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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의 의의 (눅2:8-14)

본문

오늘의 현대적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는 없고 축제만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축제에는 예수님 보다 산타크로스가 더 많이 등장하는 성탄절을 맞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89년 금녀의 한해를 보면 정치적으로 뼈아픈 상처가 있음을 보았 으며 또한 숨가쁘게 변화하여 가는듯 하다가 허탈감만 남겨 주고 끝나버린 텅비어 버린 국민감정속에서 성탄으로 이 해를 마무리 짖 게 됨을 천만다행으로 여기는 바입니다.
2,000년전 이 세상에 탄생하신 그리스도께서도 그 당시의 민족적 수난과 경제적 고난, 자유 탈취, 인격 유린 빛보다는 어두움이 기쁨보다는 슬픔이, 소망보다는 절망이 충만했던 시대에 그를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평화와 기쁨, 위로와 소망을 주시기 위하여 말구유 에 탄생 하셨던 것입니다. 양을 치는 목자들에게 한 말씀이 눅2장10-11절에서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 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고 합니다. 이 말씀 속에서 살필때에
1) 두려운자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하노라 했고
2) 오늘 우리를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께서 나셨다는 내용을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이란 바로 두려울 수 밖에 없는 우리에게 해결의 기쁜날인 것입니다.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오셨으므로 이러한 기쁜날을 맞이 하면서 즐거워 할 수 있고 문제감 해결될 수 있는 날로서 각자가 우리의 구주가 되시는 주님을 영접해 드리는 날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그리스도께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기 때문에 구주가 되 십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를 통해서 각 정당간의 후보간에 누가 잘 하고 누가 잘못했다고 평가할 자격을 가진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 리고 대통령으로 당선된 분도 당선의 기쁨이 없고 낙선된 분들은 국민의 위로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전국민 누구나가 이번 계기를 통하여 찢기고 상하고 실망으로 점철된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 말 을 못하고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만 기대하고 있을 뿐 입니다. 지역과 지역을 극한 상황으로 분열 시켰고 집권력 때문에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가장 파렴치한 적수로 등장하여 나의 목적을 성취하 기 위해 상대방을 인신 공격하기를 개의치 않고 있습니다. 심히 국 민의 한 사람으로서 개탄해 마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무엇인가 우리 국민의 온유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남에게 욕할 줄 모르고 남을 속일 줄 모르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묵묵히 살아 가는 이 민족의 아름다운 미풍양속은 어디로 갔단 말입니까 이것은 잎으로 어떤 정치도 정당도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길이 되신 예수님께서만 이루어 놓으실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지역간에 담 을 쌓아 놓고 대화가 끊어졌으며, 정당과 정당간에 담을 쌓아 놓고 대화가 끊겼습니다. 국민의 기성세대와 젊은이들 사이에 높은 담장 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을 해결 하실분이 누구입니까 하나님 과 인간과의 원수가 되었을때 이 담을 허시려고 오신 분이 바로 길 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2,000년 전 말구유에 탄생하시 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께서 지금 이 민족 위에 임하실때 막힌 담을 허시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길을 통하게 하시므로 이 어두운 상처가 아물어져서 고통이 사라지고 건강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성탄이 되어지길 바랍니다. 인간처럼 진실하지 못한 존재는 없습니다. 인간은 가장 거짓되고 더러운 존재라는 것을 남겨 놓았습니다. 하나도 믿을 수 없는 거짓 이 난무하는 시대가 되어 누구나 무엇이라 해도 그것도 거짓이려니 해버릴 정도로 만성이 되어 버렸습니다. 지금 우리 국민의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부정선거를 규탄하자고 외치는데 이 소리가 진실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면 인정이 되겠으나 부정이라고 하는 그 사람은 부정이 없습니까 물론 우리 국민이 이번 선거가 부정이 없 다고 말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모두 그런 처지이니 선거는 모두 그런것이려니 하고 침묵을 지키고 있을 뿐입니다. 성도들은 그것을 가지고 논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이 반영되지 않는 세상, 진실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거짓이라도 잘해서 성공하면 그것 이 정의가 되어 버리는 이 시대의 사상을 개탄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무엇으로 회복할 것입니까 양심정치 입니까 도덕교육으 로 입니까 사회정의로 실현할 것입니까 아닙니다. 오로지 진리 그 자신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할 수 있는 길이 아닙니까 지금 우리는 이 사회를 불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어떤 소리를 해도 믿으려 하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까지 속아 왔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해결하실분은
