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을 따른 잇대 (삼하15:13-23)
본문
지난 주에는 압살롬의 반역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깨뜨리는 반란의 세력이 어떠한 모습으로 교회에 나타나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상고하였습니다. 기독교 역사상 교회에는 항상 분란이 있었고 싸움이 있었으며, 그 원인은 항상 하나님의 세력과 대적하는 사탄의 세력이 상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탄의 세력은 어찌하든지 믿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더 미혹하고 쓰러뜨리기 위해서 오늘도 우는 사자처럼 행하고 있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늘도 성도들 가정 가정에는 어려움이 있고 교회적으로도 반란과 분쟁이 야기되는 상황들을 우리가 직면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교회를 깨뜨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분란을 일으키는 세력들이 어떠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는가를 지난 주 말씀 드렸고, 또한 그러한 세력들이 발현할 수 있게 되는 요인 가운데에는 교회 지도자들의 영적무지와 태만이 아주 중요한 요인으로 등장한다는 사실도 지난 주 말씀과 함께 상고하였습니다. 오늘 이제 13절에서 23절까지를 보면 다윗이 예루살렘성을 버리고 도망가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다윗이 도망가는 모습을 아주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 사건이야말로 다른 어느 사건보다도 더 극명하게 다윗이 어떠한 사람인가를 잘 나타내 주고 있으며, 또한 이 사건이야말로 하나님의 나라가 분열되는 것이 얼마나 큰 아픔인가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기에 이렇게 자세히 기록하였다고 생각합니다. 13절을 보면 압살롬에게 모든 백성의 인심이 다 돌아가고 또한 백성들 중에 다윗을 따르지 않고 압살롬을 따르는 무리가 많다는 소식을 접하고 다윗은 자기 신복들에게 수도를 포기하고 도망갈 것을 명령합니다. 저가 하나님의 성막과 법괘가 있는 수도인 예루살렘을 버리고 도망가게끔 명령을 내리는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은 그가 전세가 불리하다는 상황을 깨닫고 또한 예루살렘에서 끝까지 항거하다가는 엄청난 살육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14절 마지막 구절에 보면 “우리를 급히 따라와서 해하고 칼로 성을 칠까 하노라.” 하는 다윗의 고백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래서 압살롬으로 하여금 무혈입성케 함으로써 예루살렘성을 보존하고 성민들을 보존하겠다는 것이 다윗의 정책입니다. 다윗은 일단 성을 버리고 도망갑니다. 오늘 본문에는 도망가는 다윗의 모습과 또한 다윗과 합류하는 사람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도망갈 때 함께한 사람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성경이 부각시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6절에 보면, 왕이 나갈 때에 권속을 다 따르게 하고 후궁 열명을 남겨두어 궁을 지키게 합니다. 또 보면 “왕이 나가매 모든 백성이 다 따라서 벧메르학에 이르러 머무니 모든 신복이 그 곁을 지나가고.”라 되어 있습니다. 여기를 보면 ‘다윗왕을 따르는 모든 신복들’이라고 한마디로 표현해 버립니다. 누구 누구가 따랐다는 구체적인 내용은 없습니다. 따른 사람에 대한 세밀하고 자세한 기록은 그 다음부터 나옵니다. “모든 신복들이 그 곁을 지나가고 모든 그렛 사람과 블레셋 사람과 왕을 따라 가드에서 온 600인이 왕의 앞으로 진행한다”고 구체적으로 분리를 합니다. 그렛 사람, 블레셋 사람, 가드에서 온 600명이라고 자세하게 구분을 하고 있습니다. 19절에 보면, “그때에 왕이 가드 사람 잇대에게 이르되.”라고 잇대와의 대화 내용이 자세하게 기록되고 있습니다. 잇대를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는가 우리가 앞 부분에서 교회가 어떻게 파괴되며,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분쟁에 휘말려서 어려움을 겪는가를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가 위기에 처하고 교회가 환란과 어려움에 직면할 때, 교회에서 나타나는 양상들이 어떤 것들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교회에 핍박이 시작되고 교회 내에 분쟁이 생겼을 때 나타나는 교인들의 모습은 크게 세 가지로 들 수 있습니다.
