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기쁨의 좋은 소식 (눅2:8-14)
본문
주후 20년부터 270년까지 행해진 인구 조사 문서에 의하면 매 14년마다 인구 조사를 실시했다고 합니다. 로마가 인구 조사를 하는 목적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병역 의무를 부과하기 위해서였고,
둘째는 세금을 거둬들이기 위해서였습니다.그러나 유대인들은 병역이 면제되어 있었기 때문에 주께서 나실 당시의 인구 조사는 세금 부과에 그 목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누가복음 2장은 당시 제정 로마의 최초 황제였던 가이사 아구스도가 호적령을 내렸다는 것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그리고 요셉과 마리아도 호적 신고를 하기 위해 고향 베들레헴으로 갔다가 아기 예수를 낳게 되었다는 것이 누가복음 2:1-7의 기사 내용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천사가 베들레헴 들에서 양을 지키던 목자들에게 예수가 탄생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는 것입니다.지금도 베들레헴에 가면 목자의 들이 있고 성탄절이 되면 성지를 순례하는 사람들이 그곳에 모여 캐럴송을 부르고 있습니다. 본문 10절을 보면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고 했습니다.한 마디로 예수가 나셨다는 소식은 크고 기쁜 소식인 것입니다. 왜 천사는 많은 신분의 사람들 가운데서 목자들에게 맨 먼저 예수 탄생 사실을 알렸으며,많고 많은 목자들 가운데 베들레헴에서 양을 지키던 그 목자들에게 나타나 크고 기쁜 소식을 전했을까요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그때 목자들이지키던 그 양은 성전 제사에 제물로 사용할 양이었던 것입니다.유대인 제사법은 성전에서 제물로 바치는 양은 흠없는 것이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흠없는 양을 바치기 위해 예루살렘 근교인 베들레헴에서 제물로 사용할 양을 키웠고 그 양을 지키던 목자들에게 성탄의 기쁜 소식이 주어졌던 것입니다. 예수가 탄생했다는 소식으로 인해 걱정하고 불안해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그들은 자신의 정권의 위협을 느낀 헤롯 왕이었고 당시 종교 계급이었던 제사장 무리들이었습니다.본문에 의하면 목자들도 무서워했다고 했습니다.그러나 목자들이 무서워했다는 것은 너무나 놀랍고 충격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에 감격하고 경외심을 가졌다는 뜻입니다.그러기에 본문 2:20을 보면 아기 예수를 찾아가 경배드린 후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천사가 목자들에게 알려 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란 큰 기쁨의 복음이라는 뜻입니다.헬라어로 복음을 유앙겔리온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좋은 소식이라는 뜻입니다.그러니까 복음이란 좋은 소식,즉 Good News라는 뜻입니다.천사가 목자들에게 전한 큰 기쁨의 소식은 바로 유앙겔리온이었습니다. 왜 예수 탄생 사건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었을까요 거기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1.오랫동안 기다리던 소식어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메시아가 오실 것을 고대한 것은 하루 이틀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여인의 후손으로 메시아가 탄생하실 것과 그가 인간을 구원하신다는 것은 창세기 3:15,21에 이미 예언되어 있었고 수많은 예언자들에 의하여 그때마다 예언되곤 하였습니다.그리고 유대인들은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려운 시련이나 고통에 직면할 때마다 메시아가 오시면 모든 것을 해결하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예수께서 탄생하실 당시로 말하면 로마의 식민 통치로 유대 나라가 자유를 박탈당한 채 억압 속에서 신음하고 있었습니다.정치적인 부자유와 과중한 세금에다가 황제 숭배까지 강요되고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어서 빨리 로마가 멸망하고 해방의 날이 오기를 고대하였던 것입니가.그리고 그 위대한 과업을 성취하는 일은 메시아가 오셔서 할 것이라는 정치적인 메시아 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고대하고 기다리던 메시아가 오셨습니다.