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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강성 (삼하5:10-12)

본문

교회학교 유년부에 출석하고 있는 여덟살난 꼬마가 신이 나서 콧노래를 부르며 집안으로 들어 왔습니다. “엄마, 교회 다녀왔습니다”. 꼬마는 큰 소리로 엄마를 부르면서 달려가 손에 들고 있던 스케치북을 펼쳤습니다. “이것 좀 보세요, 오늘 성경공부 시간에 그림을 그렸는데, 내가 그린 그림이 제일 훌륭하다고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어요. 그래서 많은 아이들이 내 그림을 구경했어요”. 아들이 신나게 늘어놓는 자랑에 엄마는 자못 마음이 흐뭇하였습니다. “엄마 이것 좀 보세요”. “그래, 이게 무슨 그림이지” “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손이예요”. “오! 그래
그런데 하나님의 손이 굉장히 길고 크구나”. “그건요, ‘하나님의 손은 이 세상 구석구석까지 닿아야 하니까 이렇게 긴 거구요, 또 하나는 많은 사람을 도와주어야 하니까 이렇게 큰거예요”라고 자기 그림을 설명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손은 크고 깁니다. 그리고 강하십니다. 저 이스라엘 성군 다윗은 크고 긴 하나님의 손의 도움을 받아 점점 강성하여 갔다고 하였습니다(5:10). 우리 다시 다윗의 강성을 계속하기 원합니다. 언제 다윗이 강성해 졌던가
I. 존재의식을 깨달을 때입니다 곧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 때입니다. 본문 5장 12절에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 왕을 삼으신 것과, 그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본문에 다윗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았다고 한 말을 유의해야 합니다. 여기 ‘안다’는 말은(야다 ) 단순한 지식적 이해나, 감정적 전달이나, 이성적 지식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히브리어에 있어서 이 단어는 ‘부부 관계의 앎’을 가리킵니다. 부부끼리 만이 아는 비밀의 전부를 가리킵니다. 아내와 남편만이 아는 서로의 비밀을 다 아는 것을 뜻합니다. 독점적인 앎, 확실한 앎, 경험적인 앎을 뜻합니다. 그것은 저 유대인 모르드개가 에스더가 왕후 선발을 앞에 두고, 그녀에 대한 안부와 소식을 간절히 알고 싶어할 때 쓰인 말입니다(에2;11). 사실 여부를 ‘인식’하고 싶은 것을 말합니다. 또 이 말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 후에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았다고 할 때 쓰인 말입니다(창3:7). 또한 경우는 모세를 갈대 상자에 넣고, 흐르는 나일 강물에 떠내려보내 놓고, 그 누이 미리암이 어떻게 되는 것을 ‘알려고’ 멀리서 있었던 경우입니다(출2:4). 이런 경우 ‘야다’는 확인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알고 있었다는 말은 체험적인 지식을 뜻합니다. 마치 부부가 성 관계를 통하여 서로의 사랑을 체험하듯한, 산 지식을 말함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향한 계획이 무엇인지를 알았다는 사실 앞에 ‘강성’하는 비결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은 인생이 인생답게, 자기 삶을 승리로 성화시키는데 본질적인 동인(動因)이 되는 것입니다. 모세는 양치던 자리에서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았을 때, 실로 엄청난 인생의 새 길을 걷게 되는 비전을 받았고 힘을 얻었고, 행동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구원하심을 알았습니다. 자기 백성을 향한 출애굽의 거사를 알았습니다. 그 때 그는 전혀 다른 존재의미와 가치와 사명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출3:). 기드온은 미디안의 강압에 시달리던 민족과 함께 절망과 우수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사자의 방문을 받고,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고 하는 격려를 받고, 구국 운동의 지도자로 멧세지를 받을 때 그는 자기 인생을 새롭게 성화시키는 강성의 축복을 체험하였습니다. 마침내 그는 불을 보고, ‘여호와 샬롬’을 체험하고, 힘을 얻어 미디안과 블레셋의 침략에서 자기 조국을 구원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삿6:). 저는 고등학교 2학년 시절에 예수님의 은혜를 입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 고등학교 3학년 때 부산에서 개최된 S.F.C 동기 수양회에 참석하던 첫날 밤에 목사가 되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받았습니다. 바로 그날 밤 그 시간부터 집회를 마치는 한 주간을 완전 금식하면서 나의 나 된 존재의미를 새롭게 각성하게 되는 큰 은혜의 체험을 하였습니다. 사람이 언제 강성하여 지는가 바로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가를 ‘알 때’입니다. 바로 다윗의 ‘강성 비결’이 여기에 있었습니다. 바로 그 때, 자기의 존재 의미와 가치와 목적을 새롭게 각성하게 됩니다. 바로 그런 순간에 자신도 모르는 새로운 인생의 도약을 하게 됩니다. 결코 사람이 강성해 짐이 육체적인 힘이나, 지력(智力)이나 재력이 우선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힘, 그 자체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나의 존재를 깨달을 때입니다.