첫째, 끝까지 순수하게 신앙을 지키는 사람들과,
둘째, 하나님을 배신하고 배교하고는 핍박하는 사람들에게 무릎을 꿇고 복종하면서 그 앞잡이가 되어서 정상적 신앙을 지키는 사람들을 고발해서 죽이는 사람들, 즉 배교자들, 그리고 세째,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사람들, 즉 신앙을 끝까지 지키지도 않고 배교하지도 않고, 도망가는 은둔자들이 나옵니다. 교회 역사상 교회가 어려움을 겪을 때 항상 이 세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교회가 어려움을 겪을 때 성도들의 모습은 이 세가지로 분류됩니다.
첫째는 끝까지 교회를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면서 신앙을 지키는 사람들의 모습,
둘째는 이것을 아예 반대하고 나서며 그 어려움을 오히려 이용하여 자기의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모습,
셋째는 무관심하게 조용히 훌쩍 떠나는 사람들의 모습, 이렇게 세 가지의 모습입니다. 오늘 이 부분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나 왜 주님께서는 이 말씀, 이 사건을 기록하시는 가운데 이 부분을 특별히 자세히 기록하고 있고 부각시키는가에 대해서 우리는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다윗의 측근은 유다지파입니다. 다윗이 소속된 지파는 이스라엘 열 두 지파 가운데 유다지파입니다. 상식적으로 보면 다윗의 가장 절대적인 지지 세력은 유다지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다윗을 배반하고 다수가 압살롬 편에 서 있다고 했습니다. 다윗이 도저히 버틸수 없을 만큼 많은 백성들이 돌아서 버렸습니다. 다윗을 따르는 자는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소수 가운데서도, 성경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저 ‘신복들’이라고 한마디로 딱 끝을 내고, 그렛 사람, 블레셋 사람, 가드에서 온 600명, 그리고 가드에서 온 잇대는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 받지 않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이방인들입니다. 가드 사람 잇대 역시 블레셋 사람입니다. 이스라엘과 항상 대적해서 싸우던 블레셋 사람 잇대입니다. 가드는, 사사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을 계속 괴롭히던 블레셋 세력입니다. 블레셋에는 큰 성들이 몇 몇 있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막강한 세력을 가진 대표적인 성으로 가드, 가사, 아스돗, 이 세 개의 성이 꼽힙니다. 그리고 이들이 끝까지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성으로 남아 있습니다. 여기 잇대라는 사람이 바로 가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교회를 대적하는 이 사람이 다윗과의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변화를 받았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느냐 하면, 다윗이 그에게 이르기를, “내가 도망가는데 네가 따라올 필요가 없지 않느냐 너는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편에 서든지 살 수 있는 사람이니까 예루살렘성에 남아 있다가, 하나님이 누구를 왕으로 세우시든지 그 사람 편을 들어서 편히 살아라. 나를 따라와서 괜히 고생할 필요 없지 않느냐”고 이렇게 만류해서 보내려고 할 때, 잇대가 “여호와의 사심과 우리 주 왕의 사심으로 맹세하옵나니 진실로 내 주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무론사생하고 종도 그곳에 있겠나이다” 하고 대답을 합니다. “내가 왕 앞에 충성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왕을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라는 말이지요. 이 사람은 하나님 앞에 대적하는 가드 사람이었지만 이스라엘과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영접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하는 손길들을 보면서 여러 가나안 부족들은 끝까지 하나님을 대적했지만, 그 사람들 가운데 일부분, 즉 오늘 본문에 나오는 그렛 사람, 블레셋 사람,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이 역사하는 섭리들을 보면서, 그 능력을 보면서, 하나님은 진짜 신이시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을 믿고 따르게 됩니다. 오늘 본문이 기록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방 사람들이 다윗에게 충성하고 끝까지 다윗을 따릅니다. 그리고 뒤에 넘어가서 보면 이 잇대라는 사람은, 다윗이 군사령관 3명을 임명할 때, 그 중 하나가 됩니다. 다윗의 군대가 세 부대로 나뉘어 전쟁을 하는데, 그 세 부대 가운데 1개 부대를 맡은 사령관으로 잇대가 임명을 받습니다. 오늘 이 본문은 사탄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교회에 분쟁과 분란이 일어날 때에, 혹은 교회가 외부의 핍박과 환란의 시기를 맞을 때에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교회를 지켜야 하고 하나님 앞에 끝까지 충성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우리에게 그 길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이 본문 위에 가보면 다윗이 도망을 칠 때 나와서 흙을 던지고 돌맹이를 던지며 다윗을 저주하고 조롱한 사람도 많아요. 오늘 본문에 보면 재빠르게 압살롬의 편에 들어가서 충성하는 사람도 나옵니다. 여러가지 부류가 나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끝까지 다윗의 편에 서서 충성을 하던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다윗을 따랐던 이 사람들의 특징은 그 수가 소수였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을 따르던 사람들은 정말 소수였습니다. 