2,000년전에 말구유에 탄생하 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진리는 진리 되시는 예수에게만 있지 예수를 떠난 진리는 죄악에 오염된 부패된 진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2. 그리스도께서는 평화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떠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모든 사람들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라고 합니다. 천사들이 "두려워 말라"했습니다. 이 두려움이란 왜 오는 것일까 요 이것은 하나님을 떠나 죄로 인해 부패된 인간에게서 보는 인간 자체가 두려움입니다. 죄악속에 태어난 인간 그 자신이 두려움이 요, 이러한 인간들이 사는 이 세상은 결구 두려움이 순간 순간마다 우리를 괴롭게 하고 있습니다. KAL기 폭파사고,
3,000여명이 화장, 수장된 여객선 충돌사건, 자 동차 사고, 정치테러, 폭력사태등을 볼때 이 세상 그 어느곳에 평 화가 있다고 말하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본 심속에 이 평화를 심어주시는 분이기에 그리스도안에서만 진정한 평화가 임할 것입니다. 그리스도 밖에는 이세상 그 어느곳, 그 어떤 존재속에도 이 평화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 크리스마스를 통해서 아무런 이유없이 서로가 갈라진 마음 속이 분열에서 화합으로, 증오하는 마음에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갈등속에서 평화를 이루는 성탄이 됩시다.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사42장1절에서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 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고 했는 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입니다. 사42장6-7절에 "나 여호와가 의로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 아 너를 보호 하며 너를 세워 백성을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 리니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려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 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고 합니다. 메시야의 정의 실현, 불신과 공포를 배격하고 이 땅위에 평화를 이루리라는 약속입니다. 엡2장14-18절에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 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 문에 속한 계명이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롬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하심이라"고 합니다. 평화를 이루시려고 주님은 오신것입니다.
3. 이 성탄에 우리 성도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의 성탄이 교회안에서만 있어서는 안됩니다.
1) 가난한 이웃을 찾아야 합니다. 요10장10절에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 고 눅4장18-19절에 "주의 성령님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자에 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 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 라"고 합니다. 이웃에게 질병에게, 가난에서, 불구에서 눌림에서 위로와 평화를 심어 주어야 합니다.
2) 순결한 사랑을 찾읍시다. 희망을 심어주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랑하고 계심을 전해야 하며, 소망스러운 생활을 나누어 줍시다.
3) 사랑으로 하나가 됩시다. 어떤 이유에서라도 우리가 서로 갈 라진 마음들이 오신 주님을 영접하므로 사랑으로 하나되어 기쁨으 로 이 예수를 영접하는 성탄이 됩시다. 성탄의 의미 성경


본문:마 2:1-18 1994년도 어느덧 저물어 그리스도의 성탄을 맞게 되었습니다. 온 교회는 성탄을 맞을 때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분명한 의미와 목적을 제 음미 하곤합니다. 우리는 한낱 연중행사니 세게적 축제 분위기에 쌓여 명절로만 보내선 안될 것입니다. 인성회복을 위해 오신 예수님
첫째로 그리스도께서는 상실된 인간을 찾아 그 인성을 회복시키기 위해 오 셨습니다. 그리하여 인간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화해하고 인간끼리 화목하게 하기 위하여 대속자, 화해자로 십자가에 스스로의 몸을 제몰로 바쳐 인간 구원의 대업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본성을 잃고 행복을 기술문명에 걸어 그 발달을 꾀했으 나 결국 인간은 그 기계문명에 노예화가 되었고,경제의 풍요를 제일주의로 살아왔으나 결국 경제의 풍부속에서 썩게 되었고 또한 정치에 운명을 걸었 으나 결국 정권의 마력에 사로잡혀 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인간소외를 느끼 며 인간성을 상실한 결과 인간 잔학이 판을 치는 이 사회가 되었습니다. 인간답게 갱신하기 위해 사랑으로 봉사하고 이와같은 성탄의 목적과 의미가 우리 생활모든 영역에 지표가 되도록 최선의 헌신봉사자가 있어자 할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기위해 오신 예수님 성탄은 또 하나의 의미는 신이 인간, 특히 죄인, 눌린자, 병자, 소외자인 인간을 찾아 그들의 이웃이 되고 그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그들 대신에 내몸을 죽음에 내놓을 정도로 사랑하신 일입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사랑인데 사랑은 생활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개인의 신앙적 자고 때문에 이웃을 느끼지 못하는 무관심증에 걸리거나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신적 귀족심리 때문에 영악한 인간들의 친구 로 나설 용기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수선한 한국에 살고 있습니다.