그러니 크고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그러나 베들레헴에 오신 예수는 물론 유대인들이 생각하고 있던 그러한 메시아는 아니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오늘날에도 예수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시각과 관점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한편에서는 예수를 해방자 예수,정치적 예수,현실 참여의 예수로 해석하고 예수도 그랬기 때문에 우리도 정치와 현실에 적극적으로 깊이 개입해서 저항하고 투쟁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현실을 완전히 외면한 채 수도승 예수로 이해하고 현실 문제는 외면한 채 천당만을 대망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예수는 역사 속에 오셨고 사람이 되신 예수입니다.그 예수는 나사렛과 갈릴리를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고 병든 자를 고쳐 주었고 가난한 자들을 위로해 주셨습니다.다시 말하면 예수는 역사 속에 현존하신 메시아였습니다.그러나 그 예수는 로마 정권에 저항하기 위해 예수당을 만들고 폭력을 휘두르거나 총독으로 출마하지는 않았습니다. 예수의 최대 관심은 마태복음 1:21에서 말씀하신 대로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는 일”이었습니다.예수라는 이름 자체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입니다.다시 말하면 예수를 믿는 기독교의 최대 관심은 누가 최고 통치자가 되느냐,어느 정당이 집권을 하느냐 보다는 어떻게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느냐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확실한 신앙이 있다면,그 어떤 정치 권력이 예수를 반대하고 기독교를 의도적이고 제도적으로 박해하거나 방해할 때 우린 생명을 내걸고 그들과 싸울 수 있을 것입니다.그러나 특정인이나 특정정당 예컨데 내가 지지하고 지원하던 특정인이 집권을 못했다고 해서 교회가 깃발을 들고 앞장서 싸울 필요는 없습니다. 유대인들의 경우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고대하던 예수였기 때문에 큰 기쁨의 복음이었던 것입니다.
2.온 백성을 위한 예수였기 때문입니다. 10하반절을 보면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했습니다.여기서 말하는 온 백성은 메시아를 고대했던 이스라엘 백성을 지칭하는 것입니다.그러나 그들은 메시아를 기다리기만 했을 뿐 영접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배척했습니다.그 결과 이스라엘에 오신 메시아는 온 세계 만민의 메시아로 환영받고 영접받는 새로운 장을 열게 된 것입니다.우리는 “온 백성”이라는 이 말씀 속에서 예수가 온 백성의 예수이심을 발견하게 됩니다.유대인들은 메시아를 오로지 자기네들만의 메시아로 여겼습니다.그러나 예수는 모든 사람의 예수로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4장을 보면 어느 날 예수님과 제자들이 유대 지방을 떠나 갈릴리 지방으로 가기 위해 길을 가신 일이 있었습니다.이 경우 사마리아 지방을 경유케 되면 지름길이어서 빨리 갈 수 있었지만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혼혈 민족들이라고 멸시하고 천대했기 때문에 멀리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고 다른 길로 가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주님은 사마리아를 통과하여 갈릴리로 가실 것을 고집하시고 길을 떠나가시다가 사마리아 수가 성 우물가에서 어떤 여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그 여인은 성적으로 부정하고 부도덕한 여인으로서 다섯 차례나 결혼에 실패한 사람이었습니다.주님은 바로 그 여인을 만나신 것입니다.그리고 그 여인에게 구원의 복음을 주셨고 그날 그 우물가에서 그 여인은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유대인을 위하여 오신 예수일 뿐만 아니라 사마리아인을 위하여 오신 예수라는 사실을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예수는 특정인만을 위해 오신 분이 아닙니다.그 분은 온 백성에게 구원의 크고 기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잘 사는 사람에게도 필요하고 못 사는 사람에게도 필요하며,기업주에게도 필요하고 근로자에게도 필요합니다. 통치권자에게도 필요하고 백성에게도 필요합니다.교수에게도 필요하고 학생에게도 필요합니다.또 남자에게도 필요하고 여자에게도 필요합니다. 심지어 어떤 종교는 자기네 교파나 교회에 와야만 구원을 받는다고 독선과 아집을 일삼는가 하면 혹세 무민하는 경우도 있는데 예수는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 것입니다.