누차 말씀 드립니다만 교회는 민주주의 체제가 아닙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가 민주화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민주주의에서 제일 중요한 원칙이 다수결의 원칙입니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인격을 보장하고 자유를 보장합니다. 그렇지만 전체적인 틀을 잡고 법을 가지고 처리할 때에는 다수의 의견으로 처리하는 다수결 원칙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분쟁이 일어나는 것은 교회가 세속화 되었기 때문입니다. 은혜 받은 사람이 많지 않고, 거듭난 사람이 많지 않고, 아직 예수를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보니 교회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도 세상 방법으로 합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고 인간의 방법으로 인간의 능력으로 하려고 합니다. 안 될 때는 여론을 움직여서 다수결로 하려고 합니다. 자꾸만 세력을 만들어서 자기 권리와 주장을 내세우려고 합니다. 그래서 자꾸 말하기를 교회가 민주주의가 되어야 한다, 민주화가 되야 한다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이스라엘 왕입니다. 그 다음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운 자는 솔로몬입니다. 솔로몬은 이미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이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을 했습니다. 그는 이미 차기 대권주자로 결정되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인 압살롬이 나섰습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다수가 이 사람을 따른 것입니다. 진짜 하나님의 뜻대로 세움 받은 다윗을 따른 사람은 소수입니다. 교회에서도 다수의 의견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다수의 의견이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되느냐 부합되지 않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방법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아무리 많은 성도들이 원한다 해도 그 방법이 하나님의 뜻과 맞지 않는다면 따를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비록 소수가 따르지만 이 소수가 궁극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일꾼들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섬길 때에, 항상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이 교회를 맡아서 관리하는 입장이라는 것을 마음에 새기고 있어야 합니다.
둘째로 다윗을 따르던 이 사람들은 비록 소수였지만 바른 안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끝까지 다윗이 하나님이 세운 종이며, 또한 솔로몬이 하나님이 세운 종이라는 걸 믿었습니다. 이미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공개적으로 궁궐에서 공포되었던 일들을 이들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비록 현실적으로는 압살롬이 막강한 세력을 가지고 나타났지만 그 세력이 하나님이 세운 세력이 아니라는 것을 이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 잇대라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며 다윗을 따르겠다고 고백합니다. “내가 현실적으로 내 유익을 위해서는 압살롬을 따라야 하겠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당신을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고 고백하는 모습을 봅니다. 오늘 우리는 항상 바른 안목을 갖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아직까지는 분쟁이 없었지만 앞으로는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어느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뜻인지 어느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건지 물어야 할 것입니다. 과연 어떤 사람이 하나님 편에 서 있는지 봐야 합니다. 지난 주에도 말씀드렸지만, 압살롬도 하나님 이름을 가지고 나와서 다윗을 대적했습니다. 오늘도 교회 내에 분쟁이 일어날 때는 누구를 막론하고 다 주님의 이름을 가지고 나옵니다. 교회를 위해서, 교회를 바르게 세우기 위해서 싸울 수 밖에 없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정말 좋아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다윗은 멋이 있습니다. 다음에 나오는 부분을 보면, 제사장이 법괘를 메고 다윗을 따르겠다고 나올 때에 다윗이 법괘를 돌려보냅니다. “하나님의 법괘는 나와 함께 할 수 없다. 예루살렘성에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를 주시고 나를 버리지 않는 한은 나를 다시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고 말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따르는 무리들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은 끝까지 충성하는 모습입니다. 주님께서는 끝까지 충성하라고 했습니다. 끝까지 충성하는 자에게는 생명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눈물로 씨를 뿌린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것처럼, 끝까지 하나님 앞에 소망을 갖고 인내하는 자들은,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신앙을 지키며 교회를 위해서 끝까지 헌신하며 봉사하는 자들은 언젠가 하나님께서 그들을 높이 드시는 날이 올 것입니다. 오늘 이 본문을 통해서 끝까지 충성하는 이 사람들이 얼마나 멋있게 금의환향하는가를 우리는 봅니다. 