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 교 육도 제대로 자리 잡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정.부패가 속속들이 침투되어 있습니다. 절망과 냉소,잔학과 포악이 국민사기를 조장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관계의 거칠고, 사나움과 정신적, 윤리적 기반의 빈약에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제 기독교인은 참으로 정직,성실한 인애에 불타는 사회인을 만들어 정 치,경제,교육,문화,각종 생활부문에서 실천하는 일이 성탄을 맞는 우리의 과제일 것입니다. 의를 전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 성탄의 또하나의 목적은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전해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기에 기독교는 국민의 건전한 신앙생활,건설에 본격적인 책임을 담당해야 합니다. 세상의 빛,소금, 누룩등으로 비유된 사명은 결코 등한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역사는 외적인, 군사, 금권등 등으로만 건설, 영역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것은 역사의 주체인 인간들의 내적인 의향과 그 정신적, 노력적 품격여하에 서 그 운명이 좌우되는 것이나 이제 성탄을 맞는 기독교는 역사의 빛과 소 금과 누룩의 책임을 담당 추진하여 국민의 도의생활 건설의 주류를 잡아주 어야 될 것입니다. 이 해가 저무는 12월에 맞이하는 성탄을 뜻있게 맞아 민족성 갱신에 크게 기여하는 결단의 계기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성탄의 목적 성경


본문:눅 2:8-20 1차 대전중 영국해협에서 스위스 국경에 이르는 기나긴 전선에서 크리스 마스 전날 밤에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전쟁 중 독일군 참호 바로 위에 크 리스마스 츄리의 불빛이 만들어졌고 그들은 "고요한 밤, 거룩한 밤저들 밖에 한밤중에"를 부르자 영국군은 박수로 응하고 이어 영어로 "참 반가운 신도여"를 부르자 독일군은 박수로 응하며 라틴어로 받아 불렀습니다. 1시 간 가량 계속된 평화의 노래는 평화의 분위기를 만들어 서로 참호에서 기어 나와 크리스마스 축하 인사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팔장을 끼고 사진을 찍 고, 축구시합, 선물교환, 즉석 오케스트라도 연주 되었습니다. 24시간 동안 국경없는 휴전상태였으며, 좀더 연장되기도 하였습니다. 전쟁터는 새들이 찾아와 지져귀며 평화의 노래에 화음을 넣는듯 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참된 그리스도의 오심은 곧 평화를 만들었고, 비록 전쟁터이지만 모든 이 들에게 기쁨과 감사의 마음을 심어주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속에 어떤 상황에서도 영접하기만 하면 기적의 역사를 이루신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본론'
1. 그리스도는 세계인류의 평화를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스도 의 오심은 어두움 가운데 비취인 빛이 되셨던 것입니다.
(1) 그리스도는 평화의 나라에서 평화의 주님으로 이 세상속에 오시었습니다. 그리스도가 오시기전의 세상은 하나님을 등진 죄인들로 말미암아 깨 어진 평화로 어두움의 세상이 되었고,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은 근본적인 어 두움 때문에 빛을 바랄 수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들 사이에는 평화가 깨어 져서 어두움 가운데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오심은 세상에 평화와 빛을 주러 오신 것입니다. 이젠 주님의 빛으로 구원의 길을 찾게 되었고, 주님의 평안으로 고난에서 이길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었 던 것입니다. 주님 자신이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므로 하나님께로 가는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시러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2) 주님이 오시기 전의 모습을 본다면 무척이나 초라합니다. 이 어둠의 세계는 무척이나 춥습니다. 추워서 떨고 있는 사람에게는 평안이 있을 수 없습니다. 추워서 평안히 잠들 수 없고, 쉴 수도 없고, 즐거워할 수도 없 습니다. 그러면 이 어둠의 세계는 어떤 곳일까요. 어둠의 세계는 한대이 며, 소외된 곳을 말합니다. 권력에서 멀리 밀려난 이방지대를 말합니다. 거기에는 힘이 없고 배경도 없습니다. 고독하고 적막한 삶만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권력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즐거움이 있고 따뜻 함이 있습니다. 인생의 변두리에는 웃음이 사라지고 공포와 불안과 슬픔이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세상은 주님이 계시지 않는 곳, 주님을 모시지 않는 곳은 어디에나 있는 상황입니다. 한 겨울의 추위는 없는 사람들에게는 고생스러운 때입니다. 마음의 따뜻한 보살핌이 없는 곳도 매우 추운 바람 이 부는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3) 이러한 어둠의 세계는 가난합니다. 배고프고 목마른 사람은 평안히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에겐 세상이 캄캄할 뿐입니다. 살아간 다는 것이 막연할 뿐 평안을 지킬 수 없습니다. 가난은 어둠이요, 절망상태 입니다. 다만 이들에게는 악한 힘이 없기 때문에 거대한 불의의 힘 앞에서 너무나도 나약하기 때문에 가난하게 되어진 것 뿐입니다. 이들도 악하게 살면 굶주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고 살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풍족하다는 말을 듣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난하고 배고프고 목말라 평안한 세상을 살아갈 수 없을 뿐입니다.