Ⅱ. 사명의식을 깨달을 때입니다 곧 자신이 할 일이 무엇임을 알 때입니다. 우리 본문 12절은 또 말하기를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 왕을 삼으신 것과.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삼으셨다는 말(쿤)은 ‘마련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예컨대 예레미야 46장 14절 중에 .너희는 굳세게 서서 예비하라는 말씀의 경우와 같습니다. 대적의 침략에서 깨어 있는 사전(事前)에 예비태세를 말하는 경우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다윗 자기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예비해 놓으셨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뜻입니다. 또한 ‘준비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시편 147편 8절에 .저가 구름으로 하늘을 덮으시며 땅을 위하여 비를 예비하시며.하는 경우입니다. 애굽 총리 요셉이 그 신하들에게 형제들과 함께 할 식사(잔치)를 .준비하라고 명하는 경우에 이 말이 쓰였습니다(창43:16).
그렇다면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예비하고, 준비해 놓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또 이 말은 ‘고정하다’는 의미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예컨대 .여호와께서 유다를 명하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하매. 하는 경우입니다(대하33:16). 시편 119편 133절에 나의 행보를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아무 죄악이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하는 경우입니다. 하나님이 유다로 하여금 아예 이스라엘 하나님만 섬기도록 굳게 법으로 당신의 명령으로 고정시켜 버린 경우입니다. 아예 주의 말씀(계명)에 우리 삶의 행로를 굳게 묶어 버린 경우입니다. 전혀 사람 자신의 힘으로는 하나님이 기쁘게 정하여 놓으신 뜻(계획)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해 버린 경우를 가리킵니다. 다윗은 이 사실을 알았습니다. 결코 자기가 왕이된 것은 자의에 의한 것이나, 아니면 또 어떤 다른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고, 하나님 자신께서 ‘고정해’놓고 말았다고 깨달았습니다. 이런 경우 다윗은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확실해 졌습니다. 그때 다윗은 자신이 한 일이 무엇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왕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왕이된 다윗은 왕으로써 해야 될 일이 무엇임을 분별하게 됩니다. 바로 이것은 자신의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감에 대한 자각심입니다. 그때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고, 벌떡 일어나, 하나님의 맡기신 대임(大任)을 감당할 용기를 받게 됩니다. 처녀가 시집을 가면 신부가 됩니다. 신부가 얼마 지나면 임부(姙婦)가 되고, 또 얼마 지나면 아기를 품에 안는 산모 곧 어머니가 됩니다. 그때 어머니가 된 그 여인에게는 자기가 낳은 자식을 향하여 엄청난 강성을 띄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자기 자식을 향한 모성이라는 것입니다. 그 모성의 힘은 이 세상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행할 수 있는 최대, 최고, 최귀(最貴)의 힘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의 힘입니다. 축복을 기원하는 힘입니다. 정말 자식을 향한 그녀의 전부는 강성을 띄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생명의 강성입니다. 그래서 그이름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고 말하게 됩니다.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하러 세상에 왔다는 사명의식이 분명해 질 때 그 누구도 막을래야 막을 수 없는 힘이 일어납니다. 말하자면 ‘강성’해 집니다. 바로 다윗은 이러한 은총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III. 축복의식을 깨달을 때입니다. 우리 본문 12절은 다시 말합니다.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 왕을 삼으신 것과 그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 중에 하나님께서.그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나를 높이셨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높이셨다는 말(나사)은 “치켜들어 올림”을 뜻합니다. 