그들은 분명히 더욱 영광된 모습으로 예루살렘성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우리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우리의 왕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그 분을 향해서 충성하는 그의 백성이요 그의 군대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끝까지 충성한다면, 희생한다면, 나중에 주님 다시 오시는 그 날에, 주님 앞에 우리가 영광스럽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업을 하면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군대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군인으로서 사명을 감당하기가 결단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앞에 서 있는 세상의 세력은 압살롬의 세력처럼 막강하게 보입니다. 믿지 않는 세력들이 더 커 보입니다. 직장에서도 타협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른 안목을 갖고 봐야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누구와 함께 계시는가 오늘도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을 기뻐하시는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고, 하나님께서 끝까지 충성하는 자들, 죽기까지 충성하는 자들에게 어떠한 영광과 축복을 주시는가를 우리는 소망 가운데 바라보면서 오늘 현실을 파악해 나가야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가드에서 육백 명이 따라왔다고 하지만 이것은 가드 사람을 말하지 않습니다. 옛날에 가드로 다윗이 도망갔을 때 다윗을 따랐던 사람들이 이 육백 명입니다. 다윗이 사울왕을 피해서 사람이 살지 않는 광야로 도망을 갔을 때 소문을 듣고 다윗을 따라서 모였던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주로 전과자들, 동네에서 쫒겨난 사람들, 죄 짓고 도망친 사람들입니다. 정상적으로 사회활동을 할 수 없어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추방당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도망다니는 다윗의 주변에 모여 들어서 다윗의 군대가 됩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그들의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되게 살아 가는 다윗의 모습을 통해서 그들의 삶이 변화되었으며, 또한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들이 그 측근에서 다윗에게 충성을 다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도망갈 때에도 이 사람들이 앞장서서 호위병으로 다윗을 따라갑니다. 이 사람들의 충성에는 특징이 있습니다. 다윗이 가장 어려웠을 때, 곤고했을 때 힘이 되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다윗이 왕이 되고난 다음에도 어떻게 충성했느냐 이 사람들은 고관대작의 자리를 받지 않았습니다. 요압이 군대장관이 되었을 때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실질적으로 가장 핵심 세력임이 분명한데도 높은 자리와 명예를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어려울 때 충성했음에도 높은 자리를 구하지 않고 끝까지 600명의 무리로 남았습니다. 그 다음 잇대라는 사람이 나오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여기 잇대보다도 이 600명의 무리가 더 멋있는 사람들입니다. 자기들의 공로를 자랑하지 않고 주장하지 않는 이 사람들이야말로 아름다운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잇대를 통해서 보여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무엇인가 저는 다윗의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다윗은 예수님의 모형이라고 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수많은 무리가 있었습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병 고쳐 주었을 때 예수님을 향해서 찬양했고, 배고플 때 떡을 먹여 주었을 때 왕으로 모시고자 그들이 예수님을 떠받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의 모함을 받고, 제사장들의 모함을 받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임을 당하는 이 극한 상황이 왔을 때 그들은 주님의 곁을 떠났습니다. 떠났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앞장서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부르짖었습니다.이 모습은 지금 그동안 다윗을 왕으로 섬기며 따르던 수많은 백성들이 압살롬 편에 서서 오히려 다윗을 죽이자고 창을 들고 칼을 들고 대적하고 나오는 모습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에게 삼년 동안 죽음의 자리까지도 같이 가겠다고 맹세하고 충성을 서약했던 열 두 제자들까지도 예수님이 고난을 당할 때 다 도망을 쳤다는 사실입니다. 군대들에게 예수님이 잡힐 때 제자들도 같이 잡으려고 할 때 다 도망을 칩니다. 옷을 잡으니 옷까지 벗어버리고 벌거벗은 모습으로 도망을 쳤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너도 예수를 따르던 제자가 아니냐” 하니 “아니오. 나는 예수를 모릅니다.” 하고 예수님을 부인하는 모습까지 보여주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렸을 때 그를 따르는 수많은 무리들은 밑에서 조롱하는 눈빛으로 바뀌었습니다. “네가 진짜 메시야거든 뛰어내려 보라.” 조롱하는 무리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제자들은 다 도망을 쳤습니다. 