(4) 이 어둠의 세계는 싸움이 있을 뿐입니다. 선과 악의 싸움이 아니라, 큰 악과 작은 악의 싸움이 그것입니다. 폭력과 전쟁과 파괴의 상태가 어둠 입니다. 진리와 정의가 없으니 거짓과 속임수의 경쟁뿐입니다. 불의한 싸 움터에는 승리하는 자가 정의로운 자가 될 뿐입니다. 그래서 도덕과 법은 이긴자의 도구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빛은 가리워졌고 미움과 저 주가 사랑과 축복을 대신합니다. 미움은 미움을 낳고, 저주는 저주를 낳아 싸움은 끝없이 계속되어집니다. 참된 진리가 없이는, 바른 길을 제시해 주 지 않으면,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주지 않으면 싸움은 끝이 없습니다. 선한 것은 선을 낳고 악한 것은 악을 낳습니다.
그러므로 악은 악을 이길뿐 선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2. 그러기에 주님은 바로 이곳에 찾아 오셨습니다.
(1) 이런 어두움의 인생에게 주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그래서 빛을 주 셔서 밝게 하시고 따뜻하게 하시고 평안하게 해 주셨습니다. 새 힘과 새 희망을 주셨습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또 찾아올 수도 없는 곳에 주 님만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평화의 소식이요 빛의 사명인 것입니다. 우리는 할 수 없는 일을 주님은 하셨습니다. 폭력과 테러, 고문, 강 도, 억압, 착취, 독재, 전쟁, 핵무기, 공해 등. 뿌리깊은 미움과 갈등과 다 툼의 세계에 그리스도는 어둠속에 비치는 빛으로 오신 것입니다. 에베소 서 2:14절은 다음과 같이 그리스도의 오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었습니다."
(2) 이런 빼앗긴 자들에게 주님은 오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나라의 평화 와 빛을 주섰습니다. 깨닫게 해 주시고 정의를 위해 싸울 수 있는 용기를 주셨습니다.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는 확신과 지혜를 주셨습니다. 비록 우리는 악한 길에서 방황하며 살 수 밖에 없었지만 그리스도의 능력은 우리 로 하여금 선으로 악을 이기는 법을 가르쳐 주시고 그 발자취를 이 세상에 남기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의 뒤를 따라가기만 하면 바르게 정의를 위 해 싸울 수 있습니다. 용기와 희망 그것은 이 세상의 악이 아무리 강해도 주를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3) 위기의 상황속에 주님이 오셨습니다. 진리와 길과 생명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깨어지고 상처뿐인 세계에 치료하는 능력과 일치를 주셨습니다. 용서와 화해로 사랑의 빛을 주셨고 평화의 은총을 주셨습니다. 병들고 부자유한 사람들을 온전한 복음으로 고쳐 주러 오신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 어두운 가운데 비취인 영원한 빛이십니다."
3. 그리스도는 이러한 목적을 가지고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1)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아들이 되신 것입니다. 자유의 몸으로 계시 던 하나님 나라에서 부자유한 인간의 세상으로 오신 것입니다. 영광과 존 귀를 한 몸에 받으셔야 하는 자리에서 낮고 천하여 멸시받고 고통당하고 퀘 퀘한 냄새가 풍기는 마굿간,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고 가시면류관 까지 대신 받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2) 그것은 나 때문입니다. 나의 허물 때문입니다. 나의 죄악 때문입니다. 지금도 반목과 질시와 어둠의 세계에서 방황하고 있는 나의 비겁한 모 습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계속 입으로 죄를 범하고 있는 자신 속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허물어져 가는 나의 올바름이, 어두워져가는 나의 밝은 빛이 그리스도가 찾아오신 뜻 을 지워버리고 있습니다.
(3) 이를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바로 이곳에, 나의 이러한 마음 속에 찾아 오셨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의 어둡고 추운 곳에 주님이 찾 아 오셨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마음속에 빛을 주셔서 밝게 하시고 따뜻하 게 하시고 평안하게 하실 것입니다. 어둡고 가난한 우리의 마음속에 찾아 오셨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 나라의 평화와 빛을 주셔서 정 의를 위해 싸울 수 있는 용기를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어둡고 싸움이 도사 리고 있는 마음속에 찾아 오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속에 치료하는 능력을 통하여 아픈 상처를 싸매어 주실 것입니다. 용서와 화해의 사랑의 빛을 주실 것이며 우리의 믿음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다음과 같 은 신앙의 고백이 절로 나올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어두운 가운데 비취인 영원한 빛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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