예컨대 창세기 7장 17절에 홍수가 땅에 사십일을 있었는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고.하는 경우입니다. 물이 방주를 치켜들어 올림을 뜻하는 경우입니다. 그 물은 심판과 구원의 이중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노아와 그 가족이 타고 있는 방주는 들어올리고, 방주 밖에 남은 자는 물 속에 잠겨 버리도록 하였습니다. 이런 경우 노아의 가족은 방주로 말미암아 물 위로 들어올림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과 그 백성은 다윗이 왕이 됨으로 말미암아 축복을 받아 높아졌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경제적인 상승도 의미합니다. 정치적 안정의 상승도 의미합니다. 더욱이 영적, 종교적 상승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은 “향상시키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예컨대 욥기 11장 15절 중에 .흠 없는 얼굴을 들게 되고.하는 경우입니다. 우리 본문에 하나님께서 .그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셨다는 말은 저들의 신분과 권위가 높임을 받도록 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곧 국민과 정부가 다윗을 왕으로 모신 결과 축복의 진보가 있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결코 다윗 자신의 힘이나 노력에 의해서 저들 백성이 열국 중에 높아졌음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께서 저들을 높이셨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자신과 그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의 보호와 인도와 자비로우심과 축복하심 앞에서 ‘강성’의 은총을 체험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높이신다. 하나님이 나를 치켜들어 올려 주신다. 하나님이 나의 얼굴을 들게 해주신다. 하나님이 이 백성과 나라를 열국 중에 높이신다. 바로 이러한 은총 체험은 다윗 자신과 왕국의 축복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체험이 있는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나, 국가는 언제나 강성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다윗의 강성! 그것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바로 알았을 때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존재케 했다고 알았습니다. 결코 다윗은 자신의 존재가 우연의 산물이 아닌줄 알았습니다. 진화론적 산물이 아니라고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자신이 이미 있었고, 그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나왔고 (창조를 받았음), 하나님의 계획의 성취를 위하여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말하자면 자신의 ‘존재의미’는 신적이었다는 사실을 바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존재의미를 알려주는 진리입니다.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고 하는(갈2:20) 확실한 내 존재의 의미를 바로 깨달을 때 그는 분명히 “강성”을 띄는 인생이 됩니다. 그 때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내게 능력을 주실 때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하는 가능의 사명의식을 받게 됩니다(빌4:13). 결코 나의 나 된 인생은 무의미의 삶이 될 수 없다고 느껴집니다. 나는 세상에 하나님의 일을 하러 보냄 받은 사람이라는 자각을 하게 됩니다. 다윗도 하나님이 자기를 왕을 삼으셨다고 하였습니다. 그 때 일할 맛이 나고 용기가 나고 행동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나를 있게 했고(존재), 하나님이 나에게 일을 하게 했으면(사명), 그 결과는 필경 축복이라는 확신이 오게 됩니다. 다윗은 이 사실을 가리켜서 하나님이 높이셨다고 표현했습니다. 이 때 강성의 은총을 입게 됩니다. 경향인들이여! 그리스도인들이여! 나의 나 된 존재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내가 이 때에 와서 할 일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자각하십시오.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높이시는 축복의 미래가 있습니다. 그는 불가분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은 강성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윗의 강성! 우리 모두의 강성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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