먼 발치에서 두려움 가운데 구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름도 없던 한 무리의 여인들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그 십자가 밑에 모여서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도망을 갔고 제자들은 다락방에 숨어서 문을 걸어 잠그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 시간에 요셉이라고 하는 사람은 빌라도 총독을 찾아가서 장사를 치르겠으니 예수의 시체를 내어 달라고 담대하게 얘기합니다. 그때 이 사람은 자기의 명예를 잃는 위기에 직면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과 제사장들과 그리고 헤롯당원들이 살기등등하게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려는 상황이고, 또한 제일 우두머리인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긴박한 상황인데도, 아리마대 요셉은 자기의 공회원이라는 신분과 또한 부자라는 것을 다 포기하고 예수님의 시체를 매장하겠다고 나섭니다. 그는 예수의 숨은 제자였다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나는 예수를 따르는 제자라고 표명하지 못했던 나약한 믿음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자기의 신분과 명예와 부귀때문에 내어놓고 예수를 믿지 못했던 나약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가 죽임을 당하는 이 긴박한 상황 가운데 돌연히 나타난 아리마대 요셉은 마치 오늘 본문에 나타난 잇대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정말 주님을 위해서 충성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교회가 평안하고 잘될 때에는 우리가 다 충성된 일꾼인 것 같지만, 막상 교회가 어려움을 당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파괴당하는 환란과 핍박이 올 때에는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오늘도 주님이 요구하시는 진정한 사람은 잇대와 같은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지금까지는 그의 이름이 나오지 않았지만 교회가 어려움을 당할 때 끝까지 하나님의 편에 서서 교회를 지키려고 하는 충성된 일꾼의 모습으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우리 모두는 이와 같이 충성된 일꾼이 되기를 사모해야 할 것입니다. 진정한 충신은 어려울 때 나타납니다. 좋을 때 충신은 충신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주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 우리가 얼마나 주님에게 충성하고 살아갑니까 주님의 일이 있을 때마다 떨쳐 일어나고 있습니까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고난 받고, 교회가 어려움에 직면할 때 주님을 위해서 떨쳐 일어날 수 있는, 그리고 끝까지 충성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마지막 날에 그 분이 “네가 맡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나의 잔치에 참여하라”는 주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계시록에 기록된 말씀처럼 의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을 받는 충성된 일꾼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 끝까지 순수하게 신앙을 지키는 사람들과,
둘째, 하나님을 배신하고 배교하고는 핍박하는 사람들에게 무릎을 꿇고 복종하면서 그 앞잡이가 되어서 정상적 신앙을 지키는 사람들을 고발해서 죽이는 사람들, 즉 배교자들, 그리고 세째,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사람들, 즉 신앙을 끝까지 지키지도 않고 배교하지도 않고, 도망가는 은둔자들이 나옵니다. 교회 역사상 교회가 어려움을 겪을 때 항상 이 세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교회가 어려움을 겪을 때 성도들의 모습은 이 세가지로 분류됩니다.
첫째는 끝까지 교회를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면서 신앙을 지키는 사람들의 모습,
둘째는 이것을 아예 반대하고 나서며 그 어려움을 오히려 이용하여 자기의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모습,
셋째는 무관심하게 조용히 훌쩍 떠나는 사람들의 모습, 이렇게 세 가지의 모습입니다. 오늘 이 부분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나 왜 주님께서는 이 말씀, 이 사건을 기록하시는 가운데 이 부분을 특별히 자세히 기록하고 있고 부각시키는가에 대해서 우리는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다윗의 측근은 유다지파입니다. 다윗이 소속된 지파는 이스라엘 열 두 지파 가운데 유다지파입니다. 상식적으로 보면 다윗의 가장 절대적인 지지 세력은 유다지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다윗을 배반하고 다수가 압살롬 편에 서 있다고 했습니다. 다윗이 도저히 버틸수 없을 만큼 많은 백성들이 돌아서 버렸습니다. 다윗을 따르는 자는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소수 가운데서도, 성경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저 ‘신복들’이라고 한마디로 딱 끝을 내고, 그렛 사람, 블레셋 사람, 가드에서 온 600명, 그리고 가드에서 온 잇대는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 받지 않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이방인들입니다. 가드 사람 잇대 역시 블레셋 사람입니다. 이스라엘과 항상 대적해서 싸우던 블레셋 사람 잇대입니다. 가드는, 사사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을 계속 괴롭히던 블레셋 세력입니다. 블레셋에는 큰 성들이 몇 몇 있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막강한 세력을 가진 대표적인 성으로 가드, 가사, 아스돗, 이 세 개의 성이 꼽힙니다. 그리고 이들이 끝까지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성으로 남아 있습니다. 