3.구주가 나신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2:11을 보면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고 했습니다. 우린 11절 속에서 예수를 지칭하는 세 가지 장엄한 호칭 즉 구주,그리스도,주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구주란 구원하시는 주라는 뜻이고 그리스도란 즉 메시아라는 뜻이며 주란 큐리오스(Kurios),즉 가장 높으신 분,존경할 님,혹은 주인이시라는 뜻입니다. 만일 베들레헴에서 2천년 전에 태어난 아기가 세계를 공포와 참혹의 도가니로 몰아 넣을 폭군이었다면 그 아기의 출현은 큰 불행과 저주의 소식이 됐을 것입니다.그러나 그 아기는 세상을 구원할 구주로 탄생했기 대문에 크고 기쁜 뉴스가 아닐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해 전 영국의 챨스 황태자와 교사 출신인 다이애너의 결혼식이 있었을 때,거의 전세계의 매스컴이 앞을 다투어 그들의 행적과 결혼식을 중계하고 보도한 일이 있었습니다.대영제국의 영화는 사라졌지만 그래도 영국 황태자의 결혼이었기에 세계의 뉴스감이 되었던 것입니다. 텔레비젼이나 신문을 통해 보도되는 모든 뉴스는 성격상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하나는 좋은 뉴스이고 다른 하나는 좋지 않은 뉴스입니다.뉴스 보도란 두 가지를 다 보도해야 된다는 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뉴스,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구주,주님이 나신 뉴스는 그 어느 뉴스와도 견줄 수 없는 것입니다.그러기에 사람들의 보도 매체를 통하지 않고 천사가 직접 그 뉴스를 전해 준 것입니다.예수의 탄생은 너무나 크고 기쁜 복음 뉴스였기 때문에 사람이 전하지 않고 하늘의 천사가 직접 전한 것입니다. 본문 2:13-14,20속에서 천사와 목자들이 찬송으로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다시 말하면 진정한 고백과 찬송으로 성탄을 축하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진정과 진심을 다하여 나의 구주로 오신 주님을 찬양합시다. 그리고 성탄하신 주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십시다. 이토록 엄청나게 크고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신 주님께 감사의 찬송을 올립시다.
첫째는 병역 의무를 부과하기 위해서였고,
둘째는 세금을 거둬들이기 위해서였습니다.그러나 유대인들은 병역이 면제되어 있었기 때문에 주께서 나실 당시의 인구 조사는 세금 부과에 그 목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누가복음 2장은 당시 제정 로마의 최초 황제였던 가이사 아구스도가 호적령을 내렸다는 것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그리고 요셉과 마리아도 호적 신고를 하기 위해 고향 베들레헴으로 갔다가 아기 예수를 낳게 되었다는 것이 누가복음 2:1-7의 기사 내용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천사가 베들레헴 들에서 양을 지키던 목자들에게 예수가 탄생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는 것입니다.지금도 베들레헴에 가면 목자의 들이 있고 성탄절이 되면 성지를 순례하는 사람들이 그곳에 모여 캐럴송을 부르고 있습니다. 본문 10절을 보면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고 했습니다.한 마디로 예수가 나셨다는 소식은 크고 기쁜 소식인 것입니다. 왜 천사는 많은 신분의 사람들 가운데서 목자들에게 맨 먼저 예수 탄생 사실을 알렸으며,많고 많은 목자들 가운데 베들레헴에서 양을 지키던 그 목자들에게 나타나 크고 기쁜 소식을 전했을까요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그때 목자들이지키던 그 양은 성전 제사에 제물로 사용할 양이었던 것입니다.유대인 제사법은 성전에서 제물로 바치는 양은 흠없는 것이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흠없는 양을 바치기 위해 예루살렘 근교인 베들레헴에서 제물로 사용할 양을 키웠고 그 양을 지키던 목자들에게 성탄의 기쁜 소식이 주어졌던 것입니다. 예수가 탄생했다는 소식으로 인해 걱정하고 불안해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그들은 자신의 정권의 위협을 느낀 헤롯 왕이었고 당시 종교 계급이었던 제사장 무리들이었습니다.본문에 의하면 목자들도 무서워했다고 했습니다.