. 전도의 열매를 많이 맺읍시다. 이 행사가 단지 교회행사 프로그램으로 끝나지 않도록, 지금부터 이웃에서 구원받아야 할 대상을 정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기도의 준비가 끝난 후에 그들을 초청합시다. 우리들은 때로 삶의 우선순위를 잊고 살아갑니다. 공부하는 학생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공부이고, 농사짓는 사람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작물을 돌보는 일입니다.
학생이 노는 일을 우선하거나, 농부가 다른 일에 관심을 가진다면 성적이 좋을리 없고,농사가 잘될리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우선순위는 전도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부르신 뜻은 증인삼기 위한 것입니다. 이 일은 생명에 관계되는 것입니다. 마치 긴급차량이 경광등을 켜고, 사이렌을 우리면서 다른 차량들을 추월해 우선해서 달리듯이 전도하는 일이야말로, 신자가 우선해야 할 과제라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이 일은 우리가 우선해야 할 과제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섰을 때 우리의 기업이 없다면 부끄러움을 당할 것입니다. 우리가 부끄러운 구원을 얻어서야 되겠습니까 다시 본문 말씀을 듣습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여 있으니, 좋은 여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3:9) 본문의 8절에서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좋은 열매'라고 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하여 계속해서 우리에게 열매맺기를 촉구하는 것을 듣습니다. 하나님은 열매 맺을 수 있는 능력을 우리에게 부여 하셨습니다. 돌이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은 그 안에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식물은 생명이 있기 때문에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 안에 새생명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안에 있는 그 생명력으로 말미암아 얼마든지 영적인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 하십시다. '에이, 내가 뭐!. 전도는 아무나 하는게 아냐! 잘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거야!'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능력을 사장 시키지 마십시요.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는 뿌리에 놓인 도끼를 생각 하시기 바랍니다. 이 도끼는 죽음을 상징 하는 것입니다. 심판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어찌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에게만 있기를 원한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놀라운 은총이 다른 사람에게도 있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먼저 부르신 것입니다. 예수, 그 이름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 이름이 우리를 먼저 구원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먼저 예수의 이름을 알리는데, 그 이름으로 인한 구원을 세상에 편만케 하는데 우리의 일생을 바쳐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일을 즐겨 하는 자에게 하나씩 더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일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이름,그 아름다운 예수의 이름을 늘 묵상 하십시다. 마리아가 '어떻게 그런일 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했던 엄청난 은혜가 현실로 임한 것 같이 우리에게도 현실로 임했습니다. 마리아를 복되다 했던 그 음성이 오늘 이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 들이는 우리를 복되다 하십니다.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현실이 된 것 같이, 아직도 하나님 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을 영접케 하십니다. 그들이 상상치도 못했던 복을 나누어 주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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