여기 잇대라는 사람이 바로 가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교회를 대적하는 이 사람이 다윗과의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변화를 받았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느냐 하면, 다윗이 그에게 이르기를, “내가 도망가는데 네가 따라올 필요가 없지 않느냐 너는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편에 서든지 살 수 있는 사람이니까 예루살렘성에 남아 있다가, 하나님이 누구를 왕으로 세우시든지 그 사람 편을 들어서 편히 살아라. 나를 따라와서 괜히 고생할 필요 없지 않느냐”고 이렇게 만류해서 보내려고 할 때, 잇대가 “여호와의 사심과 우리 주 왕의 사심으로 맹세하옵나니 진실로 내 주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무론사생하고 종도 그곳에 있겠나이다” 하고 대답을 합니다. “내가 왕 앞에 충성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왕을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라는 말이지요. 이 사람은 하나님 앞에 대적하는 가드 사람이었지만 이스라엘과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영접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하는 손길들을 보면서 여러 가나안 부족들은 끝까지 하나님을 대적했지만, 그 사람들 가운데 일부분, 즉 오늘 본문에 나오는 그렛 사람, 블레셋 사람,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이 역사하는 섭리들을 보면서, 그 능력을 보면서, 하나님은 진짜 신이시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을 믿고 따르게 됩니다. 오늘 본문이 기록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방 사람들이 다윗에게 충성하고 끝까지 다윗을 따릅니다. 그리고 뒤에 넘어가서 보면 이 잇대라는 사람은, 다윗이 군사령관 3명을 임명할 때, 그 중 하나가 됩니다. 다윗의 군대가 세 부대로 나뉘어 전쟁을 하는데, 그 세 부대 가운데 1개 부대를 맡은 사령관으로 잇대가 임명을 받습니다. 오늘 이 본문은 사탄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교회에 분쟁과 분란이 일어날 때에, 혹은 교회가 외부의 핍박과 환란의 시기를 맞을 때에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교회를 지켜야 하고 하나님 앞에 끝까지 충성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우리에게 그 길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이 본문 위에 가보면 다윗이 도망을 칠 때 나와서 흙을 던지고 돌맹이를 던지며 다윗을 저주하고 조롱한 사람도 많아요. 오늘 본문에 보면 재빠르게 압살롬의 편에 들어가서 충성하는 사람도 나옵니다. 여러가지 부류가 나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끝까지 다윗의 편에 서서 충성을 하던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다윗을 따랐던 이 사람들의 특징은 그 수가 소수였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을 따르던 사람들은 정말 소수였습니다. 누차 말씀 드립니다만 교회는 민주주의 체제가 아닙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가 민주화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민주주의에서 제일 중요한 원칙이 다수결의 원칙입니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인격을 보장하고 자유를 보장합니다. 그렇지만 전체적인 틀을 잡고 법을 가지고 처리할 때에는 다수의 의견으로 처리하는 다수결 원칙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분쟁이 일어나는 것은 교회가 세속화 되었기 때문입니다. 은혜 받은 사람이 많지 않고, 거듭난 사람이 많지 않고, 아직 예수를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보니 교회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도 세상 방법으로 합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고 인간의 방법으로 인간의 능력으로 하려고 합니다. 안 될 때는 여론을 움직여서 다수결로 하려고 합니다. 자꾸만 세력을 만들어서 자기 권리와 주장을 내세우려고 합니다. 그래서 자꾸 말하기를 교회가 민주주의가 되어야 한다, 민주화가 되야 한다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이스라엘 왕입니다. 그 다음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운 자는 솔로몬입니다. 솔로몬은 이미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이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을 했습니다. 그는 이미 차기 대권주자로 결정되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인 압살롬이 나섰습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다수가 이 사람을 따른 것입니다. 진짜 하나님의 뜻대로 세움 받은 다윗을 따른 사람은 소수입니다. 교회에서도 다수의 의견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다수의 의견이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되느냐 부합되지 않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방법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아무리 많은 성도들이 원한다 해도 그 방법이 하나님의 뜻과 맞지 않는다면 따를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비록 소수가 따르지만 이 소수가 궁극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일꾼들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섬길 때에, 항상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이 교회를 맡아서 관리하는 입장이라는 것을 마음에 새기고 있어야 합니다.