그러나 목자들이 무서워했다는 것은 너무나 놀랍고 충격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에 감격하고 경외심을 가졌다는 뜻입니다.그러기에 본문 2:20을 보면 아기 예수를 찾아가 경배드린 후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천사가 목자들에게 알려 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란 큰 기쁨의 복음이라는 뜻입니다.헬라어로 복음을 유앙겔리온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좋은 소식이라는 뜻입니다.그러니까 복음이란 좋은 소식,즉 Good News라는 뜻입니다.천사가 목자들에게 전한 큰 기쁨의 소식은 바로 유앙겔리온이었습니다. 왜 예수 탄생 사건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었을까요 거기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1.오랫동안 기다리던 소식어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메시아가 오실 것을 고대한 것은 하루 이틀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여인의 후손으로 메시아가 탄생하실 것과 그가 인간을 구원하신다는 것은 창세기 3:15,21에 이미 예언되어 있었고 수많은 예언자들에 의하여 그때마다 예언되곤 하였습니다.그리고 유대인들은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려운 시련이나 고통에 직면할 때마다 메시아가 오시면 모든 것을 해결하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예수께서 탄생하실 당시로 말하면 로마의 식민 통치로 유대 나라가 자유를 박탈당한 채 억압 속에서 신음하고 있었습니다.정치적인 부자유와 과중한 세금에다가 황제 숭배까지 강요되고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어서 빨리 로마가 멸망하고 해방의 날이 오기를 고대하였던 것입니가.그리고 그 위대한 과업을 성취하는 일은 메시아가 오셔서 할 것이라는 정치적인 메시아 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고대하고 기다리던 메시아가 오셨습니다.그러니 크고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그러나 베들레헴에 오신 예수는 물론 유대인들이 생각하고 있던 그러한 메시아는 아니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오늘날에도 예수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시각과 관점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한편에서는 예수를 해방자 예수,정치적 예수,현실 참여의 예수로 해석하고 예수도 그랬기 때문에 우리도 정치와 현실에 적극적으로 깊이 개입해서 저항하고 투쟁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현실을 완전히 외면한 채 수도승 예수로 이해하고 현실 문제는 외면한 채 천당만을 대망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예수는 역사 속에 오셨고 사람이 되신 예수입니다.그 예수는 나사렛과 갈릴리를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고 병든 자를 고쳐 주었고 가난한 자들을 위로해 주셨습니다.다시 말하면 예수는 역사 속에 현존하신 메시아였습니다.그러나 그 예수는 로마 정권에 저항하기 위해 예수당을 만들고 폭력을 휘두르거나 총독으로 출마하지는 않았습니다. 예수의 최대 관심은 마태복음 1:21에서 말씀하신 대로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는 일”이었습니다.예수라는 이름 자체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입니다.다시 말하면 예수를 믿는 기독교의 최대 관심은 누가 최고 통치자가 되느냐,어느 정당이 집권을 하느냐 보다는 어떻게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느냐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확실한 신앙이 있다면,그 어떤 정치 권력이 예수를 반대하고 기독교를 의도적이고 제도적으로 박해하거나 방해할 때 우린 생명을 내걸고 그들과 싸울 수 있을 것입니다.그러나 특정인이나 특정정당 예컨데 내가 지지하고 지원하던 특정인이 집권을 못했다고 해서 교회가 깃발을 들고 앞장서 싸울 필요는 없습니다. 유대인들의 경우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고대하던 예수였기 때문에 큰 기쁨의 복음이었던 것입니다.