둘째로 다윗을 따르던 이 사람들은 비록 소수였지만 바른 안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끝까지 다윗이 하나님이 세운 종이며, 또한 솔로몬이 하나님이 세운 종이라는 걸 믿었습니다. 이미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공개적으로 궁궐에서 공포되었던 일들을 이들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비록 현실적으로는 압살롬이 막강한 세력을 가지고 나타났지만 그 세력이 하나님이 세운 세력이 아니라는 것을 이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 잇대라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며 다윗을 따르겠다고 고백합니다. “내가 현실적으로 내 유익을 위해서는 압살롬을 따라야 하겠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당신을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고 고백하는 모습을 봅니다. 오늘 우리는 항상 바른 안목을 갖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아직까지는 분쟁이 없었지만 앞으로는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어느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뜻인지 어느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건지 물어야 할 것입니다. 과연 어떤 사람이 하나님 편에 서 있는지 봐야 합니다. 지난 주에도 말씀드렸지만, 압살롬도 하나님 이름을 가지고 나와서 다윗을 대적했습니다. 오늘도 교회 내에 분쟁이 일어날 때는 누구를 막론하고 다 주님의 이름을 가지고 나옵니다. 교회를 위해서, 교회를 바르게 세우기 위해서 싸울 수 밖에 없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정말 좋아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다윗은 멋이 있습니다. 다음에 나오는 부분을 보면, 제사장이 법괘를 메고 다윗을 따르겠다고 나올 때에 다윗이 법괘를 돌려보냅니다. “하나님의 법괘는 나와 함께 할 수 없다. 예루살렘성에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를 주시고 나를 버리지 않는 한은 나를 다시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고 말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따르는 무리들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은 끝까지 충성하는 모습입니다. 주님께서는 끝까지 충성하라고 했습니다. 끝까지 충성하는 자에게는 생명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눈물로 씨를 뿌린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것처럼, 끝까지 하나님 앞에 소망을 갖고 인내하는 자들은,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신앙을 지키며 교회를 위해서 끝까지 헌신하며 봉사하는 자들은 언젠가 하나님께서 그들을 높이 드시는 날이 올 것입니다. 오늘 이 본문을 통해서 끝까지 충성하는 이 사람들이 얼마나 멋있게 금의환향하는가를 우리는 봅니다. 그들은 분명히 더욱 영광된 모습으로 예루살렘성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우리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우리의 왕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그 분을 향해서 충성하는 그의 백성이요 그의 군대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끝까지 충성한다면, 희생한다면, 나중에 주님 다시 오시는 그 날에, 주님 앞에 우리가 영광스럽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업을 하면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군대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군인으로서 사명을 감당하기가 결단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앞에 서 있는 세상의 세력은 압살롬의 세력처럼 막강하게 보입니다. 믿지 않는 세력들이 더 커 보입니다. 직장에서도 타협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른 안목을 갖고 봐야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누구와 함께 계시는가 오늘도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을 기뻐하시는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고, 하나님께서 끝까지 충성하는 자들, 죽기까지 충성하는 자들에게 어떠한 영광과 축복을 주시는가를 우리는 소망 가운데 바라보면서 오늘 현실을 파악해 나가야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가드에서 육백 명이 따라왔다고 하지만 이것은 가드 사람을 말하지 않습니다. 옛날에 가드로 다윗이 도망갔을 때 다윗을 따랐던 사람들이 이 육백 명입니다. 다윗이 사울왕을 피해서 사람이 살지 않는 광야로 도망을 갔을 때 소문을 듣고 다윗을 따라서 모였던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주로 전과자들, 동네에서 쫒겨난 사람들, 죄 짓고 도망친 사람들입니다. 정상적으로 사회활동을 할 수 없어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추방당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도망다니는 다윗의 주변에 모여 들어서 다윗의 군대가 됩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그들의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되게 살아 가는 다윗의 모습을 통해서 그들의 삶이 변화되었으며, 또한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들이 그 측근에서 다윗에게 충성을 다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도망갈 때에도 이 사람들이 앞장서서 호위병으로 다윗을 따라갑니다. 이 사람들의 충성에는 특징이 있습니다. 다윗이 가장 어려웠을 때, 곤고했을 때 힘이 되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다윗이 왕이 되고난 다음에도 어떻게 충성했느냐 이 사람들은 고관대작의 자리를 받지 않았습니다. 요압이 군대장관이 되었을 때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실질적으로 가장 핵심 세력임이 분명한데도 높은 자리와 명예를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어려울 때 충성했음에도 높은 자리를 구하지 않고 끝까지 600명의 무리로 남았습니다. 그 다음 잇대라는 사람이 나오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여기 잇대보다도 이 600명의 무리가 더 멋있는 사람들입니다. 자기들의 공로를 자랑하지 않고 주장하지 않는 이 사람들이야말로 아름다운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잇대를 통해서 보여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무엇인가 저는 다윗의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다윗은 예수님의 모형이라고 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수많은 무리가 있었습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병 고쳐 주었을 때 예수님을 향해서 찬양했고, 배고플 때 떡을 먹여 주었을 때 왕으로 모시고자 그들이 예수님을 떠받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의 모함을 받고, 제사장들의 모함을 받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임을 당하는 이 극한 상황이 왔을 때 그들은 주님의 곁을 떠났습니다. 떠났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앞장서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부르짖었습니다.이 모습은 지금 그동안 다윗을 왕으로 섬기며 따르던 수많은 백성들이 압살롬 편에 서서 오히려 다윗을 죽이자고 창을 들고 칼을 들고 대적하고 나오는 모습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에게 삼년 동안 죽음의 자리까지도 같이 가겠다고 맹세하고 충성을 서약했던 열 두 제자들까지도 예수님이 고난을 당할 때 다 도망을 쳤다는 사실입니다. 군대들에게 예수님이 잡힐 때 제자들도 같이 잡으려고 할 때 다 도망을 칩니다. 옷을 잡으니 옷까지 벗어버리고 벌거벗은 모습으로 도망을 쳤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너도 예수를 따르던 제자가 아니냐” 하니 “아니오. 나는 예수를 모릅니다.” 하고 예수님을 부인하는 모습까지 보여주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렸을 때 그를 따르는 수많은 무리들은 밑에서 조롱하는 눈빛으로 바뀌었습니다. “네가 진짜 메시야거든 뛰어내려 보라.” 조롱하는 무리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제자들은 다 도망을 쳤습니다. 먼 발치에서 두려움 가운데 구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름도 없던 한 무리의 여인들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그 십자가 밑에 모여서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도망을 갔고 제자들은 다락방에 숨어서 문을 걸어 잠그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 시간에 요셉이라고 하는 사람은 빌라도 총독을 찾아가서 장사를 치르겠으니 예수의 시체를 내어 달라고 담대하게 얘기합니다. 그때 이 사람은 자기의 명예를 잃는 위기에 직면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과 제사장들과 그리고 헤롯당원들이 살기등등하게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려는 상황이고, 또한 제일 우두머리인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긴박한 상황인데도, 아리마대 요셉은 자기의 공회원이라는 신분과 또한 부자라는 것을 다 포기하고 예수님의 시체를 매장하겠다고 나섭니다. 그는 예수의 숨은 제자였다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나는 예수를 따르는 제자라고 표명하지 못했던 나약한 믿음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자기의 신분과 명예와 부귀때문에 내어놓고 예수를 믿지 못했던 나약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가 죽임을 당하는 이 긴박한 상황 가운데 돌연히 나타난 아리마대 요셉은 마치 오늘 본문에 나타난 잇대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정말 주님을 위해서 충성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교회가 평안하고 잘될 때에는 우리가 다 충성된 일꾼인 것 같지만, 막상 교회가 어려움을 당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파괴당하는 환란과 핍박이 올 때에는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오늘도 주님이 요구하시는 진정한 사람은 잇대와 같은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지금까지는 그의 이름이 나오지 않았지만 교회가 어려움을 당할 때 끝까지 하나님의 편에 서서 교회를 지키려고 하는 충성된 일꾼의 모습으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우리 모두는 이와 같이 충성된 일꾼이 되기를 사모해야 할 것입니다. 진정한 충신은 어려울 때 나타납니다. 좋을 때 충신은 충신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주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 우리가 얼마나 주님에게 충성하고 살아갑니까 주님의 일이 있을 때마다 떨쳐 일어나고 있습니까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고난 받고, 교회가 어려움에 직면할 때 주님을 위해서 떨쳐 일어날 수 있는, 그리고 끝까지 충성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마지막 날에 그 분이 “네가 맡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나의 잔치에 참여하라”는 주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계시록에 기록된 말씀처럼 의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을 받는 충성된 일꾼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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