2.온 백성을 위한 예수였기 때문입니다. 10하반절을 보면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했습니다.여기서 말하는 온 백성은 메시아를 고대했던 이스라엘 백성을 지칭하는 것입니다.그러나 그들은 메시아를 기다리기만 했을 뿐 영접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배척했습니다.그 결과 이스라엘에 오신 메시아는 온 세계 만민의 메시아로 환영받고 영접받는 새로운 장을 열게 된 것입니다.우리는 “온 백성”이라는 이 말씀 속에서 예수가 온 백성의 예수이심을 발견하게 됩니다.유대인들은 메시아를 오로지 자기네들만의 메시아로 여겼습니다.그러나 예수는 모든 사람의 예수로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4장을 보면 어느 날 예수님과 제자들이 유대 지방을 떠나 갈릴리 지방으로 가기 위해 길을 가신 일이 있었습니다.이 경우 사마리아 지방을 경유케 되면 지름길이어서 빨리 갈 수 있었지만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혼혈 민족들이라고 멸시하고 천대했기 때문에 멀리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고 다른 길로 가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주님은 사마리아를 통과하여 갈릴리로 가실 것을 고집하시고 길을 떠나가시다가 사마리아 수가 성 우물가에서 어떤 여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그 여인은 성적으로 부정하고 부도덕한 여인으로서 다섯 차례나 결혼에 실패한 사람이었습니다.주님은 바로 그 여인을 만나신 것입니다.그리고 그 여인에게 구원의 복음을 주셨고 그날 그 우물가에서 그 여인은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유대인을 위하여 오신 예수일 뿐만 아니라 사마리아인을 위하여 오신 예수라는 사실을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예수는 특정인만을 위해 오신 분이 아닙니다.그 분은 온 백성에게 구원의 크고 기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잘 사는 사람에게도 필요하고 못 사는 사람에게도 필요하며,기업주에게도 필요하고 근로자에게도 필요합니다. 통치권자에게도 필요하고 백성에게도 필요합니다.교수에게도 필요하고 학생에게도 필요합니다.또 남자에게도 필요하고 여자에게도 필요합니다. 심지어 어떤 종교는 자기네 교파나 교회에 와야만 구원을 받는다고 독선과 아집을 일삼는가 하면 혹세 무민하는 경우도 있는데 예수는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 것입니다.
3.구주가 나신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2:11을 보면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고 했습니다. 우린 11절 속에서 예수를 지칭하는 세 가지 장엄한 호칭 즉 구주,그리스도,주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구주란 구원하시는 주라는 뜻이고 그리스도란 즉 메시아라는 뜻이며 주란 큐리오스(Kurios),즉 가장 높으신 분,존경할 님,혹은 주인이시라는 뜻입니다. 만일 베들레헴에서 2천년 전에 태어난 아기가 세계를 공포와 참혹의 도가니로 몰아 넣을 폭군이었다면 그 아기의 출현은 큰 불행과 저주의 소식이 됐을 것입니다.그러나 그 아기는 세상을 구원할 구주로 탄생했기 대문에 크고 기쁜 뉴스가 아닐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해 전 영국의 챨스 황태자와 교사 출신인 다이애너의 결혼식이 있었을 때,거의 전세계의 매스컴이 앞을 다투어 그들의 행적과 결혼식을 중계하고 보도한 일이 있었습니다.대영제국의 영화는 사라졌지만 그래도 영국 황태자의 결혼이었기에 세계의 뉴스감이 되었던 것입니다. 텔레비젼이나 신문을 통해 보도되는 모든 뉴스는 성격상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하나는 좋은 뉴스이고 다른 하나는 좋지 않은 뉴스입니다.뉴스 보도란 두 가지를 다 보도해야 된다는 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뉴스,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구주,주님이 나신 뉴스는 그 어느 뉴스와도 견줄 수 없는 것입니다.그러기에 사람들의 보도 매체를 통하지 않고 천사가 직접 그 뉴스를 전해 준 것입니다.예수의 탄생은 너무나 크고 기쁜 복음 뉴스였기 때문에 사람이 전하지 않고 하늘의 천사가 직접 전한 것입니다. 본문 2:13-14,20속에서 천사와 목자들이 찬송으로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다시 말하면 진정한 고백과 찬송으로 성탄을 축하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진정과 진심을 다하여 나의 구주로 오신 주님을 찬양합시다. 그리고 성탄하신 주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십시다. 이토록 엄청나게 크고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신 주님께 감사의 찬송을 올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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